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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230화 (230/656)

제 230화

백진영이 울상이 된 얼굴로 진혁을 돌아보았다. 진혁이 입 모양을 벙긋거렸다.

“왜 남의 결혼 케이크를 탐내고 그래. 차라리 가영 씨랑 결혼을 빨리해. 그럼 아주 특별한 웨딩 케이크를 만들어 줄 테니까.”

“네가 삼촌도 아니고 왜 그렇게 자꾸 나보고 결혼하라고 하는 거야?!”

“그 나이면 이미 정착해서 가정을 꾸리고 애를 셋 낳고도 남을 나이야.”

“너 나하고 나이 차이 그렇게 많이 나지 않는다…….”

친구처럼 투덕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브라이언이 웃었다.

『사업 파트너가 저렇게 친구처럼 사이가 좋은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진혁 쉐프는 참 인덕이 있는 사람이야.』

제시카 린든은 그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엘더 플라워 모양의 크림이 올라간 새하얀 웨딩 케이크를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브라이언이 만들지 않고 다른 사람한테 맡긴다고 해서 처음엔 너무 섭섭했는데. 왜 이 사람한테 맡기는지 알겠어.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모양이라니!’

브라이언이 만드는 세련되고 우아한 케이크들 역시 아름답지만, 그녀는 역시 이렇게 전통적인 모양의 웨딩 케이크가 좋았다. 하지만 확실히 전에 확인한 한국의 전통 혼례식 사진을 떠올려 보면 이 하얀 케이크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깝고 예쁜 케이크다.

‘오렌지 초콜릿 케이크도 너무너무 맛있는데 색깔이 조금 희한하지.’

그녀가 웨딩드레스 대용으로 입을 하얀색 원피스는 가슴을 하트 모양으로 감싸며 어깨를 드러낸 모양이었다. 머메이드 형태로 몸의 라인을 전부 드러내는데, 길이는 무릎 아래를 지나 발목까지 온다. 반들반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모조 진주가 알콩달콩하게 가슴께와 치맛단을 장식한다. 손목에는 프롬 파티 때처럼 데이비드가 선물할 꽃을 리본으로 묶어 맬 것이다.

『엘더플라워 꽃, 이건 실제 꽃인 거지요?』

엘더플라워 웨딩 케이크를 보며 그녀는 머리를 장식할 화관에 놓일 꽃을 정했다.

『아니요, 크림입니다.』

『이게 크림이라고요?』

브라이언이 끼어들었다.

『특정한 팁을 사용해서 크림을 짜내면 이렇게 만들 수 있어.』

『당신도?』

『나도 연습하면 할 수 있지.』

『흐으으음, 연습하면 이라.』

『플라워 케이크는 내 특기가 아니니까.』

『자, 자. 맛부터 보죠.』

백진영이 따뜻한 물을 세 잔 내왔다.

『초콜릿은 맛이 강렬하니까 입가심을 한 다음에 맛을 보는 게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백.』

임진혁이 웃으며 칼을 들었다. 그는 엘더 플라워부터 쪼개어 케이크를 정확히 세 개로 나누었다.

『진혁 쉐프는 맛보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만들면서 여러 차례 시식했으니까 괜찮습니다.』

『케이크를 시식하다 보면 살이 찌지 않나요? 진혁 쉐프는 따로 운동을 하나 봐요.』

『건강에 좋은 재료를 고르고 골라서 그중 제일 신선한 것들만 골라 사용했습니다. 저희 집 케이크는 살이 찌지 않아요.』

『그럴 리가요?! 원래 맛있는 건 살찐다구요.』

백진영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진짜입니다. 그래서 저희 빵집에만 자주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카페에 설치된 오행진은 재료의 생기를 북돋아 최선의 맛을 끌어내며 오랫동안 신선하게 보관한다. 하지만 제일 큰 효능은 인체의 기혈이 보다 적절히 순환되는 것을 돕는 것이다. 제일 큰 효과를 본 사람은 가족들이다. 환골탈태를 하고 난 후 가게에서 일하면서 따로 운기조식을 하지 않아도 미미한 운기를 하는 정도의 효과를 준다. 그 외에는 유일봉과 백진영이었다.

‘가게에 오래 있으면 오래 있을수록 점점 더 몸이 좋아지지.’

유일봉은 살이 빠졌다. 백진영은 점점 더 자세가 곧아지고 있다. 본디 한쪽 다리를 저는 탓에 척추가 한쪽으로 휘어져 멀리서 보면 균형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오는 와중에 간간이 진혁이 진기를 주입해주고 있다.

백진영 본인은 지금 받는 치료가 엄청나게 효과가 좋다며 재활병원의 의사를 명의라고 주변에 추천하고 다니고 있다.

『그 거짓말 같은 거짓말이 진짜였으면 좋겠네요.』

『정말인데 말이죠.』

진혁이 웃었다.

제시카는 미소를 지으며 화이트 레이어 케이크에 손을 가져갔다. 조금 전의 파랗고 빨간 케이크는 놀랄 정도로 맛있었다. 하지만 화이트 레이어 케이크는 모양이 예쁜 만큼 맛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정도라면 충분히 무난하고 괜찮은 결혼식 케이크라고 생각했다.

‘사실 원래 이런 종류의 하얀 크림 케이크 맛이야 다 비슷비슷하지. 그냥 이 모양이기만 하면 됐어. 웬만하면 이걸로 하자고 브라이언에게 말해야지.’

하지만 케이크의 크림이 입술에 닿는 순간 제시카는 그 생각을 바꾸었다.

‘맙소사! 이건 할머니가 만드신 케이크보다 더 맛있잖아!’

화이트 레이어 케이크에 쓰는 크림은 보통 무난하게 무거운 버터크림을 쓴다. 하지만 이 하얀 크림은 보통 케이크의 크림과 똑같이 생겼지만, 질감부터 달랐다. 솜사탕처럼 가뿐하게 가벼우면서도 산뜻한 맛이다. 겉모습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맛에 그녀는 저절로 눈을 감았다. 시각 없이 온전히 미각과 후각에 집중해 백 퍼센트 순수한 맛을 느끼기 위해서다.

아직 화이트 레이어 케이크를 맛보지 못한 브라이언이 눈을 크게 뜨며 그런 약혼녀를 바라보았다.

『제시, 맛있나 봐?』

『으으으으으음.』

말 시키지 말라는 듯이 제시카가 황홀한 신음을 흘렸다. 처음에는 느껴지지 않던 바닐라빈의 향이 향긋하고 다사롭게 온몸을 감싸왔다. 가벼운 겉 크림과 달리 빼곡하고 달콤한 크림 필링 역시 그녀가 상상하던 맛이 아니었다.

『이건 설마 레몬 커드 크림 필링인가요?』

『미각이 좋으시군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진영이 감탄했다.

『어제 왜 생레몬즙을 그렇게 짜나 했더니 이걸 만들려고 그런 거였구나.』

『첨가물이 들어간 인공 레몬주스하고는 향부터가 다르네요. 레몬 몇 개를 압축한 건지, 완전히 레몬의 엑기스라고 할 수밖에.』

버터크림이나 동물성 지방을 사용한 생크림은 먹다 보면 느끼해져서 질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크림 레이어 케이크 안쪽에는 비밀스러운 크림 필링이 숨어 있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전혀 알 수 없게 레몬 커드 필링을 넣어둔 것이다.

『봄이 와서 영혼을 깨우는 것 같은 맛이에요.』

찬물에 샤워한 것처럼 한순간 온몸이 상쾌해졌다. 순간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 정도다. 제시카가 웃으며 말하는데 브라이언이 장난스럽게 눈을 부라렸다.

『헤이, 제시! 내가 만든 케이크를 먹고서는 그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잖아.』

『호호호! 먹을 때마다 온몸에 오르가즘처럼 전율이 오는 케이크를 만들어 준 적은 없잖아요.』

『제시--?』

『호호호호호호호.』

이제 막 자신 몫의 케이크를 다 먹은 백진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 광경을 관찰했다.

‘결혼식 날짜까지 잡은 커플까지 싸우게 하는 건가, 임진혁 표 케이크…….’

방금 전에 먹은 케이크는 아주 맛있었다.

“전부터 네가 만드는 케이크가 맛있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번에는 진짜로 한 단계 뛰어넘은 느낌이야.”

“그래?”

진혁이 웃었다.

제시카 린든과 브라이언 신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빠르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임진혁의 케이크를 먹기 위해 당연히 진혁을 미국으로 초청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등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예비부부를 바라보며 백진영은 자신과 김가영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싸울 일이 없게 하려면 처음부터 아예 내 몫의 케이크는 없다고 포기를 해야 해.’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게 되니까 아쉬워지는 거다.

어쩐지 앞으로 진혁이 만들어줄 케이크들은 전부 아예 맛보지 않고 가영에게 양보해야 할 것 같다. 백진영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화제를 전환했다.

『진혁아, 마지막 케이크는 테마가 뭐야?』

『지금 보여드리죠. 보면 좋아하실 겁니다.』

진혁은 제시카의 핸드폰에 매달려 있는 나비 모양 장식을 흘끔 눈여겨보았다. 그녀는 이전에 브라이언을 응원하러 왔을 때는 나비 모양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어떤 장신구를 하는지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하지만 웨딩 케이크의 테마를 위해 눈여겨보아 두었다.

세 번째 케이크는 나비와 관련된 것이었다.

『전에 하신 귀걸이를 보니 나비를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진혁이 세 번째 샘플 케이크의 상자를 열며 웃었다. 뚜껑이 열리는 순간 상자 안에 있던 무엇인가가 조명을 반사해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보석처럼 눈부신 그 광택에 한순간 제시카는 홀린 듯 시선을 빼앗겼다.

『너무 예뻐요!』

거미줄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케이크 위에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아슬아슬하게 몸을 걸치고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날개를 가진 나비였다.

브라이언이 케이크 위에 돋아난 섬세한 구조물을 보고 신음하듯이 말했다.

『잠깐만. 이 크리스탈 버터플라이는 적갈색 무늬가 있잖아? 그럼 아래쪽에 있는 이 상앗빛 꽃은 설마 나야?』

『하하, 그건 비밀』

진혁이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다른 케이크들이 삼단 층으로 되어 있었던 것에 비해서 이 케이크는 아이스크림콘을 엎어 놓은 것처럼 날씬한 원통형 기둥이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모양이었다. 그 가장자리에는 금빛 실 같은 리본이 은은하게 매어져 있는 것처럼 장식이 되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리본이 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식용 금박을 입혀 스프레이로 입힌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샘플비를 드려야겠는데요?』

『나중에 선택하시면요.』

백진영은 검은색으로 꽃잎 가장자리가 물들어 있는 상앗빛 꽃잎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브라이언의 피부색과 눈동자 색, 그리고 머리카락 색깔을 반영한 것처럼 보였다.

‘거참 특이하다니까.’

신랑 신부의 이니셜을 새기거나 두 사람 모양의 작은 설탕 인형을 세우는 것 정도를 생각했지, 이렇게 완전히 다른 형태의 무언가를 만들어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맙소사, 임 쉐프! 너무나 아름다워요! 이건 무슨 케이크에요?』

『드셔보시면 아실 겁니다.』

‘이 여자가 과연 무슨 케이크인지 맞출 수 있을까?’

미각이 둔하지 않은 편인 백진영은 기존에 레몬 커드 필링이 들어간 케이크를 먹고서 어떤 맛인지 말하지 못했다. 껍질을 갈아 넣어 쌉싸름한 맛을 냈어도 구분하지 못했으니, 그냥 미각이 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임진혁은 한 사람에게 최소한 꽃 한 송이와 나비 한 마리가 돌아가도록 케이크를 잘라주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든 케이크인 만큼, 좋은 반응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제시카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건 정말로…… 뭐라고 말할 수가 없네요.』

투명한 초록빛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브라이언은 약혼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케이크에 몰입해 있었다.

『천국에서 배달시킨 케이크가 이런 맛일까요?』

『달콤하면서도 너무 달지 않고 새콤한데 톡 쏘는 것도 아니야. 은은하고 잔잔한 맛인데 어디서 맛본 것 같기도 하고.』

백진영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브라이언이 중얼거렸다.

『아주 상냥하고 친절한 맛입니다. 임진혁 쉐프의 성격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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