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31화 (231/656)

제 231화

『드셔 보시고 난 다음에 케이크 세 개 중에 어떤 걸로 할지 결정해 주시죠, 슬슬 케이크 재료를 주문해야 하니까요.』

『잠깐, 이 나비도 먹는 건가요?』

『당연히 먹는 거죠. 달콤한 맛이 납니다.』

나비 샘플을 먹어본 적이 있었던 백진영이 잘난 척하며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브라이언이 놀라며 물었다.

『잠깐, 이거 웨이퍼 페이퍼 아니었어? 그걸 어떻게 투명하게 뽑아내? 그리고 그건 원래 단맛이 나지 않는 거로 알고 있는데.』

웨이퍼 페이퍼는 감자 전분과 물,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먹을 수 있는’ 종이다.

브라이언 역시 케이크 데코레이션에서 깃털처럼 가벼운 소재가 필요할 때 자주 만들어 썼다.

필요할 경우 식용 색소를 넣어 만들어 알록달록하고 다채로운 빛깔을 낼 수 있어, 공작새의 꼬리 깃털처럼 특별히 화려한 장식을 할 때 쓰기 좋다.

하지만 거기서는 단맛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투명하게 했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웨이퍼 페이퍼가 아닌가? 설마 분자 요리로 해서 굳혔나?’

의문에 휩싸인 브라이언에게 진혁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생각보다 흔한 재료야. 먹어 보면 알 걸, 왜 굳이 물어보려고 해?”

그는 본디 무공을 가르칠 때도 일일이 설명해 주려 하지 않았다. 진혁의 깨달음과 다른 이들의 깨달음은 또 다른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진혁이 내놓은 깨달음의 화두가 어떤 이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진혁은 이들이 선입견 없이 케이크를 먹고 순수하게 맛을 즐기기를 원했다.

『실제로 결혼식장에 오는 손님들한테 이게 웨이퍼 페이퍼인지 캔디 윙인지 검 페이스트인지, 퐁당 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모르고 먹으면서 맛을 즐길 테니까』

브라이언의 동공이 흔들렸다.

검 페이스트(Gum paste)는 달걀흰자와 설탕, 쇼트닝으로 만드는 반죽 비슷한 식용 재료다. 퐁당과 비슷하지만, 건조 후에 크래커처럼 단단해지는 성질이 있어 아주 얇게 뽑아낼 수 있다. 브라이언은 보통 얇은 꽃잎을 한 장 한 장 만들어 겹쳐내거나 할 때 이런 검 페이스트를 썼다.

퐁당(Fondant)은 흔히들 케이크를 장식하기 위해 쓰는 재료로, 설탕과 물, 젤라틴과 식용 글리세린을 사용해 반죽해 만든다. 보들보들한 특유의 광택이 있어, 얇게 죽 뽑아낸 퐁당 반죽을 테이블보처럼 케이크에 덮어씌워 새틴처럼 보드라운 겉모양을 내기 좋다.

하지만 그는 검 페이스트와 퐁당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무 섬세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얇은 셀로판지처럼 투명한 나비 날개에는 나뭇잎 이파리의 잎맥처럼 치밀하고 정교한 시맥(翅脈, 날개의 맥)이 정교하게 도드라져 있다.

아무리 검 페이스트라고 해도 날개 하나 하나당 일일이 잎맥을 그리지 않는 이상 저런 모양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퐁당은 이런 광택이 나지 않는다.

『퐁당도 아니고 검 페이스트도 아닌데. 잠깐. 단맛이라고? 캔디 윙? 그럼 이게 슈가크래프트란 말이야?』

당연히 설탕 공예로 나비를 만들 수 있다. 브라이언 역시 그렇게 만든 나비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설탕 공예의 특성상 어느 굵기 이하로 선을 뽑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숙련자라면 설탕 반죽을 잘 짜서 둥그런 연필의 두께 정도로 뽑아낼 수는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실로 엮어내듯 투명한 날개를 엮어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진혁이 씩 웃으며 고개를 갸우뚱하자 브라이언이 말했다.

『단맛이라, 모델링 초콜릿은 아니지?』

생각해보면 모델링 초콜릿(Modeling chocolate)은 진혁이 자주 쓰는 재료다. 옥수수 시럽과 초콜릿을 함께 녹여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브릴리언트 커팅을 한 다이아몬드처럼 선명하게 빛을 반사해내는 광택만이 아니었다.

브라이언이 고심하는 동안 제시카와 백진영은 이미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어머! 이거 그거네!』

제시카가 탄성을 올렸다.

입안에서 부서지며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나비 날개에서는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맛이 느껴졌다.

점잖고 엄숙한 달콤함은 영국 신사처럼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지나갔고, 곧 익숙한 퐁당의 맛이 혀에 닿았다. 퐁당 안에 있던 케이크에서는 익숙한 맛이 살아났다.

『초콜릿 오렌지 케이크……!』

세콤 쌉쌀하고 진한 오렌지의 맛이 느껴진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바로 카사노바처럼 노골적이고 농후한 초콜릿이 파도처럼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포말이 부서지는 것처럼 희미한 우유와 크림이 혀와 입안을 따사롭게 달래준 이후에 남는 것은 짙디짙은 레몬의 풍미였다.

‘처음에 먹었던 케이크와 두 번째 먹었던 케이크를 합친 건가?’

이 진한 레몬 맛은 익숙했다. 바로 몇 분 전에 먹었던 케이크와 닮았기 때문이다. 온몸이 저절로 떨릴 정도로 놀랍고 산뜻했던, 레몬의 정수를 완전히 갈아 넣은 두 번째 케이크를 연상케 하면서도 또 다르다. 부드럽고 폭신한 시트가 아니라 쫀쫀한 케이크라서 더 그렇다.

파운드 케이크보다도 저 치밀한 이탈리아식 케이크 안에는 과즙이 풍부한 사과 절임까지 고루고루 박혀 있다.

오렌지와 레몬, 그리고 사과로 완성되는 과일의 3중주는 새콤하면서도 씁쓸하고 감미롭다.

‘1 더하기 1은 반드시 2가 아니야.’

세 번째 나비 케이크는 초콜릿과 생크림이라는 기본적인 맛을 베이스로 하여 오렌지와 레몬을 한 케이크에 담았다.

같은 재료를 사용했으나 빵을 완전히 바꾸어버렸고 맛을 풀어내는 방식 또한 전혀 달라서 앞의 케이크를 합쳤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세 번째의 맛인 사과 역시 풍부한 감미를 더해주었다.

차라리 단순히 두 케이크의 맛을 합쳐 놓은 것이었다면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세 번째 케이크를 고르기만 하면 이미 앞서 느낀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구름 밭을 거니는 듯 몽롱해져 있던 제시카는 어느샌가 눈앞의 접시가 텅 비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더 없나요?』

『없습니다.』

안타깝고 애절하게 그녀가 물었다.

『진짜 없어요?』

진혁이 힐긋 보았다. 브라이언은 아직도 케이크를 먹지 않고 나비를 지켜보며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브라이언 쉐프? 미스 린든이 보고 있는데.』

제시카가 손을 슬며시 뻗으려는 기색을 보였다.

『자, 잠깐. 제시! 말하지 마! 아무것도 말하지 마! 난 이거 먹기 전에 뭔지 맞출 거야!』

브라이언이 질색하며 접시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제시카가 킬킬 웃으며 놀리듯 말했다.

『그거 캔디야.』

『오, 하나님이시여! 말하지 말랬지!』

브라이언이 툴툴거렸다. 그는 누구에게 빼앗길까 두렵기라도 한 듯 접시를 그대로 들어 올려 즉시 케이크를 입안에 쏟아부었다.

『하아.』

그는 나직하게 신음을 토했다.

‘이런 걸 지금 혼자서 개발해서 만들어낸 건가……?’

임진혁이 아드레아노 존부 아래에서 수학하는 것을 거절했을 때 확신할 수 있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업계 선배로서 부끄럽지 않게 분명 자신이 바라보는 제빵과 제과의 세계가 더 넓어져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내가 이런 케이크를 만들 수 있을까?’

오렌지 콩피를 곁들인 초콜릿 케이크나 레몬 케이크까지는 자신 역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에 과연 이 시트를 재현하고 설탕 공예로 나비까지 만들 수 있냐고 묻는다면?

엄청난 시간을 들여 수없이 실패를 반복해야 할 것이다.

서로 스타일이 다른 것을 고려하더라도 현재 시점에서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것이 임진혁 쪽이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조금 전까지 먹었던 케이크를 보며 임진혁의 실력이 향상됐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그 정도가 아니었다.

『이걸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임진혁 쉐프?』

경외감을 느낄 정도다. 브라이언이 천천히 묻자 진혁이 대답했다.

『결승전이 끝나기 전이니까 꽤 오래전부터 끌었죠. 아이디어는 여러 개 있었는데 어떤 것이 좋을지 몰라서.』

『이 나비 케이크의 샘플은 저번 주에 처음 봤어요.』

백진영이 정보를 보충해주었다.

『그때는 샘플 조각이 입안에서 날카로운 조각으로 쪼개졌었죠. 훨씬 나아졌습니다. 진혁이 네가 내 말 듣고 고친 거지?』

『이제 훨씬 괜찮지?』

『응. 내 피드백이 도움이 됐다니 좋다.』

백진영이 흐뭇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접시에 남은 크림을 핥는 데에 집중했다. 제시카 역시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핥았다.

『저도 말로만 듣고 임진혁 쉐프님과 실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정말로 친절하고 좋으신 분이세요. 신경 써주셔서 이렇게 훌륭한 케이크 샘플을 세 개나 만들어주시다니요, 하나하나 전부 완성도가 높아 고르기도 어렵네요.』

제시카 역시 약혼자의 말을 거들었다. 이럴 때만 빠지지 않는 백진영 역시 끼어들었다.

『얘가 아주 착한 애예요.』

갑자기 훈훈하게 임진혁의 장점을 칭찬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임진혁 쉐프처럼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주 많지는 않지만, 꽤 있어요. 맛을 보고 재료를 알아채고, 손재주가 좋아서 금방 무언가를 만들어 내죠. 센스가 있어서 디자인을 잘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진혁 쉐프처럼 재능이 있는데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베이킹하고는 분야가 좀 다르지만,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연습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처음에 시도하자마자 제대로 된 커피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좋은 커피를 내리는 데 필요한 게 얼마나 많은데, 그걸 공부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 노력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부족하달까요? 사실 저도 옛날에는 그런 편이었는데 말이죠. 진혁이를 보고 있으면 노력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터무니없다고 여기지만, 두 사람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긴가민가하고 세 사람이 같은 소리를 하면 어쩐지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말로 내가 친절한가?’

진혁이 고심하는 사이, 제시카가 먼 곳을 바라보며 백진영의 말에 대답했다.

『저도 로스쿨에 다닐 때 그런 라이벌이 있었어요. 상법 쪽에서 항상 A+를 받는 친구여서 그 친구를 이기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주방에도 그런 경쟁심이 있나 보군요.』

브라이언이 대답했다.

『결과가 눈앞에 바로 보이니까 로스쿨보다 더 치열할 수도 있지.』

머쓱해진 임진혁이 눈을 껌뻑거렸다.

‘뭐야? 이 분위기는. 그냥 이것저것 테스트해보고 싶어서 많이 만들었다고.’

『재룟값은 그렇다 치고 이 아이디어와 센스만 해도, 웨딩 케이크 샘플로만 쓰기에는 아깝습니다.』

『그리고 케이크 세 개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것도 고문이에요.』

『선택의 여지가 있으니 좋지 않습니까? 정말로 마음에 드는 스타일로 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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