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3화
“그렇게도 볼 수 있고요.”
조금만 더 가면 H & J 베이커리 앤 카페에 도착한다. 유키코가 멈춰 선 뒷골목에는 빼곡히 가게들이 들어서 있었다. 낡은 진분홍색 간판에 쓰여 있는 글자가 시선에 닿았다. 조금 전에 유키코가 말했던 낯익은 단어다. 진혁이 소리 내 읽었다.
“아쉬탕가 요가 전문 케이 요가원…… 말씀하셨던 곳이 여기입니까?”
“네! 거기 맞아요.”
진혁이 그 앞에서 잠시 서 있자 유키코가 웃으며 말했다.
“야간 수업하고, 새벽 수업도 있어요. 수업을 받는 건 어렵겠지만 잠깐 들러볼래요?”
진혁이 웃었다.
“…… 그러죠.”
◈ ◈ ◈
진혁이 요가원에 처음 들어가자마자 느낀 것은 땀 냄새였다. 수십 명의 사람이 흘린 땀이 곳곳에 남아있다. 각투술을 수련하는 무관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피 냄새는 나지 않는군.’
이곳에서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이지만, 피를 흘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진혁이 멀뚱멀뚱하니 서 있자 유키코가 데스크에 다가갔다. 데스크에 있던 여자는 유키코를 아는 모양인지 반갑게 인사했다.
“유키코 회원님! 오랜만이에요.”
“오늘 참관 될까요? 아시는 분이 요가에 관심이 있으시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어요.”
“참관하신다고요? 10분 이내에 시작할 텐데. 체험하시는 게 나으실 텐데요? 오늘은 케이 선생님이 직접 강의하시는걸요.”
“어머.”
유키코가 곤란해하며 말했다.
“케이 선생님 직강이라니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이 늦은 시간에도 하셔요?”
“얼마 전에 인도에 다녀오시더니 힘이 다시 나시는 모양이에요.”
“하면 너무 좋겠지만, 저희 둘 다 식사를 한데다 술까지 마셔서…….”
진혁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괜찮습니다. 저는 많이 먹지도 않았고 술도 깼으니까요.”
“괜찮아 보시긴 하네요.”
유키코가 무어라 말하기 전, 데스크의 안내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과 수건을 주었다.
“티셔츠와 바지는 이 사이즈로 괜찮으실까요?”
“예.”
그녀가 손바닥으로 남자 탈의실을 가리켰다.
“안에 열쇠가 꽂힌 사물함 아무 데나 짐 넣으시고 나오시면 됩니다. 유키코 쉐프님도 체험하실 거죠?”
“네.”
진혁이 옷을 갈아입고 나온 후에는 이미 유키코가 자연스럽게 두 사람분의 체험 비용을 결제한 후였다.
“제가 오자고 했으니까 제가 낼게요.”
그녀 역시 편한 반바지와 셔츠로 갈아입은 후였다. 술이 다 깬 것 같은 얼굴로 그녀가 웃었다. 공용 요가 매트를 받은 진혁은 아주 짧은 순간 눈을 깜빡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 냄새나는 건 왜 주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바닥에 자리를 깔기 시작하자 진혁 역시 자연스럽게 따라했다. 넓어 보이는 공간에 여자들이 빼곡히 매트를 깔고 올라갔다. 남자는 진혁을 포함해 네 명밖에 되지 않는다. 진혁은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눈을 감았다. 모인 이들은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허리를 구부리거나 눕는 등 다양한 자세를 연습했다. 강렬한 인간의 생기가 뿜어져 나와 눈을 감고 있어도 느껴졌다. 진혁이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나 화웅제과제빵기계공업의 회사원들은 퇴근하는 시간에는 파김치처럼 피곤함에 절어 흐늘흐늘해져서 집으로 돌아가서 그는 현대인들은 다 그런 줄 알았다. 평일 퇴근 시간 이후에 수련하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 에너지가 넘친다는 점이 신기할 정도다.
‘무학에 정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이들만 정규 훈련을 마친 후에 추가 수련을 하지.’
여기 있는 이들은 요가 수련에 열정이 넘치는 이들이다. 이렇게 열정에 가득 찬 수련장에 돌아오자 기시감이 들었다. 광안마 녀석은 아무리 굴려도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나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련을 계속했다.
‘굴리는 재미가 있는 녀석이었지.’
어차피 다시 못 볼 놈이니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몇십 년을 함께 다니며 긴밀하게 지낸 놈이다 보니 정말로 예상치 않은 곳에서 뜬금없는 것을 보고 떠올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진혁은 옛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의식적으로 다른 생각을 떠올려 현재에 집중했다.
‘봉황 모양의 케이크. 결혼 축하니까 화이트 레이어 케이크를 베이스로 해야겠어. 봉과 황 긴 목을 내밀어 입을 맞추는 형상으로 할까, 아니면 목을 꼬아 볼까?’
거북이와 뱀이 결합한 형상인 현무(玄武)도 아니고 둘이 목을 꼬고 있으면 이상할지도 모른다. 이전에 용 모양 모델링 초콜릿을 만들 때 비늘을 일일이 만들어 붙인 경험이 있다. 그리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예쁘다. 이번에도 봉과 황의 목과 몸, 머리 부분에 아름다운 비늘을 심어줄 생각이었다. 초콜릿 용의 비늘은 단순한 검은색 초콜릿에 불과했지만, 이번엔 봉황의 오색을 전부 재현할 것이다.
진혁이 케이크에 꽂을 깃털을 무엇으로 만들어 무게를 지탱할 것인지까지 결정했을 무렵 요가지도자 케이가 도착했다. 아미산의 스님처럼 오랜 수련으로 세월의 흐름이 비껴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체구가 작았지만, 똑바로 서서 척추를 편 자세가 좋은 이였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늦은 시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마스테.”
양손을 모아 인사하고 나서 그녀가 바로 시범 동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혁이 상상했던 태양 경배 의식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숨 마시며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내쉬며 양 손바닥을 양발 옆에 내려놓습니다. 등은 오목하게 펴내며 고개 들어 정면 바라보고-.”
존재하지 않는 태양을 향해서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각술과 권술을 주로 사용한다면 이 정도로 유연성을 기르는 것은 기본이다. 진혁은 어렵지 않게 요가지도자의 동작을 따라 했다.
‘해가 없는 이 시간에 태양 경배 의식을 하는 건 이해가 안 가지만…… 뭔가 여기서 실마리라도 얻었으면 좋겠군.’
“샬람바 시르사아사나 자세를 하겠습니다.”
낯선 산스크리트어 단어를 들은 진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요가 매트 바닥에 무릎을 꿇은 수련생들이 머리 위에서 깍지를 끼고서 양팔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깨에 수직이 되도록 어깨너비로 팔꿈치를 벌리고 양팔을 움직이며 정수리를 바닥에 댄다. 숨을 들이쉬며 무릎을 들고 뒤꿈치를 들며, 상체를 최대한 늘리고 내쉬며 바닥에서 발을 들어 올렸다.
하나, 둘, 여덟, 열둘, 바닥에 머리를 박고 양팔로 감싸고 수직으로 솟아오른 여자들은 등에서 땀을 뚝뚝 떨어뜨렸다. 무학의 수준으로 치자면 진혁보다 까마득히 낮은 수준에 있는 이들이지만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처음 오신 분은 여기까지만 하셔도 좋습니다.”
진혁은 옆에 서 있는 여자가 했던 자세 그대로 머리 위에서 깍지를 꼈다.
그는 순식간에 치솟아 올라 두 다리를 하늘에 올렸다. 초보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대로 무릎도 굽히지 않았고, 발바닥 중앙선이 정수리와 직선이 되는 위치에 놓여 있다.
‘균형을 잡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게 하려고 개발한 자세인가 본데.’
“초보자는 10초, 그리고 예선 씨, 희정 씨, 민준 씨는 3분 유지하겠습니다.”
지도자 케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진혁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가능한 만큼 하시다가 내려가세요.”
“…….”
진혁은 힐끔 눈치를 보았다. 그는 가만히 그 자세를 유지했다. 24시간, 아니 72시간 이상이라도 이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하물며 그는 양팔로 체중을 지탱할 필요 없이 한쪽 새끼손가락만으로도 체중을 지탱해 몸을 들어 올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하라는 건가?’
그가 슬쩍 깍지를 풀고 새끼손가락을 펴려 했다.
진혁이 자세를 바꾸어 완전한 물구나무서기를 선보일까 고민하던 참에 바로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발끝부터 천천히 떨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40여 명의 사람 중 제일 좋은 자세를 취하고 있던 여자였다.
말초에서 시작된 진동은 점점 더 흘러서 팔까지 내려와, 그녀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지도자 케이가 자연스럽게 나타나 그녀를 잡아주었고 여자는 간신히 넘어지지 않고 원래 자세로 돌아왔다.
‘아니군.’
잘하던 이가 저 정도로 흔들리는 걸 보면, 지나치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될 터다. 시간이 흐르고 다른 이들 역시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혁은 흔들림 없이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아까 하던 케이크의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꼬리의 깃털 역시 비늘처럼 오색으로 할까? 아니면 공작의 깃털처럼 무늬를 그릴까. 웨이퍼 페이퍼를 잘라내 여러 겹으로 덧씌우고 반짝이는 가루도 뿌리면 좋겠는데.’
3분이 한참 지났는데도 진혁은 내려오지 않았다.
꼿꼿이 세운 발가락 끝부터 손끝까지 한 점 흔들림도 없다. 시계를 보던 지도자 케이가 중앙에서 말했다.
“다음 자세 시행하겠습니다.”
미동도 없이 내려온 진혁은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다시 다음 자세를 시작했다.
40분은 빠르게 흘러갔고, 요가 수련 시간이 끝났다.
요가를 수련하던 이들은 삼삼오오 매트를 챙겨 자리를 떠나며 힐긋힐긋 바라보았다. 지도자 케이가 다가와 진혁에게 물었다.
“어느 구루 밑에서 수행을 하셨나요?”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럴 리가요.”
케이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소한 2년은 수련하신 것 같은데요? 호흡이 깊고 고요해요. 아무리 운동을 하시던 분이라고 해도 호흡은 따라 할 수가 없거든요. 발레나 무용하시던 분들이 동작은 완벽하게 따라 하셔도 호흡은 그렇게 못 해요.”
진혁이 알던 천축의 무승(武僧)들은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은 유려한 동작으로 효과적으로 사람을 패 죽였다.
그는 그 체술에서 공격적인 부분을 걷어내고 신체의 유연성을 늘리기 위한 스트레칭 동작들만 남겨 놓으면 요가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비슷한 걸 하긴 했는데 요가는 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숨기실 필요는 없지만 굳이 이렇게 감추신다면 여러 번 묻지는 않겠습니다.”
지도자 케이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이렇게 매끄러운 동작과 호흡이라니, 저보다 더 잘하세요. 프라이머리 수련을 몇 년은 해오신 게 아닌지, 육체의 균형과 호흡의 조화 모두 완벽하게 이루어내셔서 감탄했습니다. 저는 매년 겨울마다 인도에서 수련을 받고 온답니다. 그 구루님의 직전 제자들만큼이나 깔끔하신 호흡이었어요.”
“하하, 그럴 리가요.”
진혁이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그는 처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태양 경배 의식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까 처음에 했던 자세입니까?”
케이가 놀라며 눈썹을 추켜올렸다.
“수리야 나마스카라 말씀이세요?”
“수리야?”
낯선 산스크리트어 발음을 듣고 진혁이 멀뚱멀뚱 서 있자 유키코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임진혁 쉐프, 아까 맨 처음에 했던 자세에요,”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대로 서 있자 지도자 케이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정말 모르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