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59화 (159/656)

제 159화

잡학다식하고 유머 감각까지 있었다. 그때 유키코는 처음 그 남자의 이름을 기억했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흔한 유학생 한 명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런 추억의 음식이었다.

‘도넛 위에 색색깔로 초콜릿을 입혀서, 바닷가 위에 올려놓을 거야.’

참으로 오랜만에 첫 만남을 회상했다. 반죽하는 내내 그녀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한편 루이스 강은 어린 시절 갔던 프랑스의 니스 해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1프랑을 주고 오렌지를 사면, 바로 그 자리에서 신선한 오렌지를 짜줬지.’

아직 어렸던 동생, 마리오는 쪼르르 뒤를 따라오면서 말을 잘 들었다. 지금은 머리가 굵어졌는지 예전과는 달랐다.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국제전화가 와서 기쁘게 받았는데, 어째서 그 녀석한테 지냐면서 불평을 했다.

‘아, 그럼 네가 직접 대결하라고.’

그때만 해도 동생 녀석은 형이 세상에서 최고라면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는데 말이다. 루이스는 섬세한 솜씨로 모델링 초콜릿을 빚어냈다. 그가 생각하는 니스의 해변에는 무지개 색 파라솔이 빠지면 안 된다.

브라이언 신은 바다라는 멋진 주제를 형태만 묘사하고 끝낼 생각이 없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들어있지 않아.’

어렸을 적 먹어보았고, 이번에 다시 돌아와서 먹어본 붕어빵. 그 안에는 팥이 들어 있었고 붕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선살을 잘 익혀서 뼈를 발라내고 빵 안에 넣어서 구워보니 맛이 어울리지 않았다. 생선살에는 좀 더 바삭바삭한 튀김이 더 잘 어울리는 것이다.

‘하지만 타코야키에는 문어가 들어가지.’

그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문어 안에는 쫄깃쫄깃한 문어 살이 들어갈 것이다. 바다 속 심연, 거대한 문어를 부각하기 위해 바다 위에 배를 띄울 생각이었다. 아주 조그만 비스킷 배는 거센 풍랑에 휩쓸려 거대 문어를 만나게 될 것이다.

‘식감을 너무 푹신푹신하게 하면 이 크기로는 질려버릴지도 모르니까, 좀 더 바삭한 면을 살려야 해.’

이용태는 다른 참가자들을 힐긋힐긋 살폈다. 마지막까지 그냥 서 있던 임진혁이 손을 놀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서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조금 전까지 멈추어 서 있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레시피를 전부 모아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매 모양이었던 라즈베는 순식간에 곱게 갈렸고 설탕과 물엿이 들어간 채 팔팔 끓기 시작했다. 온도가 오르는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 냄비까지 순식간에 적당한 온도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젤라틴을 동시에 불리고 있어. 평소에 자주 만들어오던 레시피인가.’

정신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미 열두 명 중 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앞으로 총 다섯 라운드가 남았고, 이 라운드 전부 텔레비전에 방송됐다. 그는 자신에게 걸려 있는 무게가 부담스럽고 무거웠다.

‘이번 라운드에 떨어지면 안 되는데…….’

긴장해 있는 만큼 언제 실수할지 몰랐다. 이전번에 탈락한 리처드 베이커만 해도 시작할 때부터 우승 후보라고 불려왔던 사람이다. 그는 케이크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켜 한국인으로 살아남아 있다는 장점을 살려볼 생각이었다.

‘임진혁 쉐프의 레드 데빌 티셔츠 케이크는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

심사위원에게는 나쁜 점수를 받았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꽤 이슈가 되었다. 그래서 그가 테마로 잡은 것은 누구나 사랑하는 우리의 유산이었다.

‘독도. 그리고 노랑부리백로하고 갈매기, 해국.’

셋 다 독도에 자생하는 우리 고유의 생물들이었다. 하지만 과연 백로와 해국이 바다 생물인가 하는 데에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니까 괭이갈매기밖에 없어. 괭이갈매기와 독도, 그리고 바다를 만드는 거다.’

바다는 무슨 맛이어야 할까. 하늘색과 파란색은 색소로 낸다고 해도, 거기서 기대하는 맛은 기본적으로 상큼함이 아닐까. 그는 배를 무스로 만들어 베이스가 되는 스퀘어 케이크로 만들고, 그 위에 초콜릿 독도와 초콜릿 괭이갈매기를 올리면 어떨까 하고 구상했다.

문제는 그가 독도의 모양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며, 괭이갈매기의 모양 역시 기억 속에서 희미하다는 점이었다.

‘갈매기는 대강 M자 비슷하게 만들면 되겠지. 독도는…… 왼쪽이 크고 오른쪽이 더 작던가? 바위섬처럼 울퉁불퉁하게…….’

무스 케이크가 굳혀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열심히 몰드를 찾았다. 하지만 독도나 괭이갈매기 모양의 설탕공예용 틀은 없었다. 하트나 구두, 장미와 고깔, 크리스마스트리와 서리, 선물 상자나 리본 등 흔한 모양 틀만 가득했다.

‘퐁당으로 해야겠다.’

틀에 굳히는 편이 훨씬 낫겠지만 독도 모양의 틀이 시판되고 있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옥수수를 가져왔다. 팬에 가염 버터를 바른 다음 옥수수를 올려 튀기자, 향긋한 냄새가 전체 무대에 퍼졌다.

“지금 이용태 쉐프가 팝콘을 튀기고 있는 건가?”

“팝콘으로 뭘 할지 기대되네요.”

“콜라 한 잔 들고 영화관에 가면 좋을 것 같은 향기에요.”

심사위원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이용태를 주목했다.

“주제가 논밭도 아닌데 도대체 팝콘으로 뭘 하려는 걸까요.”

충분히 튀겨진 팝콘이 식는 동안 이용태는 다시 배 무스 스퀘어 케이크로 돌아갔다. 아드레아노 존부가 고개를 저었다.

“팝콘을 어떻게 하든 저 케이크하고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아, 팝콘 위에 퐁당을 씌우는군요. 저럴 거면 팝콘이 아니라 아몬드 초콜릿 볼 같은 걸 하는 게 좋지 않았으려나.”

“초콜릿볼은 녹을 걸요.”

“그것도 그러네.”

유키코는 주제 중 하나인 ‘생물’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있었다. 메론 레진(메론퓨레가 함유되어 향과 맛을 내는 연둣빛 과즙 색소)과 박력분, 전분과 우유, 탈지분유와 버터를 넣어서 필링부터 만든다. 메론 레진과 우유를 따로 섞은 후, 다른 재료들에 넣을 때 골고루 섞이도록 천천히 넣는 것이 중요하다. 거품기로 잘 젓고 나서 체에 거른 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충분히 걸쭉한 메론 필링이 된다.

그녀가 생각하는 메론빵에는 메론 필링이 반드시 필요했다. 아까 만들어둔 빵 반죽과 쿠키 반죽은 발효를 위해 냉장고 안으로 들어갔다.

2차 발효와 가스 빼기, 그리고 필링 넣기까지 다 끝난 후에야 심사위원들이 미소를 지었다.

“일본식 메론빵에 팔다리를 달아서 거북이를 만들었군요.”

“귀여워 보여요.”

스텔라 위스커스가 웃으며 말했다.

“기존에 있던 빵의 모양을 살리면서 디자인한 점이 마음에 드네요.”

통통하고 귀여운 거북이 세 마리가 유키코의 조리대 위에 올라갔다. 반면 이용태의 팝콘 섬 위에 올라간 검은색 퐁당은 그리 좋은 평을 얻지 못했다. 심사위원들이 한 마디씩 했다.

“카라멜 팝콘에 슈가페이스트를 올려놓았으니 끔찍하게 달겠군요.”

“단맛에 단맛을 더하면 오히려 느끼할 뿐인 것 같은데…… 지금 저 배 무스 케이크가 퐁당과 팝콘의 단맛을 중화시켜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아주 큰 실수입니다.”

“용태는 설탕공예의 장인인데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버리고 왜 저걸 하고 있는 거지?”

이용태 쉐프와 함께 일한 적도 있던 주영모 쉐프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글쎄요.”

나름 퐁당을 뭉쳐서 독도를 만들어보려고 하다가 중심 틀이 없어 실패했기에 중심 틀에 좀 더 울퉁불퉁한 것을 넣고자 한 회심의 아이디어였지만, 심사위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리석은 짓이야.”

독도라는 주제에 몰입한 이용태 쉐프는 눈을 빛내며 작업에 몰두했다.

“다들 좋아해줄 거야.”

2002년 월드컵은 한국 축구의 신기원이라고 할만하다. 그때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되어 응원을 했다. 임진혁이 만드는 케이크는 묘하게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데가 있었는데, 이용태는 그 ‘애국심’에 기대고 싶었다.

“독도는~우리땅~♬”

퐁당으로 괭이갈매기 모양이 될 흰 덩어리를 빚어내며 이용태 쉐프는 저절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임진혁이 만들고 있는 것은 거대한 바다였다. 거대한 스퀘어 틀을 가져온 그는 바닥 면을 랩으로 감싸고 위에 과일을 얹었다. 물고기 모양으로 깎은 파인애플과 딸기, 황도. 그리고 체리와 피스타치오는 그 모양 그대로 올렸다. 망고는 부러 울퉁불퉁하게 깎아내 바위처럼 주변에 뿌렸다.

‘바다는 차갑지.’

원래 차가운 계열의 디저트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어제 바바루아를 만들었으니 오늘은 파나코타가 어떨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세로로 잘라내 씨를 뺀 바닐라빈을 설탕과 버무리고, 생크림과 오렌지 제스트를 소스팬에 담았다. 파나코타가 끓기 전까지 시간 동안 장식용 설탕을 만들기 위해 냄비를 따로 올렸다. 설탕을 넣을 때 냄비 옆면에 설탕이 붙어 타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진혁은 씨익 웃으며 아무렇게나 설탕을 넣었다.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 냄비 안 속, 설탕들은 알아서 냄비 가운데로 점프했다.

‘허공섭물.’

최근 들어 그가 제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기술이다. 밀가루 없이도 손에 끈적거림이 묻지 않게 반죽할 수 있고,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할 때도 도구 따윈 필요 없다.

‘전에 허공섭물 없이 제빵을 어떻게 했는지 몰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또 어떻게든 하긴 했다. 허공섭물 없이 제빵을 하는 이 시대의 다른 제과제빵사들, 아버지나 일봉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감탄이 나올 뿐이다. 어찌 보면 무공의 뒷받침 없이 빵을 만들고 구워내 훌륭한 작품을 완성하는 유키코나 리처드, 브라이언이나 루이스 같은 이들이 진정한 예술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가진 걸 안 쓸 순 없지.’

진혁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공을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쓰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능력 없이 제빵을 하는 것이 어색했다. 양손이 있는 제빵사에게 갑자기 한 손으로 제빵을 하라고 하면 할 수야 있겠지만 속도가 느려지고 불편할 것이다. 진혁의 경우 무공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은 외팔이 제빵사가 제빵을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강남의 오픈키친에서 작업하면서 어느 시점에 어떻게 무공을 대표적으로 허공섭물을 사용하면 아무도 눈치를 못 채는지 이미 파악이 끝났다. 또한 유키코를 곁에서 관찰하면서 어느 정도의 속도로 제빵을 하는 것이 프로 제빵사인지도 알아냈다.

‘큰 도움을 얻었어.’

그는 휘파람을 불며 즐겁게 국자로 캐러멜라이즈될 설탕 위 불순물을 걷어냈다. 국자를 냄비 벽에 가까이 붙이면 불순물들이 알아서 점프해 국자 속으로 뛰어든다. 무림에서 그 정도로 고생했으니 이 정도는 괜찮다며 진혁은 흐뭇하게 불순물 하나 없이 깨끗한 설탕을 소스를 바라보았다.

양강지기의 힘으로 화르륵 타올라 곧 달아오른 설탕은 금방 165도가 되었다. 그는 이번에 색소를 넣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바로 주석산을 한 방울만 넣었고, 걸쭉할 때까지 식혔다. 종이 짤주머니에 담기기 전까지 캐러멜라이즈 설탕 소스는 잠시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육 소시지.”

사람 다리 모양으로 깎은 시판되는 소시지. 이것은 파나코타의 맛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최대한 조금만 넣었다. 그랬더니 다리라기보다 잘린 발목에 가까운 모양이 되었다. 절단된 부분이 지저분하게 뜯겨나갔고 그 주변이 유난히 붉은 것이 중요하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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