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62화 (162/656)

제 162화

그 이야기를 들은 유키코 김 쉐프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내가 저걸 고려했어야 하는 건데.’

브라이언 신 역시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문어 다코야키라는 아이디어에 너무 집착했나? 유키코 쉐프는 어떻게 간장을 케이크로 만든 거지. 분명히 많은 연구를 했을 텐데…… 내가 그 방법을 알았으면 이번에 큰 도움이 됐을 거야.’

이용태는 이것이 방송되면 자신의 체면이 얼마나 구겨질 것인가, 자신의 밑에 있는 쉐프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고민하느라 진혁의 케이크에는 거의 신경 쓰지 못했다.

반면, 루이스는 솔직하게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야, 저게 맛있어? 신기하네.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

눈을 껌뻑껌뻑하며 호기심 넘치는 얼굴로 그는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브라이언 쉐프, 저거 먹어보고 싶지 않아요? 나는 저렇게 테마가 확실한 케이크가 좋더라고.”

“취향 존중합니다. 나는…… 발목 말고, 파나코타는 먹어보고 싶긴 한데요.”

유키코가 그 대화에 참여했다.

“진혁 쉐프의 파나코타 맛있어요. 그런데 저건 안에 딸기랑 파인애플 등 다양한 과일을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넣어서 더 예쁘네요. 더 맛있어진 게 틀림없다니까요.”

그녀가 군침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의 케이크에 대한 상념에서 벗어나 진혁의 케이크를 응시했다. 루이스 쉐프가 놀라 물었다.

“먹어 봤어요?!”

“예, 신메뉴 개발한다고 이것저것 가져와서 먹어 보게 하던데요? 다른 사람들이 맛보면 어떤지 감상이 궁금하다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유키코의 말에 브라이언과 루이스, 이용태 모두 놀랐다.

‘저 사람은 라이벌 의식이라는 게 없나?’

‘레시피를 숨긴다거나…… 항상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하는군. 자신감이 넘쳐.’

“와…… 임진혁 쉐프, 우리도 놀러 가면 먹여 줍니까?”

진혁은 잠깐 생각했다가 대답했다.

“돈 내면?”

“푸하하핫!”

“방금 한 말 잊지 마시죠, 돈 가지고 갈 테니까 팔아 달라고요.”

출연자들이 잡담을 나누는 동안 심사위원들은 시식을 마쳤다. 스텔라 위스커스가 입을 닦았다. 그녀는 벌써 잔혹하게 잘려있던 발목 조각까지 모두 먹어버린 후였다.

“상큼한 과일 맛과 설탕의 단맛을 절묘하게 조절했습니다.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파나코타가 아주 부드럽군요.”

극상의 칭찬이 이어지고 난 후 주영모 쉐프가 자신의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새하얀 접시는 흔적이라고는 없이, 설거지한 것처럼 깨끗이 비어 있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 맛있었지. 바다 테마가 아니었다면 확실히 더 좋았을 텐데. 여기에 어울리는 테마는…… 해양 사고 예방? 정도?”

아드레아노 존부가 킥킥 웃었다.

“바다에서 맞이하는 할로윈? 바다의 무법자 조스?”

“그쪽 테마가 더 어울리긴 하는군요?”

“엔터테인먼트 파크에서 조스 테마 디저트로 내놓으면 딱 좋겠는데, 지금 일반인들에게 접근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디자인이죠.”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우리가 해양생물이라고 할 때 평화를 의식하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잖습니까. 반드시 평화로워야 한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이희주가 손을 들었다.

“자, 심사위원들이 토론하는 동안 출연자 여러분들은 오늘의 케이크를 왜 그렇게 구상했는지, 말씀하시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예!”

회의실에 들어간 아드레아노 존부가 제일 먼저 말을 꺼냈다.

“지나치게 그로테스크하고, 디테일하다는 이유로 과거, ‘폭풍우 치는 하늘’에서 임진혁 쉐프가 좋지 않은 점수를 받은 적이 있었지요.”

그는 침착하게 과거 진혁이 만들었던 케이크를 회상했다. 그 외양은 정말로 예술작품에 가까웠다. 두 심사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욕을 돋우는 느낌은 아니었죠.”

“기본적으로 디저트라는 개념에 따라오는 분위기, 그 자체에 도전한다고 해야 하나. 사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아닌가.”

주영모가 중얼거렸다. 통역이 말을 전달하자, 다른 두 사람이 수긍했다.

“하지만 그때 논란이 있었습니다. 충분히 맛있는 케이크, 맛이 좋으면 케이크는 아름답다고 했던 우리의 평가 기준에서 어째서 ‘지나치게 사실적이라는 이유로 낮은 점수를 받는가?’에 대한 항의가 꽤 있었죠. 확실히 맛있었으니까요.”

“엄청나게 맛있긴 했죠. 하지만 이 쇼의 목적은 그게 아니잖아요? 인상적이고 화려한 디자인적이고 우아한 구조물을 만드는 대회는 따로 있다고요. 푸드카빙 대회라든가, 데코레이션 아트 대회라든가. 임진혁 쉐프는 지금 여기에 왜 와 있는지 자체를 잊은 게 아닌가요?”

스텔라 위스카스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아드레아노 존부 쉐프! 결국에는 디저트 팩토리에서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을 원하는 거잖아요? 능력 있는 젊은 세대 쉐프를 찾아서, 최종적으로 그들이 개발한 메뉴에 이름을 붙여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디저트 팩토리에서 판매하실 거잖습니까. 그런데 저런 걸 어떻게 팔아요.”

그녀가 잘라 말했다.

“폭풍우 치는 밤하늘, 멋지고 중후하죠. 하지만 그걸 만들어 팔 수는 없습니다. 한 개씩 임 쉐프에게 받은 다음에 전시는 가능하겠지만…… 그걸 매일같이 만들어서 판매할 수는 없다고요. 오늘의 조스 파나코타는 좀 낫지만요. 그래도! 조스 파나코타도 디저트 팩토리하고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절대 못 팔아요. 엄지 요정을 잘라서 케이크에 집어넣었다고, 어린이들이 울면서 달려들어올 것 같은 디저트잖아요.”

“디저트 팩토리가 그런 느낌이 아니긴 하지.”

아드레아노 존부가 인정했다.

“아니, 그걸 말해야 아느냐고요,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상업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물건을 만들어야죠. 사프란이나 캐비어 같은 특별한 재료를 사용할 때를 제외하고, 팔 수 있는 물건, 누구나 쉽게 재현해서 만들 수 있는 난이도의 디저트면 더 좋고!”

스텔라가 가슴을 치며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거창하고 겉멋 들고, 예술인 척하는 물건을 맛있게 만들어낼 수 있다니! 누가 그런 장식품이 맛있기까지 할 것이라고 생각하겠냐고요. 사서 방부제 처리해서 영원히 보관하지, 먹을 사람이 어디 있겠냔 말이에요. 애초에 컨셉을 잘못 잡았다고! 맛있는 건 평범하게 맛있어 보이게 만들란 말이야.”

그녀가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자 주영모가 말했다.

“워, 워. 컨셉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고, 그냥 컨셉을 뭉개고도 난 이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 이렇게 하려고 한 게 아니냐고 우리는 결론을 내렸었죠.”

“그런데 이번에 또 이런 걸 만들어 왔지. 원래 세계 정상급 페이스트리 쉐프들 중에서도 유달리 특이한 사람이 많지만 얘도 참 특이해.”

아드레아노 존부가 말하자 주영모가 키득키득 웃었다.

“아드레아노 존부 쉐프 같은 사람 말입니까?”

“나는 정상급이 아니라 정상이고.”

존부가 웃으며 맞받아치고, 말을 이었다.

“보통 저 나잇대의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하는 일은 선배들이 만들어온 위대한 작품을 분석하는 거야. 맛을 분석하고, 외양을 살피고, 그리고 최대한 유사한 것을 만드는 데 신경을 쓰는데……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왔던 것에서 2% 다른 물건을 내놓고 그러면 혁신이 된단 말입니다?”

“도넛에 처음 가운데 구멍을 뚫은 소년 이야기 같은 거죠.”

스텔라가 이야기하자 아드레아노 존부가 말했다.

“바로 그렇지. 동그란 튀김 빵이 있었으니까 거기에 구멍을 뚫은 특이한 빵, 이런 것도 인기를 얻었던 건데……, 지금 임진혁 쉐프가 하는 건 지금까지 누가 해왔던 것도 아니야.”

“유키코 쉐프는 확실히 일본식 제빵을 따르고 있지요.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그리고 맛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단 것은 달지만 지나치게 달지 않고, 균형을 잘 잡고 있지. 루이스 강은 프랑스식 기본 빵을 만드는데 탁월해. 용태 쉐프가 만들어내는 건 딱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만드는 호텔 스타일 디저트고. 뭐가 나올지 대충 예상이 되는데…… 참.”

“폭풍 같은 신입이죠. 누가 저 쉐프를 신입이라고 볼 건지. 그 파나코타를 맛보고 나면 누구도 임진혁 쉐프를 보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지금 나조차도 그런걸요. 사실 벌써 우승자를 발표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승자라고 하기에는 컨셉 자체가 여기랑 안 어울린다고요. 도대체 어디로 튈 지기 알 수가 없어. 해양 생물이라고 했는데 시체가 왜 튀어나와? 여태까지 뭘 하면서 살았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독특하긴 독특해요.”

“상을 주지 않기에는 너무 맛있고, 상을 주기에는 방향이 다르지. 브라이언 신은 어떻습니까? 그 정도 케이크라면 얼마든지 상품화가 가능하죠. 아이디어가 신선하지만 방법이 특이한 건 아니니.”

“맛이 괜찮긴 하지만 디저트 팩토리에 올라갈 만큼은 아니라고 봐요”

스텔라 위스커스와 주영모 쉐프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드레아노가 중얼거렸다.

“임진혁 쉐프의 그 참신성은…… 경험이 적기에 가능한 거야. 그런데 그 놀랄 정도의 완성도는 경험이 충분한 쉐프들만이 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더 이상하고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주영모가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보통 실력이 좋아지면서 옛날에 갖고 있었던, 선배들하고 다른 아이디어는 많이 버리게 되니까…… 점점 더 보수적으로 되어가니까, 그런 걸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드레아노 쉐프.”

“그렇지. 뭐 조각이라도 하다 왔나? 그 손재주를 갈고 닦으면 정말로 뭐든지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스텔라 위스커스가 한숨을 쉬었다.

“뭐든지 만들 수 있겠지만, 그가 만드는 걸 다른 사람들이 따라 만들어서 프랜차이즈에서 내놓기는 어렵겠죠.”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1인 오너 쉐프라면 엄청난 장점일 수도 있는데…… 자기만의 컨셉이 확고하게 있고, 팝업스토어로 내도 되고. 전의 <폭풍우 몰아치는 밤하늘> 같은 케이크 하나 갖다 놓고 주문받으면, 셀러브리티들은 아~주 좋아할걸. 특별하고 좋잖아.”

“그 길은 정말로 잘 어울리겠는데요.”

아드레아노 존부가 손뼉을 쳤다.

“자, 자. 우리가 쉐프 한 명의 미래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건 아니잖습니까. 눈앞에 있던 디저트만 평가하면 되지. 이용태 쉐프의 <독도의 우리 땅> 케이크부터 점수를 매겨 봅시다.”

“그래요.”

심사위원들이 동의해 가며 하나씩 점수를 매기고 마지막, 진혁의 파나코타에 점수를 매겨야 할 시간이 되었다.

“조스 파나코타는 진짜 애매하네. 몇 점을 줘야 하지.”

아드레아노 존부가 망설이자, 주영모 쉐프가 킥킥 웃었다.

“그런데 그거 이미 조스 파나코타로 이름 지어버린 겁니까?”

“조스 파나코타라고 부를 수밖에 없잖아요?”

스텔라 위스커스가 말했다.

“해양사고, 이런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다 매기셨습니까?”

“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