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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220화 (220/656)

제 2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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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의 사무실은 삭막했다. 죄수를 심문하는 취조실처럼 책상과 의자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시멘트벽으로 둘러싸인 방이었다.

임진혁의 대한민국 여권을 확인한 공안 요원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언제까지 어디에 머물지? 여기에는 왜 왔지?」

“호스텔에서 머물 생각입니다. 그리고 산에 오르려고.”

「호스텔에서 머뭅니다. 천지 관광을 위해서 왔다고 합니다.」

「범인들을 전에 본 적이 있는가?」

“처음 봅니다.”

「없다고 합니다.」

형식적으로 몇 가지 물어보고서 바로 방면되었다. 진혁의 옆에 서 있었던 통역사가 굽신거리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변 환경을 눈에 담았다. 중국어가 통하는 곳에서 대우받는 권력자가 아니라 일개 외국인 취급을 받으니 신기했다.

‘한국에서야 당연히 평범한 일반인이고 가족들도 그렇게 취급하지만, 여기서도 그렇다니.’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계속해서 귀빈 대우를 받아오던 것에 익숙해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사무실에서 나온 진혁에게 통역사가 속삭였다.

“중국어를 아주 잘하시는데 사투리가 심해서, 소수민족 출신이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받으신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셔서 금방 나온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눈길을 받지 않을 건 아닙니다. 저쪽도 실적에 목을 매고 있으니까, 한국에 빨리 돌아가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지금 내일모레 귀국하신다고 하셨죠?”

“예.”

“내일이나 오늘 저녁에 귀국하시는 게 좋겠는데.”

통역사가 염려하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천지는 보고 가야죠. 그보다 가방을 두고 나오셨는데 괜찮습니까?”

“일부러 두고 나온 겁니다. 그 정도 성의는 보여 줘야죠.”

통역사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허.”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뇌물인 모양이다.

“조금 전의 비행기에 저도 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라도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요. 사실 공안에서도 고마워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공식적으로 감사하면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되니까요.”

항공사에서 붙여준 통역사가 아니라 자기가 자원해서 따라온 사람이었다. 진혁이 눈을 껌뻑거렸다. 베이징이나 인천, 서울과 달리 가라앉아 있는 공기가 눈에 띄었다.

천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이슬람교도 색목인 여인들이 시선을 바닥에 향하고 서둘러 어딘가로 간다.

한족보다 색목인이 더 많았다. 들리는 말도 중국어보다 위구르어에 일부 몽골어가 섞여 들린다.

공항을 나오자 드문드문 콘크리트 건물이 서 있는 황량한 초원이 펼쳐졌다. 소수의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일 뿐, 도시는 마치 죽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시 분위기가 좋지 않군요.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모르고 오신 겁니까?”

통역사가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위구르족들이 독립을 외치며 시위를 하다가 잡혀가고 해서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중국 전체에서 제일 치안이 좋지 않은 도시라고 할 정도죠. 이 시기에 여행은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손님처럼 눈에 띄시는 분은 더요. 여기를 빨리 떠나시는 것이 좋으실지도 모릅니다.”

공항이 있는 주도 우루무치(??木?)의 상황은 진혁이 짐작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이곳은 지금 일제강점기하고 비슷한 시기인가 보군?’

사람들이 날이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천산 산맥 아래에 펼쳐진 초원은 이전 ‘서역(西域)’이라 불리던 지역이다. 만이(蠻夷), 즉 오랑캐라고 불리던 이들이 이곳에서 나라를 건국해 그 세력이 강성하였다. 이전 이 땅에서 진혁은 칸들과 협약을 맺어 산맥을 지배하며 왕과 같은 권세를 누렸다.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더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진혁이 통역사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존재감을 숨기고, 평범한 숙소를 얻어 거처를 만들어 놓고 돌아다녀야겠군.’

원래는 숙소 따위를 얻을 생각은 없이 잠을 자지 않고 산을 돌아다닐 계획이었다. 하지만 공안이 이후에 의문을 가진다면 번거로워질 것이다. 한순간 섭혼술을 써서 제압할까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혁이 공안 요원의 곁에서 계속 따라다니거나 공안 요원을 산속 수색에 동참시킬 수는 없다. 그는 이곳 상황에 무지했고 정보가 부족했다.

진혁이 통역사를 응시했다.

‘이자에게서 정보를 좀 얻어야겠다.’

한국의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현지 상황을 알기는 어려웠다. 중국 정부가 정보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산천지(天山天池)에 올라가기 전, 산을 깎아 만든 평평한 지역에 대해서 아십니까? 대략 팔구백 년이나 천 년 정도 된 석조와 목조 건물들의 흔적이 있는.”

신장은 넓다. 한국의 열다섯 배가 넘는 넓이의 위구르 자치구에는 사막을 따라 천산 산맥이 길게 쭉 뻗어있고 인구는 이천여만 명이다.

‘역사를 이어가는 무인이 한둘은 있을 줄 알았는데.’

진혁은 비행기 안에서도 기감을 퍼트려 보았다. 하지만 베이징행 비행기 안에서도, 우루무치행 비행기 안에서도 내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일월신교만이 아니라 무맥(武脈)이 완전히 끊긴 것으로 보였다.

하다못해 고대 무술을 일인 전승으로 전수하던 요가수련자들도 이제는 예전의 형태가 아니다. 차크라(Chakra)를 수련한다는 개념 자체는 경전을 통해 전승되고 있으나 그 압도적인 육체적 기예는 스트레칭과 건강체조의 형태로만 남아있다.

“여기에서 통역사나 관광가이드로 일하고 계십니까? 이쪽에 대해 잘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

통역사가 뒤늦게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을 미리 안 드렸군요! 강지열입니다. 만국 일보의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지금 이곳 취재를 위해서 잠깐 왔죠. 다행히 베이징 쪽의 좋은 친구(好朋友)가 소개해준 사람이 있어서 여기에 올 수 있었습니다.”

“꽌시(?系)군요.”

관계의 단계에도 등급이 있다. 좋은 친구는 의형제(干兄弟)나 오랜 친구(老朋友)보다는 못한 관계다. 진혁은 명함을 받았지만, 자신의 명함은 내밀지 않았다.

“그나저나 임진혁 씨,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 출연하신 그 쉐프님 맞으시죠?”

“…… 예?”

“제 부인하고 딸이 팬입니다. 여기 수첩에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 가능하면 저랑 사진도 찍어주시고요.”

“…….”

따로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진혁을 위해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이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어렵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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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다녀오시려면, 현지의 가이드와 함께 내일 바로 다녀오시는 것이 좋으실 겁니다. 진혁 쉐프님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쪽으로 와 보십시오.”

특파원은 진혁을 우루무치 공항 바깥쪽에 있는 카페로 안내했다. 기다리고 있던 항공사 승무원과 그녀를 닮은 부친이 진혁을 발견하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천산천지까지 가는 일일 투어는 매일 있습니다. 내 딸을 구해주셨다니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 오늘 밤은 우리 집에 머무십시오.」

“이 승무원분의 아버지가 가이드로 이 지역에서 일하신다고 하니까 내일 같이 가시면 될 겁니다.”

혼자 달려서 산을 살펴볼 생각이었던 진혁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감사합니다.”

「저희가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손님은 그러고 보니 몸이 좋으신데. 아까 괴한을 한 방에 제압하시는 용맹한 모습을 보니 한국에서 경호원이나 경찰로 일하고 계십니까?」

「이분은 요리사십니다. 한국의 텔레비전에서 아주 유명한 요리사분이죠.」

특파원이 끼어들어 말했다.

「그래서 칼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을까요?」

승무원이 중얼거리자 진혁이 중국어로 대답했다.

「요리사라면 당연히 칼을 두려워해야죠.」

「우리 말을 하시네요!」

「예, 말하는 게 서툴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습니다.」

「아주 잘하시는데요. 그런데 한국식 억양은 아니고 어디 서북부 억양 같아요.」

「서북부 사람한테 배워서요.」

그때 식당 종업원이 접시를 가지고 다가왔다. 항공사 승무원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은인께서 무엇을 좋아하실지 몰라서 종류별로 이것저것 시켰으니 맛만이라도 보세요.」

접시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은 동글동글한 중국식 튀김 빵이었다. 보통 고추 잡채와 함께 나오는, 하얀 꽃빵(花捲)은 튀기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이니 그런 종류는 아니다. 더군다나 같이 곁들인 요리도 없다.

향내나 모양을 보면 팥소나 앙금을 넣어 튀긴 것은 아니다. 이것은 식전용으로 밀가루 반죽만 튀긴 모양이다. 다만 그 모양이 한국에서 흔한 쫄깃한 튀김 빵과는 달랐다. 보통 구형으로 동그랗게 튀겨내는 빵이 아니라 그 가운데를 조금 더 눌러놓은 모양새다. 가운데를 눌러 놓아 부풀린 호떡같이 생겼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도장으로 찍어 눌러놓은 것 같은 한자가 두 글자 찍혀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리운 모양이다. 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진혁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빵을 하나 집에 입에 넣었다.

「맛있네요.」

시대도 변했고 장소도 변했다.

유목민들이 천막을 치던 초원에는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들이 들어섰다. 손님에게 마유주를 권하며 남자의 의리를 외치던 이들은 사라지고 관광객들에게 색색의 기념품을 파는 이들이 남아있다. 공항에는 거대한 쇼핑몰이 들어서 있으며 그 안에는 현대적인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이 튀김 빵은 옛 고향의 음식을 그리워하던 진혁을 위해 혈도객과 광안마가 고안해낸 음식이었다.

본디 자원이 귀한 신강에는 빵을 튀긴다는 문화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진혁은 콜라와 치킨이 그리웠다. 고로케가 먹고 싶었다. 튀김 가루 자체를 발견하지 못해 그냥 튀긴 닭은 껍질이 새까맣게 타버렸고, 탄산을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튀김 빵 정도는 그 시대의 기술로 가능하리라 여겼다.

진혁은 고로케가 무엇인지 설명했지만 만들라고 명하지는 않았다. 그 빵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은 과도한 충성심에 불타는 부하들이었다. 그들은 ‘귀한 기름을 끓여 튀겨내 동글동글하게 빚어낸 빵 안에 고기와 채소 따위를 넣고 튀겨낸 빵’을 만들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빵들은 반죽이 찢어져 기름 속에 소를 토해냈다. 일급 숙수에 공방의 장인까지, 여러 사람을 동원해서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혈도객의 실패를 지켜보던 광안마는 튀기면 뭐든 맛있다며 동그랗고 납작한 밀가루 반죽을 그대로 튀겨냈다.

“맛있다고 써놓으면 맛있을 겁니다, 교주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박박 우기며 ‘미미(美味)’라는 글자를 써넣었다. 붓을 사용해서 쓴 것이 아니다. 그가 써놓은 글자는 기름에 튀겨져 부풀어 오른 빵 가운데에 갈색으로 패여 눈에 확 띄었다.

“이게 전에 말씀하신 그 빵이랑 아주 똑같죠?”

혈도객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빵은 전혀 고로케를 닮지 않았다. 빵가루를 묻혀 튀기지도 않았고 안쪽에 소가 들어있지도 않았다. 빵의 반죽 자체가 달라서 퍽퍽하고 기름에 절어 느끼했다.

“엄청나게 맛있네요! 이렇게 고급스러운 기름 맛이라니.”

“이런 생각을 하시다니 역시 교주님이십니다.”

하지만 그 빵을 만들기 위해 광안마는 자신이 반년간 사용할 기름을 전부 부었다. 광폭대주는 솥에 양기를 잔뜩 불어넣어 기름이 펄펄 끓도록 만들었다. 혈도객은 사재를 털어 요리 재료를 샀다.

그래서 그는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맛없으니까 다시는 만들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매년 축제가 있을 때마다 그 거지같은 빵이 자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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