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06화 (206/656)

제 206화

유키코는 표정이 변하며 입을 다물었다. 반면에 진혁은 무표정했다. 어제 촬영에 대해서 일부러 묻지 않고 있던 백진영이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두 사람 다 비밀 서약을 해서 결과는 말할 수 없는 걸 알고 있잖아. 가영 씨, 왜 그래?”

어젯밤 내내 너무 궁금해서 속이 타버릴 지경이라 얼굴을 보자마자 무례하게 묻고 말았다. 김가영이 당황해 손으로 자기 입을 가렸다.

“제가 너무 배려 없이 굴었네요. 죄송해요.”

‘항상 침착하던 유키코 씨가 저렇게 표정이 변한 걸 보니 결과가 좋지 않은가 봐.’

어찌 되었든 세 명 중에 두 명은 결승에 진출했을 것이다. 김가영이 고개를 깊이 숙여 사과하는데 바로 문이 또 열렸다.

“안녕하세요!”

같은 버스로 출근하는 김은동과 서창덕, 예은이 바로 따라 들어왔다. 들어서자마자 바로 보이는 <밀실 살인 사건> 테마 쿠키 하우스를 본 직원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이거 임진혁 쉐프님이 만드신 거죠!”

“맞아.”

김은동의 질문에 백진영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진저브레드 맨 쿠키 가슴이 새빨갛네요! 러블리하게 하려고 가운데에 잼 올려놓으신 건가요?”

예은이 놀라며 하는 말에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걸 의도했으면 하트 모양으로 올려놓거나 했겠지.”

“저희 시식할 수 있나요? 엄청 맛있어 보이는데요.”

네 명의 직원 중에서 진혁이 기대했던 반응을 보인 것은 서창덕밖에 없었다.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다던 서창덕이 케이크를 신중하게 살펴보고 말했다.

“창문은 초콜릿 자물쇠로 잠겨 있고 문은 쿠키 빗장으로 걸려 있는데 가슴이 뜯긴 채 죽어있는 걸 보면, 밀실 살인 사건입니까?”

“맞아. 정체불명의 심장 강탈 사건이지.”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키코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킬킬대며 웃었다.

“맙소사, 임진혁 쉐프!”

“진혁 쉐프. 잔혹한 본능이 다시 피를 찾아 헤매고 있나요?”

김가영이 업무용 앞치마를 망토처럼 펄럭이며 연극적으로 말했다.

“블러디 케이크!”

예은이 꺅꺅거리며 손뼉을 쳤다. 백진영이 처음 듣는 단어에 신기해하며 물었다.

“잔혹한 본능이라니? 블러디 케이크는 또 뭐고.”

“저번에 발목 조스 케이크 이후에 진혁 쉐프님한테 붙은 별명이에요.”

“블러디 케이크도요.”

진혁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서 있는데 유키코가 물었다.

“이 진저브레드맨 쿠키는 어디서 모티브를 따오셨어요? 다른 진저브레드맨 쿠키하고 차별화돼서 독특하고 괜찮던데.”

그녀는 직원들 앞에서 이미 쿠키를 다 먹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아 넌지시 칭찬했다. 백진영 역시 맛보다 모양에 대한 칭찬으로 맞장구를 쳤다.

“맞아. 모양도 특이하고 예뻐.”

“여동생이 조언해 줘서 이렇게 해 봤습니다.”

원래 현실적이고 정교한 시체의 모양을 재현할 생각이었으나 진희가 반대했다. 그녀는 시체 모양 과자는 단순할수록 좋다며 진저브레드맨 쿠키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피로 착각할 수 있는 진한 붉은색 시럽을 딸기잼으로 바꿔서 누구나 보면 딸기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자고 우겼다.

김가영이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분이 살인 사건이나 토막 시체, 고어 같은 걸 좋아하시나 봐요.”

예은이 역시 거들었다.

“여태까지 진혁 쉐프님 취향이 이렇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쌍둥이 여동생분 취향이었던 거군요.”

“아니, 그건 아닌데.”

진혁이 사실을 밝혔으나 오해는 더 깊어질 뿐이었다.

“괜찮아요, 사람마다 취향은 다양하니까요.”

“특별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분위기가 다시 온화해졌다. 백진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샘플 케이크, 시식은 하지 않을 거야?”

“한다고 해도 퇴근한 다음에 해야겠지? 지금은 영업 준비를 해야 하잖아.”

“금방 먹을 수 있는데요!”

여직원 두 사람이 아쉬워했다.

“안 됩니다. 퇴근하고 드세요.”

“네에-.”

모두들 쇼 결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유키코는 내심 안도했다.

‘이 화제는 다들 잊어버린 게 틀림없어.’

하지만 그 순간, 출근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온 리처드가 호쾌하게 외쳤다.

『결승은 누가 진출했어?』

유키코는 이번에는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저 결혼해요.』

『왓?! 축하해!』

“축하해요, 유키코 쉐프!”

“디저트 쇼가 아니라 웨딩 쇼네요. 브라이언 쉐프도 결혼한다고 하고, 유키코 쉐프도 결혼하고!”

여직원들이 재잘거리며 유키코에게 어울릴만한 드레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유키코가 성공적으로 화제를 돌린 것을 보고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날 방문한 손님들은 적지 않았다. 방송 내용에 대해 묻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직원들 모두 대답을 피했다. 오픈 키친에 서 있던 유키코 역시 능숙하게 대답을 회피했다.

영업이 끝나고 청소를 마치자마자 앞치마를 벗어던진 김가영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말했다.

“케이크 시식, 지금부터 하는 거죠?”

“일찍 퇴근할 사람은 먼저 돌아가도 좋아.”

진혁이 차분히 말했다. 리처드 베이커가 씩 웃으며 말했다.

『더 쿠키 하우스 오브 머더(The Cookie House of Murder) 지금 먹나?』

“이거 진혁 쉐프님이 자를 거예요?”

“어디서부터 먹어요?”

예은과 김가영이 웃으며 떠들었다. 백진영은 자그마한 커피잔에 새까만 커피를 부었다.

“슈가 쿠키 종류라면 에스프레소가 잘 어울릴 거야. 원하는 사람 있어?”

“저요.”

김은동과 서창덕이 달콤쌉싸름한 향이 풍기는 진한 검은색 잔을 받아들었다. 유키코는 스팀 밀크를 골랐다.

“저는 이 시간에 커피를 마시면 잘 못 자거든요.”

예은은 카페 라떼를 골랐다. 진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백진영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인 슈페너를 챙겨주었다. 리처드 베이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백진영이 김가영에게 물었다.

“가영 씨는 전에 마시던 대로?”

“저는 괜찮아요. 바리스타님도 피곤하시잖아요.”

가영이 웃으며 거절하자 진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나랑 똑같은 아메리카노 마실래요? 오늘 원두가 아주 좋은데. 최고급 블루마운틴을 제대로 로스팅해서 들여왔거든. 진혁이가 만든 달콤한 쿠키를 찍어 먹으면 딱 좋을 거예요.”

“…… 그렇다면 저도 아메리카노 주세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에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여기도 봄인가?’

계절은 겨울, 이제 곧 크리스마스다. 브라이언은 겨울에, 유키코는 봄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진희는 김은동과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서미란은 유일봉을 쫓아다닌다. 감호철은 이미 금천복과 결혼해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있으며 홍 노인은 을순 할매와 데이트를 한단다. 큰 이모부는 큰이모를 응원하러 자비 부담으로 파리에 가신다. 부모님은 새벽마다 손을 잡고 출근하신단다.

‘심지어 고자 수고양이 녀석도 혼자가 아니라고 했어. 암고양이들이 진호를 따라다니며 울어대서 요즘은 외출을 못 하게 한다고 하셨지.’

진혁은 흐뭇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것들이 연애를 하고 자식을 낳고 번성해야 일족이 늘어나고 부유해지지.’

십만 대산의 깊은 산 속 계곡 아래에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를 많이 낳아도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은 손에 꼽는다. 태어나면서 잘못되는 경우도 많고 자라며 온갖 병과 사고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혁은 은동이 눈에 차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은동을 바라보았다. 쿠키 하우스에 대한 기대감에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김은동은 처음 만났던 날처럼 순박하고 멍청해 보였다.

‘저런 소 같은 녀석한테 진희를 줄 순 없지.’

의리 하나만은 깊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벌모세수를 통해 환골탈태까지 했고 상식도 풍부하고 성격도 좋고 미인에다가 내 동생이기까지 하니 완벽해. 진희에게 장가를 오려면 최소한 나보다는 강한 사람이어야지.’

그가 은동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김은동이 흠칫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임진혁 쉐프님?”

진혁이 은동이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은동은 진혁을 은인으로 여겨 깊이 공경했다. 순식간에 꼬맹이밀 빵을 만들어내어 아버지의 밀 농장을 구원한 것뿐만이 아니다. 우연히 치킨 배달을 하다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받은 명함을 통해 H&J에 왔고, 여기서 유키코에게 다양한 발효 빵에 대한 기법을 배웠다. 김은동은 송아지처럼 순진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목마르시면 물 좀 가져다드릴까요?”

“제가 직접 마시겠습니다.”

어색하게 서로 존대를 하는 사이다. 백진영이 킥킥 웃었다.

“너희는 언제까지 그렇게 어색해할 거야? 아버지들끼리는 친하게 지내시던데.”

“임진혁 쉐프님은 헤드 쉐프님이시니까요. 제가 여기서 유키코 쉐프님한테 배울 수 있도록 알선해주시기도 하셨고요.”

김은동이 씩씩하게 대답하자 백진영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 그래. 너희가 그게 편하면, 뭐.”

“쿠키 하우스 제가 직접 잘라서 먹어도 되나요? 임진혁 쉐프님이 잘라 주시나요?”

김가영이 입맛을 다시며 재촉했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얘는 빵을 진짜 좋아해.’

“제가 자르겠습니다.”

진혁이 빵칼을 들어 올렸다. 모든 사람이 진혁을 주목했다.

“저 손 씻었습니다.”

그는 빵칼로 지붕을 지탱하며 왼손으로 하나씩 지붕에 붙어 있는 쿠키를 떼어냈다.

생사경의 경지에 달한 무인이라면 진혁이 왼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강기를 실처럼 사용해 쿠키가 아이싱에서 깔끔하게 떨어져 나오도록 잘라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기왓장처럼 빼곡하게 붙어 있던 초콜릿 칩 쿠키가 한 장 한 장 떨어져 나가자 바닥에 얇고 바삭해 보이는 쿠키 판이 드러났다. 두 개의 쿠키 판이 시옷 자 모양으로 지붕을 받치고 있었던 것이다.

“지붕은 생크림 초콜릿 칩 쿠키입니다.”

“생크림이요?”

“우유 대신 생크림을 넣었거든요.”

예은이 물어보는 사이에 가영은 서둘렀다. 그녀는 제일 먼저 쿠키를 입에 집어넣었다.

‘진혁 쉐프는 빨리 먹은 사람에게 남는 걸 주니까, 맛을 즐기면 안 돼. 빨리 먹어야 해.’

아직 다른 사람의 접시에 나눠 주지 않은, 남아 있는 초콜릿 칩 쿠키들. 진혁은 자신의 접시에 덜어 놓은 음식들은 만들면서 실컷 먹었다며 양보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제일 빨리 먹는 백진영이나 김가영이 한 조각씩 얻어먹고는 했다.

‘아무리 백진영 바리스타님이라도 진혁 쉐프님의 쿠키를 양보할 순 없어.’

하지만 그녀가 얄팍한 계산을 하는 사이에도 미뢰와 혀는 맛을 느끼고 있었다.

“음우으우으으.”

새끼손가락 손톱만큼 두툼한 초콜릿 칩이 듬뿍 들었다. 보통 크기의 초콜릿 칩 쿠키에 칩이 7~8개 정도 들어가 있다고 가정하면 여기에는 그 두 배 이상의 양이 든 셈이다. 차가운 초콜릿이 혀를 공격하며 바삭하게 부서진 쿠키가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초콜릿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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