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78화 (178/656)

제 178화

김은동이 한 말에 백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동 씨는 맛보다 기획에 높은 점수를 주는 타입이군.”

“어? 아니에요. 엄청 맛있었어요.”

“효모 빵이랑 기본 빵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치즈 크림이랑 커피도 좋아하는구나. 그럼 예은 씨하고 가영 씨는?”

예은이 킥킥대며 웃었다.

“저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햄 & 치즈요. 모양도 너무 예쁘고 아이디어도 좋아요. 청경채 어린잎이랑 햄, 머스터드도 좋았고요.”

“전 당연히…….”

김가영이 머뭇거렸다. 그녀는 달콤한 것을 좋아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간다면 무조건 초콜릿, 거기에 초콜릿 시럽과 초콜릿 칩을 추가하기도 한다. 햄 & 치즈도 너무나 맛있었지만 굳이 고르자면 취향인 쪽은 티라미수다. 그녀가 달콤한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는 다른 이들이 한 마디씩 던졌다.

“당연히 티라미수 아니야? 왜 머뭇거려?”

서창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은이도 한 마디 더했다.

“언니는 치즈보다 초콜릿을 더 좋아하잖아요.”

“치킨보다도 초콜릿을 더 좋아하시는 걸 다 알고 있는데.”

‘임진혁 쉐프님이 만드신 건 햄 & 치즈 같은데……, 내가 여기서 리처드 베이커 쉐프가 만든 케이크 위치에 투표를 해도 되나? 난 자랑스러운 팬클럽의 회원으로서 임진혁 쉐프님을 배신할 순 없어.’

하지만 티라미수가 더 맛있었다. 망설이는 김가영에게 진혁이 한 마디 던졌다.

“맛있는 걸 고르는 게 그렇게 어려워?”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팬클럽 회원들의 면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다른 팬클럽 회원들은 맛조차 보지 못한 임진혁의 케이크를 먹고 나서 그것보다 다른 사람이 구운 케이크가 더 맛있다고 해도 되는 걸까?

‘임진혁 님께서 맛있는 것을 말씀하라고 하셨으니 그렇게 하자. 객관적이고 올바른 비평을 내려주는 게 진정한 팬의 역할이야.’

“……티라미수죠. 제가 단 거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가영이 선언하자 진영이 점수판 대용의 A4 용지에 선을 그었다. 티라미수 케이크 위치가 3표, 햄 & 치즈가 2표다. 비등비등하게 티라미수가 이겼다.

“그럼 저녁 대결은 티라미수 케이크 위치가 이겼네? 임진혁. 네가 졌는데?”

백진영이 말하자 임진혁이 대답했다.

“왜 내가 졌다고 생각해?”

“햄 & 치즈가 리처드 쉐프, 티라미수가 너 아니야?”

진혁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티라미수 만들었어.”

“에에에에엑?!”

“아하.”

다들 놀라는 가운데, 김가영이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역시 내 입맛에는 임진혁 쉐프님이 만든 빵이 제일 맛있어. 나는 틀리지 않았어…….”

다른 쉐프가 만든 케이크가 더 맛있다는 사실이 마치 배신처럼 느껴져 갈등했던 그녀는 흐뭇해했다.

“리처드 베이커 쉐프! 적절한 재료로 가게를 위해 원가율에서 식재료 비율이 낮은 게 중요하다면서요!”

예은이 묻자 리처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백진영이 통역해주자 리처드 베이커가 호탕하게 웃었다.

『크핫핫핫! 요리 승부에는 원래 최고로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쓰는 법이야.』

“와……말 바뀌는 것 좀 봐.”

“딱 보면 알잖아? 블랙 앤 화이트 케이크 위치도 그렇고, 티라미수 케이크 위치도 그렇고. 색깔 대비에 관심이 생겼거든. ‘푸드 스타일링’에 관심이 생겨서 컬러부터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중이야.”

진혁이 푸드 스타일링에 관심이 생긴 이유는 간단하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운 빵과 과자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점심, 저녁 모두 임진혁이 이겼다.

『그래도 이번에 만든 케이크 위치들을 보면, 확실히 임진혁 쉐프는 재능이 있어. 일반적인 모양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데 여태까지는 왜 그랬냐고』

리처드가 중얼거렸다. 그때 백진영이 핸드폰을 보았다. 와 있는 문자를 보고 그가 말했다.

“삼촌이 치킨 사 온다고 먹고 가라는데. 혹시 다들 시간 돼?”

“좋아요!”

“음료수도 사 오신대요? 마실 거라도 사 올까요?”

점심, 저녁 내내 연패한 리처드 베이커는 전혀 풀이 죽지 않았다.

『내일도 케이크 위치 대결을 해 보자고』

결국 자기가 이길 때까지 계속 하자는 얘기다. 뭐라고 한마디 해 주고 싶었던 진혁은 생각했다.

‘리처드 쉐프하고 말 안 통하는 거 은근히 불편한데……오늘 밤부터라도 영어를 공부해 볼까.’

◈          ◈          ◈

”후우.“

회사 일을 마무리하고 1층에 내려온 백정흠은 H & J 카페 앤 베이커리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있군…….’

카페 앞의 치킨집에 들어가서 미리 주문해놓은 치킨을 가져오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H & J 카페 앤 베이커리의 직원들이 열광하며 치킨을 환영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네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백정흠은 좋아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짓고 그 자리를 떠났다. 백진영은 미소를 거두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항상 이런 패턴이지.’

사촌 형이나 누나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그렇다.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고서 혼자 ‘우리는 화해를 했다’라고 생각한다. 완고하고 고집 센 삼촌은 지금 진영이 치킨을 거절하지 않은 것만으로 ‘우리는 화해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진영은 굳이 그 오해를 지금 풀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독립해서 보여줄 수밖에 없어.’

이미 단 티라미수 케이크 위치까지 먹고 난 후라, 튀긴 닭이 입에 달지만은 않았다.

”이상하다, 양념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요.“

”먹는 순서가 잘못됐어. 닭을 먼저 먹고 케이크를 먹어야 하는데.“

예은이와 가영이 닭을 먹으며 울상이 되어 말했다. 서창덕과 김은동은 불평 없이 닭을 씹고 있었는데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은동이 말했다.

”우리 가게 닭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임진혁 쉐프나 리처드 쉐프가 만든 빵을 먹고 먹으니까 참……비교되네요.“

”자, 여기 뜨거운 녹차로 입을 헹구고 다시 먹어봐.“

백진영이 녹차를 한 잔씩 돌렸다.

”녹차는 왜요?“

”요리대회 심사위원들도 녹차나 물로 입안에 남아있는 맛을 헹궈내고 나서 맛을 보더라고.“

임진혁이 덧붙여 이야기하자 다들 조심스레 뜨거운 녹차를 마셨다. 한 입 먹고 나서는 치킨을 먹으며 다들 표정이 밝아졌다.

”코코아 맛이 나지 않는 치킨이 정상이죠.“

”이제 맛있네.“

반면, 리처드 베이커는 닭고기를 맛보며 눈이 커졌다.

『이건 진짜 맛있는데?! 이걸 응용한 게 임진혁 쉐프의 치킨 파이로군!!』

『잘 아시는군요, 거기서 영감을 얻어서 만든 게 맞대요』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나누자 일하던 때와 달리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갔다. 다 함께 뒷정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며 진혁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은 휘영청 하게 맑은 얼굴을 구름에 가리고 떠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어.’

◈          ◈          ◈

며칠이 지나고 금방 촬영 날이 왔다. 곧 촬영이 시작될 방송국은 분주했다.

“메인 PD님! PD님!”

“막내! 지금 출연자들 미팅 막 시작하려는 참인데, 무슨 일이야?”

별일 아니라면 넌 크게 혼나야겠다라는 눈빛을 쏘아 보내는 김산호 PD에게, 박하연 막내 PD가 주눅이 들어 조심스럽게 말했다.

“책임 프로듀서님이 부르셔서요…… 국장님 방으로 오래요.”

“진작 좀 얘기해야지!”

막내 PD가 말하는 국장이란 예능국장일 수밖에 없다. 예능국장의 사무실은 그리 멀지 않다. 다른 PD에게 진행할 것을 간단하게 지시하고 나서, 메인 피디는 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어떤 건으로 불렀는지 대충 예상이 간다.

‘유키코 김 쉐프 때문인가 보군. 그래도 지금 부르실 건 없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이진홍 국장이 언급한 것은 유키코 쉐프에 대한 것이었다. 옆에 서 있던 책임 프로듀서 역시 눈인사를 했다.

‘저 인간은 책임 프로듀서라는 사람이 여기엔 이름만 걸어 놓고.’

김산호 PD가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자, 바로 국장이 본론부터 이야기했다.

“식물인간이었던 애인이 깨어났다며? 우리 방송국에서도 화환을 보내자고. 예능국 이름으로 하나 보내 주고, 자네 이름으로도 보내 줘.”

“장례식도 아닌데 화환은 좀 그렇지 않을까요?”

이진홍 국장이 미간을 찡그렸다. 바로 호통이 터져 나왔다.

“꽃다발과 감사 카드를 보내던가! 알아서 해!”

“알겠습니다.”

김산호 PD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능국장이 책상 위에서 일어나 메인 피디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는 아주 잘 해주고 있어. 이번 뉴스로 시청률이 다시 올라갈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 처음에는 노이즈 마케팅인가 싶더니, 잘 돼서 다행이지 뭔가.”

“그렇습니까…….”

“그 여자가 우승해도 좋겠군. 여태까지 고생만 하다가 노력 끝에 사랑과 성공을 다 잡은 여자, 좋은 타이틀 아닌가?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좋아하지.”

“그건 유키코 쉐프의 실력에 달려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예능국장, 이진홍이 미소지었다. 겉보기에는 온화해 보이는 중년 남자지만, 명문대학교를 졸업한 후 PD로 입사하고 기획 제작국과 교양 문화국을 거쳐 예능 제작국 책임 프로듀서에 올랐다. 이후 수많은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성공을 거두어, 순조롭게 예능국장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가 날카로운 눈빛을 던졌다.

“자네가 드라마를 만들어줘야지.”

“하지만 제가 심사 위원들의 평가에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그걸 몰라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겠나?”

“하지만 심사위원들 전부 다 이 분야의 장인들로 맛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는 분들이라…….”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해야 할 문제야!”

“……알겠습니다.”

김산호 PD는 이마를 손으로 감싸며 국장실에서 나왔다.

‘유키코를 주로 부각시키면 스토리텔링이 좋아지긴 하겠지. 그렇지만 이건 가족 상봉 프로그램이 아니라 요리 쇼라고.’

어차피 심사위원들에게 통보하는 것은 PD가 아니라 작가의 역할이다. 그는 바로 작가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저기, 김 작가? 내가 상의할 게 있는데 말이지.”

◈          ◈          ◈

“이번 테마를 바꾸자고요?”

주영모 쉐프가 놀라서 묻자 김산호 PD가 대답했다.

“케이크 위치(Cakewich)라는 걸 들어보셨습니까?”

“당연히 알지. 스모르고스토르타(Smorgastarta)를 일본에서 새로 개량한 거잖아?”

스모르고스토르타는 스웨덴어로 ‘샌드위치 케이크’라는 뜻이다. 스웨덴에서 기원한 음식으로 에스토니아, 핀란드나 아이슬란드에서 잔치 때 주로 만든다. 호밀빵이나 흑빵에 달걀과 마요네즈를 베이스 소스로 바른다. 거기에 간 파테나 올리브, 새우나 햄, 캐비어나 토마토부터 오이나 레몬 슬라이스나 치즈, 훈제 연어 등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서 가득 채운다. 겉에 크림을 발라 꾸미면 커다란 홀케이크처럼 보인다.

흔히 북유럽풍 샌드위치 케이크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과 영국에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일본 샌드위치 케이크 협회에서 치즈 크림이나 사워크림, 요구르트 크림 등을 사용해 개량해 다양한 메뉴를 내놓고 있다. 이것은 빵을 좋아하는 보조 작가가 가져온 아이템으로, 유키코가 케이크 위치 협회의 회원인 것을 알고서 내놓은 것이다.

“어차피 심사위원들 다, 위에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 아니잖아요. 아예 유키코 쉐프를 밀어주는 테마로 시험 자체를 바꿔 버리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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