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57화 (257/656)

제 257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으며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지 않아도 산만한 녀석이 쓸데없는 소란에 동요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이제 막 초콜릿 모델링을 하고 있는 마리오는, 집중력을 잃으면 실수를 하는 타입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얼음을 만져야 하는 루이스에게 열기가 흘러가서 녹기라도 하면 낭패다. 그래서 그는 공기의 흐름을 바꾸어 뜨거운 공기와 소음이 닿지 않도록 잠시 막아, 잠시 동안 강 씨 형제 두 사람의 이목을 막아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오는 시점까지 녀석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다.

‘마리오 저놈도, 집중력을 제대로 발휘할 때는 잘 하는데 말이지.’

리처드 베이커가 진혁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진혁 쉐프! 오랜만이야!』

브라이언 신 역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유키코 쉐프는 잘 계십니까?』

『머더 쿠키 시리즈는 잘 나가고 있어? 평이 아주 좋던데.』

『…? 계속 미국에 있으셨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새로운 가게 소식은 SNS를 통해서 잘 보고 있어.』

『아.』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 홍보 페이지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가 처음에 빵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단골이던 중학생 김도을과, 강남의 H&J 베이커리 때부터 팬이던 정지숙 두 사람의 합작이다. 김도을은 <해와 달>의 메뉴를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페이지에 올렸다. 정지숙은 그 정보들을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해 김도을에게 제공했다.

‘제가 맛집 블로그 ‘스위트 퀸’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진혁은 그녀가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건, 파워블로거건 아니건 그 비밀을 세상에 이야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먼저 스스로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한 것 역시 정지숙이었기 때문에 기꺼이 도움을 받기로 했다.

리처드 베이커가 말을 이었다.

『진혁 쉐프, 자신의 취향과 대중이 원하는 것을 어떤 식으로 타협하면 될지 스스로 자신만의 대답을 찾아낸 것을 축하해. 머더 쿠키 시리즈, 아주 재미있는 발상이야. 단순해 보이는 디자인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품었고 가성비도 좋아. 확장성도 대단하고. 나도 다음에 한국에 갈 일이 있으면 꼭 먹어보고 싶군.』

진혁이 미소지었다.

『이번 대회 끝나고 연습실로 놀러 오시죠, 따로 구워 드릴 테니까.』

『하하하하하! 마음만이라도 고맙게 받지. 진혁 쉐프는 그렇게 너무 착하고 열심히 살려고 해서 탈이야. 쉬어가면서 하라고.』

리처드 베이커가 말하자 루이스 강이 거들었다.

『이번에도 프랑스에 들어와서 밤을 새우면서 제빵을 연습하더라고요, 진짜. 하여튼 자기 몸 막 굴리는 건 알아줘야 해.』

마리오 역시 형의 말에 보탰다.

『젊다고 건강을 과신하다가 쓰러지면 곤란하니까 조심하라고.』

갑자기 진혁의 건강을 걱정하는 자리가 되었다.

‘뭐야, 왜 갑자기 이런 분위기야?’

진혁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때 브라이언 신이 손을 들어 다른 쉐프를 불렀다.

『진혁 쉐프, 여기는 토마스.』

『임진혁 쉐프, 처음 뵙겠습니다. 아주 뛰어난 분이시라고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리처드 쉐프와 브라이언 쉐프가 이야기를 많이 했나 보군요.』

토마스라고 불린 백인 남자가 윙크를 했다.

『두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기는 했습니다. 사실 안토니오 펠루치오 녀석과 같은 곳에서 공부했죠.』

진혁이 눈을 둥글게 떴다.

『아.』

디저트 서바이벌 대회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던 안토니오는, 반려견을 위한 레시피를 가져가서 사람을 위한 음식으로 재창조했다. 그리고 병원식을 공급하는 회사의 CED인 알렉스에게 진혁을 소개해주었다.

진혁이 개발한 처방식 수프들은 미국 전역에서 명성을 얻었고, 그는 거액의 로열티를 받아 새로이 독립해 자신의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

『안토니오가 맨날 임 쉐프, 임 쉐프 하고 이야기를 했지요. 그래서 베이커 쉐프와 신 쉐프 두 사람이 말하는 사람과 임 쉐프가 같은 분인 줄 몰랐습니다. 이번에 우연히 알게 되었죠.』

『그렇습니까.』

『임진혁 쉐프 덕분에 스승님이 말년을 편안하게 지내셨지요. 감사드립니다.』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진혁이 마주 인사했다.

『안토니오 펠루치오 쉐프가 직접 한 일인데요.』

『진혁 쉐프가 개발해 주신 그 음식들이 없었다면, 스승님은 남은 삶을 너무나 고통스럽게 보내셨어야 할 겁니다. 그 음식들 덕분에 말년이 평안하셨다고 저희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안토니오와 연락을 한 적이 없었던 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돌아가셨습니까?』

『…예, 얼마 전에요. 안토니오가 따로 연락을 드리지는 않았나 보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미국 팀과 한국 팀은 임진혁을 중심으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하였다. 한편 대기실의 다른 벽 쪽에 있던 팀들은 국가별로 따로따로 모여 있었다.

『화재가 났다고 해서 급하게 뛰쳐나오느라 여태까지 공들여 만든 기둥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말았어.』

『다시 만들면 되지. 너만 그런 식으로 실수한 건 아닐 거야.』

『60분을 완전히 버린 셈이야.』

『오늘 대회를 재개하려나? 아니면 내일 재개하려나?』

불안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섞여 온화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한국과 미국 팀은 퍽 눈에 띄었다.

『저쪽은 퍽 사이가 좋아 보이는데?』

주느비에브가 팔짱을 낀 채 신기해하며 한국 팀과 미국 팀을 바라보았다.

『친목질하러 대회에 나온 것도 아닐 텐데 말이지.』

『사이가 좋아서 나쁠 건 또 뭔데?』

『어차피 시상식에 오르는 건 마지막 한 팀뿐이야. 저럴 시간에 같은 팀끼리 전략이나 다시 짜는 게 낫지.』

조제프 쇠비어가 차갑게 말했다. 필리프가 중재했다.

『너희 둘은 같이 빵을 만들 때는 호흡이 그렇게 잘 맞으면서, 왜 세상 모든 다른 일에는 그렇게 관점이 달라?』

『일이잖아. 그래서 주느비에브, 2mm 판 8개 더 필요하지? 이따 시작하면 그것부터 만들자고.』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어. 나도 프로니까 내 할 일은 알아서 제대로 한다고.』

『도와주겠다고 하는 거잖아, 주느비에브.』

두 사람이 투덜거리는 말을 주고받았다. 필리프가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공지사항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땡-땡-땡

『여러분, 잠시 동안 휴식 시간을 가지셨지요? 5분 후 바로 대회를 재개하겠습니다.』

엘리자베스 포크너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좋아, 기다리고 있었다고.』

조제프는 벌떡 일어나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주느비에브와 필리프 역시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빨리빨리 오라고, 주느비에브!』

『알았어!』

다른 나라 팀 역시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부스로 향했다. 진혁이 미국 팀에게 인사했다.

『그럼, 대회에서 뵙죠.』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          ◈          ◈

체코 팀의 마렉은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 잃어버린 시간을 따라잡아야 해.’

화재가 났다고 해서 급하게 도망치느라 무너뜨린 초콜릿 기둥부터 수습해야 한다.

그는 적절한 온도로 녹여 템퍼링한 다크 초콜릿을 반구 틀에 부었다. 나중에 합쳐져 하나의 구형이 될 반구는 총 열여섯 개. 전부 필요한 건 아니지만 찌그러지거나 망가질 경우를 대비해 넉넉하게 만드는 것이 습관이다.

‘그다음에는 플라워.’

굳혀놓은 원형 초콜릿은 미리 템퍼링 해 담아놓은 화이트 초콜릿에 살며시 담갔다가 뺐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 여러 번 담갔다가 빼면 끄트머리가 뾰족한, 물방울 모양의 화이트 초콜릿 덩어리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꽃봉오리가 될 것이다.

『마렉, 내가 도울 건 없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더 식은땀이 흐른다.

『말만 시키지 말아 줘.』

초조해하는 마렉을 보고서 얀 마세크는 입을 다물었다. 체코 팀은 사실 마렉 두다의 원맨 팀이나 마찬가지로, 마렉이 없었으면 얀도 요세프도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요세프가 얀에게 눈짓했고, 얀은 뒤로 물러났다.

마렉은 방금 얀이 무엇을 묻었는지 바로 잊었다. 이제는 꽃잎을 만들 차례다.

굵은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필름 위를 오갔다. 얇고 검은 PVC 필름 위에 새벽이슬처럼 화이트 초콜릿이 한 방울, 두 방울, 떨구어졌다. 극히 소량, 손톱만큼의 크기로 한다. 액체 형태의 초콜릿을 짜내며 단 한 번의 손놀림으로 펑퍼짐한 꽃잎 바깥쪽부터 꽃받침에 이어질 뾰족한 부분까지 모양을 만든다는 것은 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서두르면 안 돼. 급하게 하려다가 오히려 망칠 수가 있어.’

경건하게 한 호흡마다 숨을 내쉬고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짜내어 꽃잎 형태를 만들어내고 다시 들이쉰다. 호흡 한 번마다 꽃잎 하나씩, 짧고 가느다란 꽃잎은 점차 커다래졌다. 실수한 것은 아니다.

‘안쪽부터 바깥쪽까지, 크기와 모양이 달라져야 해.’

속엣것이 될 조그마한 것부터 가장 바깥쪽을 감쌀 커다란 것까지 필름 위에 늘어놓는다. 새로이 색소를 섞은 초콜릿을 첨가해 새하얀 끝자락부터 점차 연분홍빛으로 물들도록 하나씩 하나씩 짜내었다.

다 만든 꽃잎들은 16도에서 한 시간 정도 굳혀야 한다. 냉각기(쿨러)에 들어간 초콜릿을 두고서 그는 몰딩 매스를 만들기 위한 밑 작업에 들어갔다.

‘잘 되고 있어.’

이대로 아무것도 부러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시간은 충분하다. 마렉은 자동 믹서에 코코아 파우더와 카카오 버터를 넣고 30도가 될 때까지 섞었다. 코인 모양을 잃은 카카오 버터가 코코아 파우더와 함께 곱게 섞였다.

『얀, 롤러와 커터를 갖다 줘.』

『여기 있습니다.』

이제 나뭇잎을 만들 차례다.

다크 초콜릿을 사용할 예정이므로 하얗고 투명한, 멸균 PVC 필름을 조리대 위에 펼쳐 깔았다. 녹색과 연노랑, 진한 초록색 카카오 버터를 번갈아 칠해주었다. 롤러를 부드럽게 밀면서 칠하자, 카카오 버터의 표면이 제멋대로 울퉁불퉁하게 솟아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카카오 버터의 위에는 아까 템퍼링하고 남겨 둔 다크 초콜릿을 얇게 덧붙여 짜내고, 그 위에 필름을 덧발랐다. 스크래퍼로 PVC 필름을 균등하게 눌러 주고 칼을 들었다.

날카롭게 갈아둔 작은 칼날은 부드럽게 곡선을 그렸다. 카카오 버터와 다크 초콜릿이 화합한 결과물은 곱게 나뭇잎 모양으로 잘려 나왔다. 시간을 들여 차갑게 식힌 초콜릿 나뭇잎에서 연 하늘빛 PVC 필름을 걷어낸 다음, 한쪽에 천천히 늘어놓았다.

꽃자루에서 이어질 꽃받침은 별도로 녹색으로 물들인 초콜릿을 사용할 것이다. 꽃잎과 꽃받침, 잎사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꽃병 역할을 할 올록볼록하고 우아한 초콜릿 조각품은 덩어리를 붙여나가며 모양을 만들 생각이었다.

체코에서는 매해 오월, 카테리나 궁에서 동유럽 최고의 꽃 축제가 열린다. 다양한 꽃을 테마로 해서 꽃의 탑을 짓고 축제가 끝나면 허물어버린다.

‘메이 플라워 타워.’

마렉이 만드는 것은 그 ‘꽃의 탑’ 이었다.

‘아까 시간을 조금 낭비해서 꽃송이가 조금 모자랄지도 모르지만 이번 초콜릿 조각은 잘 되어가고 있어.’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화재가 난 중국 팀이 돌아오지 않는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4번 부스, 대만 팀은 그렇지 않았다.

『중국 팀은 아예 무대에 올라오질 않는데?』

『아까 실격했다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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