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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148화 (148/656)

제 148화

진혁은 케이크 이백 개를 박살내며 실험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딸기 조각을 넣고 실험했지만 나중에는 실제 종양 크기와 유사한 아주 작은 고깃덩어리를 넣었다.

하지만 그는 고깃덩어리를 썰어내면서 반드시 주변의 케이크 시트 역시 무너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파괴하기 위해 반드시 직접 검을 들 필요는 없지.’

강기사(强氣絲)를 줄줄이 뿜어낼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강기로 잘라버려야 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오행진을 거꾸로 하여 역오행진을 설계했고, 순리를 거스르는 역행진이 대상으로 하는 범위를 특정하도록 조정했다. 심안을 통해 꿰뚫어보고서 종양의 위치와 크기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범위를 완벽하게 특정할 수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진혁아, 네가 가져온 케이크는?”

“그래, 그래. 이모를 위해서 특별히 만든 케이크라며.”

부모님이 재촉했다. 이미 진혁의 케이크를 맛본 적이 있었던 큰이모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전에 먹어보고 어찌나 맛있던지, 동네 사람들한테 다 자랑을 했는데 믿지를 않더라.”

“이건 이번에 저희 가게에 새로 온 쉐프가 알려준 방식으로 만들어 본 거예요.”

“그래?”

“일본에서는 목화솜처럼 푹신푹신하다고 해서 일본식 코튼 치즈케이크(Cotton Cheesecake)라고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진혁은 유키코 쉐프를 고용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는 도쿄제과학교 스타일의 케이크부터 시작해서 여태까지 배워왔던 다양한 것들을 아낌없이 진혁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중 이 케이크는 치즈케이크라기보다 수플레에 가까운 식감으로 보드랍고 폭신폭신해서 평이 좋았다.

유키코가 알려준 레시피보다 설탕을 5g 정도 줄였더니 젊은 층보다는 나이든 층이 더 좋아했다. 입맛 까다로운 백정흠이 극찬했으니 큰이모 역시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준비한 케이크다.

“여기 있습니다.”

오행진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주문을 새겨 방위에 맞게 투입해야 한다.

보통 강시의 경우 뒷목과 귀 뒤, 뒤통수 등 살갗을 잘라내 바늘로 문신처럼 주문을 새긴다.

그러나 진혁은 큰이모를 세뇌할 생각이 없었고 역오행진이 온세상에 드러나게 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준비한 것은 정교하게 주문을 새긴 쌀알이었다.

큰이모가 케이크를 앞에 두고 감탄하는 동안, 진혁이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니?”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

진혁은 이모의 뒤쪽으로 돌아가,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쌀알을 머리카락 사이에 끼워 넣었다.

쌀알 하나는 정수리 아래쪽 뒤통수에, 다른 두 개는 귀 뒤쪽 머리카락 사이에,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목덜미 위에 제대로 올려놓았다. 일부러 쌀알의 속을 비워 넣어 가볍게 한 보람이 있는지 큰이모는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좋아, 이제 역행진을.’

빵집과 가게에 설치한 오행진은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를 느끼게 되는 종류의 진이지만 이 역행진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진혁은 일부러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엇차.”

그는 큰이모의 바로 뒤에서 무릎을 꿇었다. 몇 초 안에 끝날 일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케이크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허공에 손바닥을 펼쳤다.

조심스럽게, 한 푼도 되지 않을 듯한 양의 진기를 종양에 보냈다.

“어어…….”

막 케이크에 포크를 가져가려던 장은숙은 손을 떨었다. 쨍 하고 포크가 떨어졌다.

“언니?”

장은효가 떨어진 포크를 주워 언니에게 다시 내밀었다. 느닷없이 머릿속 한가운데에 작열하는 두통에 장은숙이 미간을 찌푸렸다. 뇌종양 진단을 받아 점차 시력을 잃어가던 이후 종종 두통을 느껴왔으나 이렇게 심각한 것은 처음이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면서 무어라 말하려고 하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언니!!”

은효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쿵하고 상에 이마를 박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진혁이 잽싸게 큰이모를 받쳐 안은 것이다.

“이모.”

이마에 뭉개진 치즈 케이크를 손으로 살살 털며, 진혁이 큰이모의 안색을 살폈다.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큰언니를 향해 달려왔다.

“언니!! 괜찮아요?!”

“119를 불러!”

아버지는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주소는…….”

외가댁의 주소를 모르는 아버지가 머뭇거리자 어머니가 황급히 전화를 옮겨 받았다. 그녀는 또박또박 주소를 외친 다음에 이모의 상태를 전했다.

“저희 큰언니가 앉아 있다가 갑자기 쓰러졌어요! 뇌종양 때문에 계속 진료를 받고 있어요.”

아버지가 큰이모의 옆에 앉아서 맥을 짚어보는 사이 어머니는 통화를 계속했다.

“숨은 쉬고 있어요! 그리고…….”

‘단순히 잠들었군.’

진혁은 큰이모를 안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큰이모가 의식을 잃거나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아지도록 모든 것을 면밀하게 계획했다. 큰이모는 케이크를 한 입 먹은 다음에 머리가 상쾌해지는 것을 느끼고 일어났어야 했다.

‘……급격한 변화 때문에 예상 외로 신체가 피곤하신 모양이군.’

진혁은 심안으로 큰이모를 살폈다. 그녀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종양은 눈에 띄게 크기가 줄어들어 있었다. 순식간에 제거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몰라 조금씩 줄어들도록 했다. 워낙 크기가 작은 덕분에, 24시간 이내에 없어질 것이 분명하다.

“으으, 으.”

큰이모가 신음소리를 흘리더니 눈을 떴다. 장은효가 전화기를 집어 던지고 언니를 부축했다.

“언니, 괜찮아?”

눈을 뜬 장은숙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모처럼 진혁이랑 내려왔는데 내가 쓰러져서 분위기를 다 망쳤네…….”

“그게 뭐가 중요하다구! 그나마 언니 혼자 있을 때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처형, 들어가서 좀 쉬세요.”

진혁이 부축해 큰이모를 안방 침대로 옮겨 눕혔다.

“정말로 괜찮으세요?”

큰이모가 정말로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부모님이 강경하게 고집을 부려서 어쩔 수 없었다. 진혁이 묻자 큰이모가 애처롭게 말했다.

“나…… 케이크…….”

“나중에 새로 구워다 드릴게요. 지금은 좀 쉬시고요.”

진혁이 큰이모를 위로하고 이불을 덮어드렸다. 큰이모가 괜찮다고 고집을 부리신 끝에 결국 119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연락까지 마쳤다.

어머니는 집에 큰이모를 혼자 남겨둘 수 없다며 걱정을 했다. 결국 어머니가 남아서 간호를 하고 아버지와 진혁만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내가 언니를 잘 돌볼테니까 염려하지 말아요.”

“아무렴 당신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하려고.”

어머니가 일을 해야 하는 내일부터는 둘째 이모와 셋째 이모가 번갈아 가면서 온다고 한다.

진혁은 큰이모의 상태에 대해서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시겠지.’

그걸 알리려면 지금까지 숨겨왔던 진혁의 능력과 어떻게 그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까지 밝혀야 하는데, 아직은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

“진희한테 내일 가게를 잘 부탁한다고 전해 줘요.”

“그래, 진희가 알아서 잘 할 거야.”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혁과 아버지, 두 사람은 차를 타고 소망시로 출발했다.

◈          ◈          ◈

아버지와 진혁이 올라오는 그 시간, 진희는 일봉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미리 준비하실 건 세 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버터하고 달걀은 실온에 미리 꺼내두세요. 냉장고에서 갓 나온 차가운 걸 사용하시면 안돼요. 원형틀에 유산지를 미리 깔아두고, 오븐도 예열하고요. 이번에 만들 제누와즈는 180도로 예열하면 됩니다.”

“예, 매니저님!”

“매니저님이라고 안 부르셔도 되는데…….”

유일봉이 말하는 것을 진희는 하나하나 수첩에 받아 적었다. 그리고 바로 손을 씻고 장갑을 꼈다.

“그래도 제가 청해서 배우는 입장이잖아요.”

사장인 임운정은 향인대의 실습 교수를 겸하며 그린워터 샌드위치 가게의 본점도 챙기느라 바쁘다.

장은효는 진혁에게 배운 것을 응용해 새로운 샌드위치를 개발하며 집안을 살핀다.

부모님이 바쁜 와중에 진희는 아버지에게 배운 것을 혼자 복습하고 싶어 했고, 일봉이 도와주겠다고 해서 이렇게 남아서 실습을 하는 중이다.

그녀가 두 개의 유리그릇에 달걀노른자와 흰자를 나누어 담자, 일봉이 각자 담을 설탕도 조그맣게 따로 준비해 주었다.

“처음에는 진한 주황색이잖아요? 이게 바로 평화일봉농장 달걀의 저력입니다.”

일봉이 볼록하게 솟아오른 주황색 달걀을 응시하며 흐뭇하게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하는 건지 보여드릴테니 이렇게 저어 보세요. 반죽에 거품기를 담그고 리본 모양을 그렸을 때 3초 이상 리본 모양이 유지될 때까지 휘핑하면 됩니다.”

“맞아, 그렇다고 했어요. 이렇게 하면 되지요?”

“처음에 초보자가 바로 하기는 어려우니까 잘 안되어도 실망하지 말고 달걀노른자부터 휘핑…… 어…… 흠…… 와.”

한 번 보여주자 진희가 바로 따라하는 것을 본 유일봉이 망연자실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요?”

진희가 잇몸까지 드러내며 시원하게 웃었다. 일봉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네, 그, 그렇죠.”

‘난 이걸 처음 배웠을 때 서너 번은 해서 익혔는데.’

자신은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분명히 임운정 사장님께서 빨리 익힌다고 칭찬해 주셨다. 김연수는 이미 학교에서 배워왔기 때문에 이런 기본부터 가르쳐 줄 필요는 없었고, 허민준은 여기서 바로 따라하지 못해서 집에서 연습해 오겠다고 했다.

‘과연 임씨 집안……무서운 사람들이야.’

간호사 출신이라더니 꼼꼼한 것은 기본이며, 가게도 깨끗하게 관리하면서 자신의 위생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손 씻기를 철저하게 하는 모습이 특히 눈에 띄었다.

유일봉은 마음 속 깊이 다짐했다.

‘임진희 누님에게까지 실력을 따라잡힐 수는 없어. 더 노력해야겠다.’

폭신폭신한 케이크 시트를 구워낸 임진희가 기뻐하며 물었다.

“제누와즈에 설탕 시럽을 바르는 걸 덜 바르거나 안 바르면 어떨까요? 살도 덜 찌고 건강에 좋지 않아요?”

“그러면 케이크가 말라서 맛없어집니다. 겉에 바른 설탕 시럽이 수분을 가두어 두는 역할을 하거든요.”

“아하.”

임진희는 미리 준비한 설탕 시럽을 제누와즈에 바르기 시작했다. 제누와즈가 깔끔하게 설탕 시럽을 거의 다 입었을 무렵, 그녀가 물었다.

“미란 언니하고는 어때요, 잘 돼가요?”

겉에 덮을 버터크림을 살피고 있던 일봉이 양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진전요? 미란씨는 진혁이 형한테 관심있잖아요.”

서미란은 소망시청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소아암 환자를 위한 기증 마라톤 대회 때 임진혁과 함께 부스를 지킨 것이 인연이 되어 종종 빵집에 드나들게 되었다. 카스텔라를 발주하기 위해 찾아오는 것 외에도 종종 간식을 사 먹으러 가게에 들러 이제는 단골손님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꽤 미인이다.

종종 서울에 올라간 진혁의 안부를 묻기도 해서 일봉은 그녀가 진혁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임진희가 말했다.

“내가 보기엔 진혁이가 아니고 일봉씨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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