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43화 (143/656)

제 143화

어머니가 케이크에 집중하는 것을 확인한 진혁은, 고양이의 머리 위에 콩! 하고 알밤을 한 대 때렸다.

‘넌 맞아야 돼.’

“애옹!”

두개골이 부서지진 않을 정도로, 약하게 때렸다. 은혜를 모르는 고양이는 울며 항의했다.

“애애우웅!”

하지만 장은효는 고양이의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케이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행복해.’

본디 그녀는 불안하면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다. 아직 결혼하기 전 10대 시절부터 있던 버릇인데, 결혼하고 애를 둘이나 낳고도 고치질 못했다.

남편이 하는 빵집 장사가 잘 안 될 때마다 손톱 끝이 뭉툭해졌다. 지금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삶이 순조로워도 문득 불안함이 치밀어 오르면 그녀는 손톱 끝을 입술에 갖다대곤 했다.

지금은 건강해지면서 손톱이 다시 자라나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가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 버릇은 겨울 곰처럼 잠들어 있을 뿐이다. 불안이라는 이름의 봄이 오면 다시 동굴 속을 나와서 얼굴을 내밀 것이다.

이제 평생 다시는, 손톱을 물어뜯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맛이었다.

◈          ◈          ◈

후라이드 치킨 여섯 마리를 해치운 장씨 자매들은, 임운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을 향해 출발했다.

패자부활전에서 나온 미니 케이크를 맛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던 이모들은 나중에 만들어 드리겠다는 말에 기뻐하면서 떠났다.

뒷정리를 하기 위해 남은 백진영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모들이 사이가 좋으시네.”

바닥을 대걸레로 밀며 백진영이 말했다.

“우리 부모님도 생전에는 삼촌하고 사이가 좋았는데.”

심각해 보이는 표정은 아니나 그 말 한 마디에 담긴 감정은 무겁다. 임진혁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외가는 좋고, 친가는 그렇지도 않지.”

“그래.”

대걸레가 대리석 바닥을 깨끗하게 닦을 때까지 진영은 말을 하지 않았다.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난 자리에는 대걸레로 한 번 더 닦는다. 대걸레로 닦을 때에는 특별한 대리석 클리너를 사용해서 청소를 한다.

걸레가 지나간 자리가 깨끗해진 것을 보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지금은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이 해야 하는 업무의 양이 많아져서 백진영이 청소를 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오랜만에 즐기는 소중한 청소 시간을 만끽하며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데려다 드리지 않아도 괜찮아?”

“피곤할 테니 가지 말라고 하셔서.”

“고양이가 케이크 먹어서 위험하지 않을까.”

“저놈은 튼튼해서 괜찮아.”

진혁이 잘라 말했다.

“그걸 내가 먹었으면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았을 텐데…….”

백진영이 아쉬워했다.

“내일 따로 만들어 줄게.”

“앗싸!”

백진영이 신나서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그렇게 좋아?”

“당연히 좋지.”

주방 정리를 마친 임진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은 달력이다. 특별히 주문한 단순하고 우아한 디자인의 흰 달력에는 매달 목요일마다 붉은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진혁이 백진영에게 말했다.

“저거, 그 보육원 가는 날이지?”

“응. 매일 갖다 주면 좋지만, 애들이 맨날 빵만 먹으면 밥을 안 먹으려한다고 그러더라고. 주 1회 즈음이 딱 좋다고 수녀님이 그러셨어.”

진혁이 문득 떠오른 듯 질문했다.

“저번에 했던 말 중에 신경쓰였던 말이 있는데…….”

“음? 어떤 말?”

“보육원 애들이 내 케이크를 먹으면 좋지 않다고 일부러 빵을 새로 사갔잖아.”

“바로 출발해야 하는데 진혁이 네가 남아서 빵 만들면 시간이 걸리잖아. 애들 입맛도 입맛이지만.”

“그러니까, 애들 입맛이 어떻길래-싶어서. 특별히 미각이 예민한 애라도 있나 싶었지.”

오늘 아버지는 케이크를 맛있게 드셨다. 다른 분들도 모두 좋아하셨다.

하지만 진혁은 이 케이크에 새로이 숨겨놓은 맛, 체리를 누군가 눈치채 주기를 바랐다.

‘아버지가 모르시면, 일봉이도 모르려나.’

아니면 금천복 할머니나 도을이라면 어떨까.

하지만 당분간은 소망시로 내려갈 일이 없다. 제일 지음(知音)에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H & J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 중에서는 유키코 정도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은 남자친구를 병문안하러 갔다. 첫 쉬는 날,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를 데리고 간 것이다.

‘설마 그 병원인 줄은 몰랐지만.’

박재민이 입원해 있는 병원은 회귀하기 전의 임진혁이 입원해 있던 그 병원이었다. 지금은 사직한 임진희가 다니던 곳이기도 하다. 진혁의 상념을 끊고서 백진영이 말을 걸었다.

“거기 은형이라고 애가 하나 있거든. 걔가 좀 옛날에 나 같은 면이 있어서.”

“형 같은 면이라.”

백진영은 할 일은 다 하면서도 묘하게 진혁을 돌보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었다. 오지랖이 넓다고나 할까? 너무 일만 하는 점이 걱정된다며 일 끝나고 이 앞에 나가서 맛있는 걸 먹자는 둥, PC방에 가서 최신 게임을 함께 해보자는 둥, 다양한 제안을 했다.

지금은 스케쥴이 빡빡해서 그렇게 하기 어렵지만 디저트 서바이벌 쇼의 촬영이 끝나면 PC방 정도는 같이 가기로 했다.

진혁은 백진영의 그런 면을 싫어하지 않았다.

“나이 다르고 환경 다른 애들이 모여 있으면, 천상 다른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즐기는 오지랖 넓은 애들이 한둘은 섞여 있게 되니까.”

99번 같은 녀석을 말한다.

훈련에 적응하지 못했던 진혁에게 먼저 손을 뻗었던 그 녀석. 불을 무서워하고 어둠을 사랑하던 그 녀석의 번호는 99번이었다.

실력이 뛰어난 살수였지만 진혁을 동생처럼 여겼다. 그 녀석이 쓸데없이 마지막 순간에 망설이지 않았다면 최후의 1인으로 살아남는 것은 임진혁이 아니라 그녀석이 되었을 것이다.

심장에 칼이 꽂힌 채로 녀석은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다고 했다. 웃기는 소리다. 어차피 죽으면 시체가 되어 썩어버리는 것, 죽은 자는 죽은자일 뿐이다. 마지막 말 따위를 들어줄 필요도 없다.

‘어디 말해보던지.’

하지만 죽은 것은 확실히 확인해야 하니까 옆에서 지켜보았다.

영화 속의 한 장면이라면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죽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고, 녀석은 피를 토하고 죽어 버렸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녀석은 자신의 이름을 몰래 알려주었다.

‘……이미 잊어버렸지만.’

나중에 소교주가 되어서야 안 사실이지만, 일월신교의 수련생은 두 종류가 있다. 처음에는 살수 출신을 길러내기 위해 솎아내는 부모 없는 아이들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연령별로 아이들을 백 명씩 따로 모아놓고서 그 중에서 살아남은 한 명들을 모아서 최종적으로 살수 부대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일월신교 교도 출신의 자녀로 태어난 경우에는 다르다.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질 때까지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다 같이 모아놓고 강도가 높지만 ‘생명이 위험하지 않은’ 훈련을 한다.

생명이 위험하지 않은 훈련을 거친 이들과, 생명을 건 훈련을 거친 이들의 실력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살수 훈련을 받은 고아들이 더 솜씨가 좋았다. 물론 백에 한 명 정도, 부모에게 미리 교육을 받은 녀석 중에서도 고아 출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경우가 있었으나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교주가 된 진혁은 그것부터 개혁했다. 고아를 데려다가 바로 훈련부터 시키고 살아남은 자만이 입교(入敎)하는 기존의 제도를 변경했다.

교도의 아이들을 3,4살 때 부모에게 빼앗아 데려와서 바로 고아들과 같은 곳에서 먹고 자며 같은 훈련을 받도록 했다. 최종적으로 입교할 수 있는 자는 16살 때 겪는 최종 훈련을 통과한 자들뿐이며,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진 자의 자녀라 해도 예외는 없었다.

그것은 진혁이 감성적인 입장에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일월신교 교도의 자녀’ 출신인 다수의 평범한 무공을 가진 자들과 ‘비자녀 고아’출신의 고수들 사이에 발생하는 알력과 싸움, 견제가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20여년 후에는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교도들이 전부 힘을 합한 대계(大計)다.

녀석은 자신이 만일 나중에 지고의 자리에 오른다면 이런 제도를 없애 버릴 것이라고 했다.

진혁은 ‘교도의 자녀’들까지 모두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대신 백 명 중 한 명이 아니라 열 명 중 한 명만 죽어야 하도록 비율을 조정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장로 여덟 중 일곱을 죽여야 했다.

“아니야.”

백진영의 목소리를 듣고서 임진혁은 현실로 돌아왔다.

“오지랖이 넓은 애가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그냥 입맛이 까다로운 애야.”

진영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부유한 집에서 살다가 보육원에 맡겨진 경우라서 그래.”

자신이 어렸을 적에 부모를 잃었기에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소년이 안타까웠다. 은형이라는 소년에 대해 말하며 백진영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살았던 가락이 있는 만큼 더 적응하기 힘든 거지. 걔는 보육원에서 나오는 식사를 거의 입에도 못 대. 이러다가 굶어죽겠다 싶을 정도라고.”

“그냥 배가 부른 거 아니야?”

배가 고파서 나무 껍질을 벗겨 씹고 풀뿌리를 씹어 삼킨 적도 있던 진혁이 말했다.

이어 백진영이 설명했다.

“좋은 것만 먹고 자란 만큼 미각이 민감한데, 억지로 먹으려고 하니까 더 토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있는 것 같다고 하는데.”

“빵은 잘 먹어?”

“응, 빵은 아무거나 또 잘 먹어.”

“……그럼 다음 목요일에는 아예 빵을 미리 구워서 준비해 줄까?”

“너도 일하느라 힘든데 네 일을 늘릴 순 없지. 그리고 다른 애들이 네 빵 한 번 맛보면 그 다음부터는 시판 빵 아예 못 먹을지도 몰라. 은형이처럼 되는 거지.”

“내 빵이 무슨 독약도 아니고…….”

“내가 그렇단 말이야! 난 이제 회사 빵은 입에도 못 되는 몸이 되어버렸다고.”

백진영이 양팔을 좍 벌리면서 말했다.

“촉촉하고 바삭바삭하면서 입안에서 살살 녹는 헌드레드 초콜릿 쿠키에, 국물이 팟 하고 터져나오는 베이컨 파이.”

“그냥 파이잖…….”

“거기에 양념 치킨의 맛을 한껏 살려 씹히는 맛까지 만든 샌드위치…….”

“음.”

진혁이 생각하기에 지나치기까지 한 칭찬을 늘어놓으며 백진영이 열렬하게 말했다.

“네 빵은 특별한 날을 위해서 아껴 놓는 거야. 애들이 성인식 마치고 독립하는 날, 그날 대량으로 주문해서 풀 거라고.”

“어……그래. 마음대로 해.”

백진영을 볼 때마다 99번 생각이 난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모습이 똑같다.

꼬르륵.

백진영이 자기 배를 만졌다.

“간단하게 샌드위치라도 만들어 줄 테니까 먹고 갈래?”

진혁이 묻자 백진영이 바로 대답했다.

“그럼 내가 음료수를 만들어 줄게.”

“콜.”

갓 구워서 얼려 놓은 식빵은 해동하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굳이 전자렌지를 쓸 필요는 없다.

백진영이 등을 돌리고 말차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느라 집중하는 동안, 진혁은 따로 남겨놓은 식빵에서 음한지기를 흡수해 흘려보냈다.

‘전자파보다 무공이 건강에 좋지.’

달걀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쩌적 소리를 내며 반으로 갈라졌다. 평화 일봉 농장이 자랑하는 초란이다. 금간 곳 없이 정확하게 반으로 잘린 달걀 껍질 안에서 투명한 진액이 무겁게 흘러내렸다. 투명한 흰자는 도톰하니 주황빛으로 올라온 노른자를 보호하며 금세 흰빛으로 물들었다. 미리 깔아둔 버터 위에서 지글지글하는 소리가 나며, 달걀이 익어간다.

진혁은 허공에 떠 있는 달걀 껍질을 손으로 잡아 찌그러뜨렸다. 칼로 자른 것처럼 반듯하게 잘린 달걀 껍질 따위가 돌아다녔다간 쓸데없는 호기심을 산다.

전날 구워 얼려 둔 식빵을 해동한 것에 달걀 후라이와 치즈, 얇게 썬 햄과 채친 사과를 넣었다. 직접 토마토를 끓여 만들어둔 케첩과 보관 중인 수제 마요네즈까지 듬뿍 뿌리자 백진영이 좋아하는 샌드위치가 되었다.

‘이것도 오랜만이네.’

진혁이 오랜만에 만드는 샌드위치다. 서울지점에서 판매하는 샌드위치와 소망시 본점에서 판매하는 샌드위치의 종류가 다른데, 햄치즈 샌드위치는 거의 장은효와 임진희가 맡아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흰 접시에 다소곳이 담긴 샌드위치를 임진혁이 백진영에게 접시째 내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