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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236화 (236/656)

제 236화

이천의 도자기 공방에서 잠깐 나와 있던 김가영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원치 않는 답변이 돌아오자 답답해하며 메신저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저었다.

“이 언니가 뭘 모르네.”

그녀는 빠르게 다음 메시지를 보냈다.

[kim88 : 임진혁 쉐프님이 제이제이 님한테 부탁을 하려고 쪽지를 보냈는데, 계속 응답이 없대요.]

[kim88 : 저도 제이제이 님한테 쪽지 보냈는데 계속 미수신 상태더라고요.]

[kim88 : 언니가 제이제이 님이 아니시더라도 발이 넓으시잖아요?]

[kim88 : 주변에 제이제이 님 아시는 분이라도 있으시면, 쪽지 확인 부탁드린다고 전달 좀 해주세요.]

한남동 서재에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던 정지숙은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 임진혁 쉐프님이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었다고?!”

그녀는 황급히 스팸 쪽지함에 있는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kim8826의 메시지 외에 다른 메시지들은 전부 블로그를 팔라는 내용이었다. 그중에서 조금이라도 빵과 관련 있어 보이는 메시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sunmoon1 : 안녕하십니까? 임진혁입니다. 혹시 맛있는 빵을 좋아하시면 연락 주세요. 010-****-****]

‘설마 이게 진짜 임진혁 쉐프가 보낸 건가?’

그녀는 이마를 짚고서 고민하다가 유선 전화기를 들었다.

“김 비서님.”

“네, 사모님.”

“IP 추적 하나만 해 주세요.”

“예? 무슨 일로…….”

“내가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나요?”

“알겠습니다, 사모님!”

그녀는 김 비서가 결과를 가져올 때까지 기다렸다.

‘임진혁 쉐프가 제이제이에게 메시지를 보낼 일이 뭐가 있지? 리뷰를 잘 써 줘서 감사하다거나? 아니면 설마….’

블로거들을 초청해서 신메뉴를 맛보여주려는 걸지도 모른다. 그녀는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런 리뷰는 안 쓰는데.’

그녀는 후원 물품이나 무료 식당 쿠폰 따위는 전부 거절하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그다음에 쓰고 싶은 것에 대해 솔직하게 리뷰를 쓴다. 그래서 인기가 좋았다.

“잠깐, 굳이 이쪽으로 찾아볼 필요가 없잖아?”

정지숙은 핸드폰을 들어 연락했다.

“Allo, Monsieur Langbie. Comment allez vous?[여보세요, 랑비에 씨. 잘 지내고 있었어요?]”

◈          ◈          ◈

열흘이 지났다.

연습실 앞으로 마중나온 진혁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지숙 씨께서 제이제이 님이었다니 생각도 못 했네요.”

강남에 처음 왔을 때부터 여러 차례 반겨주었고, 개인적으로 케이크를 부탁하기도 했던 손님이다. 서래마을의 프랑스 축제에 초대해서 젤로스 사의 랑비에 씨를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결국, 그 랑비에 씨의 추천을 통해서 이번 국제 대회에 참석하게 되기도 했으니 인연이 깊다면 깊다.

‘미각이 괜찮지만 조금 둔하기도 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예의를 차리시는 거였어.’

정지숙이 웃음 지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숨겨둔 취미거든요.”

‘별문제 없어 보이는데. 왜 쓸데없이 숨기려고 하는 거지?’

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봐온 ‘숨겨야 할만한 취미’들은 대개 살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음양마(陰陽魔)의 그것처럼 동남동녀(童男童女)의 정혈을 빨아먹고 죽여버리는 취미도 아닌데 굳이 숨길 이유가 뭘까.

랑비에가 웃으며 말했다.

“임진혁 쉐프가 특별히 만든 빵을 맛볼 수 있다니 기대가 큽니다.”

“저도요.”

“저 혼자 만들고 있는 건 아닙니다. 다른 팀원들은 각자 다른 빵을 맡았는데, 저는 바게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바게트를 맛볼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임진혁은 연습실 안, 식당을 겸한 작은 휴게실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밀가루 향기가 자욱한 좁은 공간을 본 랑비에가 미간을 찌푸렸다.

“방이 좋지 않습니다.”

“아, 실제로 오시는 건 처음이셨죠? 괜찮습니다. 대신 주방이 아주 넓어요.”

들어오는 세 사람을 본 루이스 강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루이스가 싱글벙글 웃으며 잘 구워진 뺑 오 쇼콜라를 내밀었다.

“진혁이 바게트를 시식하러 오셨다고 들었는데요, 괜찮으시면 이 뺑 오 쇼콜라도 드셔 보시겠습니까? 굉장히 좋은 평가를 해주신다고 하길래요.”

“오,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언제 봐도 참 넉살이 좋단 말이야.’

진혁은 내심 감탄하며 루이스를 보았다. 생기발랄한 지금의 그에게서 더이상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서 탈락하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던 청년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순수한 철광석은 바로 검으로 만들 수 없다. 대장간에서 혹독한 담금질을 거쳐야만 결정구조가 변하여 무기가 된다.

파리로 돌아간 루이스 강은 프랑스의 제3구역에서 열린 동네 제빵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완전히 자신감을 되찾았다.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 처음 등장하던 때, 우승 후보라고 불리던 의기양양함 그대로다.

‘역시 젊은이들은 고생을 좀 해야 해.’

진혁이 바구니에 담겨 있던 바게트를 꺼내서 나무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빵칼로 천천히 두 조각을 잘라내서 접시에 놓자, 랑비에가 먼저 손을 뻗었다.

“미시즈 정께서 먼저 드시지요.”

접시를 받아 양보하고 난 랑비에가 자신 몫의 바게트에 손을 가져갔다.

“Bon appetit![맛있게 드세요!]”

랑비에는 손으로 빵을 떼어 입안에 집어넣었다. 지극한 만족감이 서린 얼굴로 랑비에가 중얼거렸다.

“Tres bien! C'est delicieux![아주 좋아! 맛있어!]”

중얼중얼 프랑스어를 늘어놓으며 먹는 그 옆에서 정지숙은 품위 있게 천천히 빵을 먹고 있었다. 한입에 들어갈 만큼 조금씩 빵 조각을 뜯어내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는 껍질을 조금 씹어먹어 보고 나서 속살을 떼어냈다.

“으음.”

부드러운 속빵을 오물오물 씹고 나서는 껍질과 빵을 동시에 씹어먹는다. 갓 구운 빵을 씹으며 정지숙은 생각했다.

‘겉면은 바삭하고 따끈따끈하지만, 속살은 아주 약간 질긴 편이야.’

“구운 지 아직 하루가 안 된 바게트인가 봐요.”

“예, 잘 아시는군요.”

“이대로도 맛있지만 말리면 더 맛있겠어요. 말린 바게트는 바삭바삭하지만 다시 한 번 더 구우면 더 바삭해지겠죠? 식빵 크러스트 구운 것보다 더 향기롭고 풍미가 더해질 거예요. 숙성시키면 더 좋고요. 바게트는 굽고 나서 하루가 지나면 속살이 촉촉하고 쫀득해지니까요.”

랑비에가 거들었다.

“나의 나라에서는 바게트 같은 빵은 갓 구운 빵보다 며칠 지난 것을 더 쳐줍니다.”

“하지만 시험장에서 숙성한 바게트를 내놓을 수는 없으니까요.”

“어쨌든 아주 맛있습니다.”

“속살이 촉촉하고 쫀득하군요. 그리고 겉은 바삭해서 씹을수록 고소한 단맛이 은근히 나서 아주 맛있네요. 만든 지 하루 정도 된 빵인가 봐요?”

“으음.”

루이스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손을 내밀었다.

“야, 이왕 테스트하는 김에 나도 먹어보자. 하나만 줘 봐.”

“루이스 형은 먹어도 모르잖아.”

한 달간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되었다. 진혁이 놀려도 루이스는 동요하지 않고 코웃음 쳤다.

“맛있는 건 알지.”

진혁은 루이스를 무시하고서 랑비에와 정지숙에게 다른 바게트 조각을 잘라 주었다.

“이거랑 이거, 하나 더 먹어보시고 비교해 주세요.”

“앗, 이것도요!”

정지숙이 기뻐하며 빵을 집었다. 랑비에 역시 희색이 완연한 얼굴로 말했다.

“좋아요, 좋아요.”

“나도 달라니까.”

“형 건 여기에 있어.”

결국 루이스가 먹을 빵까지 챙겨주고 말았다. 세 사람은 한참 동안 묵묵히 두 종류의 빵을 다 먹는 데 열중했다.

진혁이 물었다.

“이 두 가지 중에 어떤 게 더 맛있는 것 같아요?”

“나는 둘 다 좋았어.”

“루이스 형 평은 그래서 도움이 안 돼….”

“맛있는 걸 맛있다고 하는 데 뭐가 불만이냐고.”

“나도 두 빵의 차이는 모르겠습니다.”

랑비에까지 대답을 마치고 나서, 정지숙이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빵이 아주 조금 더 좋았는데요. 혹시 하루 정도 숙성시킨 건 아닌가요?”

“어떤 점이 더 좋았지요?”

“맛있다는 건 상대적인 개념이라서요. 어떤 사람들은 첫 번째 빵을 더 선호할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저는 두 번째 먹었던 빵이 더 좋았어요. 바게트 안쪽이 거위 솜털처럼 보들보들한 걸 선호하거든요.”

루이스가 정지숙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차이를 거의 모르겠는데, 그 미세한 차이를 느끼셨단 말이죠. 역시 진혁이 특별히 초청해서 모셔올 만한 분이시네요.”

랑비에가 정지숙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듯 다시 말했다.

“이분은 구르메를 즐기는, 진정한 미식가십니다.”

임진혁은 정지숙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말했다.

“제가 만들면서 의도했던 바를 정확히 짚으셨습니다. 하루 더 숙성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전달되었다니 다행이에요.”

그는 방금 만든 빵에 대한 레시피가 적혀 있는 노트를 펼쳐 하나씩 짚어 보이며 정지숙에게 설명해 주었다.

“사실 하루 더 숙성시킨 건 아닙니다.”

“엣?!”

“뭐라고요?”

정지숙이 놀라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빵 안쪽을 그렇게 부드럽게 할 수 있었던 건가요?”

“음, 사실 바게트 같은 종류의 빵, 특히 정통 프랑스 바게트는 아시다시피 재료가 제한되어 있지요. 밀가루와 물, 이스트하고 소금만으로 만들어야 하잖습니까.”

“예.”

“그런데? 서론이 너무 길어.”

“기본적으로 바게트를 반죽할 때 반죽을 여러번 내리치면 안 된다고 하잖아? 주영모 쉐프님의 제과 백과에 나와 있듯이 말이지. 거기서 힌트를 얻었지.”

진혁이 제빵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설명하자 루이스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서론이 길다니까.”

“외피(크러스트)가 바삭하고 쫄깃해서 잘 씹히면서도 속 부위(크럼)에 크고 작은 공기 구멍이 많이 있게 하려면 반죽하면서 최대한 글루텐이 덜 생기게 해야 하거든.”

“!”

“그건 제과제빵을 전공하는 1학년생들도 아는 이야기잖아.”

“그렇지. 그렇다고 해서 반죽을 하면서 아예 내리치지 않으면 또 글루텐이 너무 덜 생겨서 빵이 아예 안 부풀어 오를 수 있잖아. 완전히 실패지. 하지만 너랑 나는 이미 그런 초보적인 단계는 예전에 졸업했잖아? 하다못해 마리도 그런 실수는 안 한다.”

루이스가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세 번째 팀원이자 자신의 친동생 이름을 언급하며 투덜거렸다. 진혁이 웃었다.

“그래서 앞에 드신 건 조리대에 다섯 번을 내리친 반죽으로 만든 바게트입니다.”

“그 얘기는……!?”

“두 번째 드신 빵은 조리대에 세 번을 내리친 반죽으로 만들었고요. 다른 모든 조건은 동일하도록 조정했습니다. 사실 루이스 형이나 마리도 세 번에 한 번 정도나 느끼는 미세한 차이를 느끼시다니 대단합니다. 아드레아노 존부 쉐프나 스텔라 위스커스 쉐프만큼의 미각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막 임독양맥(任督兩脈)을 타동한 기특한 수제자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임진혁이 말했다.

“역시 정지숙 고객님의 입맛은 믿을 수 있군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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