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4화
“그렇게 먹으면 안 됩니다.”
진혁이 제지했다.
《그렇게 먹다간 화상 입습니다.》
『엇.』
막 입안에 치킨 파이를 집어넣으려던 리처드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막 오늘의 커피를 내린 백진영이 황급히 설명해 주었다.
『안에 들어있는 육수가 매우 뜨거워서 화상 위험이 있어요. 여기 있는 스푼을 사용해서 드시죠.』
『중국식 딤섬과 같은 방식인가.』
신이 난 리처드가 포크를 들어 빵을 조금 찢었다.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바로 빵 껍질이 푸쉬식, 김이 빠지며 쪼그라들었다. 그윽하고 진한 닭고기 향이 가게 안에 확 풍겼다. 저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나도 치킨 파이 먹고 싶다…….”
김가영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서창덕이 말했다.
“돈 주고 사 먹어. 한정 300개만 만들어 놓으셨으니까, 개수 모자란다.”
“아우, 진짜. 직원용으로 따로 만들어 주시면 안 돼요?”
직원들이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소리는 리처드 베이커에게 들리지 않았다. 치킨 파이를 베어 문 그는 맛 그 자체에 깊이 집중했다.
‘껍질이 파삭하게 얇고, 흘러나오는 치킨 수프가 절묘하게 간이 되어 있어 맛있어. 파이지와도 잘 어울려. 이건 수프를 수프대로 내놓고 사이드로 빵을 곁들여서 빵을 찍어먹게 해도 될 구조야.’
하지만 임진혁 쉐프는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바삭바삭한 겉껍질 안쪽에 쫄깃쫄깃한 껍질을 두는 2중 구조를 설계했다. 얇은 파이지 안의 껍질이 육즙을 가두어 두고 있다는 사실과, 수프 안에 잘게 썬 닭고기와 야채가 일부 들어있다는 것 역시 바로 알았다. 진하고 걸쭉한 육즙의 향기가 코를 간지럽히는 것과 동시에 수프가 입안에서 파이지를 적셨다. 뜨겁고 열정적인 닭고기 수프는 감기에 걸릴 때마다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미국식 치킨 수프와도 유사하면서도, 독특한 풍미를 가졌다.
‘이 맛은…… 한국식 양념 치킨이라고 했던가.’
순식간에 치킨 파이를 먹어치운 리처드 베이커는 임진혁이라는 쉐프의 실력에 대한 평가를 고쳤다. 그는 음식을 구상하는 데 있어 천재인 것이 아니라, 노력파인 것이 분명했다.
‘이 쫄깃쫄깃한 안쪽 면과 바깥의 얇은 파이지, 아예 반죽부터 달라. 두 종류의 반죽이 동시에 익도록 수없이 연습해서 정확한 비율을 알아냈을 거야. 실험과 실험을 거듭해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는 과학자 같은 쉐프야.’
그리고 그런 비결을, 뜨내기처럼 파트타이머로 일하러 온 쉐프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했다.
‘레시피 교환에 흔쾌히 응해주었다고, 안토니오 쉐프가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지. 돈을 받고 팔아도 될 정도로 엄청난 능력이 있는, 특별한 레시피였다고.’
일반적으로 밀가루와 달걀, 우유 등을 사용하지 않고서 채식주의자용 빵 등을 개발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더 많은 노력이 든다. 흔히 하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양한 비율을 실험하며 맛있는 빵이 될 때까지 수없이 실패를 겪는다. 재료와 돈, 시간을 들여 개발한 새 레시피를 함부로 나누어주기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젊은데도 도량이 넓은 사람이야. 나중에 충분한 경험을 쌓고 난 다음에는 어떤 쉐프가 될까.’
임진혁의 아버지도, 친구도 아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함께 일하기 시작했을 뿐 단순한 출연자 동료였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임진혁이 어떤 쉐프가 될지 기대되어 두근거린다. 리처드 베이커는 자신이 왜 두근거리는지 돌이켜 보았다. 진혁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서 성실하게 일하며, 다른 이들의 몫까지 혼자 맡아서 하려는 책임감은 그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과 매우 닮았다.
‘돌아가신 아버지 같았어.’
그래서 첫 출근 아침부터,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다. 임진혁이 열심히, 자신의 몸을 깎아가며 일하는 것을 말리고 싶었다. 그가 참견할 일이 아닌, 임진혁과 백진영 사장의 개인적인 일인데 그답지 않은 짓을 해버렸다. 리처드는 아까 말한 것을 마음 속 깊이 후회했다.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닌데 말이지.’
뛰어난 실력에 성실한 태도, 거기에 훌륭한 인성까지 모든 것을 갖춘 신인 쉐프였다. 그가 무리하게 일하다가 마침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치킨 파이를 맛본 후 레시피를 내려다보면서, 리처드는 다시 한 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이런 배합인가? 반죽을 이렇게 다르게 해서 이런 맛이 나오는구나.’
너무나 맛있다. 흔히 먹는 미국 남부 가정식의 치킨 수프와도 유사하지만 아주 미묘하게 한국적인 풍미가 있었다. 나중에 진혁에게 로열티를 지불하고서라도 빵집에 들여오고 싶은 맛이었다.
『맛있죠?』
유키코가 웃으며 말했다. 리처드 베이커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좀비를 무덤에서 깨울 수 있을 것 같은 맛인데.』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그는 나름 유쾌하게 농담을 던졌다. 맛있는 빵을 먹고 나니 의욕이 더 생겼다.
◈ ◈ ◈
3시간 후, 리처드 베이커는 필사적으로 반죽을 다시 하고 있었다.
『분명히 레시피대로 했는데 어째서 안 되지.』
가게는 이미 한 시간 전에 열렸다. 임진혁과 백진영 그리고 유키코와 김은동 네 사람 모두 제몫을 하고 있다. 홀 직원 세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오후 2시까지만 일하는 막내 예은 역시 열심히 뛰어다니며 서빙 중이다. 하지만 바쁜 이 와중에, 리처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절반의 몫을 해내기는커녕 1인분의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완전히 방해, 마이너스 그 자체다.
『잘 되지 않죠?』
유키코는 세 시간 만에 모든 빵을 재현해 냈다고 했다. 리처드는 그녀가 실력이 부족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황금 버터 앙금 소보루 빵과 헌드레드 초콜릿 쿠키는 어떻게든 만들어냈다. 자신의 주방이 아니어도 불을 조절하던 솜씨가 어디 간 것은 아니기에, 잘게 썰어낸 양파가 맛좋게 카라멜라이즈 되도록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블랙 어니언 타르트도 괜찮았다. 하지만 치킨 파이와 베이컨 파이를 굽자 안에 있는 육즙이 터져 흘러나왔다. 레시피대로 했다고 생각지만 반죽을 실패한 것이다. 파이가 구워지는 동안 연습한 블랙 앤 화이트 크림소라 빵은 더 처참했다. 초콜릿 크림과 샹티이 크림이 섞여버려, 블랙 앤 화이트는커녕 연한 갈색 크림소라 빵이 되고 말았다. 동선도 모르고 재료가 어디에 있는지도 헷갈리는 낯선 주방에서의 세 시간. 빠듯하긴 하나 실패 없이 한 번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고 보니 유키코 김 쉐프가 나마무라 베이커리의 개발부에 있었지…….’
리처드 베이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가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탑클래스의 제과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아버지가 일하던 호텔에 입사했고, 페이스트리 키친의 헤드 쉐프까지 승진했다. 아버지가 일하던 그 자리까지 올라오고 난 후에는 깊은 허탈감을 느꼈다. 잠시 휴직을 하고 있던 중 동양의 한 나라에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기분전환 삼아 신청한 것이었다. 제과제빵의 엘리트 코스라고 할 만한 길이었다.
‘계절마다, 휴일마다 새로운 테마 메뉴를 개발하긴 하지만,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재료를 주로 사용하면서 내 스타일도 어느 정도 고착화된 면이 없지 않아.’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 부활절이나 설날, 어머니날의 경우에도 그렇다. 지나치게 새로운 메뉴보다는 고객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메뉴를 중심으로 진행한다.
‘나는 내가 잘하는 쪽 제빵을 골라서 계속해 온 거지.’
그는 앙트레와 디저트, 고급 코스 요리에 곁들여지는 디저트 쪽이 전문이다. 반면 유키코는 다양한 스타일의 제과 제빵을 전부 해야만 하는 연구개발 파트에서 오래 일해 왔다.
분주하게 반죽을 하던 임진혁이 힐긋 바라보았다. 그가 유키코에게 말했다.
“오늘은 꼭 도와주시지 않고, 지켜보고 계시는 걸로도 충분하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시죠.”
“알겠어요.”
『베이커 쉐프, 임 쉐프는 괜찮다고 합니다. 천천히 하셔도 된다고 하네요.』
2배 몫을 해내겠다고 당당하게 주장했는데, 2배는커녕 고양이 손만큼의 도움도 안 되고 있었다.
‘영업 시작 2시간 전이 아니라, 전날부터 와서 트레이닝 받겠다고 할 것을. 내가 멍청하고 거만하게 굴었군.’
리처드 베이커는 암담해하며 H & J 의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손님들은 파도처럼 끊임없이 몰려들어왔고, 임진혁은 손을 쉬지 않았다. 점심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일하는 사이에도 단 한 번도 그가 손을 멈추는 일이 없었다. 정확하고 세밀한 손놀림은 한시도 멈추지 않았고, 오픈 키친에서 서 있는 동안에도 손님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필요한 말을 건넸다.
‘2배라니, 2배는커녕 저 절반이나 할 수 있을까.’
유키코 김처럼 능력 있는 쉐프가 임진혁의 1/3 정도 일한다고 하던 것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체력이 좋은 편이군, 운동이라도 하는 건가.’
오후 여섯 시 경이 되자 홀에 있는 직원들의 미소도 가면처럼 굳어갔다. 계속해서 음료를 준비하던 백진영은 피로한지 한쪽 다리를 눈에 띄게 절기 시작했다. 미소를 놓지 않으며 견습생을 가르치던 유키코는 목소리 톤이 조금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임진혁은 최신 기계공학을 통해 탄생한 인간형 로봇처럼 태도가 변하지 않았다.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를 띠고서 허리는 꼿꼿이 펴고, 반죽하는 손목의 스냅부터 조형을 빚어내는 솜씨까지 무엇 하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체력이 좋다’라는 수준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리처드 베이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슈퍼맨이 제빵을 한다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군.’
유명한 만화 속 주인공을 생각하며 그는 혀를 내둘렀다. 오후 여덟 시가 되어 영업을 종료할 때까지 그는 철저한 보조자로서 가게를 도왔다. 반죽을 하려는 임진혁의 곁에 적절한 개수의 달걀을 갖다 준다거나, 말차 테린을 만들려는 유키코에게 말차 가루를 가져다준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영업장 내에서 연습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민폐였다. 당장 오븐만 해도 진혁이 만들어내는 반죽들을 구워내기 위해 풀로 돌아가야 했다.
영업이 끝나고 나서야 백진영이 손님용 자리에 걸터앉았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그가 웃었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고.”
“고생하셨습니다!”
홀 직원들이 허리를 숙이자 임진혁이 말했다.
“오늘은 내가 청소할 테니까 먼저 돌아가.”
“임 쉐프! 그러다가 만성 피로로 쓰러지는 거 아니냐고요.”
“내가 하는 게 더 빠르고 깨끗해.”
“그거야 그렇지만요…….”
다른 이들은 빗자루로 먼지를 쓸어낸 다음 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하지만 진혁은 먼지를 그대로 바람에 휩쓸어 창문 밖으로 날려 버린다. 처음에는 먼지를 파괴할까도 싶었지만, 그 와중에 대리석 바닥에 흠집이 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금은 평화적으로 위치만 옮겨 주고 있다.
가지 않으려는 홀 직원들을 억지로 보내고 나서, 임진혁이 리처드 베이커를 쳐다보았다.
“2배로 일해주려면 오늘 레시피는 완벽히 익혀주셔야 할 텐데.”
유키코의 통역을 듣고서 리처드 베이커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진혁의 제안을 리처드에게 전달해 주었다.
『기존 빵은 자신이 알아서 만들 수 있으니까, 리처드 베이커 쉐프의 동화 테마 케이크를 판매하고 싶다는군요』
『뭐?!』
『이용태 쉐프의 것 말고, 만들고 싶은 케이크가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