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9화
똑딱똑딱하는 시계 소리가 멈추었다. 60분이 순식간에 흘러버렸고, 심판이 내릴 시간이다. 루이스는 조마조마해 하며 심사위원들 앞에 케이크 위치를 내려놓았다.
『빵은 전부 식사용 빵으로 바꿨네요. 참치 마요네즈 케이크 위치와 에그 마요네즈 케이크 위치, 두 가지와 베이글 빵은 잘 어울려요. 하지만 다른 것들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개량하려고 하셨다면 미리 조화를 고려했으면 좋았을 거예요』
스텔라 위스커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예상하고 있던 결과다.
‘이렇게 되는구나.’
담담하게 서 있는 루이스를 바라보며 스텔라 위스커스가 물었다.
『루이스 강 쉐프, 어째서 빵을 전부 바꿔버렸나요? 원래 빵보다 이게 더 맛있을 거라고 생각한 겁니까?』
“제가 배운 전통 빵이 어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식사용 담백한 빵을 갈라 그대로 샌드위치 속을 넣으면 샌드위치가 되죠.”
루이스가 대답했다. 하지만 스텔라 위스커스는 그 표면뿐인 설명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이렇게 완벽하게 속을 재현해냈으면서 빵을 바꿔 낸 건…… 전통 프랑스 빵에 대한 자부심인가요?』
긴 침묵이 지나고 루이스 강이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 아시다시피 저는 파리에서 자랐지요. 한국인이기 때문에 쭉 소외감을 느껴왔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임진혁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남은 후에는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 어떤 마음인지 알아.’
생존하는 것이 힘겨워 어떻게든 살아보려 아등바등 발버둥 치던 시절에는 진혁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내공을 쌓고 강한 힘을 갖게 되었을 무렵,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혁과 같은 교육을 받아온 사람도 없었으며, 그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문화적인 이방인이었다.
그들의 문화를 익히고 모방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다행히 어느 시점이 지난 후 임진혁의 특이성은 ‘무공 고수라서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에 돌아오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붕 떠 있는 느낌이었죠.”
루이스가 하는 말에 진혁이 지그시 눈을 감으며 공감했다. 몇 가지 일들이 떠올랐다.
‘나도 내가 한국에 돌아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줄 알았지.’
본래 한국에서 태어나 의무교육을 받고, 군대까지 다녀온 진혁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현대 한국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무림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서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변했는데, 그 변화가 현대 서울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루이스가 하는 말 모두가 뼈저리게 마음에 와닿았다.
“저는 프랑스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서 퓨전 디저트는 피해왔습니다.”
루이스 강은 전통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배웠다. 프랑스인이 아니기 때문에 프랑스 전통 디저트를 익히는 것이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다. 사부가 가르친 것은 전부 옳다고 믿었다.
“스텔라 쉐프가 만드신 케이크 위치 말입니다만, 정말로 맛있네요. 기존에 왜 연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습니다.”
루이스 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 빵은 맛있으면 되고, 사람도 어느 한 국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대로 펼치면 된다.
“그래서 스텔라 위스커스의 케이크 위치에 제가 배워온 빵들을 접목하고 싶었습니다.”
『후회는 없나요?』
“예.”
루이스는 홀가분해진 표정이었다. 출연자들에게는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왜 갑자기 검술 대회에서 전통 도법을 펼치는 소리를 하지?’
임진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키코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대회를 스스로 포기했다고?’
브라이언 신이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제 루이스 쉐프의 베이커리에서도 퓨전 브레드들을 볼 수 있겠군요.”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는 루이스에게 이희주가 말했다.
“스텔라 위스커스 쉐프님이 새롭게 만들어낸 케이크 위치들에서 깊은 인상을 받으신 모양입니다.”
“예, 케이크 위치가 맛있어요. 샌드위치는 샌드위치면 되지 왜 그걸 굳이 케이크처럼 만들어야 하나 싶었는데요. 이건 이대로 독특하게 다른 맛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는지 알겠어요.”
스텔라 위스커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장 피에르 쉐프에게 사사하셨죠?』
“!!그분을 아십니까?”
아드레아노 존부가 덧붙였다.
『장 피에르 쉐프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멋진 분이지. 세상에는 그런 분들도 있고, 나처럼 모던한 디저트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는 거지』
『변화가 아닌 전통을 고집하는 장 피에르 쉐프님의 제자가 앞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겠다니, 루이스 쉐프. 대단히 큰 결심을 했네요. 앞으로 원하는 일이 전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스텔라 위스커스가 진심으로 격려했다. 그 다음은 유키코 김이 심사를 받을 차례였다. 그녀의 심사는 극찬으로 짧게 끝났다. 아드레아노 존부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스텔라 쉐프, 사실 몰래 키운 제자 아니야? 완전히 똑같은데』
주영모 역시 입맛을 다시며 케이크 위치를 맛보았다.
“아기자기하고 빼곡한 디테일까지 모두 살리면서 맛을 복사했는데요. 멋집니다.”
『마요네즈부터 초콜릿 아보카도까지, 전부 똑같이 재현했어요. 이건 제 스타일을 치열하게 연구하셨던 것이 아닐까 싶은데, 맞나요?』
“예. 스텔라 위스커스 쉐프님은 제 롤모델이십니다. 전에 발매하신 발렌타인 한정 컵케이크 등, 매년 내놓으시는 제품은 거의 연구하고 있어요.”
뺨을 발갛게 물들이며 유키코가 웃었다.
『대단하군요. 열렬한 팬레터를 받은 기분이에요! 고마워요, 유키코 김』
“제가 영광입니다.”
우승자는 모두가 예상하던 대로 유키코였다.
“유키코 김 쉐프, 축하합니다!”
루이스 강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유키코는 그 손을 힘차게 맞잡았다.
“저를 이기셨으니 꼭 우승하셔야 합니다.”
“…… 노력해 볼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가 박수를 쳐 주는 가운데, 루이스 강이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지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아주 짧은 미소였지만 진혁은 보았다.
‘패배하고 나서 웃다니, 저놈도 희한한 놈이야.’
기나긴 촬영이 끝났다.
◈ ◈ ◈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스태프들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가운데, 임진혁은 스튜디오를 나섰다. 복도 바닥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아까 그가 엎은 물통이 흘려 놓은 흔적이다. 얼룩진 카펫을 보며 유키코가 말했다.
“비가 와서 물이라도 샜나? 바닥이 다 젖었네요.”
“그러게요.”
진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젖은 바닥을 피해서 걸어갔다. 유키코 역시 그 뒤를 따랐다.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났고, 스텔라 위스커스 쉐프에게 격찬을 받은 터다.
그녀는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진혁에게 말했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유키코 쉐프도요.”
진혁은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오늘 쉽게 이긴 건 사실 유키코 쉐프 덕분이기도 하지.’
유키코 쉐프와 리처드 베이커 쉐프와 함께 끊임없이 케이크 위치 대결을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재료를 써서 다양한 케이크의 모양을 재현해내는 과정은 놀이처럼 즐거웠다.
재미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으니 더 뿌듯하다. 유키코가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데, 스튜디오 문이 벌컥 열렸다.
“출연자 여러분! 오늘은 촬영 뒤풀이하려고 하는 데 어떠십니까?!”
김선호 PD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진혁이 유키코를 바라보자 유키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스 강 쉐프님도 참석하신대요?”
“오늘 멤버는 전원 참석입니다. 아! 심사위원님들은 친해지면 객관적인 심사가 안 될 수도 있다며 먼저 돌아가셨어요.”
그렇다면 루이스 강을 만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유키코가 웃으며 말했다.
“전 참석하고 싶어요.”
“저도 가지요.”
출연자는 이제 루이스를 포함해도 넷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 작가 팀과 카메라맨, 메인 PD와 보조, 막내 PD들까지 합치니 스무 명이 넘었다. 오늘의 촬영이 끝났다는 기쁨에 모두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이동했다.
회식 장소는 방송국 바로 앞에 있는 흑돼지 삼겹살 가게였다. 김선호 PD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신나게 말했다.
“자자, 마음껏 주문하시죠. 일단 1인당 2인분씩 먼저 주문하고 들어가겠습니다.”
“테이블마다 소주 두 병, 맥주 두 병씩 부탁드립니다!”
점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숯불을 놓고, 석쇠를 올렸다.
석쇠 위에 올라간 두툼한 통삼겹살 덩어리는 뜨거운 열기에 지글지글 소리를 냈다.
가장자리가 점차 노릇노릇하게 익어가자 점원이 와서 다시 가위로 잘라 주었다.
“오늘은 그래도 촬영이 일찍 끝났네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유키코 쉐프님, 오늘 멋있었습니다!”
막내 PD 박하연이 유키코 쉐프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사람들이 술잔을 부딪치고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임진혁 옆에 앉아 있던 루이스 강이 소주잔을 들었다.
“임진혁 쉐프.”
진혁이 잔을 들어 맞부딪히자 쨍강하고 맑은소리가 났다. 루이스 강이 웃으며 말했다.
“물어봐도 됩니까?”
“뭘요?”
“알잖아요.”
진혁은 가장자리가 누르스름하게 익은 돼지고기를 한 점 집어 아무것도 찍지 않고 그대로 입안에 넣었다.
‘가운데가 덜 익었군.’
그가 별생각 없이 핏물이 씹히는 고기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입안에 비릿하게 느껴지는 피 맛도 꽤 괜찮았다. 제대로 키운 신선한 돼지고기다.
“임진혁 쉐프! 이거 먹지 말아요. 아직 다 안 익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