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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195화 (195/656)

제 195화

“야, 다 맛있는 걸 어떡해! 채소 육수하고 고기 육수 계열 어차피 따로따로 하나씩은 낼 거 아니야? 요즘은 베지테리언도 늘어나고 있으니까.”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원래 할 생각이긴 했는데.”

“그 안토니오라는 쉐프가 소개해준 사업, 맞지?”

“응.”

“전부 다 가져가. 분명히 좋아할 거다.”

백진영이 장담했다.

“그래? 개발해줘야 할 음식은 종류별 1개로 한정 지어서 계약서류에 콕 박아놨는데.”

과연 상대방이 좋게 생각할 것인가? 진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삼촌 따라 빵 공장에 들락날락해 봤잖아. 어차피 인스턴트로 만들 거라며? 공장에서 만드는 거면 나중에 새 빵 종류 늘리는 것보다 처음에 계열별로 다 잡아서 미리 짜놓고 기계 들여놓는 게 편해.”

백진영은 이미 비어 있는 수프 그릇을 하나씩 훑어보며 조금 전에 맛본 음식들을 돌이켜 보았다.

본디 수프란 재료를 넣어 끓여내기만 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음식이다.

하지만 한국의 맑은 국물 요리에서 소금간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소금으로 무를 절이는 동치미만 해도 그렇다.

하지만 임진혁이 이번에 내놓은 수프들은 하나같이 소금이 들어 있지 않으면서도 감칠맛이 났다. 진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예 계획적으로 했구나?”

치킨 수프가 세 종류였다.

그중에서 기름이 둥둥 떠 있던 수프는 일부러 기름을 남겨 둔 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딱 맛있을 만큼만 지방을 남겨 두어 고지방이 되도록 했다.

반면에 약간의 기름기와 적당량의 고깃점을 추가한 수프는 중지방 중단백, 그리고 정성 들여 기름기를 제거하고 고깃점을 많이 넣은 수프는 고단백 저지방이 분명하다. 진혁이 말했다.

“원래는 서너 개만 재료 조금씩 다르게 해서 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진희하고 통화하다가 처방식에 대해 물어보니까 이것저것 알려주더라고. 단백질을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고 지방을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둥, 처방 식이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하더라.”

“간하는 방법만 다르게 하는 거로는 충분하지 않구나.”

“전에 그 봉칠이란 개는 신장이 안 좋아서 단백질과 소금을 피해야 했던 거였어. 안토니오 쉐프가 원하던 처방식은 소금을 피해야 하는 음식이었고. 그래서 내가 준 레시피 중에 절반 정도만 실제로 썼던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처방 식이 개발은 쉽지 않다.

의사와 영양사가 협조하여 만든 레시피는 맛이 없고, 요리사가 혼자 개발하는 식이는 영양분이 균형 잡혀 있지 않다.

안토니오가 오랜 시간 동안 도전했지만 계속해서 실패했던 이유도 그렇다.

자신이 아는 모든 재료를 전부 사용할 수 있다면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주요한 향신료와 주재료들을 전부 사용하지 못한다는 제약 아래서 맛있게 만들기는 절대 쉽지 않다.

“그래도 계약하고 온 지 지금 이틀? 사흘?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

“거기서 사용 가능한 재료 목록을 주니까 편하더라고.”

“그게 편한 건 너밖에 없을 거다…….”

진혁이 받았던 재료 목록을 번역해 주었던 백진영이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사용 불가능한 재료의 목록 첫 번째에 올라와 있는 소금과 마늘을 본 시점부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한이 너무 많아서 쓸 수 있는 재료 목록이 너무 적잖아.”

“원래 무궁무진한 재료 중에서 아무거나 만들어달라는 게 더 어려운 거야.”

지금도 매달 봉칠이 보호자인 프로그래머 김도형은 굽지 않은 단호박 연어 빵과 닭고기 고구마 피자를 챙겨간다.

지금은 임진혁이 준 레시피대로 일봉이가 만들어서 넘기는데, 식욕이 늘면서 체중도 늘었고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개먹이 받아가는 집 하나 있잖아. 처음에 거기서 아무거나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는 주문을 받을 생각도 안 했거든. 그런데 단호박이랑 연어, 닭고기랑 고구마를 잘 먹는다고 하면서 재료를 정해 주니까 생각하는 게 훨씬 쉽지.”

“…… 그러냐. 나한테는 커피콩을 사용하지 말고 카페인 음료를 개발해 내라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진영이 바리스타답게 투덜거리자 진혁이 킥킥 웃었다.

“홍차나 녹차 베이스로 하면 되잖아. 잘 하면서 뭘. 그나저나 그저께 왔던 쉐프는 어땠어?”

진혁과 유키코가 자리를 비운 동안, 리처드 베이커 쉐프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탁이 있으면 들어준다’라고 말했던 루이스 강이 특별한 시그니쳐 디쉬를 선보였다.

기존에 진혁이 만들던 빵은 리처드 베이커가 준비했고, 루이스 강은 한정 메뉴로 자신이 할 줄 하는 빵들을 내놓았다.

“하루 한정이라고 하니까 반응은 좋았어. 이제 디저트 서바이벌 쇼의 쉐프들은 다 나온 셈인데, 브라이언 신 쉐프는 언제 나오냐고 묻는 사람도 있더라.”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네. 본인이 하고 싶다면 나야 좋지. 저번에 뒤풀이 자리 때 물어볼 걸 그랬네. 그런데 형, 루이스 강 쉐프가 일주일 정도 가게에 있으면 어떨 것 같아?”

백진영이 눈을 크게 떴다.

“야. 넌 또 어딜 가려고? 부모님이 일손 필요하시대?”

진혁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냥 어디 좀, 가볼까 해서.”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본가에 내려가려는 건 아닌 모양이다. 백진영이 눈을 크게 떴다.

“어디를 가길래 일주일이나 가? 네 촬영 일정은?”

“촬영은 앞으로 세 번밖에 안 남았잖아? 그런데 심사위원하고 스튜디오 일정 때문에 다음 주에는 촬영을 거르고, 다다음 주 화, 수에 이어서 한다고 하더라. 다행히 루이스 강 쉐프가 브라이언 쉐프 결혼식에 참석한다고 그때에는 다시 서울에 들어온대. 이번에 괜찮았으면 그때까지는 리처드 베이커 쉐프랑 루이스 강 쉐프에게 다시 부탁해야지.“

“널 대체할 쉐프가 흔하진 않으니까. 브라이언 신 쉐프 말이지? 결혼식을 번개에 콩 볶아먹듯이 하네. 그렇게 순식간에 결혼식장을 잡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평일 오후라서 괜찮았대.”

“하긴, 한국에서 올 하객이 많이 있는 건 아니니까. 대체 쉐프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근무일 바뀔 거면 나한테도 미리미리 알려 줘. 혼자 정하지 말고.“

백진영이 진중하게 말했다.

“정 근무할 사람이 없으면 아예 휴일 공지를 내걸고 쉬는 방법도 있어. 같이 하는 가게니까 네가 모든 걸 다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실질적으로 가게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은 진혁이지만, 관리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은 백진영이다.

그가 이것저것 배려해준 덕분에 임진혁은 때때로 자신이 고용되어 있는 입장이라는 것을 잊곤 했다.

수십 년 이상 최고 결정권자로서 이것저것 해온 버릇이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안해. 일정은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중국에 가면 어떨까 싶어서 고민하고 있었어.”

그는 무심코 본심을 말해버렸다. 사실은 신강에 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십만대산의 낯익은 골짜기, 해발고도가 높고 산소가 희미한 봉우리 아래의 절벽.

그가 오랫동안 거주했던 동굴과 후계자를 위해 안배해 놓았던 비처. 그곳이 아직 남아있는지 궁금하다.

일월신교를 따르던 신도의 자손이 단 하나라도 존재하는지 알고 싶다. 정말로 궁금한 것은 자신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세계에 다녀왔는지다.

‘천마환 수련을 하다가 박살 내며 X자를 그려 놓은 절벽만 확인해도 알 수 있을 거야.’

그곳에 가보고 싶기도 하고, 가고 싶지 않기도 하다. 망설이는 그 앞에 진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중국을 지금? 갑자기? 너 절대 못 간다.”

백진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임진혁이 물었다.

“절대 못 간다니?”

‘날 못 보내주겠다는 이야긴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섭섭하다.

아무리 고용주라고는 해도 동생같이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짜를 놓나 싶던 진혁에게 백진영이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너 중국 여행 안 가 봤지? 중국은 무조건 비자를 받아야 입국할 수 있는데, 비자를 받는데 최소한 5일은 걸려. 사람들 몰리면 더 걸릴 수도 있거든.”

“…… 비자?”

신강에 잠깐 들러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임진혁은 예상외의 정보에 미간을 찡그렸다.

“야, 야. 전에 친구가 베이징 여행 가다가 비자 못 받아서 여행 못 갈 뻔했어. 두 놈은 제대로 나왔는데 한 놈만 뭐가 잘못돼서 딜레이 되고 어쩌고 하느라고. 그런데 너는 무슨 일로 중국을 가려고? 그것도 갑자기, 혼자서?”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루트로 입국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진혁이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냥 가면 좋지 않을까 해서 생각해 본 거지, 꼭 가야 한다는 건 아니니까.”

“중국 어디를 갈 건데? 난 베이징 가봤는데 괜찮더라.”

“…… 북서쪽?”

“어디의 북서쪽?”

백진영이 스마트폰으로 구글 맵을 켰다.

넓디넓은 중국의 북서쪽 끝은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인접해 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넓고도 넓었다. 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이렇게 멀었어?‘

그가 아는 몇몇 지명들이 지도에 보였다.

신강 아래에 있는 청해성, 그리고 감숙성과 사천성이 보인다. 그 사이에는 공동파(??派)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천천히 지도를 하나씩 짚어가며 대한민국이 위치한 반도와 상대적 거리를 확인했다.

‘…… 정확히 어딘지를 모르겠네.’

사천성에 있는 사천당문(四川唐門)에는 꽤 여러모로 신세를 졌다. 하지만 그가 주로 활동한 곳은 기껏해야 사천, 거기에 호북성이다. 남궁세가(南宮世家)가 있는 안휘성에도 몇 번 가보기는 했지만

‘호북성, 섬서성, 광동성……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까운 데는 그나마 산동성인가?’

헤엄쳐서 산둥성까지 갔다가 다시 뛰어서 신강까지 가려면 얼마나 가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산둥성에서 우루무치까지 자동차로 간다고 해도 3,248km의 거리다.

자동차로 운전해서 간다면 자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38시간을 운전해야 한다. 그것도 길을 한 번도 잃지 않고 제대로 간다고 했을 때의 이야기다.

십만대산이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도 알 수 없는 지금, 드넓은 위구르 자치구에서 길을 헤맬 수는 없다.

차라리 위구르 자치구까지는 비행기를 이용해서 간 다음,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

점점 더 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고 있다. 백진영이 시계를 들여다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야. 이제 자야지! 벌써 한 시 넘었다. 너 내일도 새벽에 일어나서 나가잖아.”

“알았어. 형도 잘 자.”

하품하는 진영에게 인사를 하고 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빈 그릇들을 챙겨 들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가 누워서 뒤통수에서 손가락을 깍지끼고 느긋하게 누워 있는 동안 그릇들은 제멋대로 달그락거리며 허공에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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