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17화 (217/656)

제 217화

“그건 당연히…….”

심사위원 두 명이 같은 대답을 했다.

◈          ◈          ◈

브라이언에게는 영겁같이 느껴졌던 상의 시간이 끝나고 세 심사위원이 다시 무대 위로 돌아왔다.

“꽤 오래 의논하네.”

진혁이 시계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10분도 안 지났는데?”

“젊어서 그런가, 여유가 넘치네.”

브라이언은 초조한 듯 검지와 중지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 바로 이희주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방청객 여러분! 저희가 우승자를 발표하기 전에 먼저 두 사람의 쉐프님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네!”

“먼저 임진혁 쉐프에 대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이희주가 소개하자 거대한 스크린에 이력이 떠올랐다. 주영모가 스크린에 떠올라 있는 이력을 한 줄 한 줄 읽어내렸다.

“작은 윈도우 베이커리를 하는 아버지가 계신 임진혁 쉐프입니다. 고교 졸업 후 향인 대학교 제과제빵학과에 진학하고 휴학 후 입대했습니다. 군대에서 제대한 후 아버지의 빵집에서 새로운 빵을 팔기 시작해서 매출을 증대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새로운 사진이 나타났다. 도립 소망 마라톤 플래카드가 눈에 확 들어왔다. 마라톤 대회 사진이었다.

뜬금없는 육상 경기 사진을 보고 주영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라톤 대회하고 제빵사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지요? 임진혁 쉐프가 저기서 금메달을 땄더라도 제빵하고는 상관없지 않습니까.”

이희주가 킥킥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임진혁 쉐프네 빵집이 저 대회 때 직접 만든 신제품인 스틱 카스텔라를 기부했습니다. 그게 너무 맛있어서 문제가 생겼죠. 마라톤 선수들이 보급품 카스텔라를 입에 넣는 순간 경기 중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멈추는 거예요. 결국 약물 조사까지 받고 아무 문제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짧은 동영상이 나왔다. 방청객들이 놀라며 진혁을 주목했다. 브라이언 역시 진혁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카스텔라에 뭘 넣었길래?!”

“평범한 달걀과 밀가루, 설탕이죠. 그래도 반응은 좋았습니다. 아주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스틱 카스텔라는 오행진을 통해 대자연의 기를 흡수한 덕분에 활력 증진에도 효과가 좋았다. 지금도 희망 베이커리에서 꾸준히 팔려나가는 효자 상품이다. 처음에는 스포츠 대회 등에만 소량 지원했는데 곧 놀라운 효능이 소문을 타서 이제는 태릉선수촌에도 납품하고 있다. 브라이언이 진혁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워하는 동안 이희주가 스크린에 새로운 사진을 띄웠다.

“노인정 결혼식에서 크로캉부쉬를 만드는 동영상이 아침 정규방송에 나오기도 했죠.”

이번에는 방송국에서 여성 아나운서가 방송하는 장면이었다. 크로캉부쉬를 만드는 동영상 역시 보여주자 주영모가 과장되게 놀라며 말했다.

“어딜 봐도 평범한 제빵사라고는 할 수 없는 경력이잖습니까. 저 나이에 벌써 세상을 놀라게 하다니. 나는 마흔이 넘어서 유명해졌는데!”

“그 이후에 대학 연합 대회에서 우승했지요.”

모델링 초콜릿을 사용해 만든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우와-하며 손뼉을 쳤다. 스텔라 위스커스가 말했다.

『그 대회에 저도 참석했죠. 거기에 있을 필요가 없는 실력이었어요.』

『성인 대회 쪽에 나가도 충분히 우승자가 될 수 있을 만한 재원이 대학 대회에 나와 있어서 신기하긴 했지. 곧 다른 데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는데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서 만날지는 몰랐어. 여기서 만난 후에 결승전까지 올라올지도 몰랐고.』

아드레아노 존부가 덧붙이자 스텔라가 대답했다.

『이번 대회에서 라운드마다 놀랍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초콜릿 케이크의 맛을 더 깊이 있게 풀어내기 쉽지 않은데도 말이죠.』

『그래. 학생 대회 때에도 나이에 비해서 천재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천재라고 할만한 정도가 아니지. 그럼 임진혁 쉐프의 이력을 다 살폈으니,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푸드 아티스트, 브라이언 신의 이력을 살펴볼까요?』

브라이언의 팬들이 우와-하고 손뼉을 쳤다. 방청객 중에 섞여 있었던 브라이언의 약혼녀, 제시카 린든 역시 박수에 동참했다.

『탑클래스의 성적으로 제과학교를 졸업하고 맨해튼에 있는 호텔 샹그리라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최연소 헤드 쉐프로서 다양한 메뉴를 개발했고…….』

스크린에 떠 있는 브라이언의 이력은 조금 전에 띄워져 있던 진혁보다 훨씬 길었다. 호텔의 페이스트리 키친에서 헤드 쉐프로 일하며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고, 총 열일곱 개의 미국 내 대회에서 온갖 상을 받았다. 워낙 경력이 긴 탓에 그 많은 트로피에 대해 짧게 설명하고 순간적으로 지나가 버렸다.

『…… 제과제빵계의 가장 권위 있는 대회 중 하나인 쿠키 마스터즈부터 마카롱 대회까지, 온갖 대회를 섭렵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온갖 대회 영상을 보던 진혁이 감탄했다.

“브라이언 쉐프, 방송 출연하고 대회 출전을 정말 좋아했군요. 바쁜 호텔 생활에 대외활동을 저렇게 많이 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임진혁이 농담하듯 묻자 브라이언이 피식 웃었다. 긴장이 좀 풀린 것처럼 보였다.

“친부모님이 텔레비전에 나온 나를 보고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이런저런 대회나 방송에 나갔습니다. 나중에는 연예나 예능 프로그램도 가리지 않고 나갔죠. 이번에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 출연한 건 정말로 잘한 일입니다. 물어보니까 우리 부모님은 미국 TV 프로그램을 찾아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그가 해외 입양을 갔다는 것 자체도 알지 못했다고 브라이언이 설명하자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엇갈렸군요. 잘 지내고 계십니까?”

“사실 낯선 분들입니다. 닐과 캐서린에 비교할 수가 없죠. 그분들이 나에게 가르쳐주려고 하는 한국적인 문화도 낯설고, 예절도 잘 모르겠습니다.”

브라이언은 조그만 목소리로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막연히 부모님을 찾으면 기적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문화적인 차이도 있고, 제가 더이상 친부모가 생각했던 어린애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자랐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있고요. 그래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진혁이 짧게 대답했다.

“잘됐네요. 잘 지내시는 것 같고.”

“하하하.”

브라이언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사실 지금 임진혁 쉐프님이 저와 함께 결승전에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인정받으신 겁니다. 그 경력에, 그 어린 나이에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우승하는 건 저일 텐데요.”

“그건 결과가 나와 봐야 알죠. 하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제 웨딩 케이크는 진혁 쉐프님이 만드시는 겁니다.”

브라이언이 손을 내밀었다.

“물론이죠. 선금도 받았고.”

진혁은 그 손을 잡아 악수했다.

두 사람이 짤막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심사위원들 역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브라이언 쉐프는 첫 라운드부터 이미 완숙한 모습을 보여서 진혁 쉐프보다 성장할 폭 자체는 좁았는데 말이야.』

주영모가 중얼거렸다.

『가정의 소박한 맛도 얼마든지 호텔에 내놓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맛이었지.』

아드레아노 존부의 말에 주영모가 물었다.

“수십 달러에서 많으면 수백 달러를 지불하는 코스 요리의 디저트에서 누가 가정식 풍의 케이크를 원하겠어? 확실히 그 크림치즈 프로스팅은 아주 완벽한 물건이었지만…… 결승전에서는 조금 수수하지 않았을까.”

『제가 보기에는 브라이언 쉐프는 오히려 그걸 계산해서 일부러 가정식 스타일의 케이크를 내놓았어요. 디저트 팩토리에서 판매하는 케이크는 말씀하신 특급 호텔의 코스요리에 나올법한 디저트부터 가정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디저트까지 다종다양한 종류가 있죠. 그가 후자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요?』

스텔라 위스커스가 브라이언을 옹호하였다.

“치즈 크림 프로스팅은 내가 맛본 치즈 크림 중 최고라고 할 수 있었고, 초콜릿 브라우니는 보들보들하고 촉촉했지. 둘 다 뽑을 수 있으면 둘 다 뽑고 싶은 정도인데, 내가 선택한 사람은 이 사람이야.”

주영모가 점잖게 이야기하며 봉투를 냈다. 이희주는 바로 그 자리에서 봉투를 열고 결과를 외쳤다.

“임진혁 쉐프! 임진혁 쉐프에게 한 표 나왔습니다.”

방청객들 사이에 섞여 있던 진혁의 팬들이 플랜카드를 휘날렸다. 임진혁 쉐프의 우승을 기원하는, 직접 쓰고 그려서 만든 것이 분명한 알록달록하고 작은 플랜카드들이다.

마지막으로 스텔라 위스커스 역시 이희주에게 투표 결과가 담긴 봉투를 주었다.

『정말로 미미한 차이밖에 없어서 제게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어요.』

봉투를 연 이희주가 외쳤다.

“브라이언 쉐프! 스텔라 위스커스 쉐프는 브라이언 쉐프를 선택했습니다!”

브라이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방청객들이 손뼉을 쳤다. 이제 마지막 한 사람, 아드레아노 존부의 결정에 따라서 우승자가 누군지 결정될 것이다. 북소리가 둥둥 울리며 분위기가 고조된다.

아드레아노 존부가 천천히 말했다.

『환상적인 선인장 초콜릿 케이크와 일상적이고 따뜻한 인종차별 바나나 케이크. 둘 다 아주 훌륭한 작품이었지. 하지만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그는 흐린 미소를 띠고서 봉투를 내밀었다. 이희주가 정중하게 그 봉투를 받았다.

“박빙의 승부! 두 사람 모두 한 표씩 받았습니다. 아드레아노 존부 쉐프가 투표한 사람이 우승자가 됩니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북소리가 쿵쿵 울리는 가운데 이희주는 연극적으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크게 외쳤다.

“디저트 서바이벌 쇼, 마지막 순간. 드디어 최종 우승자를 발표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시청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봉투 안의 내용물을 꺼내 읽었다. 그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첫 라운드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분입니다!”

그 이야기가 나온 순간, 1라운드부터 우승 후보였던 브라이언이 패배를 예감했다. 이희주가 외치는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무대 전체에 울렸다. 북소리가 두구두구 점차 고조되었다.

“능력 있는 우승 후보들을 제치고 최연소 우승자가 되겠군요. 임진혁 쉐프! 축하합니다!”

스포트라이트가 임진혁을 비추었다. 팡파레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며 거대한 스크린 위 천장에서 불꽃놀이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작은 조명들이 반짝거렸다. 형광 조명에 둘러싸인 진혁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서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미 심사위원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전부 들어 결과를 미리 알고 있던 진혁은 놀란 모습 없이 담담히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알면 좋아하시겠군.’

색종이 조각들이 뿌려져 진혁을 뒤덮었다. 그는 종잇조각들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

“축하합니다, 임진혁 쉐프!”

브라이언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차라리 결과가 나서 속 시원하다는 듯, 손뼉을 맞부딪히며 큰 소리로 진혁을 축하해 주었다.

“어린 나이에 지금까지 치열하게 연습하고 노력해서 다른 쉐프들의 십여 년을 따라잡으셨습니다. 대단합니다, 임진혁 쉐프!”

『선인장 케이크는 미니 컵케이크 형태로 개량해서 디저트 팩토리에서 판매될 겁니다.』

『원하신다면 아드레아노 존부 쉐프 아래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습니다! 임진혁 쉐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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