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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142화 (142/656)

제 142화

본디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장은효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의 정신은 찹쌀떡과도 같아서 약간의 충격을 받아도 꿀렁꿀렁 충격을 흡수하고 원래처럼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놀랄 정도로 변한다.

‘우리 아파트 부녀회장만 봐도 그래. 그렇게 사람이 확 변해버렸는데.’

큰언니 장은숙은 동네에서 처음으로 도시의 여고에 진학한 여성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항상 꽃무늬 양산을 들고 다니는 멋쟁이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세련되고 아름다웠다. 자녀가 있는 다른 기혼 여성들은 전부 파마머리를 하고 돌아다니는데 혼자 긴 생머리를 길러 묶어 올렸다. 남편과 아버지가 함께 하던 사업이 망하고 나서 큰언니는 완전히 변해버렸다. 틈틈이 날품팔이를 하며 장사를 시작했고, 몸빼 바지를 입고 거리낌 없이 외출했다. 얼굴에 분 하나 바르지 않고 돌아다니며 헝클어진 머리에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자기 아이와 세 여동생을 키우다시피 했다.

장은효는 그런 언니와 언니의 변화를 존경했지만, 아직 어렸던 시절에 동경하던 모습 역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더 이상 양산을 들지 않고 자외선 차단제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바깥에서 스웨터를 훌렁훌렁 들어 올리는 큰 언니를 좋아하지만, 옛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그냥 군대를 갔다 온다고 그렇게 변할 리가 없어.’

그 철없던 아들 녀석이 저렇게 부모를 챙기다니!

남편은 군대를 갔다 오면 사람이 변하는 법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자랑스러워했는데, 은효는 그것이 아무래도 믿기지 않았다.

곱창집 아들 병철이만 해도 그랬다. 신동 소리를 들으며 명문대에 진학한 녀석은 군대에 가기 전에도 공부를 잘했고, 군대에 다녀온 후에도 공부를 잘했다.

허 목사님 댁 아들 민준이는 하느님을 믿는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묘하게 순진한 데가 있었는데 군대를 갔다 와도 여전히 그랬다.

그렇게까지 멀리 가지 않고 임운정만 봐도 그렇다. 임운정은 군대에 가기 전에도 고집불통에 빵이 좋다고 우기며 장은효를 쫓아다니는 동네 오빠였다.

‘다들 군대에 갔다 오면 여자 보는 눈이 바뀌어서 맘이 변한다고 했는데, 운정 씨는 그렇지 않았지.’

임운정은 군대에 갔다 와서도 여전히 은효를 쫓아다녔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 그리고 진희와 진혁 남매를 낳아 길렀다.

‘진혁이 녀석, 군대에서 말 못할 사건이라도 목격한 건 아닐까. 인생을 바꿔버릴 만한 충격적인 일을 보고 온 게 아닐까.’

총기 사고? 군대 내 따돌림 사건? 방산 비리?

하지만 진혁이 근무하던 부대에 대해서 신문에 언급된 기사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들은 2년이 아니라 10년을 군대에 갔다 온 것처럼 변해 있었다. 눈은 깊었고 행동거지는 어른스러웠으며, 사소한 습관이 바뀌었다.

텔레비전을 틀면 보는 것은 게임 중계방송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아예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휴일에 어떤 채널을 틀지 아버지나 진희와 티격태격하며 리모컨을 가지고 싸우기도 했는데 이제는 텔레비전 시청 자체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전에는 밥을 먹으면 숟가락을 놓자마자 방으로 들어가서 게임을 했는데 이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설거지를 한다.

진혁이 제대한 첫 며칠간 그녀는 잠을 설쳤다. 장은효는 혹시 제대한 아들이 진짜 진혁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도 해본 적이 있었다.

마지막 휴가를 나올 때까지 철없고 쾌활하던 아들은 산간 오지 지방에 갇혀 있다가 탈출한 중년 남자처럼 굴었다.

텔레비전 리모컨의 건전지를 교체하지 못하고 리모컨을 부숴 버리기도 하고, 세탁기에 세제가 아니라 섬유유연제만 넣고 빨래를 돌리기도 했다.

‘아주 이상했어.’

빨래는 싫다며 양말을 벗어서 거꾸로 뒤집힌 채로 세탁기에 집어 넣던 녀석이 빨래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희한하다.

리모컨에 건전지를 넣다가 조그만 플라스틱 조각이 부서질 수는 있지만, 플라스틱 버튼이 튀어나올 정도로 리모컨이 동강나버린다는 것은 기이하다.

그런 사소한 점들보다 제일 크게 달라진 건 ‘시선(視線)’이었다.

진혁이 바깥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나치게 무심했다. 베트남전에서 살아 돌아온 이씨 할아버지가 그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는 평온한 삶은 허상이고 언제라도 박살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분명히 아들 녀석을 누군가 괴롭힌 게 틀림없어.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히고 또 괴롭혀서, 평온한 일상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 거지.’

입고 나가는 게 죽기보다 싫다던 붉은색 티셔츠가 가족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할 정도로 바뀌어 버렸다.

얼마나 고생을 했기에 그럴까. 장은효가 끔찍한 일을 상상하는 동안, 화면 속의 임진혁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그 티셔츠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납니다. 그 기분 좋은 느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는데 전달이 안 됐다니 안타깝군요.”>

말없이 입술을 깨물고 있던 장은효의 양 눈에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임운정이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기도 전에, 고양이 진호가 은효의 눈물을 핥아 주었다.

“어머, 진호야.”

까끌까끌한 혀가 닿자 은효가 놀라며 뒤로 조금 물러났다. 임운정은 고양이 침이 잔뜩 묻은 아내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두 번째 레드 데빌 셔츠 케이크에 마지막 데코레이션을 하고 있던 임진혁이 깜짝 놀랐다. 짤주머니를 잡은 손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면서 허둥거리는데, 드물게 보이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울 정도로 이 티셔츠를 좋아하시는지 몰랐습니다.”

장은효의 둘째와 셋째 언니, 은영과 은혜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임운정은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고 도닥거려 주었다. 김가영이 자리를 피해 뒤쪽으로 물러났다.

장은효가 담요째 안고 있던 고양이를 다시 꼭 끌어안았다.

<“저는 이 티셔츠를 자꾸 보니까 익숙하기도 하고, 계속 보니까 또 괜찮은 것 같기도 하거든요. 유행은 돌고 돌아서 복고풍이 다시 온다는데.”>

쇼는 빠르게 진행됐다. 진혁이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어렸을 적 엉덩이를 따뜻하게 감쌌던 기저귀의 추억이라고 하면서 똥 기저귀를 내놓은 수준이에요.”>

진혁의 케이크에 혹평을 하는 심사위원들을 보며 세 이모가 화를 냈다.

“맛있으면 된다며, 투덜투덜 말도 많네!”

“그래, 우리 진혁이가 빨간 옷을 좋아한다는데 뭐가 문제야.”

“원래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있는 거라고!”

어머니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텔레비전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진혁은 피식 웃으며 레드 데빌 셔츠 케이크를 잘라 나누어 주었다.

이모들은 케이크에 손도 대지 않고 입에 침을 튀기며 심사위원들을 욕했다.

진혁이 케이크를 자르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은 김가영과 백진영, 두 사람이었다. 케이크를 한 조각 나누어 받은 김가영은 남아있는 케이크 한 조각을 보며 눈을 빛냈다.

‘빨리 먹고 마지막 조각은 내가 먹는다고 해야지.’

김가영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눈치 챈 백진영이 숨을 삼켰다. 그가 긴장해서 자신이 케이크에 포크를 가져갔다.

‘가영씨가 빨리 먹고 한 조각 더 달라고 할 셈인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원래 진혁의 케이크가 맛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텔레비전 쇼에 출연해 다양한 쉐프들을 접하더니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순식간에 다음 단계로 도약헀다. 진혁이 어제 만든 케이크보다 오늘 만든 케이크가 더 맛있고, 오늘 만든 케이크보다 내일 만들 케이크가 더 맛있다.

‘심지어 아드레아노 존부가 인정한 케이크까지 만들어냈지.’

백진영이 이를 악물며 케이크 조각을 절반 잘랐다. 입안의 모든 미뢰 전체에 맛이 퍼지도록, 천천히 전신으로 맛과 향을 느끼며 먹어야 마땅한 음식이다.

‘지금 케이크를 빨리 먹어버렸다가 김가영씨가 마지막 케이크 조각을 차지하면 어쩌지.’

가영씨의 마지막 케이크를 향한 집념은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쉬는 날을 반납하면서 오늘 나온 것이 전부 이것을 위한 포석이었을지도 모른다.

진혁은 자신이 만든 케이크의 맛에 탐닉하는 타입은 아니니까, 남는 한 조각은 반드시 양보한다. 과연 그가 누구에게 마지막 케이크를 양보할 것인가.

‘늦었나?’

김가영은 벌써 케이크를 거의 다 먹었다. 장씨 자매들은 케이크에 손도 대지 않은 상태에 임운정은 아내를 위로하고 있다.

장은효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백진영은 장은효 앞 접시를 보고 저절로 놀란 신음을 흘렸다.

“어? 언제 케이크를 다 드셨어요?”

분명히 그녀가 케이크를 먹을만한 시간이 없었는데, 접시 위에 아무것도 없다. 놀란 은효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던 케이크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

다른 사람들 모두 케이크를 앞에 놓고 수다를 떨고 있는데, 그녀의 앞 접시만 비어 있다. 은효는 담요에 감싸져 있던 고양이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고양이를 들어올렸다.

“설마 너니?”

진호는 아무 말 없이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로 장은효를 응시했다. 고양이의 코 끝에 쬐끔 묻은 붉은색 크림을 발견한 은효가 입술을 한일자로 굳혔다.

“너, 엄마가 함부로 아무거나 먹지 말랬지!”

“허어!”

이미 자신의 케이크를 다 먹어버린 임운정이 고양이를 노려보았다.

“이 자식! 미각도 제대로 못 느끼는 주제에 진혁이의 케이크를 먹다니.”

“여봇! 지금 그게 문제예요!? 고양이가 단걸 먹으면 위험하다고요!”

고양이가 초콜릿이나 양파를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다행히 진호는 벌모세수를 받아 환골탈태를 거친 까닭에 대단히 튼튼한 위장을 갖고 있어, 인간의 음식을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다. 벽돌을 씹어 먹어도 문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장은효는 걱정스레 고양이를 안아들었다.

“24시간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지 않을까?”

눈물 흘리는 어머니를 부러 외면하며 다른 일에 집중하느라 고양이가 케이크를 훔쳐먹는 것까지 신경쓰지 못했던 임진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 나중에 보자.’

진혁이 감정을 실어 보낸 전음을 듣고서 고양이는 움츠리며 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장은효는 고양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너 이런 거 먹으면 당뇨 온다. 위험하다고.”

“야옹.”

고양이는 멀쩡해 보였다. 어머니는 근심스레 고양이의 눈꺼풀을 까뒤집어 보기도 하고, 배를 만져 보기도 했다. 옆에서 장은숙이 참견했다.

“맛있는 건 몸에도 좋아.”

“큰언니!”

장은숙은 좀처럼 소리 높이는 적이 없던 막내 동생이 언성을 높이자 입을 다물었다. 방금 먹었던 케이크는 천국을 핥는 것 같은 맛이었다.

‘저런 케이크를 짐승이 먹다니.’

“어머니, 그럼 이 케이크를 드세요.”

진혁이 남은 케이크를 새 접시에 담아 어머니 앞에 갖다 드렸다.

김가영이나 백진영이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았지만 별달리 신경쓰지 않았다.

‘졌다…….’

마지막 케이크를 노리고 있던 두 명은 실망해 어깨를 늘어뜨렸다. 순식간에 분위기를 휘어잡고 주방을 정리한 임진혁은 어머니가 안고 있던 고양이를 담요 째로 넘겨받았다.

“진호는 제가 돌보고 있을테니 신경쓰지 말고 드세요.”

“으응, 그래.”

은효는 케이크를 내려다보았다. 이전에 기념일이라고 남편이 새벽 케이크를 만들어온 이후 처음 먹는 케이크다.

그녀는 새 건강검진 결과가 좋게 나온만큼 더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애써 단것들을 멀리 해 왔다. 그렇지만 지금 이 케이크, 아들이 직접 만들어준 케이크는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럼 한 입만 먹어볼게. 맛만 보려고.”

케이크는 파도처럼 밀어닥쳐 입천장과 볼 안쪽, 앞니와 윗니 뒤의 잇몸을 휩쓸었다. 주스도 아닌 크림이 입안에 닿는 순간 사르륵 녹아내렸다.

겉보기에는 부드러워 보이지 않던 케이크였기 때문에 더 놀라웠다.

시트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크림만이 아니라, 시트도 비단처럼 폭신폭신했다. 담백하게 달달하고 느끼하지 않아 열 조각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진혁이 자신의 입맛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세상에서 오직 단 한 사람, 오직 자신만을 위해 아들이 만든 케이크였다.

‘달았다가 쌉싸름하고, 그리고 다시 달아.’

그녀는 지금이라면 아들과 함께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시장이라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아들은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옷까지 좋아졌다고 했다.

자신이 아들의 패션 감각을 망쳐 놓은 장본인이라고 온 세상에 오해를 산다고 해도 상관없다.

한 입만 먹겠다고 했지만 멈출 수가 없다.

장은효는 접시를 통째로 마셔버릴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케이크를 먹는 데에 열중했다.

“너무 맛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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