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38화 (238/656)

제 238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안녕하세요, 파티쉐리 매거진의 셀리나입니다.』

금발의 여기자가 활기차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베이커스 샵의 리처드 베이커 쉐프님을 취재하러 왔습니다!』

럭비 선수처럼 어깨가 넓고 근육질인 백인 남자가 조리모를 쓰고 나왔다. 붉은 곱슬머리가 헝클어져 조리모 아래로 언뜻 비친다. 그는 무뚝뚝하게 여기자에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카메라맨은 카메라를 돌려 가게 <베이커스 샵> 안을 두루 화면 속에 담았다. 가게 안쪽에 늘어서 있는 케이크들이 하나씩 하나씩 화면에 비쳤다. 셀리나는 보기 좋게 구워진 갈색과 노란 케이크들 사이에 홀로 하늘색 빛깔을 뽐내고 있는 컵케이크를 주목했다.

『이 케이크가 바로 베이커스 샵의 베스트셀러, 잭 프로스트 군요!』

『예, 맞습니다.』

『겨울의 요정을 테마로 해서 만들어졌지만 달콤하고 따뜻해서 사실은 여름 쪽이 더 어울린다고도 하는 스테디셀러입니다. 바닐라 향이 짙게 풍기는 생크림 토핑에 웨이퍼와 초콜릿 칩이 들어가 있는 훌륭한 컵케이크에요. 저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꼭 베이커스 샵에 와서 하나씩 먹는답니다.』

대표적인 케이크 몇 개와 쿠키에 대해서 소개를 한 이후 셀리나가 본론을 꺼냈다.

『이번 쿠프 드 몽드 베이킹 챔피언십에 미국 대표로 참여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준비는 원활하게 되어가고 계신지요?』

파티쉐리 매거진에서 이번에 리처드 베이커를 취재하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동양의 조그만 나라의 대회에서 패배하고 돌아온 남자는 다른 이들의 예상과 달리 이후 주 예선에서 승리하고 당당하게 미국 대표 선수권을 거머쥐었다.

『가게가 영업하지 않는 월요일과 화요일마다 연습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대회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해서 쉬는 이틀에만 연습하는 것은 아니다.

『가게 문을 닫고 대회 준비를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베이커 쉐프님께서는 일주일에 2일만 쉬시면서, 최상위권으로 예선을 통과하셨죠』

셀리나가 웃으며 소개했다.

가게를 그만두고 예선을 준비하다가 떨어진 사람도 있는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성과다.

『한국 대회에 참가하느라 몇 달이나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손님들을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 가게 영업과 훈련을 병행했지요. 잠을 줄이면 줄였지 영업시간을 더 줄일 수는 없습니다』

『역시 리처드 베이커 쉐프님이십니다.』

셀리나가 웃으며 물었다. 이제 파티쉐리의 독자들이 정말로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질 차례다.

『베이커 쉐프님, 이번 대회를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비장의 케이크라도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셀리나는 카메라맨에게 손짓했다. 카메라맨이 리처드 베이커를 클로즈업했다. 리처드 베이커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똑바로 말했다.

『물론 있습니다. 미국의 전통을 그대로 담은 케이크로, 제 평생을 승화시킨 야심작이죠.』

『어떤 케이크인지 보여주실 수 있나요?』

『아직 개발하는 중이기 때문에 보여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호박(Pumpkin)이 들어간다는 점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만.』

『호박이 들어가는 미국의 전통 음식이 있나요? 할로윈 호박밖에 생각나는 게 없는걸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더 기대됩니다!』

◈          ◈          ◈

“여기까지야.”

영상이 끝나자 진혁이 피식 웃었다.

“리처드 베이커 쉐프님도 출전하시는군.”

“그래. 이게 네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대회지?”

공장을 둘러보러 하루 일정으로 집에 내려왔더니, 진희가 다짜고짜 꼭 봐야 한다며 유튜브 영상을 틀어주었다. 아버지가 팔짱을 끼고서 말했다.

“넌 한국 대회 예선을 통과하지 않고 추천권을 받아서 나가는 거지?”

“예.”

걱정스러운 말투로 아버지가 정말로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같은 팀원들이 견제하지는 않고?”

“견제요?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견제하기는커녕 자신이 두 사람을 가르쳐주고 있는 입장에 가깝다.

“다른 나라는 지역 예선을 거쳐서 출전한다는데.”

아버지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세계 제빵 월드컵’이라고도 하는 쿠프 드 몽드 대회는 공신력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 제과제빵이 활성화되어있는 국가에서는 그렇다.

그래서 대회에 관심 있는 자들도 많고, 출전하고자 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 예선이라는 체에 거르고 걸러져 실력 있는 자들만이 진출해 실제 대회에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반인들은 대회 이름도 모르고, 페이스트리 쉐프들만 알고 있다. 그 쉐프들도 대부분 생업에 종사하느라 바쁘다.

예선을 치를만한 참가자가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정 아시아 국가의 경우 예선에 준하는 다른 대회의 우승자여도 추천을 받을 수 있다.

대회의 인준을 받은 지역대회라면 타국의 대회여도 상관없다. 한국과 말레이시아, 태국이 받는 특혜라면 특혜다.

진혁은 디저트 서바이벌 쇼의 우승자라는 명목으로 추천권을 받았고, 루이스 강과 마리오 강 형제는 파리의 예선 대회를 통과했다.

“너는 이번에 추천을 받아서 나가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을까 했지. 예선도 지역구가 아니라 TV 대회인 셈이니.”

지금 한국팀 대표는 경력이 제일 긴 루이스 강이지만 실제적인 대표는 진혁 자신이다. 진혁이 아버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저는 그다지 상관없습니다. 루이스 쉐프 같은 경우는 조금 입지가 곤란해지긴 한 모양이더라고요. 프랑스 대회에서 우승하고 프랑스 대표로 나가길 거부하고 한국팀 일원으로 나가기로 했으니까요.”

쿠프 드 몽드의 프랑스 팀은 강하다. 매년 결승에 진출하고 두 해에 한 번은 우승하는 우승 후보 국가다. 루이스는 그런 팀을 걷어차고서 단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는 한국 대표로 출전하는 것을 선택했다.

아버지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루이스 쉐프도 여간내기가 아니네.”

진혁이 빙긋 웃었다. 그는 루이스가 왜 한국팀에 오겠다고 했는지 그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진정한 뿌리 찾기라.’

쿠프 드 몽드의 1회전과 결승전은 매해 같기 때문에 올해 역시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1회전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지?”

1회전에서는 바게트 등 프랑스의 기본적인 빵을 만들어야 한다. 아버지가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으며 묻자 진혁이 대답했다.

“뭐, 그건 항상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것보다 결승전 테마를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결승전에서는 각 국가의 전통을 주제로 한 예술적이고 맛있는 빵을 만든다.

작년에는 프랑스가 우승했는데 결승전에서 스퀘어 케이크 위에 거대한 에펠 탑을 만들어 내놓았다. 프랑스의 국기인 삼색기 모양의 스퀘어 케이크에, 프레첼로 꼼꼼히 얽어 구운 에펠탑 모두 좋은 점수를 받았다.

이 ‘전통’이라는 것은 비단 건축물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범위가 넓은 만큼 어떤 것을 만들지 아직 의논 중이다.

공장의 직원들에게 나눠 줄 쿠키를 챙긴 진혁이 뒷좌석에 앉으며 물었다.

“그럼 공장으로 지금 바로 출발하지요?”

“아빠, 나도 갈래요!”

“진희 너는 왜? 엄마 가게 도와야지.”

“….”

진희는 금방 시무룩해져서 입을 삐죽거렸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갔다 오면 네가 좋아하는 치즈 크림 케이크 구워줄게. 지난 생일 때 만들어주었던 것.”

“우와! 알았어!”

진희는 팔짝팔짝 뛰며 기뻐했다. 아버지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딸을 바라보았다.

“진희야. 혁이가 지금 일하는 도중에 바쁜 시간 빼서 내려왔잖니? 대회 준비 하는 애가 공장 시찰을 하려고 대회 준비하는 시간도 줄여서 왔는데. 얘한테 뭐? 케이크를 만들어달라고?”

“진혁이가 먼저 만들어준다고 한 거라고요.”

“그 정도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으니까 괜찮습니다, 아버지.”

“허참, 애가 이렇게 철이 없어.”

“아빠앗!”

“진희야, 우리 갔다 오는 동안에 재료만 미리 빼서 준비해줘. 레시피는 알지?”

“알았어! 맡겨두라고.”

진혁이 나가려고 신발에 발을 집어넣고 있던 참이다. 갑자기 창가에 앉아 있던 고양이가 목을 길게 빼 울었다.

“야오오오오오오오오오옹.”

진호는 폴짝 뛰어 내려와 진혁을 향해 도약했다. 진혁의 어깨 위에 앉아서 자랑스럽게 뺨을 비빈다.

“뭐야, 진호 너도 같이 가게?”

진혁이 고양이를 안으며 부드럽게 목을 살살 눌러주었다. 고양이는 애처로운 앓는 소리를 내며 차 안을 뒹굴었다.

“끼이오옹.”

“공장은 위생과 청결이 중요하니까 너는 같이 못 가.”

“야아오오옹!”

고양이는 알아들었다는 듯 소리높여 울었다. 진희가 킥킥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자기를 데려가야 한대. 쥐를 잡아서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는데?”

“너 얘 말을 알아들어?”

“당연히 못 알아듣지. 근데 그렇게 말하는 것 같지 않아?”

영리하고 똑똑한 고양이는 그 말이 맞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진혁은 그 귀여움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자, 얘 잘 데리고 있어.”

“으앗!”

그는 진호의 목덜미를 잡아 거꾸로 넘겼다. 고양이는 공중에서 몸을 회전하더니 똑바로 진희의 어깨 위에 안착했다. 고양이를 받으려고 두 손을 내밀고 있던 진희가 얼떨떨해했다.

“야! 이 동물 학대범아!”

“얘는 그 정도로 안 다쳐.”

“다칠 수도 있지!”

“아버지, 이제 출발하죠.”

“흠, 그래.”

아버지가 내비게이션에 도착 장소를 설정하고 시동을 걸었다. 운전해서 가는 길은 한적했다. 소망시의 외곽으로 나가면서 논밭과 과수원밖에 보이지 않는 길을 지났다. 하늘은 드넓게 청명해 봄보다 오히려 가을 같았다. 번화가의 빌딩 숲 사이에서 지내다가 탁 트인 벌판을 보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곳은 아직 살아있군.’

항생제와 제초제가 뿌려져 있지만 그래도 아스팔트로 꾹꾹 눌려 있는 서울의 흙보다는 낫다.

바쁘게 움직이는 서울과 달리 이곳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어딘가에 있는 닭장에서 닭이 꼬꼬댁 우는 소리가 멀리 들려왔다. 자동차는 전심전력으로 달리는 진혁보다 한참 느리게 움직였다. 그 거북이 같은 속도를 나름 즐기며 진혁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아버지가 뒷좌석을 힐끔 보며 물었다.

“그런데, 진혁아.”

“예?”

“조수석이 아니라 뒷좌석에 탄 이유는 뭐냐?”

“어….”

최근에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탈 때는 항상 어머니가 같이 계셨다. 그래서 어머니가 조수석에 타셨기 때문에 진혁은 자신의 자리가 뒷좌석이라고 생각해왔다. 진혁은 눈을 껌뻑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 자리라고 생각해서 양보를….”

“너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운전을 해야지. 이 아비가 운전면허 학원을 결제해주마.”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 달리는 편이 빠르니까 운전은 하기 귀찮은데.’

“조금 늦었지? 그래도 내가 해줄 건 다 해주고 있다.”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뒤늦게 옛일이 새록새록 떠올라 진혁은 입을 다물었다.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다른 애들은 전부 고3 겨울방학 동안에 운전면허를 땄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진혁은 그럴 여유가 없어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하지 못했다.

운전면허 학원은커녕 대학 등록금을 낼 돈조차 없었다. 진희는 전액 장학금을 받아서 진학했지만, 진혁은 그렇지 못했다.

“걱정하지 마. 엄마가 다 알아서 할게.”

어머니는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물려주신 금가락지를 팔아 진혁이의 대학교 등록금을 냈다. 할머니의 유물이라며 소중하게 여겨 매일 끼고 다니던 반지였다. 그 사실을 몰랐던 진혁은 왜 남들 다 보내는 운전면허 학원도 안 보내 주냐며 짜증을 냈다. 당시 그는 집안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1학년 말에 꼭 보내줄게.”

어머니는 약속했지만 돈을 충분히 모으지 못했다. 그녀가 마련한 돈은 대학의 2학기 등록금밖에 되지 못했다.

1학년 말 겨울에도 운전면허를 따지 못한 임진혁은 과에서 놀림거리가 되었고 어머니에게 대들었다. 집안 사정을 뻔히 아는 아버지에게 크게 야단을 맞고, 홧김에 그대로 군대에 입대했다.

‘그때는 내가 정말로 철이 없었지.’

옛 추억을 되새김한 진혁이 다급하게 물었다.

“아버지! 엄마가 옛날에 금가락지 맡겼던 전당포, 어디인지 기억하세요? 그 할머니 거.”

“그건 갑자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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