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46화 (246/656)

제 246화

『공항에서 부딪혀서 캐리어가 바뀐 것 같아서.』

진혁의 뒤에서 강마리오가 얼굴을 빼꼼 내밀며 말했다. 리암 에이든이 당황해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이것저것 일이 생겨서 미처 캐리어를 확인하지를 못했는데.』

『이것 봐요.』

강마리오가 스마트폰에 찍어 둔 사진을 보여 주었다. 캐리어에 달린 항공사의 식별용 라벨에는 리암 에이든 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리암이 그 사진을 보고 놀랐다.

『내 캐리어!』

『그러니까 당신이 가져간 게 내 캐리어라는 이야기죠. 돌려주세요.』

『헉?!』

리암 에이든은 시뻘건 얼굴로 말했다.

『그,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말이 안 통하는 놈은 아니군.’

진혁과 강 씨 형제 일행은 리암을 따라서 가게 바깥으로 나왔다. 그 역시 한시라도 바삐 바뀐 캐리어를 되찾고 싶어 했기에 식사를 함께하던 일행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먼저 일어난 것이다. 두 사람의 숙소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아 금방 여행 가방을 바꿀 수 있었다.

캐리어를 바꾸고 난 후에도 리암은 몇 번이나 사과했다. 강마리오는 됐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까는 정말로 미안합니다. 오해를 해서.』

『좋은 기사를 써달라고 청탁하러 간 게 아니라고요.』

투덜거리면서도 마리오는 밝은 표정이었다. 캐리어 안에 한정판 운동화가 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계속 웃음을 실실 흘리고 있다.

‘단순한 녀석 같으니라고.’

마리오가 캐리어를 돌려받은 후에는 리암의 캐리어 역시 돌려주어야 했기에 일행은 원래 머물던 숙소에 와 있었다. 루이스가 차를 끓여오겠다며 주방에 들어간 사이에 임진혁과 마리오, 리암 에이든은 함께 탁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제가 쿠프 드 몽드라는 대회를 취재하러 왔습니다만.』

『예.』

『거기 출전하시는 분들이 잘 써달라고 찾아오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뉴욕 해럴드 제과면이 이쪽 바닥에서는 어느 정도 이름이 있다 보니까 말입니다.』

주전자에 물이 끓도록 맞추어 두고 돌아온 루이스가 말했다.

『저희도 이번에 쿠프 드 몽드에 출전하긴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한국 대표로 나가시죠?』

『예?』

『청소년 태권도 국가대표 후보 선수였다가 페이스트리 쉐프로 전향한 루이스 강 쉐프님. 유튜브에서 제과제빵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그 동생인 마리오 강 쉐프님. 그리고 한국의 TV쇼, 디저트 서바이벌 쇼의 우승자 임진혁 쉐프님. 예선에 출전하는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습니다. 취재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리암이 웃으며 말했다. 루이스가 4인분의 찻잔을 가지고 돌아오자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쿠키도 가져오지.』

마리오가 미묘하게 표정을 찡그렸다.

『어, 그걸?』

진혁이 쿠키를 가져오는 것이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에, 리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진혁은 신경 쓰지 않고서 접시에 쿠키를 담아 내왔다. 쿠키의 모양을 본 리암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이건 특이한 모양이군요.』

진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한국에 있는 가게에서 제일 인기 있는 쿠키입니다.』

마리오가 투덜거렸다.

“제일 인기 있는 쿠키는 무슨. 아니, 네 가게에서 쿠키는 이 시리즈밖에 안 팔잖아.”

진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해와 달>에 와본 적이 있어?”

마리오는 입을 다물었다. 루이스가 찻잔에 찻물을 따르며 말했다.

『우유나 크림을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리암 에이든은 눈앞의 쿠키를 바라보았다. 흔한 진저브레드 쿠키처럼 보이는 이 물건은 신문 사회면에 나올법한 사건의 피해자처럼 보였다. 머리와 가슴에는 의미심장하게 검은색 초콜릿 칩이 박혀 있는데 거기서부터 끈적하고 붉은 액체가 흘러나와 새빨간 웅덩이를 만들고 있다. 머리와 가슴 주변에 고인 붉은 얼룩이 선혈처럼 선명해 무어라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는 쿠키를 보자마자 머리에 떠오른 이미지를 숨김없이 말했다.

『머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진 피해자 같군요.』

『잘 맞추셨습니다. 총상 피해자 테마의 쿠키입니다.』

할로윈도 아닌데 무슨 장난인지 모르겠다.

리암 에이든은 눈앞에 있는 자들의 이력을 떠올렸다.

‘이 임진혁이라는 자가 이 셋 중에서 제일 경력이 짧고 덜 유명했지.’

바게트 명인에게 교육을 받고 프랑스식 정통 제빵을 하는 루이스 강. 태권도 선수였다는 특이한 경력이 있고, 최근에 파리의 작은 전통 빵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마리오 강은 루이스와 형제고, 유튜브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것 정도밖에 모른다.

그리고 세 번째인 임진혁. 그 한국의 디저트 텔레비전 쇼에서 우승자다. 서울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정도밖에 알지 못했다.

유력한 우승 후보도 아닌 아시아 계열의 후보다. 알려진 경력이 그다지 자세하지 않아도 굳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럼 한 번 맛보겠습니다.』

리암 에이든은 쿠키에 손을 뻗었다. 흉측한 테마인 쿠키를 내놓는 이들의 실력이 궁금했다.

‘이 쿠키는 임진혁이 만든 건가?’

부드러워 보이는 쿠키는 의외로 단단해 손끝에 닿아도 부서지지 않았다. 그는 쿠키 한 조각을 통째로 집어 들었다.

‘아무리 아드레아노 존부가 심사위원이었다고는 해도, 제대로 된 요리대회가 아니라 고작해야 텔레비전 쇼일 뿐이야. 맛에 자신이 없으니까 특이한 테마로 시선을 끌고 싶은 것뿐이겠지. 여태까지는 그런 전략이 잘 먹혔을지 몰라도, 쿠프 드 몽드에서는 무리지.’

막상 먹으려고 해도 어디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리암은 머리와 팔, 다리 중 어디를 뜯어먹을지 고민했다.

마리오는 머리부터 먹고 있었다.

『머더 하우스 쿠키 시리즈는 역시 머리부터 먹는 게 좋지 않아? 특히 이건 머리부터 먹으면 시럽하고 초콜릿 칩이랑 쿠키 맛이 동시에 느껴져서 좋잖아.』

반면 루이스는 다리부터 먹었다.

『순수한 쿠키의 맛을 느끼다가 점차 단계적으로 다양한 맛을 느끼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

맛있는 것부터 먹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가장 아껴두었다가 마지막에 먹는 사람의 취향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리암 에이든은 용기를 내어 다리부터 입에 집어넣었다.

『!』

혀에서부터 시작해서 전신의 신경계를 달리며 온몸에 퍼지는 짜릿함.

그리고 그 이후에 즉시 찾아오는 행복감까지, 이것은 감히 쿠키라고 부를 수 없는 물건이었다.

『흡.』

아내와 처음 입술이 닿았던,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첫 키스의 추억. 그때 그 입술보다도 더 부드럽고 따스하다. 단단한 겉껍질은 침에 닿자마자 사르륵 녹아내리고, 그 이후에 찾아온 붉은 시럽은 겉보기와는 달리 깊고 진한 딸기 맛이 났다. 시럽보다는 잼에 가까우리만큼 농후하고 달콤하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쿠키 조각은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금방 사라졌다.

『우웃!』

순식간에 양쪽 다리를 전부 먹어치우고 이제는 상반신을 먹을 차례다. 큼지막한 초콜릿 칩이 박힌 가슴께가 입안에 들어오자 리암은 전율에 몸을 떨었다.

바삭한 쿠키 사이와 다크 초콜릿, 그리고 잼처럼 진한 딸기 시럽. 어디서도 볼 수 있는 흔한 조합이지만 이 쿠키는 달랐다. 초콜릿 칩을 씹는 순간 쿠키가 부서지며 초콜릿과 함께 녹아내린다. 그러면서 이 사이사이를 훑으며 달콤하게 흐르는 딸기잼과 섞이자 각자 먹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 났다. 딸기 초콜릿 쿠키라고 해야 할 그런 맛이다.

『1+1은 2가 아니군요.』

방금 전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완전히 잊어버린 상태로 리암 에이든이 중얼거렸다.

『마음에 드십니까?』

『예, 엄청나게요.』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프랑스는 맛의 국가라고도 불린다. 이곳에 오는 것은 싫지만 여기서 무엇을 먹을지는 기대하고 있었다. 길거리에 널린 흔한 빵집 아무 데나 들어가서 샌드위치를 시키더라도 맨해튼에서 먹는 흔한 빵과는 다른 맛이 난다. 그렇지만 이 쿠키는 여태까지 먹었던 그 어떤 쿠키와도 달랐다.

‘쿠키의 형태를 하고 있는 케이크라고 불러야 하나?’

만졌을 때는 분명히 단단했는데 입에 들어가서 순식간에 눅진하니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점이 희한하다.

‘경험이 제일 부족해 보이는 이 남자가 이 팀의 다크호스였어. 역시 그 아드레아노 존부가 아무나 인정할 리 없지. 단순한 쿠키 하나에 이런 솜씨를 보일 정도라면, 충분히 이번 대회의 우승 후보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당장 이 환상적인 쿠키를 더 먹고 싶다.

입가에 쿠키 부스러기를 묻힌 채, 리암은 체면치레조차 하지 않고 급히 물었다.

『저, 이거 더 있습니까?』

진혁이 웃었다. 리암에게 그런 진혁의 모습은 겸손하기 그지없는 제빵사로 보였다.

『이 쿠키는 그게 끝입니다만, 다른 빵은 좀 더 있습니다. 그거라도 맛보실래요?』

『예, 예!』

◈          ◈          ◈

리암은 결국 크루아상과 뺑 오 쇼콜라까지 먹고 돌아갔다. 엄청나게 만족해하는 눈치여서 진혁 역시 흐뭇했다.

‘내 빵이 서양식 입맛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안 먹히는 건 아니야.’

오늘 먹은 요리를 바탕으로 개량할 요리들을 생각하니 즐겁다. 그릇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루이스에게 진혁이 물었다.

“우리 연습 주방은 이 근처야?”

“응. 오늘부터 가려고? 피곤하지 않아?”

“미리 가서 뭐가 있는지 보게. 아까 식사하면서 말한 아이디어들도 실험해 보고 싶고.”

“진혁이 너처럼 열심히 하는 사람도 없을 거야.”

“뭐, 가고 싶으면 내가 데려다주지.”

마리오가 나서자 루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이것만 정리하고 같이 가자. 나도 거북선 빵에 추가할 수 있는 새로운 걸 생각해냈거든.”

“뭐? 거북이 머리라도 다시 굽게?”

“음, 머리는 아니고. 아까 쿠키 먹으면서 생각난 건데. 바깥에 젓는 노 모양을 빵이 아니라 쿠키로 하면 어떨까 했지. 따로 먹어도 어울리고, 같이 먹어도 어울리는 거로.”

“빵이랑 어울리는 쿠키라.”

“대회 이틀 전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하는 건 별로인 것 같은데. 여태까지 하던 연습을 다시 하는 게 낫지 않아?”

마리오가 신중하게 말하자 진혁이 대답했다.

“그럼 연습하고 난 다음에 아이디어를 시험해 보는 건 관계없지?”

“그거야 그렇지만… 넌 도대체 뭐로 만들어진 사람이냐? 사실은 미래에서 온 강철 로봇 아니야? 피곤하지도 않아?”

열두 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간신히 밥 한 끼를 먹었을 뿐인데, 바뀐 캐리어를 되찾는답시고 신경 썼던 것도 있어 마리오는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진혁이 그런 마리오의 등을 툭 쳐주었다.

“대회 하다 보면 더 피곤하겠지. 피곤할 때 미리미리 최저한의 체력으로 움직이는 연습을 하면 나중에 또 피곤할 때에도 잘 대처할 수 있어.”

“체육계 근성론 같은 소리를 잘도 하네….”

곧 루이스가 설거지를 마치고 나왔다.

“지금 갈까? 마리는 피곤하면 자고 있을래?”

“아니, 나도 하나도 안 피곤해.”

쌩쌩한 임진혁을 노려보며 마리오가 중얼거렸다. 눈 밑에는 그늘이 짙고 어깨는 움츠러들어 있는 것이 어디를 봐도 매우 피곤한 모양새다.

‘진짜 지기 싫어하는 녀석 같으니라고.’

귀여운 동생을 보며 루이스가 키득 웃고서 말했다.

“진혁이하고 나는 연습도 하고 올 거니까 여기서 좀 쉬고 있어도 좋고.”

“즈언혀 피곤하지 않으니까 괜찮아. 별로 멀지도 않잖아.”

“알았어, 알았어. 같이 가자.”

연습용 주방은 정말로 숙소에서 가까웠다. 주방 문을 열고 안쪽에 준비된 기자재를 보며 진혁이 휘파람을 불었다.

“백정흠 회장님이 신경 좀 썼는데.”

“젤로스 사에서도 충분히 챙겨줬다고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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