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66화 (266/656)

제 266화

『뭐야, 무슨 일이야?』

『지금 저 한국 팀에서 항의하나 봐.』

영국인 기자가 흥미진진하게 턱을 괴었다.

『뭐, 원래 모델링 초콜릿 공예에서 ‘맛’은 평가하지 않잖아. 먹자고 만드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프랑스 팀은 이번에 ‘누텔라’를 첨가해 맛좋게 개량한 모델링 초콜릿을 내놓아서 가산점을 받은 거잖아.』

다른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든 진혁은 상관하지 않고 똑바로 서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웅성거렸다. 알버트 그림슨이 중얼거렸다.

『저자는 뭘 원하는 거지?』

시몬 리옹이 말했다.

『한국 팀은 이렇게 높은 순위에 오른 게 처음일 텐데.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거야?』

주영모는 시몬 리옹을 노려보고서 침묵했다.

안토니오 바트가 대답했다.

『원래 초콜릿 쇼피스의 경우, 공식적으로 맛은 평가 기준이 아닙니다.』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심사는 이미 끝났습니다.』

진혁은 화를 내거나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는 담담하게 설명했다.

『저는 심사를 다시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 팀의 모델링 초콜릿을 맛보셨지요?』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항의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잘생긴 동양인 청년이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처럼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호의로 모델링 초콜릿 피스를 제공할 테니 그것도 맛을 봐 주셨으면 합니다.』

심사위원들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안토니오 바트와 엘리자베스 포크너는 빠른 목소리로 무어라 의견을 교환했다. 유난 취가 말했다.

『이미 심사가 끝났다는 걸 인정하고 있으니, 맛을 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 같은데. 어차피 수상자는 결정된 거고.』

『뭐, 그 정도라면….』

라이언 윈체스터가 걱정스레 물었다.

『하지만 초콜릿 쇼피스는 대회에서 전시할 예정이니까 먹을 것은 없을 텐데. 실버 메달을 받은 작품을 잘라 심사위원에게 주겠다는 건가?』

시몬 리옹이 차갑게 말했다.

『설마 지금부터 만들겠다는 건 아니겠지? 그건 불가해. 어디까지나 대회에 참가한 작품을 내놓았던 거니까 말이지.』

진혁이 빙긋 웃었다.

『초콜릿 쇼피스를 제작할 때 여분으로 만들어 놓은 작품이 있습니다.』

그는 무대 위로 성큼성큼 올라가, 자신이 따로 만들어 둔 초콜릿 작품을 꺼내왔다.

그것은 대리석 느낌이 나는 멀쩡한 돌사자였다. 마리오가 제대로 만들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진혁이 여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루이스는 진혁과 마리오를 바라보고 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달았다.

‘진혁이 녀석. 마리오에게 뭔가 일을 시키고 싶어서 일부러 저렇게 만들어놓았구만.’

마리오가 눈을 크게 떴다. 따로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하고 완성도가 낮아 자신에게 부탁한다고 했는데 저 돌사자는 아주 멀쩡해 보였다.

‘잘 만들었잖아? 귀 모양이 조금 일그러진 것만 다듬으면 될 것처럼 보이는데. 저걸 할 시간이 없어서 나한테 맡긴 건가…?’

진혁은 돌사자를 조리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칼을 집어 들어 돌사자를 반으로 쪼갰다.

『모델링 초콜릿이 아니고 틀에 부어 만든 초콜릿이야? 어떻게 저렇게 쪼개져?』

칼날에 묻어나는 초콜릿 한 점 없이 깔끔하다. 진혁은 반으로 잘린 단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모델링 초콜릿이 맞습니다.』

안토니오 바트가 깜짝 놀라 말했다.

『뭐야? 왜 안이랑 겉이랑 달라?』

겉면에는 대리석 느낌을 내기 위해 미묘하게 회색을 섞은 흰색 질감의 모델링 초콜릿을 사용했다. 그리고 각진 돌 같은 느낌이 나게 하기 위해 표면을 살짝 갈아냈다.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가까이 다가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안쪽에 있는 그 빨간 건, 그걸까요?』

주영모가 중얼거렸다.

『…앙트르메에도 넣었던 레드 하트인가?』

입체적인 하트 모양의 설탕 공예 작품.

『저는 라이언 하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진혁이 조심스럽게 그 주변만 비켜나가, 아직 깨지지 않고 온전한 모습을 간직한 ‘사자의 심장’이다. 기본적으로 검은 딸기 시럽과 딸기잼을 섞어 넣어 점도를 조절해, 굳은 피처럼 보이게 한 액체가 들어가 있는 설탕 구였다.

『앙트르메에 들어간 것과는 맛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죠.』

『아니, 이 바쁜 와중에 왜 그렇게 했나?』

안토니오 바트가 의아해하며 묻자 진혁이 대답했다.

『…모델링 초콜릿과 나인 레이어 앙트르메의 맛이 다르니까요? 초콜릿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맛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이 대답한다. 무대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안토니오가 헛기침을 했다.

『흐음, 흠.』

진혁은 빵칼 칼등으로 살짝 내리쳐 슈가 하트를 깼다. 검붉은 시럽이 꿀렁꿀렁 흘러나오자 초콜릿에 골고루 덧발랐다.

『딸기 시럽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은 모델링 초콜릿 부분만 드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같이 드시는 걸 추천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퍼포먼스인데, 묘하게 눈길이 간단 말이지.’

알리샤가 새 접시를 가져오자, 진혁은 하나씩 조각을 옮겨 담았다.

『산산이 조각난 사탕 조각도 초콜릿이랑 같이 묻혀서 드시면 맛있을 겁니다.』

알리샤는 접시에 초콜릿 조각을 담아 심사위원들에게 하나씩 가져다주었다.

『알겠어요, 한 번 먹어보죠.』

‘외면이 아니라 내면까지 신경 쓰다니, 시간이 남아돌았나 봐. 손이 굉장히 빠른 모양인데?’

엘리자베스 포크너는 팔짱을 끼고서 자신의 앞에 서빙된 초콜릿을 살폈다.

『붉은색 시럽이 찐득찐득하게 묻은 초콜릿은 안쪽의 다크 초콜릿인데. 겉면의 화이트 초콜릿엔 일부러 검은 딸기 시럽을 묻히지 않았고.』

엘리자베스 포크너는 손을 깨끗하게 씻고서 오른손으로 초콜릿 덩어리를 눌러 보았다. 검지 정도 크기로 잘린 다크 초콜릿 조각은 시판하는 초콜릿처럼 단단해서 눌리지 않았다.

『어머나? 모델링 초콜릿이라면 당연히 플레이도우처럼 말랑말랑해야 할 텐데요.』

하지만 화이트 초콜릿 쪽은 말랑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아직 남아있었다.

『다크 초콜릿은 모델링 초콜릿을 안 썼군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안토니오 바트는 코를 킁킁거리며 모델링 초콜릿의 향기를 맡았다.

『시판하는 모델링 초콜릿을 쓰지 않은 건 분명한데. 벨코라데 다크 초콜릿을 믹스했나?』

두 사람이 면밀하게 초콜릿을 살피는 동안, 다른 심사위원들도 접시를 받았다. 주영모는 경건한 마음으로 포크를 들어 초콜릿을 찍어 입술로 가져갔다.

‘임진혁 쉐프가 만든 것 중에 맛이 없는 건 없었지.’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보통 작품이 ‘먹을 것’이라고 상정하지 않고 제작하는 쇼피스 부문에서도 맛을 생각했을지는 몰랐다.

‘시몬은 프랑스 팀이 확실하게 우승할 수 있도록, 뜻밖의 한 수를 내놓은 거겠지.’

초콜릿 쇼피스 부문에서 ‘맛’은 평가대상이 아니다. 이미 라이언 윈체스터가 언급했던 것처럼 모든 초콜릿 작품들은 쿠프 드 몽드가 끝날 때까지 작품관에서 전시된다. 3위 안에 들어 수상한 작품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아무도 그 작품을 쪼개거나 갈라서 맛을 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먹을 것’으로 만들지만 ‘먹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닌, 솜씨를 뽐내기 위해서 자랑하는 자리다.

하지만 결국 초콜릿은 먹을거리 중의 하나이고, 페이스트리 쉐프란 먹을 것을 아름답고 맛있게 만드는 것이 직업이다. 이번 심사에서 시몬 리옹은 그 점을 파고들어 ‘초콜릿 작품을 맛있게 만든’ 프랑스 팀이 얼마나 우수한지 설파했다. 대부분의 심사위원이 그 사실에 동의했다.

그것은 부정행위는 아니었다. 오히려 기발한 아이디어에 가까웠다.

안토니오 바트는 인상을 찌푸렸다.

『한 명이 생각해낼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이 생각해낼 수도 있다는 건가….』

이탈리아의 발명가 안토니오 무치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보다 더 먼저 전화기를 발명했다. 두 사람 다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현실에 재현해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특허를 낸 사람은 벨이 먼저였고, 안토니오는 전화의 발명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초콜릿 작품이 프랑스 팀 것보다 맛있어도 소용없어. 수상 결과 발표는 끝났고 우리들은 그저 호의로 이걸 맛보고 있는 것뿐이니까….’

전화 발명으로부터 12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안토니오 무치는 전화의 발명자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미 죽고 나서 얻은 명예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는 입안에서 살살 녹는 초콜릿의 맛에 전율했다.

‘이런 시X, 이거 겁나게 맛있잖아.’

바삭하게 부서지는 다크 초콜릿은 부서지는 대로 입안에서 바로 녹아 미뢰를 간지럽혔다. 녹진녹진한 초콜릿 사이에 씹히는 잘게 잘린 사탕 조각은 상큼한 시트러스 계열의 맛이었다. 선명한 오렌지 맛과 진한 초콜릿, 그리고 딸기 시럽.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세 가지 맛에 덧붙여, 새로운 맛이 하나 더 있다.

하얗고 말랑말랑한 모델링 표면의 초콜릿은 몽글몽글하게 뭉치며 입안에 굴러다녔다. 우유 향이 강한 밀크 초콜릿이라 다른 세 가지 맛과 잘 어울렸다.

심사위원석은 전부가 깊은 물에 잠긴 것처럼 고요했다. 강렬하고 충격적인 맛에 깜짝 놀란 이들은 각자 입안에서 혀를 놀리느라 바빴다. 입천장이나 이 뒤, 잇몸 사이에 끼어있을 마지막 초콜릿 맛까지 느껴보기 위해서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가장 마지막까지 초콜릿 접시에 손을 대고 있지 않던 시몬 리옹이 중얼거렸다.

『흠, 어떤 것인지 맛만 봐주도록 하지.』

그는 보란 듯이 한 입만 맛보고서 그대로 접시를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어차피 모델링 초콜릿에서 나는 맛은 그게 그거야.’

그는 프랑스 팀의 제자들과 함께 ‘맛있는 모델링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연구를 거듭했다. 하지만 이것저것 재료를 섞었을 때는 모델링 초콜릿이 그 경도를 유지하지 못해 말랑말랑한 반죽의 특성을 잃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백여 번에 이르는 실패를 거듭한 끝에 누텔라를 특정 비율로 섞어 달콤한 맛이 강한 모델링 초콜릿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매달린 연구 끝에 얻어낸 성과다. 그 맛을 고작 저런 녀석이 따라잡았을 리가 없다.

『한 입만….』

시몬 리옹은 손톱만 한 초콜릿 조각을 하나, 입안에 넣었다. 차가운 다크 초콜릿 조각이 딱 하고 소리를 내며 깨지고, 타액과 함께 섞여 한 몸이 되었다. 농후한 초콜릿 향이 코와 입을 동시에 꽉 채운다. 달콤씁쓸한 카카오의 맛이 잇몸과 혀에 닿으며 찰싹하니 달라붙어 사라지질 않는다.

『으음…!』

손을 멈출 수가 없다.

시몬은 이곳이 어디인지 잊었다.

그는 허겁지겁 손을 뻗어, 초콜릿 조각을 집어 들었다. 포크를 들 여유 따위는 없다. 맨손의 체온에 녹은 초콜릿이 오른손에 검은 얼룩을 남기는 것도 상관없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

이 맛은 그가 어린 시절, 최초로 경험했던 원초적인 맛과 닮아있었다.

‘빨간 지붕 집, 로랑 할머니의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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