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3화
“그럼 이건 메뉴로 올릴 순 없겠네요…….”
진희가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아버지가 그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금은 안 되지만, 나중에도 안 되란 법은 없지.”
샌드위치를 우물우물 먹고 있던 임진혁이 뺨을 가득 부풀린 채 말했다.
“아버지, 이거 빵집에서 몇 개씩만 팔아보는 게 어때요? 잘 팔리는지 보는 거죠.”
“잘 팔리면?”
“돼지갈비를 다량 만들고 숙성할 루트를 찾아보고, 정식으로 판매를 시작하는 거지.”
“진짜로!?”
방금 전까지 실망해서 입을 삐죽 내밀고 있던 진희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들었다.
“잘 팔리면.”
“앗싸! 해냈다!”
진희가 입을 크게 벌리며 허리에 양손을 얹고 웃어젖혔다.
“아하하하하하하!”
“야아아아아아아아옹!”
문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양이가 야옹 하고 울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인데도 나오지 않으니까 진호가 우네.”
진희가 문을 열면서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 덩치 큰 고양이는 진희를 받침대 삼아 도약해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어머니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동네 순찰하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면 가게 앞으로 꼭 오더라.”
“…… 어머니를 잘 지키고 있으라고 했잖아?”
어머니가 가게에 있는 시간에는 가게가 아니라 동네를 순찰하고 있다면, 그건 어머니를 지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진혁이 고양이의 머리를 검지로 톡 건드렸다.
“농땡이 피우지 말고 앞으로 잘해라.”
“야옹!”
고양이는 노랑 눈동자를 빛내며 눈을 깜빡였다.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주 짧았다.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가 요리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진혁이 가스레인지 앞에 섰다.
“제가 달걀을 좀 부쳐보겠습니다.”
“응? 진혁이가 달걀프라이를 해주는 거야? 고맙네.”
어머니가 이것저것 반찬을 꺼내놓고 국을 데우는 사이, 진혁이 순식간에 움직였다. 프라이팬을 올리고, 버터를 바르더니 달걀을 깬다. 신선한 흰자가 투명하고 끈적하게 덩어리져 바닥에 뚝 떨어지고 그 위에 주황빛 동글동글한 노른자가 내려앉는다. 진혁은 그 두 개에 극미량의 가루를 뿌렸다. 두 번째 부침에는 검은 액체를 극소량 부었고, 세 번째 부침에는 다른 가루를 뿌렸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부침도 각각 다르게 조미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어떤 양념을 쳤는지 전혀 알 수 없게 극미량만 넣었다. 등으로 몸을 가리고 뿌렸기 때문에 아무도 진혁이 어떤 부침에 어떤 양념을 했는지는 보지 못했다.
“웬일로 저 녀석이 요리를 해준다니?”
“진혁이가 하는 거면 맛있겠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가족 모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버터 향을 풍기는 완벽한 달걀프라이를 인원수대로 다섯 개를 구워내는 동안 아버지가 물었다.
“진혁아. 갑자기 달걀프라이는 왜?”
완벽하게 구워진 달걀부침 다섯 개를 한 개의 접시에 담아낸 진혁이 그것을 진희 앞에 갖다 놓았다.
“진희야, 이거 먹고 뭐가 느껴지는지 얘기해봐.”
노랗고 따뜻한 노른자는 반구형 그대로 살짝 익어 탱글탱글하고, 그 노른자를 감싼 흰자는 신부의 웨딩드레스처럼 희고 단정하다. 가장자리가 바삭바삭하게 갈색으로 살짝 익어 있다. 그것은 단 하나도 흠 없이 완벽하게 조리된 달걀프라이였다.
어머니가 군침을 삼키며 진희 어깨너머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기막히게 맛있어 보이는 달걀프라이인데, 다섯 개나 있네. 엄마도 먹어도 되는 거지?”
“어…….”
아버지가 진희의 다른 쪽 어깨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도 하나 주지?”
진혁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하고 어머니 것은 따로 조리해드릴게요, 입맛에 맞게.”
“나보고 달걀프라이를 다섯 개나 먹으라고?!”
진희가 항의하자 진혁이 말했다.
“전부 먹을 필요는 없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말했다.
“뭔가 테스트라도 하려는 거냐?”
“그런 거면 다시 할 필요는 없어. 이걸 진희가 혼자 먹으면 너무 질릴 거 아니냐.”
“음…….”
“진희가 한 입씩 다 먹어보고, 남은 걸 우리가 먹으면 되지.”
“그, 그럴까요.”
아버지가 내놓은 타협안에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희는 포크를 들어 바로 달걀을 찍었다.
“맛있다. 나 이런 반숙 좋아해.”
진희가 우물거리며 달걀프라이를 조금 맛보고, 두 번째 달걀프라이를 먹었다. 그녀가 혀를 쏙 내밀어 다시 달걀프라이를 맛보며 물었다.
“이거…… 둘 다 맛있는데. 간을 다르게 했네? 첫 번째는 소금이고.”
정말로 조금 섞었기 때문에 무슨 맛인지는 알기 어렵다. 얼마 전에 이렇게 달걀프라이를 해줬을 때 김은동은 다른 맛인지도 구분하지 못했다. 유키코는 맛이 조금 다른가? 아닌가? 하고 긴가민가했으며 리처드 베이커는 맛이 같다고 우겼다. 미각이 예민한 프로페셔널 쉐프들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적은 양만 뿌려놓은 것이다.
“응. 뭔지 알겠어?”
가장자리는 연노랗고 가운데는 샛노랗다. 노른자를 절반으로 잘라 흰자와 함께 입안으로 넣은 진희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두 번째는 간장하고 버터. 이건 진짜 맛있네.”
진희가 세 번째 달걀프라이에 포크를 가져갔다. 그녀가 눈을 감고서 말했다.
“이건 후추.”
“그래, 잘 아네.”
네 번째 달걀프라이를 맛본 진희가 기함했다.
“계피?! 달걀에 왜 계피를 뿌렸어?!”
“서양 쪽에서는 그렇게 해서 먹는 사람도 있어.”
진희가 먹고 난 달걀프라이를 하나씩 맛본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맛이 조금 다르구나. 흑후추가 아니라 백후추 같은데?”
“어. 듣고 보니 그러네요. 보통 후추보다 약간 향이 달랐지.”
진희가 입술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아버지는 다른 달걀프라이를 우물거리더니 이야기했다.
“진희 미각이 정말로 예민한데? 아주 조금 들어있을 뿐인데 전부 캐치하다니, 대단해. 그리고 여기 넣은 소금은 히말라얀 핑크 소금 같은데, 일부러 따로 가져와서 넣은 거냐?”
“어머니와 아버지 미각이…… 전보다 훨씬 예민해지셨는데요?”
트리플 크림슨 치즈 케이크를 만들던 때만 해도, 부모님의 미각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환골탈태의 여파인가?‘
“그래. 그래서 네 어머니가 하는 반찬이 요즘은 훨씬 먹을 만해졌어.”
“그 얘기는 여태까지는 맛없었다는 이야기인가요, 여보?”
어머니가 눈썹을 치켜들며 이야기하자, 아버지가 두 손바닥을 보이며 항복을 표현했다.
“여태까지 맛있었지만 더 맛있어졌다는 이야기야.”
“그럼요, 호호.”
“아! 돼지갈비도 꺼내올게. 내가 넉넉하게 만들어 둔 게 있어.”
‘진희도, 아버지와 어머니도 모두 감각이 훨씬 민감해졌어.’
요리를 하는 데 있어서 미각과 후각은 예민할수록 좋고, 표현할 수 있는 맛의 범위가 넓어진다. 진희가 코를 킁킁거렸다.
“그런데 이건 왜? 맛 테스트를 해서……”
‘네가 내 지음(知音)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하지만 지금 실력으로는 아직 멀었다. 이 돼지갈비 샌드위치는 분명 맛있지만, 진희는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진혁이 형형한 눈빛으로 진희를 바라보자 그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텔레비전 쇼에서 가족을 초대해서 맛 테스트하는구나! 가족 중에 내가 제일 한가하니까, 날 카메오 출연시키기 전에 준비를 한 거야!”
“……그런 일은 절대로 아니야.”
진혁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며 진혁이 그릇을 옮기고 부엌에 섰다.
“진혁아, 너 기차 시간은? 설거지하고 자려고?”
아버지가 시계를 보더니 물었다.
“오늘 자고 갈 거니?”
“예, 새벽차로 올라가려고요.”
“가게가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는 해도 초반인데 이렇게 자리를 비워도 되는지 모르겠다. 네가 와서 우리는 좋지만…….”
아버지가 걱정하자 진혁이 대답했다.
“베이커 쉐프가 오전 일은 완전히 맡게 돼서, 저는 오후 타임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
식사 후 양치를 마친 후, 진혁이 입고 나온 옷을 본 진희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그 옷을 졸업할 때도 되지 않았어? 돈도 많이 벌었잖아.”
붉은색 반소매 티셔츠를 내려다보며 진혁이 대답했다.
“이게 뭐가 문젠데?”
“너란 앤…… 아니야.”
‘엄마랑 의논해서 저 옷을 다 갖다 버리든가 해야지.’
진희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진혁이 진지하게 물었다.
“진희 너, 나한테 빵 만드는 걸 배워보지 않을래?”
“호오~ 나한테 가르쳐주고 싶은 거야? 일봉 매니저님도 내가 잘한다고 칭찬하고 있어. 내가 좀 빨리빨리 배우긴 하지.”
그녀가 웃으며 검지를 흔들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너한테 배울 시간이 없잖아. 네가 내려와서 가르칠 수도 없고, 내가 서울까지 올라갈 수 있는 시간도 없고, 지금은 샌드위치 가게에서 적응하는 게 우선이라고.”
진혁이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가 직접 가르쳐준다고 하면 당연히 기뻐하며 좋아할 줄 알았다. 이렇게 현실적인 요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바로 거절할 줄 몰랐다. 파자마를 입은 아버지가 안방 문을 열고 걸어 나오며 참견했다.
“진혁아, 네가 진희를 가르치고 싶어 한다고?”
아버지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일봉이나 나한테 알려줄 때처럼 하면 안 된다.”
“……예?”
“너는 작업할 때 보통 힘으로 밀어붙여서 체력을 엄청나게 써가면서 제과제빵을 하는 타입이니까…… 일봉이나 나나 남자니까 그걸 따라갈 수 있는 거지, 진희가 그러다간 쓰러질지도 몰라.”
‘여태까지 아버지에게 설명할 때 친절하고 연약한 일반인을 상대하듯이 설명해왔는데……. 그리고 일봉이보다는 진희가 두 배는 더 체력이 좋을 걸요.’
아버지나 어머니 역시 일반인인 일봉이보다는 월등히 체력이 좋다.
“진희야, 너도 그렇게 당장 거절할 필요는 없어. 진혁이가 틈나는 대로 내려와서 그때그때 가르치면 좋을 것 같구나.”
어머니가 끼어들어 말하자, 진희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알았어. 너한테 배울게.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너, 그 빨간 옷 좀 다 버려.”
“이걸 버리면 어머니께서 섭섭해하셔서 안 돼.”
진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진희가 어머니를 바라보고, 두 사람이 눈빛을 교환했다. 어머니가 흠흠, 헛기침했다.
“내가 섭섭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진희가 너한테 빵 만드는 걸 배우면 좋을 것 같구나. 버리렴.”
“예?”
진혁이 입고 있던 옷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멀쩡한 옷을 버리는 건…….”
“그 옷은 멀쩡하지 않아. 목은 늘어났고 보풀이 일어서 너덜너덜하다고.”
“어머니와의 추억이…….”
“이제까지 소중히 여겨줘서 고맙지만 이젠 티셔츠를 보낼 때란다, 아들아.”
어머니가 전쟁터에 선 장수처럼 비장하게 말했다.
‘사실 익숙해서 편한 옷인데.’
진혁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어.”
“그거 한 벌만 아니다. 빨간 티셔츠 전부다.”
“그래도 버리는 건 아깝잖아. 센터나 이런 데 기증을…….”
어머니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하는 사이 진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야! 옷 기증은, 금방 애가 자라버려서 못 입게 된 아기 옷 같은 걸 갖다 주는 거야. 성인이 일백 번 고쳐 입어 해진 닳고 닳은 옷, 특히 그렇게 낡은 건 갖다 주는 거 아니다. 민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