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44화 (144/656)

제 144화

입술에 제일 먼저 와닿은 것은 폭신폭신하고 보드라운 빵이었다.

H & J 베이커리에서 팔지 않고 있는 메뉴인 식빵은 이번에 진혁이 프랑스 기본 빵 연습을 한답시고 몇 개 만들어 둔 것이다.

그 중 한 개를 백진영이 고집을 부려서 얼려둔 것인데, 냉동실에 있었던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밤마다 덮고 자는 거위털 베갯잇처럼 푹신하며 실크 안대처럼 부드럽다.

‘졸릴 것 같은 맛이야.’

부드러운 식빵 다음에 느껴진 맛은 진하디 진한 치즈였다. 달걀 후라이 흰자는 가장자리가 바삭하고, 케첩은 치즈와 달걀과 섞여 짭조롬한 맛의 조화를 이루었다. 담백하고 꽉 차오르는 달걀에 어울리는 소스, 거기에 얇게 썬 햄이 씹혔다. 쫄깃쫄깃하면서도 질기지 않고 햄 사이사이에는 치즈가 알알이 박혀 있다.

“이 햄은 뭐야?”

입가에 케첩을 묻힌 채 백진영이 물었다.

“저번에 먹던 게 아니야. 짭짤한 맛이 아예 질이 다른데…… 중후하고 깊어.”

달걀과 치즈, 빵과 마요네즈, 그리고 케첩까지 모든 것이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것들이 전부 잘 어울리도록 지휘를 하고 있는, 맛 전체를 총괄하는 것은 햄이었다.

“백 사장님. 햄이 아니라 소시지입니다.”

진혁이 웃으며 지적해 주었다.

“이번에 소시지를 반입하는 곳 바꾼다고 이야기했잖아, 서류도 같이 올렸는데.”

“소세지 맛이 오묘한데? 마늘향도 나고.”

“대구에서 온 수제 소시지야. 독일식 정통 소시지라고.”

독일에서 온 수도사들은 경상도의 작은 도시에서 수도회를 창건했다.

그들은 묵상과 기도와 함께하면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했다. 해외에 있는 한국 교민들이 고향의 맛을 잊지 못해 김치를 담가 먹듯이 이곳에서 소시지를 재현해 보기로 했다. 돼지의 창자와 피, 고기를 얻어 조금씩 소시지를 만들어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고향에서 먹던 그 맛을 살리지 못했으나, 수 십 여년에 걸쳐 조금씩 개량해오며 지금은 완전히 고향에서 먹던 맛을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동네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점차 소문이 나면서 판매하길 원하는 고객들이 나타났다.

대량 주문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인데, 발 넓은 민병철이 첫 번째 샘플을 주문받고서 진혁에게 소개했다.

처음 맛을 본 진혁 역시 소시지를 마음에 들어해 그린워터 샌드위치에 넣는 재료 주문처를 이곳으로 변경했다.

백진영은 입맛을 다시며 마저 샌드위치를 씹어삼켰다. 그 광경을 보고 임진혁이 물었다.

“다음 주에 갈 때는 같이 가자.”

“으움움움으움움.”

임진혁의 경험에 따르면 저 짧은 신음 소리는 ‘다 먹고 이야기할게.’라는 뜻이다. ‘먹는 도중에는 방해하지 마.’라는 소리기도 하다. 아인슈페너를 음미하며 임진혁은 눈을 감았다.

‘다른데서 먹으면 이 맛이 나지 않는단 말이야.’

아메리카노에 희디흰 휘핑 크림을 올렸다. 검은 커피 위에 올라간 하얀 크림이 점차 갈색 빛에 물들어가며 갈흑색 커피 역시 탁해진다.

진혁은 그 광경을 보는 것이 좋았다. 흰색만이 물드는 것이 아니라 커피 역시 물든다.

“아까 그 얘기 말인데, 내가 그 빵집에 따로 빵을 만들어서 보낼까봐.”

“네가 얼마나 바쁜데, 일을 늘리려고 하는 거야?”

백진영이 미간을 찡그렸다. 임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어린애들하고 10대 애들 입맛은 어른들하고 달라.”

“그거야 그렇지.”

“이번에 민사장 요청으로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 급식용으로 사용할 샌드위치를 개발하고 있는데, 어린애들이 먹고 평을 얘기해주면 도움이 될 거야.”

어린애들이 입맛이 고급화되든 말든 진혁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고아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어 본 적은 없다.

예전 수련생 시절, 굶주렸던 시절을 기억했다. 나무껍질을 벗겨서 먹다가 토하거나, 버섯을 캐서 구워먹어본 적은 있다. 독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버섯을 먼저 먹어 보라고 칼을 들고 협박해 보기도 했다.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이, 이전의 진혁에 비하면 천국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진혁은 그들이 특별히 애처롭다거나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는 현대의 한국에서 고아로 태어난 것이 행운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진혁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테스터를 무료로 고용하면서 기부하는 양 세액 공제도 받는 거지.”

“……!!”

백진영이 놀라 돌아보았다. 그가 걱정스레 말했다.

“쉽게 생각하지 마라. 이건 하루 이틀만 하면 안 돼, 한 번 주기 시작하면 계속 줘야 한다고. 있다가 없으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지 몰라.”

“샘플은 이것저것 필요하니까, 그 나이 또래 시식단이 있어주면 나쁘지 않지.”

‘빵집은 지역사회와 같이 가야 한다.’ 진혁의 아버지, 임운정이 빵집에서 일하면서 꾸준히 인심을 쌓아올 수 있었던 것은 고아원이나 노인정에 계속해서 기부를 해왔기 때문이다.

민병철이 말하기를, 임운정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순조롭게 공장을 건설하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한다.

지역 공무원들에게 허가를 받는 것이 제일 골치아픈데, 임운정 사장님의 인덕 덕분에 손쉽게 제일 어려운 과정을 통과했단다.

‘미래를 생각하고 계산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 대단하시지.’

그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을 지키셨을 뿐이다. 하지만 임진혁은 임운정이 아니다.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다.

‘아버지처럼 온 동네의 모든 시설에 빵을 가져다줄 수는 없지만, 보육원 하나 정도야.’

나이대별로 다 합쳐봤자 50명이 되지 않는 시설이라고 하니 부담은 적다. 혼자라면 삼십분 내에 50인분을 채울 포만감 있는 식사용 빵을 잔뜩 만들어낼 수 있다.

백진영이 결심한 듯이 말했다.

“네가 그렇게 돕는다면 재료값은 당연히 내가 댈게.”

“당연하지. 나한테 내라고 할 생각이었어?”

임진혁이 킬킬대며 웃었다.

“돈 많은 금수저 사장님이 돈 내주시죠.”

“인센티브로 월 몇천씩 가져가고 있는 녀석이!”

“자영업자는 연금이 없으니까.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 저축이 필요하다고. 눈 깜빡하면 십년은 금방 흘러가기 마련이고, 저금은 필수야.”

“너 지금 이십대 중반이다?! 나보다 한참 어리다고! 무슨 세상 다 산 노인네처럼 말해.”

백진영은 자연스럽게 임진혁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을러댔다. 임진혁이 피식 웃었다.

“……큭.”

“웃어?! 이 애늙은이야!”

이런 일상이 싫지 않다. 오히려 편안하다. 진혁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형, 이제 유키코 쉐프 걱정은 안 하네?”

알고 있었냐는 듯 백진영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벌써 다 잊었지. 내가 좀 금사빠긴 해도 상도덕은 알아.”

“그래, 그래.”

“왜 우리 삼촌처럼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진혁은 백진영이 질척거리지 않고 깔끔하게 포기한 점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구남친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걸 그렇게 기뻐하는데, 내가 들이대봤자 승산이나 있겠냐고. 난 골키퍼 있는 데는 관심없어.”

‘구남친이 아니라 현재 남친이겠지만…….’

임진혁은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백진영이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도 누가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사람.”

“그럼 형이 아무것도 못 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하잖아. 그건 정말 못할 짓이다.”

진혁이 서늘하게 경고하자 백진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확 무섭다? 진지해져가지고.”

“음.”

진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백진영이 접시를 헹구며 물었다.

“오늘도 남아서 연습하고 돌아갈거냐?”

“응, 형 먼저 돌아가.”

백진영이 문앞에서 머뭇거렸다

“내가 좀더 같이 있어줄까?”

혼자 이것저것 실험할 것이 있던 진혁에게 있어 오히려 방해가 되는 제안이다. 임진혁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왜?”

백진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사거리 앞 편의점에 강도가 있었던 거 알지? 새벽 늦은 시간에 혼자 있는 사람을 노리는데, 범인이 아직 안 잡혔대.”

“여기엔 안 올걸.”

“정말로 같이 안 있어줘도 되겠어?”

필요 없다고 말하려던 참이다. 진혁은 고개를 들어 백진영의 얼굴을 보았다.

잠이 많고 체력이 좋지 않은 백진영은 졸린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오늘 늦게까지 남아서 청소를 도와주고, 샌드위치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평소였다면 진혁에게 네가 피곤할 테니 나가서 사먹자고 했을 것이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한 것은 아직 잡히지 않은 편의점 강도 때문에 진혁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괜찮아.”

진혁이 고개를 들어 웃어보였다.

관계 없는 외인은 아예 가게를 찾을 수 없다.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영업시간 이후의 ‘H & J 베이커리’는 진혁이 미리 조정한 오행진을 기반으로 주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진혁이 미리 설정한 인물들, 즉 백정흠이나 백진영, 김가영과 서창덕, 이예은과 유키코, 김은동 등이 아니라면 가게를 알아보기조차 힘들 것이다. 문을 닫고 네온 간판의 전원을 차단한 일반 가게가 군복을 입고 위장 크림을 바른 육군 일병이라면, H & J 베이커리 앤 카페는 살막(殺幕)의 특급 살수와도 같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 자주 오는 손님이라고 해도 헤매기 쉽다.

‘아까 치킨 배달이 왔을 때 내가 나가서 받은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고.’

임진혁은 이전 김은동 치킨 배달 사건 이후로, 배달 음식을 주문한 경우 반드시 직접 나가서 음식을 받았다. 그뿐 아니라 이전에 방문한 쓸만한 쓰레기 흥신소장 녀석 역시 진혁이 나가서 가게를 안내해 줘야 했다. 물론 단순히 안내만 해준 것이 아니라, 적당히 자근자근 밟아 줬지만 생명은 건졌으니 녀석도 고마워할 것이다.

맞는 것도 잘 못 때리는 사람한테 맞으면 괴롭고 고통스러우며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진혁처럼 고급 구타 기술을 구사하는 자가 번거롭게도 직접 손을 봐줬으니 마땅히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백진영이 진혁의 상념을 끊고 질문했다.

“어떻게 확신해?”

하지만 이것을 백진영에게 설명하기란 어렵다. 진영에게 이 가게는 그저 ‘번화가에 있는데도 밤에 외부인이 찾아올 때는 묘하게 찾기 힘든 가게’일 뿐이다. 진혁이 잠시 머뭇거렸다.

“어쩐지 안 그럴 것 같으니까.”

“너 점 같은 거 안 믿는다면서 묘하게 그런 감은 잘 맞더라.”

백진영이 나가면서 인사했다.

“문단속 잘 하고, 조심해라.”

“형이야말로 조심해서 돌아가.”

백진영까지 가버리고 나자 진혁은 가게에 혼자 남았다.

‘오늘은 이걸 해보고 싶었지.’

미리 만들어 둔 생크림 케이크가 여덟 개,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회전하고 있다.

진혁은 줄기줄기 뻗은 강기사 대신, 아주 얇게 만든 강환을 허공에 띄웠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강환은 강기가 납작한 구슬 모양으로 압축된 것이다. 원하는 곳에서 소규모의 폭발을 일으켜 국소부위만 부분적으로 파괴를 하는 것이 목적이다.

슈웅.

첫 번째 강환이 케이크를 향해 날아갔다. 표적으로 삼은 것은 생크림 케이크의 안, 자그마한 딸기 조각이다. 하지만 강환은 케이크 자체를 폭발시켜 버렸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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