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62화 (262/656)

제 262화

『왜 도망을 안 가지? 어디 다쳤나?』

토마스가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몸을 기울였다.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한 자세였다.

『토마스, 왜 그래?』

『저 야만적인 고양이를 붙잡아서 나비를 공격하지 못하게 해야 해. 귀한 디쵸라지아 네시마츄스라고.』

『디쵸…뭐?』

『먹그림 신선나비(Dichorragia nesimachus)의 학명이야.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나비인데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다운지….』

토마스가 중얼거리며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미국 팀의 두 사람이 토마스의 양팔을 붙잡았다.

『야, 정신 차려.』

『저건 임진혁 쉐프가 만든 작품이라고.』

『저렇게 리얼한데? 모델링 초콜릿으로는 저렇게 가느다란 걸 만들 수가 없어. 날개도 움직이면서 색깔이 변하고 있는데 가짜일 리가….』

나비 날개는 빛을 받는 각도나 광량에 따라서 색깔이 변한다. 바라보는 이의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할 뿐만 아니라 같은 각도라도 정오의 태양 바로 아래에 있을 때나 밤늦게 달 그늘 속에 숨어있을 때 빛깔이 다르다.

그 변화를 보고서 진짜 나비라고 오해했던 토마스가 입을 딱 벌렸다.

『설마 진짜로 가짜야?』

『그럼 설마 진짜 나비를 붙여서 내보냈겠냐. 동물 학대지.』

『진짜 나비가 아니라니. 저 선명한 촉각과 우아한 곁눈, 섬세하고 긴 주둥이하고 다리, 가슴부터 배까지 올록볼록하게 이어지는 곡선이 가짜일 리가 없는데. 날개의 미상돌기부터 뒷날개까지 있는 선명한 무늬가 변색되는 걸 보면 진짜라고밖에….』

브라이언이 진정한 토마스의 팔을 놓아주며 말했다.

『상식적으로 이 회장에 나비가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고양이도 마찬가지고.』

『여하튼 네 곤충 사랑은 못 말리겠다.』

리처드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아는 유능한 페이스트리 쉐프 중 너랑 비슷하게 특정 테마에 집착하는 사람이 두어 명 더 있는데 다들 너 못지않게 실력이 좋아.』

『그중에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피나 시체에 집착하거나, 자동차에 집착하는 사람은 있지만 아쉽게도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브라이언이 토마스에게 물었다.

『너 차라리 제과제빵이 아니라 곤충학을 공부하지 그랬어?』

『멀쩡히 살아있는 나비를 채집해서 박제하고 관찰하는 변태 놈들하고는 상종하고 싶지 않아.』

『…하하하.』

‘그런 이유였구나.’

브라이언이 수긍했다.

여기에 있는 이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왔다. 그중에서도 토마스 A. 브라운은 자연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얼음 조각가로 유명하다.

『얼음 조각으로 곤충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편이 낫지.』

토마스가 단언하자 브라이언이 피식피식 웃었다.

『그래, 이번에 꼭 그렇게 해라.』

리처드 베이커가 짝짝, 손뼉을 쳤다.

『자, 자. 토마스! 브라이언! 다른 팀이 낸 작품은 나중에 감상하자고. 일단은 우리 초콜릿 쇼피스부터 마무리해야지?』

『라져!』

『빨리 내서 타임 보너스 받자고?』

『아니, 우리는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자고. 우리 페이스대로 하자.』

리처드 베이커가 느긋하게 말했다.

『우승은 선착순이 아니니까.』

발로 바닥을 탁, 탁 두드리며 초조해하고 있던 브라이언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른 사람을 신경 쓸 필요는 없지. 그냥 내가 최선을 다하면 되는걸.』

그는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 보이는 표정으로 웃었다.

◈          ◈          ◈

미국 팀은 시끌벅적하다. 그쪽을 흘깃흘깃 보며 리우마오유가 말했다.

『미국인들은 항상 에너지가 넘친다니까.』

『자, 자. 우리도 신경 쓰지 말자고.』

타이페이 트윈 타워즈는 완성 직전이다. 드높이 솟은 두 개의 탑에 미리 코코아버터 물감으로 칠해둔 필름을 붙이며 장치앙린이 말했다.

『이거 아주 잘 칠해졌다. 느낌이 좋은데.』

원래 코코아버터 물감은 마르고 나면 말라붙는다. 하지만 펄을 섞어 반짝이는 형광색 물감을 어찌나 잘 발랐는지, 칠은 마치 초콜릿 건물에 그대로 칠한 것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칭찬받은 리우마오유가 킥킥 웃었다.

『그래? 잊혀진 사촌 동생에게 말을 걸 수 있을 정도로 느낌이 좋아?』

왕웨이가 물었다.

『대형, 그럼 우리도 이제 제출하자고.』

『좋아. 그럼 이제 벨을-』

-삐이이이익.

『-누르자. 벌써 눌렀어?』

『아니, 우리가 아닌데.』

프랑스 팀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었다. 조리모 사이로 흘러내린 금발을 다시 핀으로 고정하며 주느비에브가 미소지었다.

『프랑스 지금 제출하겠습니다.』

알리샤가 카트를 밀어 프랑스팀의 작품을 중앙으로 가지고 왔다.

노트르담 성당(athedrale Notre-Dame de Paris).

두 개의 탑과 죽 뻗은 메인 건물, 그리고 중앙에 솟아오른 첨탑과 꽃무늬 장식이 아로새겨진 종탑.

프랑스 후기 고딕 양식의 정수라고 불리는 이 아름다운 건물은 혁명 시대에 한 차례 파괴되었다가 19세기에 재건되었다. 프랑스인들이 개선문과 에펠탑과 더불어 자랑으로 삼는 것 중 하나다.

사람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름답군…!!』

『역시 프랑스야. 처음은 놓쳤지만 두 번째는 절대로 내주지 않는다는 거겠지.』

심사위원석에서도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조제프 쇠비어와 주느비에브 아잠의 솜씨가 대단한데.』

유난 취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사실 내가 프랑스 팀이었으면 나는 에펠 탑을 만들었을 것 같은데. 하고 많은 것 중 제일 어려운 것을 골랐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각 출연자의 경력이 담겨있는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과연 여성 건축가 출신답게 고딕 건물을 섬세하고 충실하게 살려냈어.』

라이언 윈체스터가 말했다.

『시간 문제로 생략한 장식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특징은 잘 잡았군.』

아주 잘 만든 노트르담 성당이었다. 하지만 다보탑 옆에서 이 성당은 빛이 바랬다. 그 사실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유난 취가 혀를 찼다.

『저 탑 옆에 두고 보니까 성당의 완성도 자체가 조금 떨어지는 것 같군.』

알리샤 역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건물이 생동감이 없달까… 실제 건물 같지 않고 모형 같아요.』

머릿속에서 치욕감과 불쾌함, 수치심과 괴로움이 널뛰었다. 시몬 리옹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 젠장. 그럼 초콜릿 모형이 모형처럼 보이는 게 당연하지! 여기는 실제 건축물 모형 경연장이 아니라고!’

손톱이 파고들어 가 손바닥이 살짝 찢어졌지만, 그는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자신만의 생각에 깊이 잠긴 채로 침묵했다.

‘차라리 에펠 탑처럼 단순한 생김새의 탑을 만들어서 그것에 집중하라고 했었어야 했나….’

저 주영모 놈과 같은 나라에서 온 근본 모를 동양인들이 만든 작품이, 자기가 고심해서 가르쳐 온 제자들이 만든 것보다 더 훌륭하다. 그 제자들은 팽팽 노는 양아치 새끼들이 아니었다. 고르고 고른 천여 명의 제자 중에서도 제일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파리의 대회라는 예선을 거쳐 진출한 능력자들이다.

‘내가 부족하다니.’

여기서 패배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몬 리옹의 제자가 이름 모를 동양인 꼬맹이에게 져버렸다는 것이 아니다.

‘이건 개인 대 개인의 대결이 아니라, 나라 대 나라의 대결인데.’

정통 프랑스 페이스트리 쉐프의 세계에서 마땅히 이어받아야 할 전통을 이어나가며 끊임없이 노력을 계속해왔다. 쿠프 드 몽드의 승리는 몇 라운드건 상관없이 전에도, 그전에도 당연히 프랑스의 것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잘못됐던가.’

그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리옹 쉐프?』

알버트 그림슨 쉐프가 이름을 불렀으나 시몬 리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시선을 노트르담 성당에서 떼지 않은 채 이마를 찌푸린 채 생각의 늪 속에서 깊이 헤엄쳤다.

‘제출한 순서가 나빴나.’

그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노트르담 성당과 다보탑은 둘 다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하지만 노트르담 성당은 복잡하고 치밀하고 백여 년 이상의 시간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다층 건축물이고, 다보탑은 ‘탑’일 뿐이다.

‘주재를 잘못 골랐나.’

본디 불교 석탑 하나 따위와 다층건물을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하지만 탑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와 나비가 놀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털 한 올 한 올을 초콜릿으로 자아내어 빚은 것 같이 실감 나는 고양이다. 그것을 본다면 누구도 한국 팀이 ‘프랑스 팀에 비해 더 단순한 것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라이언 윈체스터가 물었다.

『시몬 리옹 쉐프, 수제자가 우수한 작품을 제출했는데 말이 없군요.』

『글쎄, 이걸 우수하다고 해야 할지.』

시몬 리옹이 차갑게 말했다.

노트르담 성당을 연습용 주제로 제시한 것은 시몬 리옹이었다. 그는 그것과 다른 몇 가지의 유명한 건물들을 예시로 내놓았는데, 주느비에브가 성당을 골랐다. 어렵고 힘든 건물인데 괜찮겠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시몬 선생님. 우리는 프랑스인이니까요. 저희의 자존심을 걸고 최고의 노트르담 성당을 만들 겁니다.』

‘멍청한 녀석.’

시몬이 꽉 쥔 주먹 사이에서 핏방울이 떨어졌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저런 것들에게 질 정도로 무능하다니. 내가 제자들을 잘못 키웠어.’

좀 더 단순한 것으로 골라서 완성도를 높일 것인가, 아니면 복잡하고 치밀한 것을 골라서 가능한 만큼 재현해낼 것인가.

그 두 가지의 방향 중 한국 팀은 전자를 골랐고 프랑스 팀은 후자를 골랐다.

‘프랑스 고딕 건축의 우수함과 그것을 실제로 재현해낸 프랑스 페이스트리 쉐프들의 우수함에 대해서 4절까지 노래를 불러야 할 놈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네. 크크.’

주영모는 시몬 리옹을 흘끔흘끔 바라보며 저절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흐흐.』

‘엿 먹어라.’

보조 진행자가 다가와 주영모에게 물었다.

『주영모 쉐프. 채점은 마치셨습니까?』

‘잘했지만 우리 팀이 더 잘했지.’

『예, 여기 있습니다.』

주영모가 씩 웃으며 채점지를 내밀었다.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고 싶지만 참았다. 그는 프랑스 팀이 제출한 작품에 대해서 솔직하게 점수를 매겼다.

저절로 콧대가 높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채점지 제출해 주세요.』

지금 한 장씩 가져가는 채점지는 모든 이들이 제출을 마친 후, 심사를 한다. 동점자가 있는 경우에는 재차 의논하여 누가 더 우수한지 결정한다.

보조 요원의 도움을 받아 채점지를 제출한 라이언 윈체스터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일 얼음 조각을 제출할 수 있는 팀은 몇 명이나 될까요?』

『뛰어난 자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도태되겠죠.』

삐이이이익.

제출하는 벨 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네! 아직 10분 이상 남았는데 또 제출한 팀이 있네요! 대만 팀과 미국 팀! 두 팀입니다!』

엘리자베스 포크너의 말에 이어 안토니오 바트가 반갑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대만 팀 먼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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