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65화 (165/656)

제 165화

미리 존재를 알고 있었던 임진혁은 침착하게 인사했다.

“의삼촌, 아버지. 어서 오세요. 아주머니, 여기 탁자 좀 붙여도 되겠습니까?”

만면에 희색을 띤 가게 주인이 나왔다.

“아예 여기로 자리를 옮겨. 내가 옮겨 줄게.”

“감사합니다.”

“이모, 여기 대방어 대짜 하나로 더 주지.”

네 사람이 둘러앉는데 백진영 혼자 입이 삐죽 나왔다.

“세상천지에 가게가 그렇게 많은데 왜 하필 여기로 오시고 그러세요?”

“이눔아. 방어 제철에 여기 소개한 건 나다, 나야!”

“그보다 소주 한 잔 받으시죠. 여기까지 오셨는데.”

진혁이 자연스럽게 술을 따랐다.

“아버지는 소망 시에 계신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오셨네요?”

“학생들 취업 건으로 출장 나왔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정흠이가 전화를 바로 했더라고.”

“아들한테는 연락 안 하시고……”

“어차피 촬영 중에는 전화 못 받지 않니?”

“끝난 지 좀 됐어요. 문자라도 남기시지.”

“문자는 어렵잖냐.”

“…….”

새 방어회가 나오고 난 후에는 다들 먹느라 바빠졌다. 오랜만에 회를 먹는 임운정은 혀를 내두르며 계속해서 젓가락을 움직였다.

“살이 아주 쫄깃하구먼! 동생이 말했던 대로네.”

‘아버지가 회를 아주 좋아하시는구나. 전에는 몰랐는데…….’

쉴 새 없이 고기를 드시는 아버지를 보며 임진혁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가족끼리 광어 회를 먹으러 가면 아버지는 회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며 매운탕과 밥 한 공기를 비우시곤 했다. 임진혁이 상념에 잠긴 동안, 자기 단골집이 칭찬받자 기분이 좋아진 백정흠이 신나서 말했다.

“그렇지? 여기가 최고라고. 진짜 맛있어.”

어른 둘이 이야기하는 동안 두 젊은이는 묵묵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다가 임운정이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비웠다. 임진혁이 곧 따라 나가고 나서 삼촌과 단둘이 남은 조카는 조개껍데기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고요한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백정흠이었다.

“사람 뽑은 거, 다 임진혁이가 원해서 뽑은 거더라. 네가 뽑자고 한 사람은 없고.”

백진영은 씹던 회를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 그렇죠.”

“근데 왜 네가 원해서 뽑는 것처럼 얘기했어?”

‘진혁이가 데리고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삼촌이 안 뽑아줄까 봐서요.’

표정에서 모든 것을 읽었나 보다. 백정흠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 야단맞을 놈은 따로 있는데 내가 너한테 꼬장을 부렸구나. 진혁이 나가면 가게는 끝장일 텐데, 진혁이 마음을 잘 살펴야지. 넌 잘 하고 있어.”

백정흠은 나름대로 조카를 달래려고 했지만 백진영은 점점 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정흠이 조카의 앞접시 위에 회를 올려주었다. 신선한 녹색 고추냉이를 듬뿍 올려놓은 회였다.

“넌 이거 좋아했지?”

진영이 입을 열었다.

“…… 삼촌.”

“왜?”

“전 고추냉이 안 좋아해요, 청양고추 좋아해요.”

“왜?”

“고추냉이를 와사비라고 부르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요. 와사비 좋아하는 건 소영 누나하고 지환 형이죠.”

“넌, 뭐 그렇게 까다롭게 따지면서 살아?”

◈          ◈          ◈

통화를 마친 임운정이 아들에게 물었다.

“넌 왜 나왔냐?”

“그냥요.”

며칠 만에 본 아버지는 건강해 보였다. 혈색 좋은 얼굴에, 자세는 흔들림 없이 곧다.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볼일이 있는 척하는 아들을 보고 임운정이 웃었다. 그가 씩 웃으며 손을 뻗어 아들의 머리를 헝클었다.

“대회 결과에는 너무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까지 올라온 거로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좋은 결과 내서 보여드릴 테니까 염려하지 마시죠.”

“하하하하!”

“그런데 정말로,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진희가 걱정된다고 해서 서울 병원에서 느이 큰이모 검사 한 번 더 했잖니? 그거 결과 들으러 갔다 왔다. 암 없어진 게 맞대.”

암이 아니라는 확진을 듣고서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버지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진혁이 궁금해했다.

“큰이모나 어머니가 안 가시고요?”

“큰이모가 어떻게 여기까지 혼자 오시냐, 누가 모시고 와야 하는데. 그리고 느이 어미는, 가게 때문에 몸을 뺄 수 없어서 내가 대신 갔지. 꼭 사람이 와야 알려준다고 하더라고.”

“저한테 가라고 하시지.”

“너는 오늘 촬영 날인데, 어떻게 너한테 가라고 하냐.”

“그래도 날짜 조정해서 제가 가면 되는데.”

“거, 진희가 다 알아봤다. 서울의 큰 병원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 식으로 조정하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한대. 느이 어미도 그렇고 이모님도 그렇고 빨리 알고 싶어 하셔서 내가 올라왔지. 서울 구경도 하고, 아들도 볼 겸.”

임운정이 아들에게 물었다.

“진혁아, 너는 뭘 그렇게 한꺼번에 사람을 많이 들였냐?”

“음, 원래 혼자서 일하려고 했는데 자꾸 사람을 더 들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실력이 괜찮다면 구인을 할 생각은 있었는데, 기회가 돼서 제가 배울 게 있는 사람이 둘이나 오게 됐습니다. 가게에는 행운이죠.”

말똥말똥 눈을 뜨고 대답하는 아들을 보며 임운정이 웃었다.

“그랬구나. 인건비 때문에 일시적으로 순이익에 큰 변동이 있었을 거 같은데, 그건 잘 상의했니?”

“…… 예.”

“새로운 사람이 한 명 들어오면 가게 분위기가 또 바뀔 텐데.”

“그렇죠. 리처드 베이커는 저하고 보는 시야가 달라요. 좀 더 가게 순이익을 생각하고, 원재료에 지나치게 돈을 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됐어요.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게 이제 이해가 됩니다.”

“내 얘기는 안 듣더니.”

“아버지는 생각해보라고 하셨지, 이게 옳다-라고 하시진 않았잖아요.”

백정흠이었다면 호통부터 쳤을 일을, 임운정은 이런 점도 있다고 설명한 후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 혈연인 백정흠이 ‘이것이 좋다’며 자신이 보기에 좋은 방향을 대놓고 알려주며 그렇게 하는 것을 종용하는 것과 확연히 구분되는 태도다. 임운정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네가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거니까, 내가 뭐라고 할 순 없지.”

“그나저나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진혁이 목소리를 낮추어 심각하게 말하자 임운정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뭔데.”

좀처럼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 아들이다.

‘무슨 큰일이 생겼나?’

아버지는 걱정하며 귀를 기울여 경청했는데, 아들놈은 전혀 엉뚱한 얘기를 했다.

“회를 좋아하시는데 저희들 때문에 여태까지 양보하셨잖습니까. 이제는 제가 많이 사 드릴게요. 같이 먹으러 가요.”

무슨 일인가 긴장했던 아버지는 한시름 놓았다.

“푸핫!”

다시 생각해 보니 웃겨서, 그는 그만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내가 회를 좋아하는데 양보한 줄 알았어?”

“…… 아닌가?”

진혁이 눈을 껌뻑껌뻑하며 어벙하게 서 있자, 아버지가 설명해 주었다.

“난 말이지, 회는 방어회가 좋다. 하지만 매운탕은 광어 매운탕이 좋아.”

“예?”

“사실 매운탕은 생선이 들어가기만 하면 웬만한 건 다 좋아하긴 해. 광어든 우럭이든, 대구든 뭐든 간에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지.”

“아…….”

진혁이 혼자 입을 벌리고 서 있는 동안 임운정은 입맛을 다시며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무엇이 있는지 늘어놓았다.

“방어나 참치같이 기름기가 좀 있는 게 좋달까. 내가 소고기 육회도 또 좋아하잖냐.”

아버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점이 새록새록 드러난다. 아버지는 진혁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말했다.

“아비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도 아직 몰랐냐.”

“시정하겠습니다!”

“시정은 무슨 시정. 너 좋아하는 음식이나 잘 찾아서 식사 잘 해라. 밥때 챙기면서 일해. 젊고 건강한 시절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줄 알아? 한순간이야, 한순간.”

‘계속될 건데요…….’

말은 못 하고 입 다물고 서 있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가 부드럽게 말했다.

“너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아비는 알아서 잘 할 테니, 네 한 몸을 챙겨. 타지에서 혼자 일하기 힘들 텐데,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저도 알아서 잘 하고 있습니다.”

“그래. 이제 슬슬 들어가자, 너무 밖에 오래 서 있었다.”

“네.”

아버지가 먼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백정흠과 백진영, 두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임운정은 아무렇지도 않게 털썩, 원래 앉았던 자리에 주저앉았다.

“매운탕 좀 시키지.”

“이모, 여기 매운탕 하나만!”

“소주도 한 병 더 주세요.”

입을 삐죽거리며 앉아 있는 백진영과 백정흠, 두 사람이 묘하게 닮았다. 임운정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내 아들놈이 착각을 하나 했더구만.”

“엉? 무슨 착각이요?”

“내가 회를 안 좋아해서, 자기랑 엄마한테 양보한다고 생각했나 봐.”

“형 회 좋아하잖아.”

임운정은 즐거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말했다.

“방어만 좋아해. 광어는 양보하지. 그렇게 미리미리 양보해둬야, 대방어 제철에 아이 엄마가 나한테 방어를 양보하거든. 이게 바로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계획이야.”

이미 탁자 위에는 빈 소주병이 여러 개 늘어서 있지만 임운정은 전혀 취하지 않았다. 아까 한 잔 마시고 얼굴이 새빨개진 백진영과, 들이마신 소주가 세 병이 넘어가자 코끝부터 붉어지고 있는 백정흠 둘이 킬킬대며 웃었다.

“진혁이가 그렇게 순진한 데가 있다니까요.”

“그러게, 따박따박 하니 일도 잘 하고, 사람 마음도 잘 잡고. 유능한 우리 의조카가 그런 면이 또 있었어? 아버지 입장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효자네. 효자야.”

“뭘 그런 걸 가지고 효자라고 해?”

“이제 겨우 이십 대인 어린애가 아버지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하니까 그게 효자지.”

백정흠이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진영이가 도량이 넓은 줄 알았는데 쪼잔하게 삼촌 입장은 생각 못 하고, 이러는데 말이지.”

그 말은 이미 술에 취해 예민해져 있는 백진영의 마음을 날카롭게 후벼팠다. 백진영이 무어라 입을 열려고 하는데 임진혁이 오른손으로 백진영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형, 속 쓰리면 물 마셔.”

임진혁이 왼손으로 물이 담긴 컵을 내밀었다. 그는 탁자 아래에서 물에 술수를 써 미지근했던 물의 온도를 더 낮추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마신 백진영은 하려던 말을 마저 하지 않고 캑캑거렸다.

“윽, 차가워.”

‘대충 어떤 상황인지 눈에 보이는데.’

임진혁은 느긋하게 백정흠과 백진영이 투덕거리는 것을 보았다. 귀엽고 흐뭇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다.

‘좋은 칼 두고 말로 싸우는 걸 보면, 사이가 참 좋아.’

그는 승천 전장의 아들 세 형제를 떠올렸다. 장남과 차남은 본처의 소생이나 삼남이 첩의 소생이어서 눈치를 보았다. 장남은 귀하게 자라나 돈 보기를 우습게 알고 차남은 돈을 중히 여겼으나 상재(商材)가 아니어서 사업에 손을 대는 족족 돈을 잃었다. 삼남은 사업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술을 마시거나 놀러 다니며 미리 싸움에 진 개처럼 꼬리를 말고 지냈다.

그 아비의 장례식을 치르던 날, 장남과 차남은 누가 더 많은 재산을 가지느냐 하는 문제로 다투며 서로를 칼로 찔러 상처를 입혔다. 비밀리에 얻었던 기연을 통해 무공 고수로 거듭나 있었던 삼남은 성공적으로 두 형을 제압하고 평화적으로 장례식을 진행하였다.

물론 그 기연은 진혁이 안배했던 것이었고, 그는 승천 전장을 자연스럽게 일월신교 세력의 일부로 통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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