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45화 (245/656)

제 245화

강마리오가 벌떡 일어나 걸어가려고 하자 루이스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마리, 저 사람들은 이제 방금 가게에 들어왔을 뿐이야. 우리도 아직 식사가 안 끝났다고.”

마리오가 입을 떼서 무어라 말하려 하는데 루이스가 다시 말렸다.

“진혁이도 모처럼 식사를 즐기고 있다고.”

‘난 딱히 상관없는데. 싸움 구경을 해도 좋고.’

진혁은 무심히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임진혁을 보며 마리오가 자리에 도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식사가 더 중요하지. 저 사람들도 식사를 마치고 나서 용건을 듣는 편이 나을 테고.”

‘확실히 문화적인 차이가 있단 말이야.’

세 사람은 식사를 계속했다. 콜드 파스타와 스테이크 역시 훌륭했고, 디저트도 나쁘지 않았다. 진혁은 식사를 하면서 새로이 만들 빵에서 살려야 할 미각적 포인트들을 하나씩 짚어갔다.

미디움 레어로 익힌 쇠고기 스테이크와 레드와인 소스를 보며 진혁이 중얼거렸다.

“좋은 재료를 써서 재료의 맛을 살리는 건, 우리 가게하고도 비슷한데.”

강마리오가 말했다.

“나는 결과물이 예쁘게 나오면서, 만드는 과정 역시 보기 좋은 디저트가 더 좋았었어. 아무리 맛있어도 화면 너머로는 그게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음?”

“하지만 정말로 맛있는 걸 먹은 사람들의 리액션하고, 예쁘고 신기하고 맛이 별로인 걸 먹은 자들이 반응하는 건 아예 다르니까.”

“그야 다르지.”

갓 구운 쇠고기 스테이크는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게 씹는 맛이 있었다. 겉을 살짝 그을려 불맛을 입혔으며, 안쪽의 날고기 역시 핏물이 뚝뚝 묻어나는 것이 신선하고 향긋했다. 고기의 육즙과 붉은 포도주로 만든 소스는 쇠고기 스테이크와 조화를 이룬다.

‘프랑스 요리는 담백한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려내면서 소스로 간을 해. 소스가 제일 중요하군.’

“이걸 디저트로 만든다면 미트 파이가 되겠는데.”

진혁이 스테이크를 먹으며 말하자 강 씨 형제가 놀랐다.

“이 훌륭한 스테이크를 왜 파이로 만들어? 이 정도 고기를 파이로 만들기엔 아깝지.”

루이스와 달리 마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디저트로 만들고 싶은 그 느낌은 알겠다. 좋은 재료를 보면 제대로 구워내서 다시 만들고 싶잖아.”

마리오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 스테이크 자체의 맛을 살린다면, 스테이크 샐러드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데? 적양파하고 양상추, 청상추와 오이, 당근 같은 걸 잔뜩 넣는 거야.”

“샐러드드레싱은?”

“레드와인 소스는 샐러드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그러니까 참깨를 갈아서 드레싱으로 하거나?”

루이스가 흥미를 갖고 끼어들었다.

“레드와인 소스도 꽤 괜찮을 수도 있는데. 쇠고기의 육즙을 활용해도 좋을 것 같고.”

“하지만 스테이크 샐러드는 좀 진부하지 않나? 우리는 페이스트리 쉐프니까, 페이스트리에 연관해서 생각해 보자고.”

“홈메이드 로스트비프라든가?”

“에이, 그건 페이스트리라고 할 수는 없잖아.”

“로스트비프로 샌드위치를 만들어도 되니까.”

마리오와 루이스가 이야기를 나누는데 진혁이 말을 꺼냈다.

“비프 케이크(Beef cake), 어때?”

“뭐?”

“쇠고기 파이는 자주 있지만, 케이크류는 없잖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음식은 이유가 있어, 임진혁. 쇠고기는 크림하고 어울리지 않아.”

“파이지를 얇고 깊게 한 원통형으로 안쪽에 잘 익은 쇠고기와 베이컨, 그리고 잘 익은 감자와 채소를 층층이 쌓아 소스를 발라 굽는 거야.”

“…그건 의외로 먹을만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렇지?”

프랑스식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일행이 메인 메뉴를 전부 먹어치운 후 식당 종업원이 프랑스어로 무언가 질문을 했다. 마리오가 통역해주었다.

“디저트와 함께 홍차를 마실 거야? 아니면 커피를 마실 거야?”

”디저트는 뭐가 나오는데?“

”키쉬 로렌.“

”그럼 홍차로.“

‘키쉬 로렌(Quiche Lorraine)’은 알자스 로렌 지방의 키쉬로 다른 키쉬와는 달리 치즈를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달걀을 넣어 반죽한 크러스트에 베이컨과 치즈, 달걀과 버터를 올려 파이 형태로 구워내면 된다. 진혁 역시 주영모의 제과백과사전을 통해 만들어본 적이 있다.

곧 키쉬 로렌이 나왔다. 치즈 케이크처럼 한 조각씩 잘라 접시에 놓은 상태다. 종업원은 키쉬 로렌을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그리고 새 냅킨과 디저트용 포크 역시 준비해 주었다.

진혁은 바로 포크를 움직여 키쉬 로렌을 맛보았다.

안쪽은 달걀찜보다 더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데 바깥쪽은 살짝 질긴 맛이 있다. 잘 익은 스페인식 오믈렛 같기도 하고, 일본의 달걀말이 같기도 하다.

키쉬를 한 입 베어 문 루이스가 만족스러운 앓는 소리를 냈다. 마리오가 물었다.

“임진혁. 제대로 된 코스 요리를 먹어 보니 어때? 훌륭하지?”

“괜찮네. 빵 만드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고맙다.”

진혁이 솔직하게 고마워하자 마리오는 조금 놀란 듯한 눈치였다.

“어. 음. 내가 여기서 오래 살았으니까 당연한 거지. 넌 여기 지리나 문화는 전혀 모르니까.”

“그럼 내일 식사도 어디서 할지 네가 찾아볼래? 잘 부탁한다, 강마리오.”

“어? 그, 그러지 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강마리오는 생각했다.

‘이상하다? 뭔가 예상과 다른데.’

진혁이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해서 우러러보는 광경을 생각했는데, 어쩐지 부하 노릇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리야, 넌 아직 멀었구나.’

옆에서 루이스가 킥킥 웃으며 어리둥절해 하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진혁은 화제를 돌렸다.

“식사 마치면 저쪽 테이블에 인사하러 가 보자고.”

“아! 알았어. 내가 말할게.”

마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리암 에이든.

뉴욕 신문사의 기자로 프랑스의 요리 대회를 취재하러 파리에 와 있다. 그는 뉴욕발 비행기를 탈 때부터 기분이 나빴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원래 사회면을 취재해야 할 그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프랑스의 요리대회를 취재하러 왔어야 할 마사가 갑작스럽게 임신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던 직장 동료에게는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프랑스인 아내와 이혼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리암에게는 느닷없는 봉변일 뿐이었다.

‘프랑스의 F도 집어 던져 버리고 싶은데 프랑스 출장을 오다니! 젠장!’

사내에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마사와 리암밖에 없다.

‘그것도 하필 파리로.’

프랑스의 7대학으로 유학을 왔던 시절, 아내와 처음 만났던 도시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는 조금 나았다. 그녀의 집이 오를리 공항에 가까웠기 때문에 항상 오를리 공항을 이용했으니까, 이 공항은 괜찮다.

파리에 도착해서 대학 시절의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친구가 기분 전환을 위해 맛있는 곳에 데려가 준다며 식당으로 데려갔다. 여기도 곧 전처가 되어버릴 아내가 좋아하는 곳이라 들어갈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식전주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잘 마시지도 않는 술을 계속해서 마셨다. 디저트가 나올 무렵에는 이미 취할 대로 취한 상태였다.

‘맛있는 것을 먹는다고 해서 엿 같은 기분이 달달해지는 건 아니야.’

어쩌면 장소가 나빴는지도 모른다. 아내 생각이 계속해서 났다. 둘이서 여기에 왔을 때는 알콩달콩하고 사이가 좋았으며 미래에 어떤 삶을 꾸려나갈지 계획하던 때다. 그때는 분명 행복했고 서로가 서로를 위한 운명의 상대라고 믿고 있었는데 어떻게 지금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전혀 모르겠다. 아내에 대해서 전부 잊어버리고 싶은데 파리라는 도시가, 이 식당이 자꾸 아내를 떠올리게 해서 괴로웠다.

친구들은 위로를 해 주려고 했지만, 그것조차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래서 리암 에이든은 낯선 동양인 청년이 접근해왔을 때 기분 역시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미스터 에이든 이십니까?』

동양인은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 성인이 되어 대학 유학을 위해 배운 리암보다 더 유창했다. 그게 더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그는 평소보다 더 날카롭게 굴었다. 가시 돋친 영어로 대답하며 따지고 들었다.

「당신은 누구죠, 내 이름을 어떻게 알죠?」

「저는 페이스트리 쉐프입니다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요, 저희가 공항에서….」

강마리오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기도 전에 ‘페이스트리 쉐프입니다만’까지만 듣고서 화가 난 리암이 바로 공격적인 어투로 쏘아붙였다.

「이런 식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주 무례한 일입니다, 어린 페이스트리 쉐프. 그렇다고 해서 기사를 유리하게 써줄 것 같습니까?」

매년 우승 후보에도 들지 못하는 팀이 돈을 내면서 호의적인 기사를 요구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실제 승패가 갈라지기 전, 대회가 시작하기 전에 긍정적인 기사가 뜬다면 그것만으로도 경력이 된다.

때때로 기자 중에서는 그런 식으로 부수입을 챙기는 자들이 있다.

리암은 이자들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라고 오해했다.

강마리오가 영문을 모르고 듣고 있다가 반박했다.

「예? 뭔가 오해가 있습니다만.」

「나는 긍지 있는 기자입니다. 이번 쿠프 드 몽드 취재에서는 사실만을 쓸 겁니다. 이런 식으로 찾아와도 소용없어요. 성적으로 말하라고요.」

느닷없이 공격적인 태도를 접한 마리오가 콧잔등을 찡그리며 화를 내려던 참이었다. 루이스와 임진혁이 뒤에서 나타나 각자 마리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마리오, 내가 얘기할게.」

「제가 대신 이야기하죠.」

루이스와 임진혁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진혁이 앞으로 나섰다.

「미스터 에이든, 오늘 샤를 드 공항을 통해서 입국하지 않으셨습니까?」

임진혁은 얼굴이 불콰해져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는 백인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아주 피곤하고 지쳐 보였으며, 세상 모든 것에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여자한테 차인 얼굴인걸?’

인종도 다르고 연령도 다르다. 하지만 임진혁은 이 남자에게서 홍 씨 노인을 보았다. 동네 알부자인 홍 씨 노인은 몇십 년 동안 짝사랑을 해왔다. 하지만 그 짝사랑해오던 여인, 금천복은 오랜 친구인 감호철하고 혼인해버렸다.

감호철이 금천복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달리던 날.

홍 씨 노인은 온몸에 땀을 흘리며 뒤처지면서 따라갔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앞의 두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되어도 끈질기게 쫓아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맺어지는 걸 방해하지는 못했다. 홍 씨 노인이 결승점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커플이 되어 있었으니까.

‘조금 불쌍한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남자가 슬픔에 가득 찬 울분을 엉뚱한 사람에게 토하는 건 평소 성질대로라면 다리를 부러뜨릴 일이다. 하지만 진혁은 이 남자 놈이 어떤 놈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에이든이라는 기자 놈에게 손을 댈 필요도 없다. 그는 심안으로 남자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장기간에 걸쳐서 울화가 오래도 쌓였군.’

「내가 샤를로 들어오건 오를리로 들어오건 무슨 상관이야?!」

사내가 화를 내자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말렸다. 진혁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나지막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캐리어가 바뀌었다고 루델호프 항공사에서 연락을 받지 못하셨습니까?」

대상자는 단 한 사람뿐이다. 그래서 진혁이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가벼운 섭혼술의 효과가 날 수 있도록 남자를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 연락은 안 왔습니다….」

에이든은 갑자기 차분하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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