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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225화 (225/656)

제 225화

“이거 돼지 모양 만든다고 케이크에 뭐 이상한 거 넣은 거 아니야?!”

남자가 큰소리로 외쳤다.

여자가 부끄러워하며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아, 아니야. 너무 맛있어서 그만…….”

그녀는 방금 전에 느낀 맛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작은 붓이 입술에 연지를 칠하듯, 보드라운 맛이 입안에 사부작사부작 발라졌다. 새하얀 도화지가 수채물감에 물들어 색깔이 번지듯 은은하게 퍼지는 맛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솜사탕처럼 폭신하고 따뜻한 케이크 시트는 따뜻한 아이스크림처럼 살포시 녹아내린다. 혀와 이, 그리고 턱을 한두 번 움직였을 뿐인데 방금 받은 종이컵은 벌써 비었다.

‘더 먹고 싶다.’

안온하고 따스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만 같다. 그녀는 코를 벌렁거림과 동시에 입을 크게 벌리며 다시 한 번 케이크를 입에 집어넣었다. 컵 위에 발라진 크림을 핥으니 금방 없어져 버렸다. 여자는 아쉬워하며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조금만 더 주실 수는 없어요!?”

예은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여러 사람이 조금씩 맛보실 수 있게 하고 있어서요.”

다시 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기에, 한 사람이 한 컵을 받아가면 그걸로 끝이다.

“으으으으으으. 조금만 더 먹고 싶어요.”

안타까운 앓는 소리를 흘리고 나서 그녀는 연인 몫으로 받은 종이컵에 있는 케이크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친구가 무어라 말하려고 하는데 여자가 눈동자를 굴렸다. 남자가 무어라 말하려 입을 벌리려는데 그녀는 묻지도 않고 냉큼 남자의 종이컵을 빼앗아갔다. 맨 위에 올라가 있는 크림을 냉큼 핥자 카메라로 여자를 촬영하고 있던 남자의 동공이 커졌다.

“그건 내 거잖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손을 뻗었다.

“내가 한 입만 더 먹고 줄게.”

남자는 케이크가 담긴 종이컵을 다시 잡았다. 그가 애인에게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이깟 케이크가 별건 아니지만 나한테 먹어도 되냐고 말은 해야 할 거 아냐.”

여자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남자가 든 종이컵을 빼앗으려 했다. 남자는 미간을 찡그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워. 워. 진정해. 내가 한 입 먹고 줄게.”

그는 종이컵에 담겨 있던 케이크에 혀를 갖다 댔다. 그리고 붉은 신호등에 멈춘 자동차처럼 동작을 멈추었다. 남자가 중얼거렸다.

“미쳤다.”

그는 곧 물을 마시듯 케이크를 자신의 입에 쏟아부었다.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남자가 외쳤다. 그는 동영상을 찍던 손을 내려놓고서 컵에 묻어 있는 크림을 깨끗하게 핥았다.

“빵이 무슨 크림같이 살살 녹으면서 부드러운데요.”

여자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 입만 먹고 다시 준다며.”

“넌 말도 안 하고 내 거 먹었잖아.”

“나한테는 달도 따다 줄 수 있다며?!”

“이건 케이크지 달이 아니라고.”

두 사람은 투덕거리며 싸우기 시작했다. 진혁이 피식 웃으며 중재했다.

“모양은 다르지만 맛은 같은 생크림 케이크를 판매할 예정이니 그때 들러 주세요.”

커플은 진혁을 향해 각자 고개를 끄덕였다. 예은이 두 사람을 안내했다.

“다른 분들이 줄을 서고 계시니까요, 조금만 비켜주세요.”

“아. 갈 거예요.”

커플은 자리를 떴다. 멀리 걸어가는 두 사람이 여전히 다투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치사해서 진짜, 내가 알아서 사 먹는다.”

“누가 언제 사 달래?! 나도 돈 있어!”

두 사람이 멀어졌다. 그 모습을 보던 백진영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 커플 깨지면 저건 다 임진혁, 네 탓이다.”

“두 사람이 서로 양보하지 않는 게 왜 내 탓이야? 저 둘 탓이지.”

진혁이 고개를 젓는데 백진영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처음에 김가영 씨가 날 싫어한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지 알아?”

“다리 절어서? 지금은 별로 안 절잖아.”

임진혁이 악의 없이 말했다. 백진영이 어처구니없어하며 웃었다.

“…… 네가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내가 다리를 저는 게 너한테는 진짜 별 것 아닌 것 같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 다 나보다 체력도 약하고 느려. 형은 그중에서도 아주 쪼끔 더 약할 뿐이고.”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진혁을 보면서 백진영이 킥킥 웃었다.

“그래. 툴툴대는 척하면서도 순한 녀석 같으니라고.”

이런 식으로 나름의 배려를 받을 때마다 진영은 임진혁이 얼마나 어른스러운지 새삼스럽게 깨닫곤 한다. 임진혁이 미간을 찡그렸다.

“순하다고…….”

‘도대체 어디가?’

백진영이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겼다. 그가 그리운 옛 시절을 떠올리며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동안 네가 케이크 위치 같은 걸 직원들 먹으라고 싸 온 적이 있잖아.”

“아. 연습 때문에 만들었는데 버리면 아까우니까 그랬지.”

“그때 어쩐지 나랑 가영 씨가 계속 같이 밥을 먹는 조가 되었잖아.”

임진혁이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어쩐지는 무슨. 두 사람 이어준답시고 예은이나 창덕 씨가 신경 써서 자리를 맞춰 줬잖아. 심지어 김은동 씨도 일부러 비켜 주고 그랬는데.’

은근히 눈치가 없어 아직도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케이크가 한 조각 남아 있고 나랑 김가영 씨 둘 중 한 명이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당연히 반 먹으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가영 씨가 엄청나게 무섭게 노려보는 거야.”

“그랬어?”

“그래서 날 싫어하는 줄만 알았지.”

임진혁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김가영 씨는 원래 케이크 좋아하잖아.”

“그래. 지금도 엄청 좋아하지.”

“그런데 뭐가 문제야?”

“문제는 없지. 지금 와서야 얘기하는 건데 그때 사실은 나도 네 케이크를 좋아하니까 양보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너무 무섭게 노려봐서 그냥 먹으라고 하니까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하더라고.”

백진영이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내가 뺏어 먹어.”

“그래. 그런 건 그냥 양보해. 내가 나중에 또 만들어 줄게. 아예 형 줄 걸 하나씩 만들어놓고 빼 두면 되니까.“

”어떻게 그러냐. 돈 주고 사 먹을게.“

”편한 대로 해.“

진영이 머쓱하게 말했다.

“나중에 가영 씨한테 물어보니까 내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고, 네 케이크가 너무 맛있어서 그랬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게 내 탓이라고?”

“그래. 진짜 어느 정도 맛있는 정도면 그냥 사장님한테 양보하겠는데, 너무 맛있으니까 자기가 먹어야겠다고.”

‘호오. 드디어?’

어제부터 의심하고 있던 진혁은 드디어 확신을 갖고 말했다.

“그래서 둘이 언제부터 사귀기로 했어?”

진혁이 직구를 던지자 백진영이 놀라서 물었다.

“어, 어, 어, 어떻게 알았어?!”

“어제 우리 가영이라며.”

“우리 직원이잖아.”

진혁이 키득키득 웃었다. 백진영이 목덜미까지 시뻘게져서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나는 광경은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감 씨 어르신보다는 선방했네. 늙어서 하는 연애도 좋지만 젊을 때 연애하는 것도 좋지.’

“그런 어조가 아니었습니다, 사내이사님.”

장난스럽게 말하는 진혁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백진영이 양손을 모았다.

“일단은 비밀로 해 줘.”

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창덕이나 예은이가 알면 기뻐할 텐데? 축하받고 싶지는 않고?”

“그 두 사람은 상관없지. 우리 삼촌한테 비밀로 해 줘.”

“왜? 당연히 삼촌이 먼저 알아야지.”

훈수 놓기 좋아하는 친척에게 갓 시작한 연애를 알리고 싶지 않았던 백진영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어?”

“삼촌이 알아야 그쪽 어른들하고 만나서 혼사 문제를 매듭 짓…….”

입 밖으로 말이 나오자마자, 진혁 자신도 자기가 터무니없이 고루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맞다. 현대에서는 자유연애를 인정하고 있어. 보통 연애를 하다가 얼마쯤 되다가 혼례를 올리던가?’

최근에 본 감 씨와 금 씨 커플이 열렬한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혼인식을 해치워버린 바람에 더 헷갈렸다. 현대로 귀환한 후 학교 친구나 군대 동기들은 자신이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탓에 아예 만나지를 않았다. 일이 바빠진 덕분에 모임이나 동창회 따위는 전부 거절한 탓도 있다.

사업상 만나는 이들은 이미 한창때를 지나 결혼을 한 사람들이며, 주변에 있는 또래라고 해봤자 일봉이나 진희, 김은동 정도다. 하지만 셋 다 연애를 하지 않고 있으며 할 것 같지도 않고 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백진영이 질색하며 말했다.

“야, 야! 네가 삼촌보다 더하다, 더해. 우리 정식으로 사귀기로 한 지 이제 이틀 됐어, 이틀 됐어. 결혼은 무슨!”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에 진혁이 웃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런 얘기 나오면 가영 씨가 너무 부담스러워할 거야. 그렇지 않아도 삼촌이 나한테 빨리 결혼해서 가정을 차리라고 해서 불편하단 말이야. 난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임진혁이 곰곰이 생각했다.

“요즘 보통 서른에 결혼하나?”

“지금 이 가게도 자리 잡고, 좀 안정되면 할 수 있겠지. 그게 대충 2, 3년 걸리지 않을까?”

◈          ◈          ◈

임진혁과 백진영이 잡담을 나누고 있는 동안 말단 직원인 예은은 바빴다.

“이쪽으로 줄 서시면 됩니다!”

돼지 케이크를 먹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기만 했다. 심지어 이미 먹은 사람들도 아쉬워하면서 다시 뒤쪽에 줄을 서려고 하여 예은이 막았다.

“이미 드신 분은 많은 분이 드실 수 있게 양보해 주세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게 어떻게 생크림 케이크에요?”

“돼지머리같이 이상하게 생겨서 맛에는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진짜…… 하.”

이미 한 조각을 맛본 사람들은 그것만으로 참을 수 없다며 판매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나만 더 팔아주세요.”

“지금은 서비스로 드리고 있어서 판매는 오후부터 합니다! 그때를 기다려주세요!”

“저 오늘부터 취업해서 지방으로 내려가는데 매주 택배로 하나씩 배달받고 싶은데요. 온라인 판매는 안 하세요?”

“그건 사장님께 확인해 보겠습니다!”

빠릿빠릿하게 안내하고 대답하며 예은은 틈틈이 신입 직원 둘을 교육했다.

“민제 씨는 줄이 길어지면 다른 가게에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번호표를 나눠주세요. 수하 씨는 뒤로 돌아서 가고요.”

‘도대체 진혁 쉐프님이랑 백진영 바리스타님은 무슨 얘기를 둘이서 열심히 하고 있는 거야? 새로운 메뉴 개발이라도 하고 있나? 엄청 진지한 얼굴인데.’

짧은 의문을 품어도 곧 파도처럼 밀려드는 시식 손님 때문에 더 이상 의문을 가질 새가 없었다. 잘라 놓은 돼지 머리가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 예은은 마음속 깊이 안심했다.

‘이 상태로는 여기서도 금방 자리 잡겠다. 걱정할 필요가 없네.’

“예은 선배님! 케이크 다 떨어져 가는데 뒤에 번호표는 아직도 있어요. 줄도 한참 있고. 어떡하죠?”

신입 직원인 민제가 쩔쩔매며 말했다. 예은이 태연하게 말했다.

“임진혁 쉐프님이 해결해주실 거야. 임진혁 쉐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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