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65화 (265/656)

제 265화

『미국 팀은 평소에 흔히 보던, 뉴욕 맨해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즐겁고 유쾌하게 재해석했습니다. 처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는 광경이죠.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페이스트리 쉐프에게 있어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해설을 하는 동안, 미국 팀은 축제 분위기였다. 관객석에 와 있던 미국인들도 플랜카드를 휘날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축하합니다!』

『축하해요!』

리처드 베이커는 침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아직 1라운드니까.』

『신나면 그냥 신난다고 얘기해.』

토마스는 아예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했다.

『우와하하하! 브론즈!』

기뻐하는 두 사람 가운데에서 브라이언 신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디저트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그것처럼 행복과 기쁨, 달콤함을 가져다주는 여신이라고 재해석해서 이 컨셉은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어. 그런데 고작 3위라.’

그는 씁쓸하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직도 부족해.’

그는 이기고 싶었다. 최소한 한국 팀보다는 더 잘하고 싶었다.

3위 발표를 본 기자들이 수군거렸다.

『미국이 1라운드에서 3위권 안에 든 게 몇 년 만이죠?』

『십여 년 만입니다. 감격스러워할 만하죠.』

『1, 2 후보가 누구일지는 뻔하긴 한데. 누가 1위일지가 궁금하네요.』

『응? 뭐가 뻔해? 다들 잘했잖아요.』

리암 에이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영국에서 온 풋내기 기자에게 설명해주었다.

『딱 봐도 어디가 완성도가 높은지는 보여. 그렇지만 이런 국제 대회는 잘 만드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럼요?』

『이 대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사실 기술은 거기서 거기야. 누군가 특별하게 대단한 엄청난 기술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뭘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거지.』

『마음이 담기지 않고 기술만 자랑하는 작품이 있어도 그다지 좋은 점수는 받을 수 없다는 얘기군요….』

『맞아. 페이스트리 쉐프로서 어떤 철학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거야.』

안토니오 바트가 하얀 봉투를 꺼내 들었다.

『미국 팀의 작품을 잘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2위를 발표하겠습니다.』

봉투를 팔랑거리며 흔드는 안토니오 옆에서 엘리자베스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너무나 우수한 작품이 많았기 때문에 심사위원분들께서도 오랜 시간 동안 토의를 해야 했어요.』

『새로운 재료가 나타나고 또 다른 테크닉이 개발되면서 제과제빵 시장은 크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초콜릿 쇼피스도 점점 더 정교하고 아름다워지고 있고요. 여러분이 이번에 만든 작품들 역시 그 역사의 현장에 한 조각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관객석에 있던 이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래서 2위는 누굽니까?』

『그렇지 않아도 지금 그걸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경쾌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을 들어 얼음을 쪼개던 참가자들도 전부 손을 놓고 무대를 한가운데를 바라보았다.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받아든 봉투를 열어 이름을 읽었다.

『2위, 한국 팀입니다!』

전광판에 숫자가 공개되었다.

앙트르메 타임보너스 15점.

모든 분야에서 만점.

초콜릿 쇼피스 타임보너스 15점.

『엄청난데? 타임 보너스를 두 번 다 받았어.”

『저기 앙트르메는 정말 예뻤어. 그런데 맛 점수까지 만점이야? 나도 정말 한번 먹어보고 싶다.』

『다 좋은데 왜 초콜릿 쇼피스 주제 점수가 저렇게 안 좋지?』

한국 팀은 다만 초콜릿 쇼피스의 주제 부분에서 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냥 서류만 잘 쓰면 되는 건데 왜 저기서 저런 점수를 받았지? 저렇게 잘 만들었는데 안타깝다.』

점수판에 쓰인 숫자를 본 이들이 숨을 삼키며 놀라워했다.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주영모는 순간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주제에서 저런 점수를 받았다고?’

그는 미간을 찡그리며 무어라 말하려고 하다가, 히죽 웃고 있는 시몬 리옹을 발견하였다. 주영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브라보! 한국 팀, 잘했습니다!』

그가 천천히 양손을 세 번 부딪혀 손뼉 소리를 냈다.

『축하합니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하나 둘 씩 따라서 박수를 치자, 관객석에 있던 이들도 일제히 손뼉을 쳤다.

무대 위에서 발표를 기다리고 있던 루이스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

『초콜릿 부문에서 2위라고?!』

마리오 역시 감격한 듯 중얼거렸다.

『임진혁, 진짜 대단하다. 우리나라가 초콜릿 카테고리에서 3위 내에 들다니, 완전 처음이야.』

반면에 진혁은 그다지 기뻐하지 않았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뭐가 부족했지.’

내심 1위를 예상하고 있던 그는 팔짱을 끼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순간 이마의 주름이 깊이 패였다가 다시 돌아왔다.

‘분명히 평이 아주 좋았는데.’

이번 라운드의 점수는 앙트르메와 초콜릿 쇼피스를 합쳐서 매겨진다. 그는 앙트르메도 쇼피스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퀄리티가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웃으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한국 팀은 놀랍게도 앙트르메의 아이디어, 참신함, 맛과 겉모양, 만드는 자세 등 모든 점에서 만점인 10점을 받았습니다.』

『여태까지 앙트르메는 최고점이 8.9점으로, 9점을 넘은 팀조차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검의 완성도, 그리고 케이크를 잘랐을 때 퍼지며 반기는 딸기 시럽의 재미, 놀라울 정도로 균형 잡힌 맛의 밸런스는 만점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쇼피스 역시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나비의 색깔이 아주 아름다웠지요. 하지만 탑과 고양이, 나비라는 세 가지 소재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이 작품 설명에서 명확히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임진혁 쉐프만의 철학이 보이지 않았어요.』

『탑클래스의 초콜릿 쇼피스로, 프랑스 대통령의 만찬에 올라가도 부끄럽지 않은 완성도입니다. 그 부분만 명확했어도 충분히 우승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쉽습니다.』

진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루이스와 마리오를 돌아보았다.

“…영작해야 하는 서류는 내가 전부 루이스 형한테 맡겼지.”

“다보탑이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가진 의미와 지금 이 대회에서 다보탑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내가 적당히 소설 써서 제출했어.”

루이스가 주먹을 꽉 쥐며 대답했다. 얼굴은 창백하게 질린 채였다.

“당연히 거기에는 나비나 고양이의 의미는 담겨 있지 않고….”

진혁이 중얼거렸다.

“내가 직접 써야 했는데.”

광안마 녀석은 유능하고 뛰어났으며 하나를 시키면 둘을 알아서 하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진혁이 정말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까지 짚지는 못했다. 아무리 일 잘하는 부하라고 해도 상사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수는 없다.

‘멍청한 실수를 했어. 시간이 남으면 추가로 뭘 만들 거니까, 거기에 대한 언급을 해달라고 미리 말을 해야 했던 건데.’

차라리 진혁이 먼저 한글로 쓴 다음에 번역해달라고 맡겨도 되었을 것이다. 자기소개서나 이력서 같이, 형식적인 절차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홀히 넘겼다. 루이스가 어련히 알아서 잘 했겠거니 하고 믿었다.

“뭐야, 뭐가 문젠데?”

2위라는 감격에 젖어서 혼자 어깨춤을 추고 있던 마리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끼어들었다. 뒤늦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것이다.

“내가 낸 서류 말이야. 나비와 고양이에 대해서는 전혀 적혀 있지가 않아. 그래서 탑만 있고… 주제에 반영하지를 못했어.”

루이스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허리를 숙이며 괴로워했다.

“아까 거기까지 신경 쓰지를 못했어.”

마리오는 눈을 껌뻑거리며 침통한 표정의 큰형과 임진혁을 바라보았다.

“실전에서는 보통 시간이 더 걸리니까, 아까처럼 그렇게 시간이 남을 줄도 몰랐고. 다보탑 자체로 내서 미리 낸 서류하고 맞추었어야 했어. 진혁이가 나비하고 고양이 만들 때 말릴걸. 쓸데없이 뭘 더 한다고….”

루이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고통스러워하자, 마리오가 형의 팔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무슨 헛소리야. 저 고양이하고 나비를 잘 만들어서 그나마 저 점수 받은 거야.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보라고.”

“최악의 상황?”

성질 급한 마리오가 발을 쿵쿵 굴렀다.

“형이 못 말려서 진혁이가 좀비 만들었다고 생각해 봐. 2등은커녕 우리 꼴찌 했을걸.”

“…어? 그렇네?”

루이스가 양손으로 가리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진혁이 말했다.

“야. 꼴찌는 너무하잖아. 현실적으로 재현한 좀비를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다들 좋아했을 거라고.”

“아무도 안 좋아해!”

“누가 그런 걸 좋아하냐!”

진혁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형, 우리는 충분히 했어.”

마리오가 진혁과 루이스에게 말했다.

“2등이면 엄청나게 잘 한 거지.”

“진혁이가 이번에 만든 쇼피스는 진짜 최고였단 말이야. 내가 서류만 제대로 냈어도 우리가 우승이었을지도 몰라. 0.1점 차이라니.”

“형, 내일 내 뺑 오 쇼콜라하고, 루이스 형의 얼음조각도 있잖아. 모레는 슈가크래프트 아트 경연하잖아. 벌써부터 힘 빼지 말자고.”

진혁이 마리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마리오 네가 맞는 말도 하네.”

“뭐? 난 항상 맞는 말만 한다고!”

『한국 팀은 나와서 메달을 받아주세요!』

헤드 쉐프 역할을 맡은 루이스가 나가서 메달을 받아왔다.

『…감사합니다.』

바게트 두 개가 겹쳐져 있는 모양이 양각된 은색 메달이었다. 빨간색과 흰색, 파란색의 세 가지 색깔이 섞인 끈에 매달려 있는 메달을 받아든 진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짜 은은 아니네.”

“은도금일 거야.”

『다음은 1위를 발표하겠습니다! 1위는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을 만든 프랑스 팀입니다!』

프랑스는 앙트르메에서 점수를 깎였고 타임 보너스를 전혀 받지 못했다. 하지만 초콜릿 쇼피스의 주제 부분과 혁신 부분에서 만점을 받았다. 진혁이 제일 점수를 얻지 못한 부분이었다.

『흔히 오래된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죠. 프랑스 팀은 이번에 가장 혁신적이고 새로운 재료를 이용해 전통적인 건물을 만들었습니다. ‘맛있는’ 모델링 초콜릿이죠!』

『보통 퐁당이나 모델링 초콜릿은 맛이 없습니다. 장식용 초콜릿도 맛은 없어요. 하지만 누텔라와 크런치를 섞은 모델링 초콜릿은 마치 스니커즈 바처럼 절묘하게 달콤하고 씹히는 맛이 납니다.』

그것은 프랑스 팀의 비밀 병기였다. 초콜릿 쇼피스를 내면서 동시에 심사위원들이 샘플로 맛을 볼 수 있는 조그마한 초콜릿 바를 한꺼번에 제출했다. 다른 이들이 ‘모양’에 신경 쓰는 사이에, ‘맛’을 개혁한다. 그것이 시몬 리옹이 숨겨두었던 패였다.

리옹은 입이 찢어져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열렬하게 손뼉을 치고 있었다.

주영모는 그쪽을 바라보며 똥 씹은 표정으로 느릿느릿 손뼉을 쳤다.

‘저래서 끝까지 자신만만했던 건가?’

1위까지 발표 난 결과를 본 리암 에이든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한국 팀이 만든 것도 분명히 맛있을 텐데.’

『여, 리암. 내기는 내가 이겼는데?』

『아니야, 난 아직 안 졌어.』

『응?』

『오늘 대회 결과에만 내기를 건다고 한 적은 없잖아? 나는 닷새간의 경연이 전부 끝났을 때, 한국이 종합 1위를 한다는 데 걸겠어.』

『리암 네가 100달러를 추가로 건다면 그 내기 조건, 받아들여 주지.』

리암이 멈칫했다.

『어이, 미스터 리암 에이든. 이번에 한국 팀이 잘하긴 했지만 종합우승할 만큼은 아니잖아?』

친한 기자가 걱정스러워하며 말을 걸었다.

『괜히 돈 낭비하지 않고 이번에 건 돈만 잃고 끝내지그래.』

『아니, 100달러를 추가로 걸겠어.』

리암은 100달러 지폐를 꺼내 펄럭여 보였다. 그는 확신이 있었다.

‘앙트르메 때 내놓은 슈가크래프트의 모양을 보면-슈가아트 부분에서도 한국 팀은 우수한 성적을 낼 게 분명해.’

프랑스의 주느비에브가 금빛 메달을 받고 돌아서자, 안토니오 바트가 말했다.

『의문 사항이나 궁금한 점이 있습니까?』

임진혁이 손을 들었다.

『말씀드리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훗, 무슨 말을 하려고.’

시몬 리옹이 턱을 괴고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프랑스 팀의 초콜릿 노트르담 성당이 맛있어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면, 제 초콜릿 다보탑도 드셔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진혁이 자신만만하게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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