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4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나.’
어린아이의 철없는 행동이다. 가게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임진혁은 일부러 손을 쓸 생각이 없었다.
“퉤엣!”
민감한 고수의 청력은 주방 안에서 빵 위에 침을 뱉는 소리를 예민하게 잡아챘다. 이 소리를 들은 후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마에 주름이 깊이 잡혔다.
“여기 빵 나왔습니다.”
조금 전까지 주방 안에서 떠들고 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밖으로 나왔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평범해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기껏해야 대학교 1, 2학년 정도 되었을 것이다.
이 근처는 대학가니까 근처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목을 뽑아 죽일까?’
침 뱉은 빵을 들고나오는 모습이 같잖아서 순간적으로 살기가 치솟았다. 새끼손가락으로 백회혈만 눌러도 머리가 터져 죽어버릴 놈이다. 파리보다도 약하고 모기보다도 보잘것없는 녀석을 보고서 그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 여기서 죽일 수는 없지.’
무엇을 하더라도 백진영이나 김도을이 보지 않는 데서 저질러야 하리라.
봉지 도미 스튜를 맛보고 있던 백진영이 고개를 들어 아르바이트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희가 빵에 대해서 혹평을 좀 했지요? 죄송합니다. 아까 식전에 나온 호밀빵에 있던 신맛은 이 도미 스튜랑 같이 먹으면 중화돼서 어울릴 것 같아요. 너무 함부로 평가하지 않았나 해서, 이 맛있는 요리하고 꼭 빵을 먹어보고 싶어서 따로 부탁드렸습니다.”
해맑은 미소를 본 아르바이트생이 주춤했다.
“어, 에, 감사합니다.”
“여기 있는 이 녀석은 이번에 처음에 서울에 올라와서 들떠 있거든요.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가게가 여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데리고 온 겁니다.”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백진영을 보고서 아르바이트생이 머뭇거렸다.
동공이 천천히 열리면서 무어라 입술을 달싹이려 하다가, 어깨를 살짝 기울인다.
-쨍그랑.
그는 부자연스럽게 바닥에 빵을 떨어뜨렸다. 단단한 도자기 접시는 바닥에 안전하게 떨어져 깨지지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그는 황급히 주방으로 돌아갔다. 안쪽 주방에서 누군가 아르바이트 청년을 야단치기 시작했다.
“넌 멍청하게 바닥에 빵을 떨구냐? 여기서 거기까지 2m도 안 되는 거리인데 그걸 어떻게 떨궈?”
따악, 하고 딱밤을 맞는 소리도 들려왔다. 진혁은 마음속 깊숙이 치밀었던 살기를 가라앉혔다.
‘형이 오늘 사람 한 명 살렸다.’
백진영이 한 이야기에 감화받아 직접 빵을 떨어뜨린 것을 보니 아예 썩은 놈은 아닌 것 같다. 새삼스레 귀찮게 죽일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저놈 죽이면 시체도 치워야 하잖아.’
태워버린다고 해도 재는 남고, 재는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이쪽 구는 진혁의 가게와 거리는 가깝지만 구가 달라 사용하는 쓰레기봉투가 다르다.
“형, 말을 아주 잘하는데?”
진혁이 피식 웃으며 백진영에게 말했다.
진영은 씩 웃으며 주방을 한 번 보고 나서 도을이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잖아. 나 여기 자주 오는 가게니까 잘 좀 부탁한다, 도을 학생.”
“아…… 알았어요!”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듯 김도을이 고개를 끄덕였다.
“빵 나오면 맛있게 먹고, 맛있다고 말씀드릴게요!”
“그래, 그래.”
“태권도 대회는 내일이야?”
“네. 내일 아침에 구립체육관에서 해요.”
도을이 반색하며 물었다.
“혹시 오실 수 있어요? 엄마가 파출부 일 하느라 못 오셔서, 저만 아무도 안 와요.”
진혁이 즉답했다.
“아니, 가게 열어야지.”
“…… 아. 그렇죠, 가게 하셔야 하는데. 이상한 거 물어봐서 죄송해요!”
소년은 금세 눈치를 보며 기가 죽었다.
‘도을이네 어머니도 파출부 일을 하시는구나.’
진혁의 어머니도 오랫동안 파출부 일을 하셨다. 임진혁은 새삼스런 눈으로 소년을 보았다.
“너, 잠깐 몸 좀 보자.”
도을이 양팔을 벌리고 불끈 근육이 솟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저 몸 진짜 좋죠?”
몸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아직 십 대 소년이다. 진혁이 보기에는 비루먹은 당나귀처럼 말라빠진 몸이었지만 백진영은 손뼉을 치며 감탄해 주었다.
“대단하네. 태권도를 열심히 하나 봐.”
“일주일에 다섯 번씩 방과 후 선생님이랑 같이 해요.”
진혁은 문득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어느 구립 체육관에서 한다고?”
“망원구요.”
진혁은 스포츠용 카스텔라를 납품하고 있는 센터를 몇 군데 떠올려보았다. 그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서 말했다.
“그래.”
도을이 씩씩하게 말했다.
“전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알아서 갈 수 있으니까요. 저도 금방 중학교 3학년이 되고요.”
점원이 곧 새로운 빵을 내왔다.
“죄송합니다! 여기 있습니다.”
새로 나온 빵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보송보송하고 성긴 빵을 스튜에 찍어 먹자 꽤 잘 어울렸다. 김도을이 신나 하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건 애초에 이렇게 국물 찍어 먹으라고 만든 빵인가 봐요.”
“그렇지? 잘 어울리네.”
도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오픈 키친의 사장이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작은 사장님은 이런 스튜 같은 거 안 팔아요? 작은 사장님네 빵이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은데.”
진혁이 웃으며 거절했다.
“그건 이미 빵집이 아니라 식당이잖아.”
“그러게. 식당 하시면 제가 맨날 사 먹으러 갈 텐데요.”
“빵집 해도 매일같이 사 먹으러 오잖아.”
도을이 입을 삐죽 내밀며 툴툴거렸다.
“그건 그렇지만 거기서 외식을 할 순 없잖아요. 엄마 생신 같은 거.”
“그래, 그래.”
스마트폰의 캘린더를 확인하고 난 백진영이 말했다.
“혹시 네가 이번에 나간다는 대회가 전국 청소년 태권도 대회야?”
“응?”
“백진영 아저씨는 그 대회에 가시는 거예요?”
도을이 신나 하며 물었다. 백진영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왜 진혁이는 형이고 난 아저씨야?’
“아니, 내가 가는 건 아니야. 내가 후원하는 보육원 애가 거기 출전하거든.”
“아…….”
“걔도 중학생인데 너랑 동갑일걸. 진혁이 너한테도 이야기했잖아. 그 미각이 예민하다는 애.”
“들었던 기억은 있어.”
“이름이 뭔데요?”
“안제현.”
“학교가 서울이면 저랑 결승전에서 만날걸요?”
“서울 아니야, 부천인데.”
김도을과 백진영이 이야기하는 사이 진혁이 자연스럽게 도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디, 몸 좀 볼까.’
그가 가게를 빠지면서까지 대회에 나가 줄 의리는 없다. 하지만 홀어머니가 파출부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조금 너그러워진 진혁은 소년의 몸을 한 번 봐주기로 했다.
‘품새 종목에만 출전한다면 직접적으로 사람과 겨루지는 않겠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진혁이 김도을의 몸에 진기를 보내 체내를 탐색했다.
현대인답게 엉망진창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이가 어리고 기력이 활발하니 옛 부모님이나 눈앞의 백진영보다는 나았다.
‘기혈이 천천히 막혀가며 탁기가 쌓이는 중이야.’
“네 주 장기가 뭐야?”
“어, 돌려차기요.”
임진혁은 다리 쪽에 미미한 진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아주 조금만.’
초기부터 오행진이 설치된 빵집에서 자주 빵을 사 먹은 덕분인지 몸이 나쁜 편은 아니다. 그래도 내일 조금 더 몸이 좋아질 수는 있을 것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 지나고, 김도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무언가를 느꼈지만,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를 못 한 듯 표정이 미묘하다.
“형, 지금 저 간지럽힌 거예요?”
“비슷해.”
“왜 어깨를 만지는데 다리가 근질근질하지.”
-띠리링.
스마트폰에 수신된 문자를 확인하고 진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김도을 너, 선생님께 말하지 않고 이리로 온 거야?”
“자유 시간이에요!”
“당장 네 숙소로 돌아가. 데려다줄게.”
입술을 깨물면서 안절부절못하는 중학생은 제 나이처럼 보였다.
“가자. 숙소로 데려다줄게.”
진혁이 먼저 김도을을 데리고 나왔다. 백진영은 지갑을 열어 계산을 했다.
“잘 먹었습니다, 사장님.”
“하시는 가게가 <해와 달>이라고 하셨죠.”
“예? 아, 예.”
“제가 찾아가 보겠습니다.”
미소를 잃지 않으며 말하는 요리사였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백진영은 눈치 없는 척 마주 웃어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한 번 꼭 오세요.”
그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가게를 나섰다. 가게 앞에서 도을이를 야단치고 있던 임진혁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형, 내가 얘를 데려다주고 갈게.”
“그럴래?”
“내일도 새벽부터 일찍 나와야 하니까 피곤할 거 아냐.”
“너는 안 피곤하고? 같이 가자.”
“…… 알았어.”
도일이는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이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다행히 김도을이 선생님과 함께 머무는 숙소는 멀지 않았다. 진혁이 두 사람을 재촉하며 걸었다.
“선생님이 네 걱정 많이 했다.”
“금방 돌아간다고 쪽지도 쓰고 나왔는데요.”
눈치를 보는 줄 알았는데 입만 살아서 나불거린다.
“…….”
진혁이 입을 다물자 백진영이 말했다.
“임마, 서울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 줄 알아?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데야.”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잖아요.”
진혁은 아득한 옛일을 떠올렸다.
이런 식으로 황보세가의 막내아들을 호위한 적이 있었다. 큰아들과 둘째 아들이 쟁투에서 목숨을 잃고 난 후 하나 남은 아들이었다.
본디 황보가의 가주 황보석평은 첩의 아들인 막내를 시골에서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두 아들이 다 죽어버리고 후계자가 될 사람이 없어지자 시골에 처박아 두었던 아들을 불러왔다. 그러면서 낭인을 모집해 호위하도록 부탁을 하였다. 임진혁은 당시 살수대의 막내로, 의뢰를 받아 호위대에 숨어들었다.
막내 황보준은 아버지가 자신을 부른다고 해도 꿈에 부풀어 있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지켜야 하니 무공을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낭인들에게 물었다. 황보가의 무사들은 그런 황보준을 비웃었다. 진혁은 황보준을 비웃지도 않았으나 한 수의 기술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삼류 낭인에게 별것도 아닌 기술을 한두 가지 배운 황보준은 쓸데없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놈은 아버지를 찾아가는 그 길에서 몸을 빼서 도망치려고 시도했다. 진혁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황보세가에서 보낸 호위무사들에게서 자신이 직접 몸을 빼냈으니 말이다.
덕분에 진혁은 빠르게 의뢰를 완수하고 일월신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묘하게 그놈 생각이 난단 말이지.’
그 녀석도 그렇게 말했었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은데, 시골에서 사나 황보세가에서 사나 무엇이 그리 차이가 있겠습니까?”
대신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되도록 친절하게 목숨을 거두어 주었다.
진혁이 했던 수많은 살수행 중의 하나일 뿐이다. 서울에 올라와서 태권도 대회를 찾아가는,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는 빵집 손님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다.
‘선생님을 따돌리고 빵집 주인을 찾아오는 담력하고.’
잘 키우면 좋은 살수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혁이 소년을 살수로 키울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