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63화 (263/656)

제 263화

『아름다운 현대식 건물이군요.』

드높이 솟아있는 두 개의 빌딩은 무대 위의 조명을 받아 현란하게 빛났다. 은빛이 섞인 보랏빛과 농밀하고 짙은 자줏빛, 형광색에 가까운 분홍색 표면에 번지르르하게 윤기가 흐른다. 정상급 페이스트리 쉐프가 심혈을 기울여 바른 코코아버터 물감으로, 모나거나 울퉁불퉁한 데 없이 매끄럽고 깔끔하게 발렸다.

『건물 표면에 칠을 잘 했는데.』

『…하지만 아까 본 동양적인 탑 위에 있던 나비 날개만큼 광택이 나지는 않는군.』

하지만 그것은 누가 봐도 그저 ‘코코아버터 물감’일 뿐이었다.

『아까 그 날개가 대단했지?』

『맞아. 물감을 여러 차례 겹쳐 발라서 그런지, 보는 각도마다 색깔이 바뀌는 게 아주 예뻤어. 이 빌딩의 컬러감도 나쁘지는 않지만 어디서 봐도 같은 색깔로 빛나니까 좀 부족해 보인달까.』

알리샤가 대만 팀의 초콜릿 작품을 소개했다.

『타이페이 트윈즈 타워입니다! 아직 건설 중인 건물로, 완공이 되면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마천루가 된다고 합니다.』

심사위원들이 각자 고개를 끄덕였다.

『소재라는 면에서 보면 나쁘지 않아. 다른 이들이 과거를 바라보는 동안 그들은 미래를 보고 있군. 허를 찔러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어. 젊은 세대가 미래를 보는 것은 좋은 일이야.』

알버트 그림슨에 이어, 유난 취가 턱을 괴고서 말했다.

『실제 타이페이 트윈즈 타워도 색깔이 바뀌는 건물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색깔이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어.』

조금 전에 보았기 때문에 확실히 비교가 된다. 심사위원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대만 팀에게도 들렸다. 중국 쉐프 중 영어가 제일 유창해 방금 한 이야기를 다 듣고 이해한 장취앙린은 입을 한 일 자로 굳게 다물었다. 직접 붓을 들어 색깔을 칠했던 리우마오유는 심사위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은 피부로 느껴졌다. 그가 창백한 낯빛으로 말했다.

『대형, 뭐가 문제야? 내가 마무리를 잘 못 했나?』

『아니. 둘째 너는 이번에 잘 했다. 연습하고 노력했던 만큼 잘 나왔는데.』

장취앙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남한 팀의 괴물이 더 잘했을 뿐이지….』

셋 중 유일하게 바깥쪽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왕웨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막판 스퍼트를 올리기 위해 얼음 조각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누가 괴물이라는 거야? 마리오 강은 풋내기고 루이스 강은 얼음 조각이 전문인데. 그리고 콩깍지도 안 벗겨진 풋콩이 하나 왔을 뿐이잖아.』

‘풋콩’은 정상급 국제 대회에 첫 출전한 풋내기를 이르는 말이다.

본디 쿠프 드 몽드 급의 세계 대회에 출전할 정도의 페이스트리 쉐프들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다.

전 세계의 방방곡곡마다 능력이 뛰어난 쉐프들이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생업을 버려두고 대회에 출전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러한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이들은 여유가 있거나, 정말로 능력이 뛰어나 스폰서가 붙어 있는 자들뿐이다.

『아무래도 그 풋콩이 강호의 은둔 고수 같단 말이지.』

장취앙린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왕웨이가 대꾸했다.

『강 씨 형제의 첫째가 실력이 뛰어나니 그동안 정진해서 이번에 나아진 거 아니야? 남한 풋콩은 강 씨 동생이랑 동갑이라고 들었어. 그럼 18살 때부터 제과제빵을 했다고 해도 장 대형이나 리우 둘째 형보다는 경력이 짧을 수밖에 없다고.』

『…음.』

‘그 경력 짧은 풋콩의 솜씨가 생각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것 같은데.’

장치앙린은 입을 열어 무어라 말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직 왕웨이는 얼음 조각을 하는 중이다. 그가 지금 이 자리에서 리더로써 해야 할 일은 그런 왕웨이를 격려하고 북돋아 주는 일이지, 자신의 불안감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었다.

『왕웨이. 긴장할 필요 없어. 네 얼음 조각 솜씨야말로 타이페이 최고잖아. 평소 하던 대로만 해.』

『장 대형이 갑자기 너무 띄워 주면 곤란한데.』

왕웨이는 투덜거리는 척 말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리우마오유도 애써 웃으며 말했다.

『웨이, 목마르지? 마실 물을 좀 가져다줄게.』

대만 팀에 대해서 심사위원들이 하는 평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장치앙린은 심사위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나도 웨이를 보조해줄 테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          ◈          ◈

아름답게 서 있는 두 개의 현대식 건물을 힐끔 바라보며 토마스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조금만 더 빨리 냈으면 우리가 먼저 심사받았을 텐데 아깝네.’

『저것도 대단하긴 한데 아무래도, 아까 그 나비하고 고양이만큼은 못하네.』

『그건 나비랑 고양이를 묘사한 게 아니라고. 탑이 주인공이야, 탑이.』

『그래도 나비한테 저절로 시선이 가서 말이지.』

토마스가 조리모를 고쳐 쓰며 말했다.

『친해져서 검은제비호랑나비랑 푸른먹나비도 좀 만들어 달라고 하고 싶네. 도대체 그 굵은 초콜릿 모델링 반죽으로 어떻게 촉각이나 날개 같은 걸 재현했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토미 보이, 지금 곧 우리 팀 심사를 할 건데 저쪽 팀 것만 보고 있는 거야?』

브라이언이 빙긋 미소지으며 묻자 토마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플레이도우부터 시작해서 모델링 초콜릿, 마지팬이랑 이소말트로 나비를 만들려고 시도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 그런데 저렇게 깔끔하고 예쁘게 나오지가 않아서 말이지.』

리처드 베이커가 말했다.

『저거 날개는 웨이퍼 페이퍼일걸?』

진혁과 3개월간 함께 이것저것 다양한 걸 만들며 경쟁해본 적이 있던 리처드가 추억에 잠겨 말했다.

『어?! 웨이퍼 페이퍼라고 보기에는 너무 얇아서….』

웨이퍼 페이퍼(Wafer paper)로 나비를 만들려고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토마스 브라운 역시 검 페이스트로 몸통과 머리, 촉각을 만들며 웨이퍼 페이퍼 날개를 붙여본 적이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얇고 힘이 없어서 나비 날개에는 적합하지 않아 포기했다.

리처드 베이커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진혁이가 그거 많이 쓰거든. 웨이퍼 페이퍼에 펄 스프레이 뿌려서 색깔이랑 광택 내서 가벼운 느낌 내고, 너무 얇은 느낌이 나니까 한 겹 더해서 다층적인 색깔을 내는 거지. 자주 쓰던 기법이야.』

『이럴 수가. 두 장을 겹쳐서 그 두께를 만들었구나. 그렇지.』

『두꺼운 걸 깎으면 지탱하지 못하지만 얇은 결 겹치면 쉽다고 하던데? 거기에 따로 제작한 투명한 플라스틱 무늬 틀에 찍으면 웨이퍼 페이퍼에 무늬가 생겨서 날개 색깔을 내기가 좀 더 쉬워진다고 했어.』

리처드 베이커가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어댔다. 토마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허어.』

‘두 겹, 그냥 두 겹을 겹치면 되는 거였나. 생각해보면 어려운 것도 아닌데.’

감탄사를 내뱉으며 손을 멈추고 멍하니 서 있는 토마스를 보며 브라이언이 언성을 높였다.

『토마스 브라운 쉐프! 얼음 조각 깎는 게 많이 힘들지? 도와주고 싶은데.』

자신이 손을 멈추고 넋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한 토마스가 바로 사과했다.

『미안, 미안! 브라이언, 바로 복귀할게.』

리처드가 킥킥 웃으며 중재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도 보자. 지금 우리 팀 작품 이야기할 것 같은데?』

리처드 베이커가 말하는 것과 동시에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낭랑하게 선언했다.

『그럼 이번에는 미국 팀의 ‘자유로운 디저트의 여신상’을 보겠습니다!』

브라이언이 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우리 팀의 작품이 평가를 받을 시간이다.’

◈          ◈          ◈

미국 팀이 내놓은 자신작을 본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풉, 푸하하하!』

심사위원들 역시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과연 양키 센스.』

『정말 자유롭군.』

청록색 자유의 여신상은 본래 근엄하고 엄격한 표정으로 하늘 높이 횃불을 치켜들고, 다른 손으로는 책을 펼쳐 들고서 서 있다.

하지만 이 여신상은 당장 이곳에서 뛰쳐나가서 달려나갈 마냥, 오른발은 앞으로 나왔고 왼발은 뒤로 들어 올려 앞으로 걸어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길고 주름이 많은 그리스식 의상도 다리를 따라 흘러내리다가 무릎에서 멋지게 펄럭여, 다리 선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오른손에는 대단히 횃불을 닮은 소프트아이스크림 콘을 들었다.

리처드가 뿌듯하게 그 아이스크림콘의 콘 부분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콘이 아니라 와플 콘으로 하길 잘한 것 같아.』

『조금 더 신나 보이지.』

여신상을 바라보는 이들은 미국 부스의 팀원만이 아니다. 심사위원과 관객석, 취재진과 다른 참가자들이 전부 주목하였다. 다들 주시하는 부분이 달랐다. 어떤 이는 여신상의 하얀 조리모 아래,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보았다. 반면에 그녀가 왼손에 든 디저트 레시피북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원본이 들고 있던 법전보다는 책이 얇아. 표지에 그려진 딸기 생크림 케이크도 입체적이라 예쁘고. 진짜 딸기인가?』

관객석에서 소곤거리는 목소리를 들은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지시했다.

『카메라맨님! 저 펼쳐진 책 페이지를 클로즈업해 주세요. 무엇이 적혀 있나요?』

『D-12 카메라 클로즈업하겠습니다.』

카메라맨이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멘 채 무릎걸음으로 무대 위에 올라갔다. 여신상이 왼손으로 들고 있는 펼쳐진 페이지에는 디저트의 사진과 레시피가 쓰여 있었다.

안토니오 바트가 재미있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리처드 베이커 윈도우 베이커리의 한정 상품인 잭 프로스트 컵케이크의 레시피잖아.』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물었다.

『리처드 쉐프! 이번에 전 세상에 레시피를 공개하는 건가요?』

알리샤가 리처드에게 마이크를 전달하였다. 리처드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아름다우신 디저트의 여신님을 경배할 준비가 된 이들에게라면 충분히 공개할 수 있죠.』

『호오오오.』

주영모는 급하게 테이블 위에 있던 냅킨에 그 레시피를 받아 적었다. 정상급 페이스트리 쉐프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레시피를 알려주는 일은 많지 않으니 꼭 챙겨가고 싶었다.

‘나중에 만들어 봐야지.’

미국 팀의 초콜릿 쇼피스에 대한 평은 나쁘지 않았다. 첫인상이 좋아서인지 호의적인 평이 이어졌다.

『손끝에 네일 아트를 칠한 건 누구 아이디어인가요?』

엘리자베스 포크너는 손톱과 발톱에 발라진 프렌치 네일에 주목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브라이언 신이 환하게 웃었다.

『네일 아트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군요, 다행입니다.』

『브라이언 네가 고심해서 고른 보람이 있네.』

『제가 뭘 한 건 없습니다. 전부 제시카 덕분이죠.』

장식과 데코레이션을 즐기는 그라고 해도 ‘네일 아트’에는 문외한이다. 하지만 약혼녀가 브라이언이 직접 만든 케이크 모양의 네일 아트 장식을 하고 싶다고 해서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몽블랑 컵케이크 귀걸이나, 쿠키 앤 크림 아이스크림 모양의 네일 아트, 초콜릿이 발라진 링 도넛이 올라간 패디큐어 전부 너무 귀여워요.』

『모양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브라이언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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