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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203화 (203/656)

제 203화

“!!”

유키코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브라이언은 안전 고글에 장갑, 보호용 앞치마 등 안전 장구를 풀세트로 장착하고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아까까지 국물을 팔팔 끓이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옆에 놓인 다양한 도구 중 유키코가 아는 도구가 있었다.

‘저건 사이펀 건이야. 분자 요리를 할 셈인가?’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몇 가지 분자 디저트를 떠올려보았다. 본래 분자요리란 재료의 성분과 조리의 과정을 화학적, 물리적으로 분석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녀가 알고 있는 분자 요리적 기법은 지금 이 시험장에서 사용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더 특별한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수비드를 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구체화를 하려면 알긴산염이나 젖산칼슘, 염화칼슘 같은 특수한 재료가 필요해. 탄산화는 라면이랑 아무 상관이 없고. 거품 추출법을 하려고 하나?’

하지만 거품화 역시 라면과는 상관없어 보인다. 유키코가 브라이언을 지켜보는 동안 진혁 역시 그를 보고 있었다.

‘전에도 사이펀 건으로 고체 재료를 크림으로 만들어 짜냈지. 유키코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이야.’

유키코 김은 시트 케이크를 깔고 퐁당으로 모양을 만들어, 라면 모양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 앞으로 어떤 모양이 될지 그는 대강 예상할 수 있었다.

‘전에 회사에서 다양한 모양의 케이크를 연구한 적이 있다고 했어. 라면이나 우동, 된장국 모양의 케이크도 만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지. 그러니 저렇게 고민 없이 쉽게 만들고 있는 거지.’

라면이라는 테마 자체가 유키코에게 유리하다. 진혁은 힐끗 메인 PD와 작가 등 스태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전의 케이크 위치도 그렇고. 지나치게 편파적인 것이 아닌가.’

유키코의 경력과 그녀가 여태까지 개발해왔던 요리들은 비밀이 아니다. 그녀는 나마무라 베이커리에서 일하며 자신의 이름으로 수많은 제품을 내놓았다. 그녀가 어떤 제품들을 개발해 왔는지 추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경험이 독이 된 거야.’

진혁은 혀를 차며 유키코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브라이언을 보았다.

상황을 모르는 브라이언은 자신의 요리를 하는 데 열심이었다. 진혁은 그가 무엇을 하는지 주시했다.

브라이언은 끓여낸 수프를 주사기에 채우고 있었다. 두껍고 통통한 주사기의 몸통 부분에 붉은색 국물이 가득 찼다. 진혁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비닐에 감싼 주사기를 얼음물에 담그자 온도가 점차 내려가면서 붉은 수프가 점차 굳어져 간다. 보통 제빵을 할 때는 보기 힘든 광경에 저절로 천안투마공의 심안(心眼)이 발현했다. 느슨하게 흩어져 있던 수프의 구성 성분들이 부풀어 오르는 가루와 섞여 액체의 본성을 잃고 서로 잡아당기며 엉겨 달라붙는다. 비가역적인 변화를 지켜보며 진혁은 생각했다.

‘액체를 고체로 만들기 위해서 우뭇가사리 가루를 넣은 거야. 젤리화를 시키는 게 목적이었군.’

요리는 과학이다. 요리를 통해 사물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 바뀌는 일은 흔하다. 당장 날달걀을 프라이팬 위에 올리면 단백질이 굳어져 형태를 바꾸어 먹기 쉬워진다. 반죽이 열에 의해 변성되어 빵이 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진혁에게 있어서도 라면 국물을 젤리화시킨다는 아이디어는 신선했다. 무슨 맛인지 맛보고 싶을 정도다.

‘저 기술을 사용하면 어떤 액체라도 전부 젤리 상태로 만들 수 있는 건가?’

아마도 성분과 재료에 따라서 제한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혁은 너무나 재미있어 보여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전에 생선 살을 크림화했을 때와는 다르다. 생선 살에 충분한 열을 가하거나 수십, 수백 차례 두들기면 부드러워질 수 있다. 하지만 국물을 젤리로 만드는 것은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다.

‘나도 저 기술을 익히고 싶다.’

◈          ◈          ◈

유키코는 알람 소리를 듣고 오븐 앞으로 다가갔다. 케이크가 전부 식은 것이다. 식은 케이크를 꺼내 뒤집자 반구형 모양이 되었다. 그녀는 반구형의 윗부분을 칼로 도려내어 잘라, 뒤집었을 때 오뚝이처럼 흔들리지 않고 바닥에 바로 올려놓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다음에는 프로스팅을 할 차례다.

‘잘 되어가고 있어.’

위쪽부터 옆까지 나이프를 사용해 꼼꼼하게 버터크림 프로스팅을 발라주자 흔한 돔형 모양 케이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검고 붉은 줄무늬가 있는 하얀 퐁당을 한 차례 씌워 뒤집자, 라면 그릇으로 보인다. 갈색으로 드러나 있는 바닥 면에도 빠진 부분 하나 없이 버터크림 프로스팅을 발랐다. 그리고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가르고 심지를 꺼내 준비했다.

평범한 나무젓가락을 엇갈리게 해서 빈 플라스틱 심지에 꽂고, 이 심지를 케이크 한가운데에 밀었다. 심지에도 버터크림 프로스팅을 빈틈없이 발라준 후에 이 케이크에서 제일 중요한 시점에 들어섰다.

‘한국식 구불구불한 면발로 할 거야.’

짜디짠 국물을 따로 비벼 먹는 츠케멘이나 우동은 면발의 굵기가 라면보다 굵다. 한국의 라면은 인스턴트 면을 튀긴 것으로 유난히 꼬불꼬불하다. 유키코는 그 꼬불꼬불함을 살리기 위해서 가느다란 파이핑 팁을 선택했다. 짤주머니에 파이핑 팁을 고정시킨 후에 안에 버터크림을 채웠다. 노란색 색소를 미미하게 섞어 노르스름한 색깔이 나는 버터크림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케이크의 평평한 면에 크림을 짜내기 시작했다.

‘라면 면발처럼 구불구불해져야 해.’

같은 팁을 사용하더라도 파이핑 백과 팁의 각도에 따라서, 사용하는 사람이 손힘을 얼마나 주는지에 따라서 다른 모양이 된다.

라면 면발은 일정한 굵기가 생명이므로 그녀는 ‘힘을 일정하게 주는 데에’ 더 포인트를 주며 8자 모양으로 계속해서 끄트머리를 움직였다. 끊어지지 않는 크림은 한 가닥의 면발처럼 끊임없이 구불거리며 차곡차곡 쌓여, 라면 같은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혹여 모양이 흐트러질까 봐 숨도 쉬지 못하고 손을 움직였다. 등골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돋았다. 뭉클하게 솟아난 크림이 면발이 되어 그릇 위를 가득 채웠다. 뜨거운 조명이 태양처럼 내리쬐어 덥다. 하지만 여기서 쉴 수는 없다. 그녀는 바깥쪽을 라면 면발로 빙 두른 후 나무젓가락이 꽂힌 심지 위에도 크림을 짜냈다.

젓가락에 잡힌 것처럼 구불구불한 면발이 수직으로 종횡하며 올려지자, 마치 누군가 한 입 먹기 위해 라면 면발을 가득 집어 올린 것처럼 생동감 있는 모양이 되었다.

그녀가 의도했던 디자인 그대로다. 미리 썰어냈던 퐁당 달걀과 파 조각, 차슈 조각을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라면 면발이 뭉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얹어내자 한 그릇의 라면 케이크가 완성되었다.

“다 했다.”

이제 30초 남았다. 그녀는 비로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부모님이 유키코를 보았다. 그 옆에 있던 재민이 떨리는 손을 들어 흔들었다. 유키코는 등을 꼿꼿하게 펴고 가족들을 응시했다. 몽글몽글한 기쁨이 가슴을 따뜻하게 데웠다. 그때 옆에서 브라이언이 내쉬는 한숨 소리가 들렸다.

“후우.”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주사기를 내려놓았다. 연결된 실리콘 주머니는 전부 비었다.

이희주와 심사위원들이 손뼉을 치며 함께 외쳤다.

“3! 2! 1!”

‘이제 끝났다.’

벨이 울렸다. 스텔라 위스커스가 말했다.

『유키코 쉐프, 먼저 앞으로 나와 주시겠어요?』

유키코가 앞으로 한 걸음 나와 섰다. 그녀는 뿌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라면을 테마로 한 디저트를 만드는 것이 주제였습니다. 어떤 것을 만드셨나요?』

“한 입 라면 케이크입니다.”

유키코가 라면 케이크를 가리켜 보였다. 푸르스름한 도자기 그릇에 가득 담긴 차슈 라면을 누군가 한 입 먹으려고 젓가락으로 한가득 집어 올린 것 같은 형상이다.

멀리서 보면 더 라면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질감과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키코는 덧붙여 설명했다.

“바닐라 스펀지케이크와 우유 버터크림입니다. 그릇과 다른 재료들은 퐁당을 사용했습니다.”

『그냥 라면 그릇에 담긴 모양에 만족하지 않고 허공에 젓가락을 띄웠네요.』

“그편이 더 흥미로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확실히 눈길을 끕니다.』

스텔라 위스커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가 눈짓하자 주영모가 말했다.

“그럼 브라이언 신 쉐프, 앞으로 나와서 어떤 것을 만들었는지 설명해 주겠나?”

브라이언이 웃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디저트가 담긴 접시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버터 크루통을 곁들인 라면 수프 젤리 파스타입니다.』

브라이언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요리를 선보였다. 접시 위에는 붉고 투명한 면이 소담히 담겼다. 곁에는 버터를 발라 작게 잘라 튀긴 식빵 조각들이 쪼르륵 늘어섰다. 특급 호텔의 디저트 코스 마지막을 장식해도 부끄럽지 않을 모양새다. 진혁은 두 그릇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실력은 비슷비슷했는데…… 유키코는 형(形)을 선택했고 브라이언은 맛을 선택했어. 이미 결과는 났군.’

이희주가 말했다.

“시식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예.”

두 사람이 대답했다. 브라이언은 작은 앞접시에 면과 식빵 조각을 나누어 담았고, 유키코는 케이크를 잘라내 접시에 담았다.

조금 전까지 그릇에 담긴 라면처럼 보이던 케이크는 속이 보이자 평범한 케이크 조각처럼 보였다.

심사위원들은 먼저 유키코의 케이크부터 맛보았다.

『우유 버터크림에 바닐라 스펀지케이크라. 평범한 조합이군요.』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흔한 맛인데.”

『퐁당이 너무 많아서 지나치게 달군.』

유키코는 굳은 자세로 서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모양을 만드는 데만 집착해서 맛까지 신경 쓰지를 않았어.’

소용돌이 어묵이나 차슈를 재현할 때 비스킷 같은 다른 재료를 틀로 써서 식감을 바꾸었어도 됐을 일이다.

젓가락을 하늘에 띄운다는 아이디어에 집착해 미처 다른 데까지 신경 쓰지 못했다.

재민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유키코를 바라보았다. 유키코의 부모님도 걱정스레 딸을 응시했다. 가족들의 시선을 눈치챈 유키코가 괜찮다는 듯 표정을 조금 풀었다.

스텔라 위스커스는 포크를 들어 브라이언이 만든 디저트에 가져갔다.

젤리로 된 면은 포크에 잡히지 않고 미끈거리며 빠져나갔다. 그녀는 포크를 뒤집어 젤리 면을 감아올렸다. 다른 포크를 사용해 젤리 면 위에 크루통을 올리고 입을 벌렸다.

『!』

스텔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가 입맛을 다시며 다시 면을 들었다.

옆에 있던 주영모는 접시를 통째로 들어 올렸다. 접시를 기울여 탱탱하고 미끈거리는 젤리 면을 후루룩 입으로 빨아들였다. 그 역시 함께 밀려 떨어지는 크루통 조각까지 씹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국물을 면으로 먹는데 빵조각하고도 잘 어울리네. 식빵을 라면 국물에 찍어 먹기도 하니까, 나쁘지 않아.”

『오늘. 처음 먹어본 요리를 가지고 바로 이렇게 재현해낸 건가? 대단하군』

『살짝 매콤한 맛이 나는 데 나쁘지 않아요.』

브라이언이 안심한 듯 어깨의 힘을 풀고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반면에 유키코는 입술을 깨물며 온몸을 긴장시켰다. 곧 이희주가 결과가 든 봉투를 들어 읽기 시작했다.

“그럼 결승 진출자를 발표하겠습니다!”

결과는 임진혁이 예상한 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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