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66화 (166/656)

제 166화

미래의 동량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 진혁이 중원을 순회하며 괜찮은 싹수가 보이는 꼬맹이들에게 밑밥을 뿌려 놓았고 나중에 수거한 것이다. 산하에 전장 하나보다 둘이 좋다고 생각한, 두 개의 전장이 자신의 산하에서 경쟁하며 커가기를 원한 진혁이 구상한 큰 그림이었다.

‘적당히 맞춰주면 될 텐데, 백진영도 참, 사람이 순하단 말이지.’

친자식 둘, 그리고 동생 부부의 사고로 맡아 키우게 된 조카. 아무리 조카를 신경 쓴다고는 해도 친아들과 친딸이 우선이지 않았을까. 조카는 눈치 보는 법과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승천의 삼남 녀석도 그랬다. 그때 진혁이 준 해결책은 간단했다.

‘강해져라. 누구라도 네 발밑에 둘 수 있을 만큼.’

그래서 그 녀석은 열심히 수련했다. 형들을 두들겨 팰 수 있을 만큼 수련한 이후에는 꿈지럭거리면서 진도가 늦었지만, 적당히 때려주면 다시 또 수련을 열심히 했다.

나름 호의적으로 진영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던 진혁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무공을 가르쳐 줄 생각은 없고. 현대 사회에서 다른 사람 두들기고 다니라고 할 수도 없고.’

간단한 호신술 정도를 가르쳐 주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진영이 그 호신술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협하거나 제압할 성격은 아니다.

백진영이 술 때문에 잠들어 버리고 나서도 임운정과 백정흠은 계속 술을 마셨다. 취할 대로 취한 백정흠이 운전기사를 부르고 기절하자, 임운정이 진혁을 바라보았다.

“쯧, 천성이 나쁜 녀석은 아닌데. 시야가 좁네.”

백정흠에 대해서 짧게 평하는 것을 보고 진혁이 미소지었다.

“아버지는 이제 집으로 내려가세요?”

운전기사는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는지 금방 도착했다.

“운정 사장님은 술이 진짜 세신가 봐요. 보통 우리 사장님하고 같이 마시면 이렇게 정신이 멀쩡하시기 쉽지 않은데.”

주르륵 늘어선 소주병을 바라보며 운전기사가 감탄했다.

“진영이는?”

백정흠을 차 안으로 옮겨놓고 나서 돌아온 운전기사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제가 모시고 가도 되긴 합니다만…….”

백진영이 그 집에 술 취해서 도착하면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임운정과 진혁이 눈빛을 교환했다. 진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진영이 형은 제가 택시 타고 데려갈게요. 같은 건물에 살고 있으니까, 아침에 깨워서 보내면 됩니다.”

“그래요. 잘 좀 부탁합니다.”

운전기사는 꾸벅 인사를 하고 먼저 차로 출발했다. 진혁이 말했다.

“아버지 먼저 가시죠.”

“아니, 진영이랑 같이 가는 네가 먼저 가라. 택시 잡아 줄게.”

진혁이 몇 번 거절했지만 아버지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가 잡아 준 택시를 타고 나서 진영을 안쪽에 싣고, 바깥쪽에 앉은 진혁은 눈을 멀뚱멀뚱 떴다.

‘…… 소독약 냄새가 나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눈치채지도 못할 소독약 냄새지만 그는 아주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병원이라도 다녀오셨나.’

앞에 앉은 택시 기사는 인상이 좋아 보이는 50대 중년 남자였다. 그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친구분이 술에 많이 취하셨나 봐요. 즐거운 일이라도 있으셨나. 어디로 모실까요?”

◈          ◈          ◈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우리 연이가 죽었어.’

47세 김종철. 직업은 택시기사, 취미는 청소다. 그는 자정 이후에 술을 마시는 20대 성인 남자는 쓰레기며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놈 중의 하나가 그의 소중한 딸을 죽였고, 술을 먹었다는 이유로 형이 경감되어 일찍 세상에 나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강남 어딘가에 살고 있을 그 놈, 밤늦게까지 술을 처먹고 다니는 그 놈을 찾기 위해서 김종철은 낮 근무를 야간 근무를 바꾸었다. 종로 근방의 좁은 골목 안, 월세를 내지 못해 나간 영업장을 알게 되었다. 그는 폐가처럼 방치된 그 안에 적당한 작업 장소를 준비했다. 연이를 죽인 놈과 닮은 녀석들을 골라 죽여 탑골 공원에 걸어 놓았다. 신문에는 탑골 공원 살인마니 어쩌느니 하는 기사가 실렸다. 사회가 그의 정의로운 희생을 외면하고 있으나 그는 숭고한 마음으로 일을 계속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죽이지는 않는다. 종철은 자신이 불필요한 살인을 저지르는 범법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현재의 법률 시스템과 체계는 적절하지 않으며 누군가 악인을 위해 정당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이번 손님 2인조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둘다 20대 남자였는데 한 명은 평범한 얼굴로 술에 떡이 되어 취해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멀쩡하게 반반한 얼굴에 체격이 좋았다. 그는 그 잘생긴 얼굴이 불쾌했다. 그의 딸, 연이처럼 순진한 소녀라면 이렇게 잘난 낯짝에 금방 경계심을 풀었을 것이다. 밤늦게 여럿이 술을 마시는 둥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을 구석은 차고 넘쳤다. 올바른 청년이라면 마땅히 차가 끊기기 전,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자야 하는데 말이다.

그는 품 안에 준비해둔, 동물용 마취제가 담겨 있는 주사기를 만지작거렸다. 술에 깊이 취한 남자들은 이 주사를 맞고 부축을 받아 폐가로 옮겨졌으며, 거기서 당연히 시행되어야 할 천벌을 받았다. 김종철은 이 두 남자들에게 벌을 내려야 할지 말지 망설였다.

‘두 명이야.’

보통은 취한 한 남자를 맡기고 다른 남자는 다른 택시를 탄다. 하지만 별로 취한 것 같지 않은 잘생긴 남자 놈이 걱정됐다. 김종철이 호신술을 조금 익혔다고는 하지만, 맨정신에 저렇게 체구가 있는 젊은 남자와 맞상대해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는 신중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을 둘이나 데리고 이동하다 보면…… 시선을 끌게 되어 있지.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부축해서 세 명이 간다면 모를까.’

짐에게 짐을 들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짐을 들고 이동할 필요는 없다. 문득 탁월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김종철의 입가에 어린아이처럼 쾌활한 미소가 어렸다.

그는 완벽한 계획을 세웠고, 성공을 예감했다.

◈          ◈          ◈

택시가 출발하고 나서 자동차의 진동에 몸을 맡긴 임진혁은 잠시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먼저 출발하셨으면 적당히 뛰어가도 괜찮았을 텐데.’

늦은 밤, 도로에는 다른 차가 드물어 택시는 쌩쌩 달렸다. 하지만 택시가 한강을 지나는 순간 진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호오. 이것 봐라?’

여의도에서 강남으로 가면서 잠시 한강 변을 끼고 갈 수는 있지만 건너갈 필요는 없다. 진혁은 이 상황이 재미있어졌다. 택시 기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계속 운전하는데, 갑자기 살기를 뿜었다. 분명히 진혁 자신과 백진영을 향한 살기였다. 특급 살수라면 누구나 눈치챌 수 있는, 훈련되지 않은 민간인이 뿜는 미약한 살기다. 한국에 온 후에는 처음 느끼는 자신을 향한 살기에 임진혁은 놀라며 즐거워했다.

‘현대에도 어떤 종류의 인간들이 있군?’

평범한 중년 남자인 줄 알았던 기사가 살기를 뿜을 줄 안다니, 좋은 일이다.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훈련을 잘 견뎌내고 살아남으면 적절하게 살기를 조절할 수 있는 좋은 살수가 될 수 있다. 진혁이 지금 와서 살수 부대를 훈련해도 딱히 쓸 데는 없다. 심심했던 와중에 진혁은 저 남자가 일월신교의 정식 살수 훈련을 받는다면 생존율이 얼마나 되는지 상상해 보았다.

‘저 덩치에 저렇게 느린 행동거지라면 훈련에서 살아남지 못하겠지. 평범한 인상은 나중에 실제 실무에 들어가면 도움이 되겠지만 말이야. 그것도 다 살아야 할 수 있는 일이지.’

사건이라고 할 수도 없을 조그만 일이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유 없이 자신에게 살기를 보이는 상황은 무림에서라면 흔하지만 서울에서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이런 종류의 말썽을 찾아서 돌아다닐 계획은 없었으나, 말썽이 먼저 이쪽으로 와준다면 기쁘게 박살 내줄 자신이 있었다. 기대감에 가득 찬 진혁이 흥미로워하며 생각했다.

‘택시 강도…… 사이비 종교?’

부유해 보이는 이들을 상대로 한 마차 강도는 중원에서도 흔하다. 하지만 돈이 아니라 인간의 몸, 즉 강시를 만들기 위해 시체를 제작하기 위한 용도의 마차 강도 역시 없지 않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진혁은 자는 척을 계속했다. 호흡을 조절하여 숨소리가 낮아지도록 하자 자는 척은 더 감쪽같았다.

‘장기밀매업자? 인신매매?’

인간의 간을 내먹어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부류도 있으며, 살아있는 인간의 노동력 자체를 필요로 하는 집단도 있다. 크게는 두 부류로 나뉜다.

‘돈이나 시체 등 파생 상품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과 살아있는 인간 자체를 필요로 하는 집단, 둘 중 하나지.’

임진혁은 이 택시 기사가 어느 쪽 부류에 속할지 생각했다. 살기를 뿜는 걸 보면 죽이고 싶다는 건데, 그렇다면 아마 시체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서울의 평범한 범죄자들은 어떻게 범죄를 저지를지 진혁이 궁금해하던 차. 도로 위에 빛나던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빛났다.

아무도 없는 도로 위 신호등이다. 멈출까 멈추지 않을까, 지금 이곳이 분기점이다. 빨간불에 차를 멈춘 기사는 뒤를 돌아보았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평범한 제빵사에게도 사건이 찾아온다니 즐겁다. 진혁은 태연하게 눈을 감고 조는 척 드르렁드르렁 콧소리를 내 보았다.

‘어떻게 하나 두고 볼까?’

“손님, 주무세요?”

기다리던 신작 영화를 보러 온 것처럼 호기심과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던 진혁은 평화로운 부름에 약간 실망했다. 하지만 진혁이 대답 없이 코 고는 소리만 계속 들려주자. 택시 기사는 품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그가 든 손에는 무엇인지 모를 투명한 액체가 든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택시 기사는 잠든 진혁의 눈치를 보며 그 주사기를 백진영의 손 쪽으로 가져갔다. 선량한 인간이 범죄자로 돌변하는 순간, 임진혁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 눈을 봐.”

“……?!”

임진혁이 그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무심코 눈을 깜빡이려고 하던 택시 기사는 척추까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몸이 안 움직여.’

밤이 내려오는 것처럼 세상이 암전하며, 서리 바람처럼 날카로운 지옥이 온몸의 신경 하나하나를 찌르고 있다. 고통스러우나 새끼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다. 아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단지 그의 뜻대로가 아니었다! 잘생긴 청년처럼 보였던 남자가 악마처럼 서서 그를 지켜보는 동안 김종철의 몸은 멋대로 움직였다. 기괴한 각도로 관절이 꺾이며 우드득 소리가 난다. 손가락에 쥐고 있던 주사기 바늘이 천천히 몸에 가까워졌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돼!! 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

비명을 지르고 싶다. 손을 내저어 자신의 가슴을 잡아 뜯고 싶다. 김종철이 절망하며 괴로워하고 외치지도 못하며 천천히, 굵은 주삿바늘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눈동자 안에 희고 굵은 주삿바늘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며 바깥의 빛을 반사해 순간적으로 바늘이 반짝 빛난다. 끝내 날카로운 바늘이 자기 자신의 목에 꽂히는 감촉은 차라리 안도감이었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녹색 불빛이 달려도 좋다고 선언했지만 더 이상 택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진혁은 실망한 얼굴로 잠든 택시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냥 마취제였냐…… 재미없잖아.”

임진혁은 일단 백진영을 부축해 차에서 내렸다. 새끼손가락 하나로도 부축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모든 힘을 다 쓸 필요는 없다. 진혁이 그 자리를 떠나기 전, 저쪽에서 다른 차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달려오던 그 차는 길 한가운데에서 멈춰있는 택시를 보고 놀란 듯 감속했다.

-쾅.

요란하게 차 두 대가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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