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53화 (153/656)

제 153화

“다 들려.”

오늘의 커피를 내리고 있던 백진영이 다가왔다. 주방이 그리 넓지 않기에 원가율에 대해 이야기하던 것을 다 들었던 터다. 백진영이 피식피식 웃으며 털어놓았다.

“사실은 저도 처음에 가게 오픈할 때 그걸 제일 걱정했는데 말이죠.”

“그런데요?”

유키코가 궁금해 했다.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임진혁 쉐프가 빵을 조리하는 숙련도가 높고 정확하고 빨라서, 엄청나게 많이 만들기 때문에 이익은 나요. 이런 프리미엄 빵 라인에서는 놀랍게도…… 박리다매(薄利多賣)를 하고 있는 거죠.”

“임 쉐프님 요리하시는 속도가 스피디하시기는 하죠. TV 쇼에서 봤던 모습보다 더 빠르더라니까요.”

유키코가 리처드에게 설명했다.

『지금 다들 웃고 있는데,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것 같아.』

리처드 베이커가 냉정하게 말했다.

『유기농 고급 재료로 맛있는 빵을 많이 만들어서 싸게 판다. 그래서 이익이 나고 있다. 거기까지는 알겠다고. 그런데 정말로 내가 지적하기 전에 이상한 점을 못 느꼈냐고. 공장도 아니고, 쉐프 한 사람의 빠른 작업 속도에 의존하는 현재의 방식이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냐는 거지. 적절한 재료로 재료의 맛을 이끌어내서,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해 최대의 이익을 얻어야 할 것이 아닌가. 사장도 쉐프도, 일하는 만큼 소득은 얻어야지』

『인센티브를 받고 계세요, 물론 저도 받고 있고.』

『기형적인 구조라고. 인간은 기계가 아니고 여기는 공장이 아니라고.』

유키코가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 사이, 백진영이 대화에 영어로 끼어들었다.

『그게 사실, 임진혁 쉐프가 1인 공장입니다.』

『뭐?!』

『손이 정말로 빨라서, 기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해서……. 임진혁 쉐프 한 사람의 힘으로 성립하고 있는 가게입니다.』

『당신이 경영자?』

『예』

백진영이 머쓱하게 대답하자 리처드 베이커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임진혁 쉐프같은 사람이 흔치는 않으니까, 경영자 입장에서도 생각해봐야 할 텐데.』

『그렇죠.』

『나야 3개월 일하고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여기 남을 사람들 생각도 해야 할 거 아닌가.』

『맞습니다.』

『지금 숙련도 높은 쉐프 한 명에게 모든 것이 의존하는 형태가 정상적이라고 보나?』

파트 타이머로 고작 세 달 일할 사람이었지만, 자영업 경험은 누구보다도 풍부했다. 리처드가 백진영에게 영어로 훈계하는 동안 임진혁이 눈을 껌뻑거리며 듣고 있었다.

유키코가 조용히 해설해 주었다.

“이건 저도 전에 느꼈던 건데 지금 두 분이 이야기 나누고 계세요.”

“어떤……?”

“원재료 가격에 비해서 판매 가격이 너무 낮고요, 그것 때문에 임진혁 쉐프님이 일을 너무 많이 하세요.”

잠재력의 5%도 발휘하지 않고 있던 임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혀 많이 하고 있지 않은데 말입니다……. 애초에 제가 그만큼 일하는 걸 고려해서 가격을 측정한 거니까요.”

요리는 본래 힘든 일이다. 불 앞에서 장시간 머물러 있으며 열과 싸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무거운 재료를 하루 종일 나른다. 오븐 안팎으로 무거운 트레이를 옮기다가 고온에 화상을 입어 상처가 남기도 한다. 페이스트리 쉐프의 경우, 손힘으로 밀가루를 반죽하는 과정이 다른 요리사들보다 훨씬 비중이 높다. 반죽하다가 실패하는 경우에는 재료를 버리고 다시 해야 하고, 관절에 무리가 가는 경우가 많다. 당장 진혁의 아버지, 임운정만 하더라도 오랜 제빵사 생활로 인해 오른쪽 어깨와 팔의 관절에 문제가 생겨 일할 때 통증으로 힘들어 했다.

임진혁의 경우에는 무공을 익혀 상승 경지에 도달하여, 이러한 제빵 작업 정도로는 새끼손가락 손톱조차 쑤시는 일이 없었다. 손톱으로 캔을 따도 손톱이 부러지지 않고, 원한다면 맨손으로 캔을 찢어발길 수도 있는 그에게 있어 지금의 일은 전혀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은’ 수준인 것이다. 서울의 자취방에서 혼자 노는 것이 심심하고 재미가 없어 취미를 겸해 일하는 시간을 늘려 업무 시간이 길어졌다. 그것은 백진영의 수작이 아니고 진혁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아-니에요.”

유키코가 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렇게 일을 많이 하시는 걸 보고 저는 처음에 임 쉐프님이 오너 쉐프이신 줄 알았어요. 내가게니까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 줄 알았다고요.”

리처드 베이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백진영은 잠시 입을 다물고 유키코와 진혁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진영이 베이커에게 말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사실 진혁이가 없었다면 아예 이런 식으로 개업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 녀석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가게죠.』

『인간은 강철이 아니야』

리처드 베이커가 말했다. 이중에 있는 사람 중 제일 나이가 많은 그의 얼굴 주름이 깊이 파였다. 화가 났다기보다 슬퍼 보이는 얼굴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호텔의 페이스트리 쉐프였어.』

그가 천천히 말했다.

『이름을 말하면 알만한 유명한 호텔의 쉐프였지. 뛰어난 실력으로 유명한 분이셨어. 내가 여덟 살 때 나한테 머랭 치는 방법을 알려 주셔서, 그걸 시작으로 나도 제빵에 입문하게 됐지. 내가 제과제빵 학교에 입학하던 날도, 아버지는 호텔에서 일하느라 입학식에 오시지 못했어. 노동법을 어기고 주 80시간 이상 일하셨는데.』

가게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리처드 베이커의 말에 집중했다. 낮고 굵은 목소리는 비오는 밤하늘처럼 칙칙하고 우울했다.

『호텔에서 일하시다가 그대로 쓰러져 돌아가셨지. 과로사였어.』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던 김가영도, 식탁 위를 닦고 있던 서창덕도 손을 멈추었다. 한 손에 갓 내린 커피를 든 백진영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고, 유키코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진혁과 김은동만 눈을 깜빡거리며 서 있었다. 유키코가 두 사람에게 조그맣게 속삭여주자, 두 사람도 숙연해졌다.

『젊고 앞날이 창창한 임 쉐프 앞에서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 임 쉐프가 지금은 강철처럼 강건해 보이지만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야.』

리처드 베이커는 머쓱해 하며 붉은색 곱슬머리를 헝클었다. 주근깨 있는 콧잔등이 살짝 붉어졌다.

“내 아버지도 나에게 머랭을 휘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진혁이 말했다.

“열여덟 살 때였죠.”

초등학생 때는 아직 어려서 안 된다고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소년 시절의 진혁과 진희에게 있어서 가게의 주방은 어른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신성한 장소였다. 둘 다 바깥에서 구경하다가 아버지가 구워서 갖다 주는 빵을 먹었다. 따끈따끈한 빵이 구워져 나오는 주방, 그곳은 신비스럽고 비밀로 가득 찬 곳이었다. 저 안은 어떤 곳일까? 하는 호기심을 키웠던 진혁은 자연스럽게 제빵사가 되기로 결심했더랬다. 진혁이 말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유키코가 통역해 주자, 리처드 베이커가 씩 웃었다.

『우리 둘 다 아버지의 등 뒤를 따라가고 있군.』

백진영이 말했다.

『그럼 3개월간, 임진혁 쉐프가 무리하지 않도록 도와주시면 되겠군요.』

『어?』

리처드 베이커가 당황했다.

『뭐, 그, 그렇지?』

『유키코 쉐프는 지금 1/3을 돕고 있습니다. 베이커 쉐프께서 진혁이 하는 일의 1/3 정도만 도와주시면서 다른 사람을 키울 수 있도록 가르쳐주신다면.』

리처드가 당당하게 외쳤다.

『1/3은 무슨! 임진혁이 하는 몫의 두 배는 할 수 있어.』

유키코와 백진영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무리일 텐데……?’

‘진혁이가 어느 정도 일하는지 모르니까 이야기할 수 있는 거지.’

임진혁이 손뼉을 쳤다.

“슬슬 시작하지.”

다들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키코 쉐프는 반죽을 시작하면서 김은동이 재료 밑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 백진영은 오늘의 커피 맛이 어제와 다르다며 새로운 커피를 내린다. 임진혁이 리처드 베이커를 데려와 손짓 발짓에 한국어를 섞어가며 의사 표현을 했다.

“여기에 있는 이 빵들을 먹어보고, 똑같이 만들어 보면 됩니다. 레시피는 여기에 쓰여 있어요.”

백진영의 도움을 얻어 미리 영문으로 준비해둔 레시피였다.

『오, 직접 만든 레시피들인가. 대단하군! 나에게 평가를 받고 싶은 건가? 아주 좋아! 멋져』

리처드 베이커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임진혁은 이 사람이 지금 자신의 말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사소통 문제가 생각보다 큰데.’

하지만 진혁에게는 비장의 수단이 있었다. 그는 손짓 발짓에 전음을 섞어 말했다.

《이 레시피대로 만들어 보시죠, 이 앞에 있는 빵들을 먹어 보시고 참고하시면 됩니다.》

테이스팅 테스트(Tasting Test)를 따로 받지 않고 입사했기에, 그가 어느 정도 일할 수 있는지 가늠이 잡히지 않았다. 유키코는 세 시간 이내에 마쳤던 이 테스트를 리처드 베이커가 어느 정도까지 해낼 수 있을지, 진혁은 그것이 궁금했다.

리처드 베이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임 쉐프, 영어로 말할 줄 알면서 왜 여태까지 모르는 척한 거야?』

귓속에서 울려오는 것 같은 목소리가 한 번 더, 명확하게 울렸다. 뇌 속에 직접 전달되는 선명한 이미지는 또렷하고 확실했다. 그는 자신이 들은 목소리를 당연히 영어라고 생각해버렸다.

막 김은동에게 지시를 끝낸 유키코가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통역이 필요하지는 않으세요?』

『나는 임진혁 쉐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어.』

『그럴 리가요, 방금 뭐라고 하셨길래요?』

『여기 있는 레시피대로 빵을 만들라고』

유키코가 암사자처럼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도 꽤나 느긋하시군요? 참고로 저는 그 빵 전부를 재현하는 데 세 시간 걸렸답니다.』

『이 정도의 빵에 세 시간씩이나?』

『먼저 맛보시고 난 다음에 이야기해보시죠.』

유키코는 봉래산의 옥 가지 케이크를 만들기 위한 밑 작업에 들어갔다. 완전히 집중하기 시작한 그녀는 더 이상 리처드 베이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진혁 역시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조리대 위에서 달걀을 깼다. 순식간에 밀가루를 체에 쳐내고 반죽하는 솜씨는 1년 경력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베이커는 구석에서 어깨를 으쓱했다.

‘좋은 주방이야. 다들 열심이구나.’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홀 담당인 두 명은 가게 바닥이 거울처럼 깨끗하게 빛나도록 닦고, 주방에 있는 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일에 열중해 있었다. 일하기 시작한 첫날, 그는 벌써부터 이 주방이 좋아졌다.

『그럼 어디, 맛을 볼까』

리처드 베이커가 제일 먼저 집어든 빵은 둥그렇게 부푼 파이였다. 접시에 놓인 모양으로 미루어보건대 겉은 매우 얇은 페이스트리였다. 반원형 파이를 집어 들고서 의외로 따뜻하고 묵직한 것에 놀란 리처드는 손가락으로 툭, 툭 파이를 건드려 보았다.

『안에 수프가 담겨 있다던 그 빵인가.』

그는 입을 크게 벌렸다. 한 입에 전부 먹어버릴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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