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83화 (183/656)

제 183화

흰 테이블보가 씌워진 긴 탁자 위에는 은빛 반구형 덮개, 실버 돔에 덮인 케이크 위치 네 개가 줄지어 놓였다.

“쉐프님들은 자리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긴장한 듯 손을 살짝 떨고 있는 유키코나, 흥분해서 얼굴이 붉어진 브라이언 신, 그리고 헛기침을 하는 루이스 강까지 모두 한 번씩 클로즈업되어 스크린에 보였다. 마지막으로 카메라에 잡힌 것은 임진혁이었다. 그는 전혀 떨고 있지 않았다. 수십 번, 수백 번 요리 프로그램을 촬영한 베테랑 요리사처럼 태연하게 자리로 돌아간다.

‘꼭 임진혁 쉐프가 이 쇼의 호스트 같아.’

이희주 사회자는 임진혁 쉐프를 바라보고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는 다시 방청객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낮고 또렷한 목소리가 무대에 울려 퍼지며, 그가 마법을 불러일으키듯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럼 여러분! 케이크인지 아닌지 판별해주실, 방청객 열 분을 소개합니다!”

팡파레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드라이아이스의 하얀 연기가 무대를 감쌌다.

심사위원석 바로 곁, 두 개의 기둥 사이에 드리워져 있던 자줏빛 무거운 벨벳 커튼이 천천히 내려갔다. 다섯 명씩 두 줄로 앉은 좌석이 나타났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부터 50대 남성까지, 다양한 성별과 연령의 사람들이 보인다.

다들 드라이아이스 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여고생 한 명은 눈이 좋은지 힐끔힐끔 무대에서 출연자들을 바라보았다.

이희주가 외쳤다.

“여러분! 박수로 이분들을 환영해 주세요!”

“와아아아-!”

무작위로 선발된 방청객들이다.

출연자들이 실버 돔으로 덮여 있는 케이크 위치를 미리 갖다 놓은 후에 방청객들을 소개한 것은, 혹여나 팬이 섞여 있어 특정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단 한 명만 케이크가 아니라고 해도 불리해지는 만큼, 누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희주가 첫 번째 실버 돔을 열었다.

“예쁘다!”

방청객 중 한 명이 탄성을 질렀다.

그것은 루이스 강의 케이크 위치였다. 그것은 방금 전 벗겨진 덮개와 비슷한 반구형 돔 모양으로, 아이스크림 케이크처럼 귀여워 보였다.

은하수의 별처럼 분홍빛 점이 점점이 박혀있는 살굿빛 케이크 아래편에는 별 모양으로 짜낸 크림이 한 바퀴 빙 둘러 장식되어 있다.

흔한 케이크와는 다른 생김새다. 루이스 강이 긴장한 표정으로 왼쪽 가슴에 한 손을 올렸다.

방청객들이 수군거렸다. 그들이 조금 전 받은 팻말을 확인할 수 있도록 잠시 시간을 준 후, 이희주가 웃으며 한 손을 들어 케이크 위치를 가리켰다.

“여러분! 이게 케이크로 보이나요?”

“예!”

“미리 받으신 팻말이 있지요? 케이크로 보이시는 분은 O, 아니신 분은 X 팻말을 들어 주시면 됩니다!”

방청객은 전원 만장일치로 O를 선택했다. 루이스 강은 심사를 받을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휴우.”

루이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에 하나 단 한 명이라도 케이크 같지 않다고 했으면 바로 심사를 받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다른 케이크 위치들하고 차별화를 두기 위해 돔 모양으로 승부하길 잘했어.’

그는 자신의 케이크가 제일 특이하고 예쁘게 생겼다고 자신했다.

“자, 그럼 두 번째 케이크 위치를 살펴볼까요?”

이희주가 뜸을 들이며 천천히 은빛 뚜껑을 들어 올렸다.

“와아아아아아!”

관객석이 파도처럼 술렁였다. 그것은 누가 봐도 케이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형태였다.

루이스 강의 돔 케이크 위치는 ’케이크 같지 않다‘라는 평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중에서 제일 흔한 라운드, 즉 원형 케이크였다.

“……정말로 케이크 같군.”

주영모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일부러 유화처럼 브러쉬 자국을 남겨 거칠게 크림을 칠한 원형 케이크의 위에는 오렌지 콩피가 가득 올라가 있다.

진한 황혼빛 오렌지 콩피와 조명을 반사해 꿀처럼 빛나는 마멀레이드, 그 위에 듬뿍 뿌려진 호두 가루와 헤이즐넛 조각, 아몬드 파편은 저절로 입맛을 다시게 한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과일 절임 생크림 케이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조금 전의 돔 케이크 위치가 사랑스러운 인테리어 장식품처럼 보인다면, 이 케이크 위치는 그냥 가을 테마의 생크림 케이크 그 자체다.

하얀색 케이크 위에 뿌려진 견과류들은 소나무 열매와 도토리, 그리고 오렌지 콩피는 낙엽처럼 보였다.

이희주가 극적으로 한 손을 펼쳐 유키코의 케이크를 가리키며 외쳤다.

“여러분! 이것은 케이크 같습니까? 어떻습니까!”

“케이크 같은 게 아니고 케이크에요!”

열 명의 방청객이 일사불란하게 대답했다. 한 명이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아무리 봐도 케이크인데 왜 케이크가 맞냐고 묻는 거지?”

“그러게.”

이희주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손바닥을 펴고 왼팔을 어깨높이까지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는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방향을 바꾼 후 물 흐르듯 유연한 동작으로 세 번째 실버 돔을 열었다.

“이제 세 번째 케이크를 볼까요? 케이크일까, 아닐까?”

흔히 티라미수 케이크는 스퀘어 즉, 납작한 직육면체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은 스퀘어 형태였지만 희디흰 우윳빛이었다. 하얀 케이크 위에는 붉고 영롱하게 빛나는 체리 두 알, 그리고 민트 잎이 보였다. 정교하게 세팅해 놓은 민트 잎은 체리 위에 올려져 있어 체리가 작은 사과 두 알과 잎사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하얀 케이크는 우아하고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이것은 어떻습니까?”

“케이크입니다!!”

열 개의 팻말 전부 O다. 브라이언과 유키코의 케이크 위치가 역시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두 번째 줄에 앉아있던 여고생, 이재희는 생각했다.

‘이번 케이크가 임진혁 쉐프님 케이크일 텐데.’

그녀는 임진혁 팬클럽 진바라기의 89번째 회원이다. 이제는 3만여 명에 달하는 팬클럽 회원 중 이너 서클인 500여 명 안에 들어 있다. 이너 서클 오백여 명 모두 이번 쇼 촬영의 방청객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첨권을 신청했지만 당첨된 것은 오직 그녀 한 명뿐이었다.

‘임진혁 쉐프님이 토막 살인 당한 시체 모형을 만들어 와도 케이크라고 우겨야 해.’

재희는 그 어떤 이상한 것이 나와도 진바라기의 회원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누가 무엇을 어디에 놓았는지 숨기는 거야 그렇다 치고, 지금 저기서 케이크를 바라보며 안심하고 있는 출연자 쉐프 셋을 보면 남은 하나의 실버 돔이 누구 것인지는 너무나도 명약관화하다.

‘…….’

지방에 사는 그녀는 다른 진바라기의 회원들처럼 강남에 와서 임진혁 쉐프를 실물로 영접할 일이 많지 않다.

이번에는 특별히 부모님에게 눈물로 애원해서 엄마와 함께 서울에 왔다.

그녀가 맨눈으로 실물 임진혁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기쁘고 영광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녀는 O라고 쓰인 팻말을 꼭 쥐고서 숨을 들이켰다.

긴장한 것은 여고생, 이재희만이 아니었다. 사회자 이희주 역시 긴장하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케이크가 아니라 토막 난 발목과 선명하게 흐르는 피가 보이는, 해상 재해 현장을 만들었지.’

그는 아직 조스 케이크를 잊지 않았다. 리얼하고 충격적인 그 장면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번에 만들 케이크 위치가 다루는 음식이 로스트비프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겉모양이 어떨지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 다른 심사위원들과 출연자 역시 숨을 죽이고 이희주의 손을 응시했다.

‘케이크 같지 않은 괴상한 것이 나오면, 엄청나게 놀라는 리액션을 해야 해.’

오늘 받았던 수정된 대본을 생각하며 이희주는 천천히 실버 돔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가 은빛 덮개를 들어 올리며 외쳤다.

“이것은 케이크일까요?!”

놀랍게도 그 안에 있는 것은 평범해 보이는 2단 케이크였다! 이희주는 너무 놀라 은빛 덮개를 떨어뜨릴 뻔했다.

“케, 케, 케이크입니다!”

본래대로라면 괴이한 케이크가 나와서 살짝 놀라는 척을 해야 했는데, 너무나 일반적인 케이크가 나왔기 때문에 정말로 놀라 버렸다. 이희주가 질문이 아니라 대답을 외쳐버리는 것과 동시에 일반인 방청객들이 모두 O가 쓰인 팻말을 들어 올렸다.

“그냥 케이크가 아니라 웨딩 케이크네.”

중년 아저씨가 팻말을 들어 올린 채 이야기했다. 옆에 있던 직장인 여성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4개 전부 케이크인데. 왜 케이크같이 생겼는지를 묻는다는 건…… 저게 전부 케이크가 아니라는 거잖아요?”

“그러게. 이번 건 2단이니까 웨딩 케이크고.”

구석에 앉아있던 여고생 한 명-이재희는 어리둥절해 눈을 깜빡였다.

‘임진혁 쉐프님 케이크가 아닌가?’

순백의 웨딩 케이크처럼 새하얀 원형 2단 케이크에는 장식이 많지 않았다. 2단 케이크의 윗단에는 승리의 월계관처럼 우아하게 뿌려진 차이브 잎이 향을 뽐낸다.

아랫단에는 잘게 다진 핑크빛 샬롯이 둥그렇게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 케이크를 본 심사위원 셋은 놀란 표정으로 임진혁을 주목했다. 방청객들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게 제일 하얀 것 같아요. 그렇죠?”

“그렇네요.”

중년 남자와 직장인 여성이 감상을 주고받았다.

유키코의 원형 케이크나 브라이언 신의 스퀘어 케이크 모두 유사한 백색이었으나 세 개가 나란히 있으니 확연히 구별할 수 있었다.

임진혁의 케이크는 이 중 제일 밝고 온전한 순백색을 띠어, 순수하고 깨끗해 보였다.

남극의 눈처럼, 밤하늘의 달빛처럼 희디희기만 하다. 브라이언 신은 눈을 빛내며 호기심을 가지고 임진혁의 케이크를 살폈다.

‘저 옆에 내 케이크 위치가 있으니, 오히려 색깔이 칙칙해 보이잖아? 나도 흰색으로 한다고 한 건데. 무슨 데코레이션 크림을 쓴 거지?’

유키코 역시 눈을 크게 뜨며 정신없이 진혁의 케이크를 살폈다.

‘케이크 위치를 2단으로 만들었다고? 어떻게 무너지지 않게, 빵의 무게를 감당하게 한 거지?’

루이스 강은 말을 잃었다.

‘도대체 저런 센스가 있으면서 지난 라운드까지 사이코패스처럼 괴상한 걸 만들어댄 이유가 뭐야?’

카메라는 복잡 다양한 표정을 한 출연자들을 한 번씩 주목했다.

임진혁의 케이크 위치가 만장일치로 통과한 다음, 심사위원 석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주영모가 중얼거렸다.

“허, 참.”

스텔라 위스커스는 화난 것처럼 미간을 잔뜩 찡그리더니 말했다.

『하느님 맙소사』

『그러게』

아드레아노 존부 역시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두 심사위원 얼굴의 주름이 점점 더 깊어지자 이희주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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