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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221화 (221/656)

제 221화

처음에 먹자마자 맛없다고 확실하게 반응해줬어야 했는데 부하들이 애쓴 것이 기특해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또 나왔을 때는 구박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러다 보니 그 맛없는 걸 꾸역꾸역 계속 먹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그는 항상 한 개만 먹고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다들 기름이 잔뜩 든 느끼한 빵이 맛있다며 이렇게 맛있는 것을 나누어 주는 은혜에 감사한다고 몇 번씩 절을 했다.

진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빵은 뭡니까?”

“우루무치 특산 빵이에요. 이렇게 생겼어도 꽤 맛있어요.”

찹쌀과 설탕을 섞어 반죽해 쫄깃하고 달콤한 빵은 예전의 맹맹한 맛과는 다르다. 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우루무치 특산이라면 언제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아십니까?”

“글쎄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특파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승무원에게 물었다.

「이 빵이 원래 어디 거였죠?」

「정확히 잘 모르겠어요. 장가 숙수네가 대대로 만들어왔던가? 이가였나? 저쪽 쿤룬산맥 아래쪽 어딘가긴 한데요.」

「맞아. 옛날에는 그쪽에도 사람이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지만요.」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다라…….’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싶었던 것을 알았다. 이곳 어딘가에 그들이 있었다.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재에 있다. 그는 새로운 단서를 좇아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우리가 있던 곳은 절대 곤륜산맥이 아니다. 십만대산은 천산 산맥 일부에 있으니.’

곤륜산맥(昆?山?)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부터 옛 감숙성(甘肅省)까지 이어지는 대략 육천오백 리가 넘게 이어지는 장대한 산맥이다. 사람이라면 모를까 산이 옮겨갔을 리는 없다.

‘그 많던 교도들이 전부 곤륜으로 갔다면 그건 이사가 아니야.’

본디 문파는 터전을 옮기지 않는다. 한 그루의 나무처럼 뿌리를 내린 그 자리에서 가지를 뻗어가는 것이 순리다.

지금 생각해봤자 소용없는 일들이다. 구백여 년 전일까, 천 년 전일까. 이미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과거다.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던 특파원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임진혁 쉐프님, 혹시 인터뷰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 인터뷰요?”

진혁은 승무원과 이야기하는 내내 이 특파원이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상기했다.

“한국인이 비행기 테러범을 잡아 승객들을 구출했다는 특보 기사가 나갔습니다. 비행기 테러 때문에 세계 전역이 공포에 떨고 있는 이 시점에서, 국내 전역에 방송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진혁은 딱 잘라 거절했다.

“안 됩니다.”

“예?”

당연히 승낙할 것이라 여겼던 특파원이 당황했다. 갑자기 서늘해진 분위기에 승무원이 어리둥절하며 고개를 들었다.

진혁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십니다.”

특파원이 눈을 크게 떴다.

“혹시 국제전화 로밍은 안 하셨습니까? 어떤 비행기 편 타고 오는지 알고 계시면, 지금쯤 소식을 이미 알게 되셨을 텐데요.”

“……!”

“지금 빨리 연락하시는 편이 좋으실 겁니다. 아들이 타고 간 비행기가 테러범에게 납치당할 뻔했다고 알게 되시면 더 걱정하실 텐데요.”

“네?”

진혁이 입을 벌렸다

“제 사진도 나갔습니까?”

“어…….”

특파원이 이미 발송된 기사 내역을 보여 주었다.

“연합뉴스를 통해서 텔레비전 보도가 먼저 나갔고 내일 자 신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인터넷 기사는 이미 전부 나갔고요.”

진혁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부모님이 걱정하실 텐데.’

이렇게 일이 커지기 전에 그냥 적당히 납치당하는 척 맞춰주다가 정부에서 구출하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았으려나? 진혁은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다.

‘아니야, 그러면 더 걱정하셨겠지.’

멍청한 테러범 놈들, 좀 더 아프게 두들겨 줄 것을 그랬다. 공안에게 잡혀간 그들은 이제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그 테러범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정치범 수용소로 간다고 하는데, 사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혁은 적절한 처벌 수위에 만족했다.

“저는 부모님께 전화를 해보겠습니다.”

국제전화번호를 눌러 연결하자, 아버지가 전화를 바로 받았다.

“진혁아, 잘 도착했니?”

걱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태평한 목소리였다.

“네.”

“별일은 없고?”

아직 뉴스를 보지 않은 모양이다. 진혁이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큰일…… 은 아닌데, 오다가 비행기에 문제가 있었어요. 바로 해결되었고 별일 없습니다. 무사히 도착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다 큰 아들 녀석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하려고. 거기까지 가서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히 잘 다녀와라.”

“예, 아버지. 어머니에게 이야기 들은 건 없으시고요?”

전화기 너머에서 다른 학생이 아버지에게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빠르게 말했다.

“따로 연락 온 건 없는데? 무슨 얘기?”

“일하는 중이시면 나중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방금 실습수업이 끝났다. 네 전화도 못 받을 뻔했지. 아 참, 네 어미에게도 전화 한 통화만 해 줘. 내심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진혁은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역시 일하느라 바빠 아직 뉴스를 보지 못하신 모양이었다. 모호한 말로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전화를 바꿔주었다.

“진희가 너하고 통화하고 싶다는데?”

평상시라면 바꿔 달라고 했을 리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진희가 전화를 받자마자 빽 소리쳤다.

“너 괜찮아?!”

“멀쩡해.”

전화기 너머로 타다닥, 진희가 가게 밖으로 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에게 들리지 않게 가게 밖으로 통화를 하러 나온 모양이다.

“야아오오오오오옹.”

전화기 너머로 하이톤으로 울부짖는 냐옹 소리가 들려왔다. 진호가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진희가 나오면 질러대는 특유의 소리다. 멀리서 참새들이 짹짹거리는 소리에 자동차들이 오가는 소리,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까지 눈앞에 보이듯 선명하게 울린다. 빵집 앞에서 언제나 들려오던 소리다. 그리운 광경을 떠올린 진혁이 피식 웃었다.

“정말로 괜찮아. 테러범도 수용소로 넘어가서 잘 해결됐어.”

“뭐?! 네가 폭탄 테러범이 탔다는 비행기에 타고 있었어?!”

진희가 언성을 높였다.

“우루무치가 중국 내에서도 제일 치안이 안 좋은 곳이라며! 고르고 골라서 하필 그런 데를 가!”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이미 왔는데.”

“그러다가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절절히 배어 나오는 걱정에 진혁이 저절로 입꼬리를 올렸다.

“테러범도 잘 잡혔고 아무 문제 없어.”

“잠깐 기다려봐.”

관련 기사를 다시 검색하는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진희가 곧 흥분해서 말했다.

“잡힌 게 아니라 네가 잡은 거잖아. 누가 칼 들고 있는 사람한테 뛰어들래? 그러다가 칼에 찔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거 부모님이 아시면 당장 그리로 찾아가신다.”

“…… 그건 좀 말려 줘. 가능하면 텔레비전하고 뉴스, 내일 신문 다 못 보게 하고.”

“여기가 무슨 산골짝도 아니고,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해?!”

“너도 얼마나 걱정하실지 알잖아.”

“하아. 내가 내일 신문은 빼돌려줄 수 있어. 하지만 못 보실 것 같지는 않다.”

진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그녀가 경고했다.

“큰이모부가 뉴스 좋아하시잖아. 네가 나온 걸 보면 큰이모한테 말씀하실 테고 그러면 바로 엄마에게 전화 올걸.”

“…… 최대한 내가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만이라도 시간 좀 끌어 줘.”

“노력은 해볼게.”

진혁이 태연하게 행동하자 전화기 너머에 있는 진희 역시 안심하고 진정했다.

그가 전화를 마치고 테이블로 돌아오자, 검은색 제복을 입은 공안 요원들이 두 명 서 있었다. 특파원이 진혁을 반겼다.

“진혁 쉐프님! 자치구 공안청 관리국에서 나온 공안 요원분들이십니다.”

승무원도, 특파원도 둘 다 공안 요원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들어 있다. 진혁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진혁 쉐프님, 내일 천지에는 가시는 건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임진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예?”

“신강 위구르 자치구 공안청에서 정식으로 표상을 해주신다고 합니다. 내일 공안청에서 하는 감사장 수여식에 참석하셔야 하기 때문에…….”

특파원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공안 요원 두 사람이 표정 없는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참석을 거절하면 더 번거로워지겠군. 하여간 관리라는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어.’

진혁은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며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 알겠습니다.”

다음날 감사장 수여식에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공안 요원들이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들이 떠난 후에야 특파원과 승무원 두 사람이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공안은 무섭죠. 그 앞에서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찰하고는 달라요. 사법권이 분리되어있지 않아서, 임의 동행이나 체포를 거부했다가 총살당해도 뭐라고 말을 못 한다고요.”

특파원이 조심스레 당부했다.

“그렇다고 듣기는 했습니다.”

“모레 천지 투어를 따로 잡아드릴 테니까 그때 가시면 어떠세요?”

남자가 다시 한 번 걱정스레 물었지만, 진혁은 거절했다.

“오늘 가실 곳이 없으시면 박물관이라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우루무치에 여러 번 왔다며, 어디의 무엇이 볼만한지 관광할만한 장소에 대한 정보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신강 위구르 자치구 박물관에서 삼천팔백여 년이 된 미라를 구경하는 게 어떻겠냐는 둥, 국제대시장에서 말린 대추를 사면 좋다는 둥 하는 이야기였다. 이곳은 일교차가 심해 잘 말린 과일이나 식물의 뿌리가 특산품으로 유명하니 선물로 사면 좋다는 말에 진혁은 약간 솔깃했다.

‘나중에 진희 선물로 말린 대추나 감초, 동충하초 같은 것을 사가면 되겠다.’

건강에 좋은 물건들이라고 하니 진희도 분명히 좋아할 것이다.

“그건 가족에게 선물하면 좋겠네요.”

“맞습니다. 어설픈 싸구려 기념품 같은 것보다 이쪽에서 아예 제대로 된 건과(乾果)를 선물하시는 게 좋죠. 받으시는 분이 나이가 좀 있으신가 봐요?”

“그렇진 않지만 좋아할 겁니다.”

“그럼 제가 모셔다드리지요.”

“괜찮습니다.”

진혁은 괜한 혹이 붙는 것을 정중하게 사양했다. 특파원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인터뷰는 정말로 하시는 편이 좋으실 겁니다. 내일 감사장까지 받으시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받으시는 겁니다. 분명히 세계뉴스로 보도가 들어갈 텐데, 진혁 쉐프님은 이미 방송을 통해 알려지신 분이기 때문에 더 화제가 될 거구요.”

‘디저트 서바이벌 쇼 홍보가 되겠네.’

신강 위구르 자치구와 대한민국의 시차는 한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한 시간 더 빠르다. 그러니 몇 시간 후면 디저트 서바이벌 쇼의 결승전이 방영될 것이다.

그는 잊지 않고 숙소로 가는 길에 시장에서 말린 대추를 조금 샀다.

‘이게 진희 생일 선물.’

대추 말고도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말린 무화과와 온갖 향신료들, 수북하게 쌓인 모피와 희한하게 생긴 민속 악기들, 호신용 단검 등이 있었다. 하지만 단검은 그가 보기에는 너무 둔했고 악기는 진희가 사용할 줄 모른다. 이슬람식 복장을 사다 주면 욕을 할 것이 분명하다.

직접 만들어준 블루베리 크림치즈 케이크는 꽤 먹을만했다. 케이크 만들기를 배운 지 몇 달 되지 않은 학생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완성도가 높은 편이었다. 일봉이가 잘 가르치고 가게에 오행진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맛있었다.

‘향신료 같은 걸 선물하는 편이 좋을까?’

요리사라면 다양한 향신료를 맛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일찌감치 숙소에 체크인한 진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숙소 안에서만 머물렀다.

그리고 그날 밤, 진혁은 숙소의 담을 넘었다.

‘낮에 천지에 가지 못한다면 밤에 가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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