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22화 (222/656)

제 2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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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 출근한 김산호 PD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켰다.

“오늘이 종방이다.”

홀가분하게 고개를 휘휘 저은 임종태 PD가 웃으며 말했다.

“시청률 잘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번 주까지는 괜찮았으니까, 오늘도 조금 더 오르면 좋을 텐데 말이지.”

이번에 시청률이 1%만 더 올라도 인센티브가 나올지도 모른다. 개성적이고 실력 있는 토종파 캐릭터, 초반에는 아무도 우승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젊고 잘생긴 한국인 페이스트리 쉐프가 최종적인 승자로 발표될 것이다. 김산호 PD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 박하연 PD가 문을 박차며 뛰어들어왔다.

“선배님! 선배님! 어제 뉴스 보셨어요?!”

“뉴스? 무슨 뉴스?”

어젯밤에는 편집팀에서 올라온 최종 편집에서 수정할 부분을 걸러내고 다시 재가공하느라 바빴다. 분명히 며칠 전에 끝났어야 할 일이지만 마지막까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쇼를 만들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임진혁 쉐프님이 위구르에서 비행기 테러범을 잡았대요.”

“뭐?”

스태프들은 나란히 머리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였다. 박하연이 보여주는 스마트폰 화면에는 분명히 임진혁 쉐프가 보였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얼굴이 긴장한 것 같기도 하고, 불쾌한 것 같기도 했다.

“진혁 쉐프님이 저런 얼굴도 하시네요. 결승전까지 태연한 얼굴이었는데, 지금 좀 화나신 거 같지 않아요……?”

“지금 이게 무슨 장면이야? 공안한테 감사장 받는 거야?”

“네. 오늘 오전에 포상을 받았대요.”

“그쪽이 그 자치구 아니야? 요즘 중국에서 빡세게 잡는다는 곳.”

“앞으로 할 일이 있다며 아드레아노 존부 쉐프 아래에서 하는 인턴십도 거절하시더니…… 촬영 끝나고 할 일이 중국 여행을 가는 거였어? 한국인이 빵집으로 진출하기는 어려울 텐데.”

“사업적인 이유가 아니라 개인적인 이유로 갔을 수도 있잖아요.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보시지 않으셨다던데.”

“그럼 보통 동경이나 북경, 상해 같은 곳에 가지 누가 저렇게 먼 데까지 가.”

“그러게, 사업 건은 아니신 것 같은데 말이에요.”

“PD님! 이거 분명히 오늘 시청률 끌어올립니다. 연관 검색어 좀 보세요. 비행기 테러, 위구르 테러, 그리고 임진혁 쉐프, 디저트 서바이벌 쇼까지 전부 관련돼서 검색어 상위 랭킹 안에 들어있어요!”

임종태가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상위 랭킹을 보여주었다.

“임진혁 쉐프가 아주 복덩이네, 복덩이야!”

김산호가 저절로 입을 벌리며 크게 웃었다. 박하연이 상장을 받고 있는 임진혁의 사진을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다행히 어디 다치시진 않은 거 같아요.”

“다치긴커녕 완전히 멀쩡해 보이는데? 비행기 안에서 도대체 어떻게 테러범을 잡았다는 건지 궁금하네.”

“지금 완전히 영웅 됐어요. 한국의 기상을 끌어올렸다고.”

박하연이 호의적인 기사를 하나 짚어 보여주었다.

“여기 보면, 베이징 특파원인 한국인 기자가 직접 인터뷰까지 했네요. 자기 생명을 구해주었대요.”

김산호가 눈을 빛냈다.

“오늘 시청률은 대박이다. 분명히 로켓처럼 치솟아 오를 거야. 역시 내가 사람은 잘 본다니까. 임진혁 쉐프는 처음부터 싹이 보였어.”

‘김산호 PD님…… 경력도 별로고 얼굴만 반반하다면서 얘는 빼고 다른 사람 넣자고 하셨던 건 PD님이잖아요.’

‘처음에 심사위원이 너무 쉬운 테스트를 넣어서 올라온 실력 없는 애가 하나 있다고, 빼고 싶은데 못 뺐다고 하시더니. 진짜 기억이 안 나시는 건가?’

임종태와 박하연이 짧게 눈빛을 교환했다. 김산호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보는 눈은 있다니까!”

◈          ◈          ◈

오후 늦은 시간, 진혁은 감사장 수여식을 마치고 신강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시의 식당에 있었다. 그는 힐긋 스마트폰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두세 시간 후면 한국에서 디저트 서바이벌 쇼 방송을 하겠군.’

점원이 음식을 가져왔다.

「하미과입니다.」

멜론과 비슷하지만, 씨앗이 노란색인 과일이 먼저 나왔다. 그다음에 나온 메뉴는 색색의 말린 포도였다. 공안 요원 한 명과 통역사 역할을 겸하는 특파원이 함께한 식사자리였다. 셋이 둥그런 탁자에 앉아 있는데 사진기사가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갔다.

「식사는 어떻습니까?」

“음식은 먹을만하신지 물어보시는데요?”

진혁은 몇 마디 사투리가 짙은 중국어를 하기는 했다. 시대에 뒤떨어져 있어 몇 가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 외에 이해하는 것은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오해가 생기거나 문화적 차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특파원이 통역 역할을 자처했고 진혁이 받아들였다.

그는 짧게 한국어로 대답했다.

“예.”

특파원은 중국인 공안 요원이 이야기하는 것을 통역해 주었다.

“이곳이 포도가 많이 난대요. 빨간 포도부터 보라색 포도까지 종류가 다양한데 맛이 다 다릅니다. 날씨가 건조하니 말려서 보관하는 경우가 많은데 포도 종별로 건포도 맛도 다르니까 한번 맛보시죠.”

진혁은 포도를 하나 집었다. 한국에서 먹던 건포도에 비해 조그마한 포도는 안에 씨가 없었다. 껍질에 찢어진 부분이 없는 것을 보면 애초부터 씨가 없는 품종으로 보인다.

“새콤하면서 톡 쏘는 맛이 있는 게 나쁘지 않네요. 이건 호밀 식빵에 넣어서 구워도 괜찮겠어요.”

“역시 빵을 만드는 분이셔서 그런지 생각하시는 것도 남다르시네요.”

진혁이 피식 웃었다. 건포도 접시 후에는 바로 낯익은 동글동글한 튀김 빵이 나왔다. 그가 빵의 역사에 대해 물었다.

“천 년 정도 된 빵일까요?”

“그건 아닐걸요?”

진혁이 궁금해하는 것을 특파원이 물어보자 공안 요원 역시 고개를 저었다. 그는 소리를 쳐서 요리사를 불렀다. 조리복을 입고 나온 요리사 역시 공안 요원에게 굽신거렸다. 그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해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 빵은 아마 기껏해야 이삼백 년쯤 됐을걸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대략 청나라 시대다. 진혁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있었던 시대, 황제가 누구였는지 되새겨 보았다. 그는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었기에 황제의 성씨 따위는 몰랐다.

‘내가 있던 때가 사실 청나라 시대였나?’

그럴 리가 없다. 진혁은 중국 역사에 대해 무지했지만, 청나라 사람들이 변발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앞머리를 밀어버리고 뒤쪽 머리털만 남겨 땋는 특수한 머리 모양이다. 진혁이 있던 시대에는 투구를 쓰고 말을 달리는 몽골족들만이 그런 머리 모양을 했다. 한족(漢族)들은 상투를 틀어 머리를 얹었고 머리카락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라며 소중히 여겨 깎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건 그 녀석들이 만든 빵이 아닌가? 그저 우연히 닮았나.’

생각해보면 동그랗게 눌러 구운 빵은 아주 흔하다. 둥그렇게 빚어서 미미라는 글자를 쓴다는 점이 닮았지만, 설탕이나 찹쌀을 섞어 넣었다는 점부터 다르다.

특파원이 공안 요원의 제안을 전달했다.

“이번에 원하시던 투어에 참석하지 못하셨으니, 내일 가실 수 있게 준비해 주신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내일 출국해서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진혁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이미 어제 천지에 다녀왔다. 낮 동안에는 무엇을 의심하는지 공안 요원 한 명이 미행으로 따라붙었기에 일부러 밤에 갔다.

본디 투어 프로그램 따위에 참석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할 생각은 없었다. 산맥께까지 같이 가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가 합류할 계획이었는데, 거기에 미행자가 붙어 있으면 귀찮아진다.

달도 뜨지 않은 깊은 밤, 그는 홀로 황야를 달렸다. 우루무치에서 천산까지 대략 40km의 거리다. 먼지구름이 피어나오지 않게 주의하며 산까지 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본디 전투에 사용되는 천마강림보에 내공을 발산하며 달리자 마치 축지법을 쓰는 것처럼 빨라졌다. 순식간에 험한 산길을 달려 관광객들을 위한 셔틀버스 정거장까지 도착한 진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해발고도 1980m에 있는 천산 천지까지 계곡 길을 따라 올라가면 관광객을 위한 케이블카가 준비되어 있다.

진혁은 길과 서왕모를 모시는 사당과 케이블카 등 모든 것을 무시하고 직선으로 쭉 달려 산을 올랐다. 드문드문 솟은 삼나무들을 해칠 필요도 없다. 공사를 위해 파헤쳐놓은 산은 띄엄띄엄 삼나무가 자라고 있을 뿐 민둥산에 가까웠다.

‘산에 나무가 없어.’

그가 기억하는 십만대산에는 활엽수를 비롯한 온갖 나무가 무성하였다. 여름에는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잎을 떨구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침엽수가 대부분이었다. 삼나무와 모양이 다른 소나무, 비자나무와 갈나무, 전나무가 보인다.

나무도 다르고 산이 다르며 길은 아예 없다. 진혁은 위성 지도를 보고 미리 살펴보았던 지역들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호수 모양 자체도 다르고.’

천지는 산의 봉우리가 아니라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그는 식수를 제공하는 이 호수 있는 근처의 절벽에 자신이 안배해놓은 기연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과도한 충성심이 넘치는 수하들이 그 근처에서 뿌리를 내려 살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쪽에 한때 만여 명이 넘는 수하들이 살던 흔적은 전혀 없었다. 부하들이었던 자들의 흔적은커녕, 그가 무공연습을 하며 부숴놓은 바위 조각 하나 남아 있지 않다.

그저 소수민족인 카자흐족의 터전으로, 그들이 장사하는 관광 상품 판매용 매점만이 을씨년스럽게 셔터를 닫은 채 바람에 간판 대용의 깃발을 펄럭이고 있을 뿐이다.

해가 밝아오기 전, 산 끝에 선 그는 흙 한 줌을 움켜쥐었다가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냈다.

“이 산이 아닌가 봐.”

진혁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산이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 한다.

만일 이 산이 맞다면, 천여 년이라는 시간 속에 모든 것이 풍화되어 사라져 없어져 버렸을 뿐이라면-그는 그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는 포장해 온 특산물 빵을 움켜쥐었다.

뭉그러진 빵을 한 점 한 점 떼어내어 원수의 살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씹었다.

“이 산이 아닌 거야.”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던 진혁에게 특파원이 말을 걸었다.

“그럼 특별히 오늘 저녁이라도 가실 수 있게 아예 개인 차량을 보내주신다고 합니다.”

천지 호수 주변은 이미 확인했다. 오늘 밤에는 근처의 다른 산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을 달고서 움직일 생각이 조금도 없는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내일은 벌써 귀국하는 날이다. 진혁은 전자시계의 날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오늘 밤밖에 없군.’

◈          ◈          ◈

세 시간 후, 한국에서는 디저트 서바이벌 쇼가 방송되었다.

아들이 여행에서 돌아오면 함께 볼 생각으로 일부러 방송을 보지 않고 있던 임운정은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랐다.

“일봉아. 다시 한 번 말해 봐. 진혁이가 우승했다고?”

주방에 서 있던 임운정이 손에 들고 있던 반죽 덩어리를 그대로 떨어뜨렸다. 반죽은 조리대 위에 철퍽 소리를 내며 떨어져 뭉개졌다. 그는 신주같이 여기던 반죽은 돌아보지도 않고서 유일봉에게 물었다.

“어디, 그 얘기가 어디 있는데?”

“여기 있는데요? 그리고 테러범도 잡았대요. 중국에서 무슨 상? 감사패 같은 것도 받았다는데요.”

일봉이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며 활기차게 말했다.

“역시 진혁 쉐프님은 대단해요! 우승할 줄 알았다니까! 아드레아노 존부 쉐프가 인정한 페이스트리 쉐프잖아요.”

임운정은 바로 장갑을 벗고 손을 씻은 후 장은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영문을 모르고 말했다.

“무슨 소리에요, 여보? 중국에서 귀국하면 넷이 같이 보자며. 우리 애가 결승전에서 떨어져서 중국 여행을 간 게 아니었어?”

“탈락한 게 아니라 우승을 해서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나 보오.”

“그럴 리가 있어요?! 그리고 지금 우승이 중요해요!! 애가 타고 있던 비행기가 테러를 당했다는데, 우승 이야기가 먼저 나와요?!”

진희는 중국에 있는 진혁에게 짧게 이메일을 남겼다.

〔너 저번 주부터 내내 심각한 척하더니 우승했다며? 부모님이 공항으로 데리러 간대. 내일 저녁 4시 비행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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