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40화 (240/656)

제 240화

명화흥신소.

유키코의 돈을 떼먹으며 사기를 쳐오다가 진혁이 한번 크게 혼내주었던 적이 있는 곳이다. 소장 이상용-본명 이헌용은 평생 다시 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내가 쉰 살이 다 돼서 이런 걸 하다니.”

그는 프랑스어 단어장을 엎어 두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휴우우.”

2달 전, 임진혁은 쿠프 드 몽드 대회에 대해 모든 것을 조사해오라는 명을 내렸다.

진혁의 능력과 그의 뒤에 있는 조직을 생각하면 분명히 직접 조사하는 것이 나을 텐데 굳이 자신에게 맡기다니 이상하다.

하지만 이헌용은 전력을 다해 조사하였다. 프랑스어 번역가들을 고용해 조사를 맡기고, 그들을 100% 신뢰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어 다시 한 번 스스로 크로스 체크를 하기 위해 스스로 사전을 뒤져가며 원문을 보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틀림없이 내 충성심과 능력을 동시에 시험하려는 것일 테지.”

이헌용은 다시 단어장을 폈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

“이, 이건…!”

다른 연락은 무음으로 돌려 두었으니 이 전화는 임진혁이 건 것이 분명하다.

‘쿠프 드 몽드에 대한 1차 보고서를 확인하고 거는 전화인가.’

침을 꿀꺽 삼키며 흥신소장은 전화를 받았다.

“예, 이헌용입니다.”

“반지 좀 찾아와라.”

“예? 무슨 반지요?”

◈          ◈          ◈

다음날, 대회 준비용 작업 주방에서 진혁은 팔짱을 끼고 섰다.

“다 준비됐다고?”

“응.”

임진혁은 트레이 한 판에 가득한 뺑 오 쇼콜라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강마리오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안쪽의 초콜릿도 적당하게 녹았어. 파삭하게 부스러지는 겉껍질에, 부드럽게 씹히면서 초콜릿이 녹는 정도도 딱 좋아. 이 정도면 파리 3지구에서 시판하는 빵하고도 견줄 만하다고.”

루이스 강은 동생이 구워낸 빵을 맛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그러게. 잘 구워졌네. 열심히 연습했구나.”

그는 대견하다는 듯이 강마리오의 어깨를 툭툭 쳐 주었다.

‘며칠 전 진혁이 구운 바게트를 먹어 보고서 무언가 깨달은 게 분명해. 긍정적인 변화야.’

남의 옷이나 뺏어 입는 놈이 빵 좀 잘 만든다고 투덜대더만, 이제는 임진혁의 말을 잘 듣게 되었다.

‘저렇게 무시무시하게 맛있는 빵을 만들면서 인간성까지 좋으니 감화되지 않을 수 없지.’

루이스 강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동생 마리오를 보는 동안에, 마리오는 뻣뻣하게 긴장해서 굳어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말하기는 했으나 임진혁이 자신의 빵을 어떻게 평가할지 신경 쓰였다.

‘저놈이 인성은 개차반이지만 빵은 잘 만들잖아. 동갑내기인데 저 정도로 빵을 만드는 건 정말 무시무시한 천재라는 거야. 자존심을 굽히고 배울 수 있는 만큼 배우자.’

루이스 강과 정반대로 진혁을 평가하며 마리오가 물었다.

“왜 먹어 보지도 않아?”

진혁은 뺑 오 쇼콜라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빵을 맛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빵이 고르게 구워지지 않은 걸 보니까 오븐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내가 살펴볼게.”

“화웅 오븐에 문제가 있을 리가.”

루이스가 중얼거렸다. 마리오가 오만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임진혁. 내 빵이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안 든다고 이야기를 해. 빵을 먹어보지도 않고 말하는 건 그렇다 치고, 이젠 빵 탓이 아니라 오븐 탓을 해? 오븐에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알아?!”

벌떡 일어나 항의하는 마리오에게 진혁이 대답했다.

“이 빵이랑 이 빵.”

그는 우측 끝과 좌측 끝에 있는 빵을 하나씩 집어 뒤집어 보여주었다. 두 빵이 구워진 정도의 차이는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혁은 미미한 차이를 하나씩 짚어 주며 설명하였다.

“봐. 오른쪽 가장자리에 있던 빵은 가장자리가 지나치게 탔고, 반대쪽은 살짝 덜 익어서 허여멀건 해.”

루이스 강이 입을 딱 벌렸다.

‘저걸 뒤집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았지?’

빵 속에 남아 있는 양기(陽氣)를 통해 알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은 알 길이 없다. 강 마리오 역시 입을 벌린 채였다. 얼굴이 닮은 두 형제가 나란히 입을 벌리고 쳐다보니 진혁이 진지하게 말했다.

“이번에 구운 방식엔 아무 문제가 없어. 잘했다.”

“…!”

‘진혁에게 인정받았다.’

마리오는 얼굴이 붉어졌다가 파래졌다가 했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저놈한테 인정받은 게 뭐라고 이렇게 기분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잠도 줄여가며 계속해서 뺑 오 쇼콜라를 구웠다. 계속 이대로라면 자신이 뺑 오 쇼콜라를 도와주겠다는 말까지 들어버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강마리오는 정말로 대학 입시 때보다 더 독하게 노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븐의 상태가 달라진 걸 눈치채지 못한 건 조금 곤란한데.”

진혁이 턱을 괴고 말했다.

“시험장에 가면 또 새로운 오븐을 쓸 테니까. 그 오븐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빵 상태가 달라지면 안 되잖아.”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아?!”

글썽거리던 눈물도 쏙 들어간 상태로 마리오가 다시 따져 물었다.

“오븐이 구워질 때 오븐 안에 열선이 제대로 다 켜져 있는지, 한쪽이 지나치게 색깔이 다르지는 않은지도 확인했어야지.”

“아.”

“이번에 잘 했으니까 다음에는 더 잘할 거야.”

진혁이 격려하자 마리오가 환하게 웃었다.

“알았어! 다음에는 내 진정한 실력을 보여주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루이스는 생각했다.

‘말을 엄청 잘 듣는데.’

초반에 진혁과 마리오가 티격태격할 때는 분명히 두 사람이 사이가 좋아지기를 바라왔다. 하지만 지금 이 광경은 루이스가 예상했던 것과 약간 달랐다.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개와 조련사 같은 느낌이 들어서 미묘한데.’

◈          ◈          ◈

“전통 예술에 대한 아이디어는?”

진혁이 이전에 만들었던 브라이언의 웨딩 케이크를 통해 전통 혼례를 맡았다. 태권도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던 루이스 강은 전통 무예와 스포츠를 담당했다. 전통 음악과 미술을 맡았던 마리오가 자신이 조사해 온 포트폴리오를 내밀었다.

“조선 시대 그림하고 불상, 그리고 탑과 절, 건물.”

“경주 첨성대. 그리고 불국사라.”

“그림은 이쪽이야. 김홍도와 신사임당. 그리고 이쪽이 백제 불상.”

시대도 무엇도 없이 내키는 대로 마구 조사해온 모양을 보고 루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분류를 한 거야?”

“빵 만들기 좋은 기준.”

“그게 무슨 기준이야?”

“첨성대는 통통하니까 길게 형틀 만들어서 구우면 되잖아. 안에 비우고.”

“으으으음.”

진혁이 신사임당의 ‘포도’ 그림을 집어 들었다.

“이 그림은 어딜 봐서 빵을 만들기 쉽다고 생각한 거야?”

송이 가득 알알이 맺힌 포도가 탐스럽게 매달린 송이가 서너 개, 덩굴에 무겁게 드리우고 있다. 묵직한 포도가 출렁거리는 모습은 보기에 좋았으나 빵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인다.

마리오가 기운차게 대답했다.

“이 포도알 하나씩 따로따로 빵으로 만들어서 수북하게 접시 위에 쌓는 거야. 그 안에는 건포도도 넣고.”

“줄기랑 잎은 뭐로 하고?”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퐁당?”

해맑은 얼굴을 보며 루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퐁당을 넣으면 건포도 맛은 완전히 묻힐 텐데. 건포도보다 퐁당이 훨씬 더 달잖아.”

“그러게.”

“건포도를 넣을 거면 그 맛을 살려 줘야 하니까, 심사 기준에서 아예 미달해 버려. 그리고 포도 그림이라서 포도라는 것도 너무 단순하고.”

“좀 더 전체적인 조망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전주 한옥마을 사진을 가리키며 진혁이 말했다.

“여태까지 우승팀을 보니까 예술이 주제로 나온 해에는 보통 예술품 하나, 건축물 하나를 테마로 해서 조형한 경우가 많더라고.”

“그렇지?”

“그것만도 힘들잖아.”

“아예 한옥마을이나 경복궁, 창덕궁같이 그 전체를 만드는 게 더 볼만할 것 같지 않아?”

“뭐?”

스케일이 다른 진혁의 발언에 강 씨 형제 두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간제한이 있는데, 그렇게 많은 걸 만들 수가 없어.”

“불가능한 일이야.”

“한옥마을 말이야?”

“경복궁이건 창덕궁이건, 전부 마찬가지야.”

마리오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태권도와 택견, 활쏘기 등을 조사해온 루이스 강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럼 설마 내가 조사해온 무예는….”

“당연히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다양한 동작을 하는 걸 만드는 거지.”

“진혁이 네가 조사한 전통 혼례는 아예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을 다 만들자는 걸 테고.”

“신랑과 신부 앞에서 춤추는 사당 놀이패까지 다 만들어야지.”

“아니,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고?!”

“하나씩 한번 해 보자.”

◈          ◈          ◈

열흘 후.

작업실에 새로운 이가 도착했다.

“여어! 나 왔어.”

제과제빵 잡지에서나 보던 유명인이 작업실에 온 것을 본 강 씨 형제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백정흠 회장님?”

“오? 날 아나?”

화웅제과제빵기계공업에서 오랜만에 직접 공구를 들고 출장 나온 백정흠이다. 한국에서 제과제빵 관련 일을 한다면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다. 강마리오가 웃으면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루이스 역시 정중하게 인사했다. 임진혁이 피식 웃으며 백정흠에게 말을 걸었다.

“좋아하시는 치즈 케이크 따로 구워 놨어요.”

‘진혁이가 웬일로 시험 종목이 아닌 뭔가를 만든다 싶더니 이걸 예상하고 있었던 거구나.’

루이스 강은 뒤늦게 깨달았다. 마리오 역시 놀라워하며 진혁과 백정흠을 바라보았다.

‘백정흠 사장의 숨겨진 자식인가?! 아닌데. 아버지하고 사이가 엄청 좋은데. 외가 쪽 친척인가?’

다시 보니까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마리오가 망상에 가까운 상상을 하는 동안 백정흠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삼촌이라고 부르래도.”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전에는 잘도 부르더니 이젠 말 안 듣네. 이제 독립했다 이건가?”

“케이크는 원래 드시던 크기로 잘라 드릴게요.”

‘백정흠 회장님이 저렇게 친한 척을 하는데, 왜 저렇게 거리를 두지?’

루이스는 임진혁이 백 회장과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하며 두 사람을 관찰했다. 형과 달리 강마리오는 혼자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워했다.

‘임진혁 저 녀석 나한테만 틱틱거리는 게 아니구나. 그냥 세상 모든 사람한테 저렇게 대하는 거였어.’

백정흠은 금방 문제를 해결하고 자리를 떠났다. 진혁이 따로 챙겨준 치즈 케이크도 가져가면서 몇 번이고 강 씨 형제들에게 당부했다.

“우리 진혁이를 잘 부탁합니다.”

“오히려 저희가 많이 신세 지고 있는데요.”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백정흠 회장이 떠나고 난 후 강 씨 형제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진혁이 너 인맥이 넓구나.”

“화웅 회장님이랑 아는 사이라고 왜 말을 하지 않았어?!”

“나랑 아는 사이라기보다, 내가 아는 사람의 친척이거든. 백진영 형 알지?”

“그 같이 일하던 바리스타님 말이야?”

“응, 그분 삼촌이야.”

“친하게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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