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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137화 (137/656)

제 1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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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서바이벌 쇼 시즌 2>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아직도 4라운드의 첫 번째 요리 중이다. 무대 위에서 출연자들은 분주히 주방을 돌아다녔다. 그들이 손을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이희주 사회자가 말했다.

“불평등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그는 이 부분은 편집하도록 스태프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희주 사회자가 한숨을 쉬면서 심각하게 말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서니 윌슨이 아닌 다른 출연자들이 너무 불리해지는 건 아닙니까?”

“어쩔 수 없어. 운도 실력이라고.”

아드레아노 존부 역시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쇼의 컨셉은 이미 정해졌는데 2명이나 떨어져 버렸으니까, 출연자가 1명 부족하게 되어버린 거지.”

“그렇다고 3명씩 진행할 수도 없고.”

“그러길래 누가 2명을 전부 탈락시키라고 했느냔 말입니다. 적당히 넘겨 주고 그다음에 떨궈도 됐을 텐데.”

아드레아노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인간적으로 정말…… 나도 한 명은 통과시켜주고 싶었는데, 그렇게나 못 하는 주제에 무슨 생각으로 텔레비전 쇼에 나왔냐고. 자기 인생을 시궁창에 처박고 싶나? 주영모 쉐프는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그런 사람들을 1라운드에서 통과시킨 거야?”

주영모 쉐프가 미간을 찡그리며 변명하듯 말했다.

“그래보여도 나름 호텔급에서 추천받아서 올라온 사람들입니다.”

“추천한 사람들이 누군지가 중요해? 실력이 중요하지.”

잠시 썰렁해진 가운데 사회자가 신호를 보내 다시 심사위원석의 마이크가 켜졌다. 방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드레아노 존부가 차분하게 커피를 마셨다.

“거, 참.”

주영모가 민망해하면서 외면했다. 이희주는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고 말을 아꼈다. 아드레아노 존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임진혁 쉐프가 동화를 가지고 어떻게 컨셉을 잡을지도 궁금한데 말이지요.”

“제과 솜씨가 아무리 좋아도 헤드 쉐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지 못하면 결과는…… 아시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죠.”

이희주는 다른 쉐프를 주시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임진혁이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인가? 항아리하고 난쟁이들을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닌가?”

주영모가 중얼거렸다.

“마흔 명을 만들 재료를 준비하지는 않았어, 다섯 명에서 일곱 명으로 보이는데…… 저 구는 항아리보다는…… 지구? 달? 아니, 오히려 모과나 한국 배, 사과 같은 과일에 가까운데.”

모델링 초콜릿을 잘라서 주무르며 붙여나가는 섬세하고 정교한 손길을 보며 세 사람은 모두 찬탄을 금치 못했다.

“허어, 참. 솜씨 좀 봐라. 내가 젊었을 때도 저만큼은 아니었는데.”

“정말로 대단한 녀석이라니까.”

카메라맨은 진혁이 만들고 있는 조형물에 화면을 고정했다. 심사위원들이 보고 있는 거대한 스크린에 초콜릿 얼굴이 선명하게 잡혔다. 누가 봐도 정의롭고 공명정대한 인물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어깨 넓은 난쟁이가 한 명, 그리고 눈이 쭉 찢어지고 입꼬리가 축 처져서 비열해 보이는 몸집 작은 난쟁이가 한 명. 캐릭터성이 뚜렷한 그 인물들을 보더니 이희주가 손뼉을 딱 치며 말했다.

“혹시 <빌헬름 텔>이 아닐까요. 둥근 틀에 화살 하나 꽂으면 빌헬름 텔의 사과가 될 것 같군요. 저 악당 같은 얼굴은 나쁜 영주, 그리고 정의로운 얼굴은 빌헬름 텔이고요.”

“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화를 독일의 극작가가 각색한 이 희곡은 스위스의 사냥꾼 빌헬름 텔이 악독한 영주를 파멸시키는 이야기를 다룬다. 평소 올바른 말을 하고 다니던 빌헬름 텔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영주는 아들의 경솔한 발언을 빌미 삼아 텔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 경솔한 발언은 “아버지는 100보 너머에서도 백발백중이에요!” 라는 아버지 자랑이었다.

“네 아들 말대로라면 80보 거리의 사과 쯤은 맞출 수 있겠지? 네 아들의 머리 위에 올려놓은 사과를 쏘아서 맞춰보라고.”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어찌 아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한 빌헬름 텔. 그는 소문이 자자한 명궁답게 아들의 머리 위에 올라간 사과를 단번에 쏘아 맞힌다.

“그렇기에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지 않나?”

하지만 지금 못생긴 난쟁이들이 사과 주변에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는 지금, 루이스 강의 아이디어가 빌헬름 텔일 가능성은 낮았다.

‘저게 대체 뭐야?’

주영모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흥부와 놀부가 아닐까. 저 정정당당하게 생긴 키 작은 남자가 흥부, 그리고 욕심 많은 남자가 놀부인 거지. 둥그런 건 보물이 든 박이고.”

“호오. 한국의 동화입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요. 루이스 강은 어렸을 때 한국에서 있다가 갔다고 하니까. 임진혁 쉐프가 이해하기 쉬운 한국 동화를 골랐을 가능성이 없지 않으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희주가 단호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흥부의 아내와 놀부의 아내여야 하는 두 난쟁이가 너무…… 못생겼습니다. 아름다울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여자처럼 생겨야 하는데, 체격 자체가 완전히 남자 체격입니다.”

“아, 다섯 명째를 만드는 걸 보니 흥부와 놀부는 아닌가 본데? 사람이 너무 많아.”

“흐음.”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궁금증은 점점 더 커질 뿐이다. 주영모와 아드레아노 존부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이희주가 알아냈다는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루이스 강이 선택한 동화는 ‘백설 공주와 일곱 명의 난쟁이’ 같지요?”

아드레아노 존부가 옛날 일을 떠올렸다.

“저도 옛날에 그 테마로 케이크를 만들어 본 적이 있는데.”

“독이 든 사과 케이크 말이죠? 동그란 사과 모양이지만 안에 자르면 다섯 층으로 케이크가 있는 것. 쉐프 매거진에서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주영모가 관심을 보이자 아드레아노 존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백설 공주 하면 제일 눈에 띄는 아이템이 사과니까요. 한 입 베어 문 사과, 그리고 그 옆에 쓰러진 아름다운 여인. 충분히 동화적이고 아름답지요.”

“차라리 공주하고 사과만 있으면 확신할 수 있는데.”

주영모가 안타까워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흥부와 놀부가 틀림없는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희주 사회자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저는 역시 빌헬름 텔이 아닌가 싶군요. 내기하시겠습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주영모가 맞받아쳤다.

“흥부는 찢어지게 가난해서 자식을 아주 많이 두었다고 했어. 그러니까 저 못생긴 남자애들은 흥부의 네 아들인 거지. 한 마리는 인간화한 제비고. 임진혁 쉐프가 특유의 패션 센스를 발휘한 것이 확실해.”

“공주가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지금 만들고 있는 사람이 7명인 걸 보면 일곱 난쟁이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세 사람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루이스 강이 의도한 것은 ‘백설 공주와 7명의 난쟁이’지만 진혁이 난쟁이를 지나치게 잘 만들어놓은 탓에 전혀 엉뚱한 것들로 오해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저 케이크가 백설 공주 이야기를 테마로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드레아노 존부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조금 후에 다 같이 발표하는 시간이 되면 알 수 있겠지.”

이희주가 카메라맨에게 눈짓을 보냈다. 카메라는 유키코 김과 브라이언 팀이 만들고 있는 케이크를 주목하였다. 세 사람은 화면에 떠오른 케이크를 들여다보았다.

“유키코 쉐프가 하고 있는 건 도통 뭔지 알 수가 없군.”

스텔라 위스커스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높게 평가하고자 하는, 동화를 이미지화하고 케이크로 재현하는 그 능력, 즉 컨셉을 만드는 힘은 아무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군요. 뭘 만들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아드레아노 존부는 케이크를 들여다보았다.

“브라이언 신이 지금 말고 있는 건…… 부쉬 드 노엘. 그리고 진주 구슬이라…… 크리스마스 캐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동화는 여러 가지 있죠. 성냥팔이 소녀도 있고.”

“O. 헨리의 단편선 중에 동방박사의 선물인가? 하는 단편이 있지 않습니까?”

이희주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라며 신나 했다.

“서로 깊이 사랑하는 두 부부의 이야기죠. 아내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머리카락을 팔아서 남편의 금시계에 달 시곗줄을 사고, 남편이 기뻐할 것을 상상하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남편에게 시곗줄을 선물하자, 남편은 당황해하며 시곗줄을 받고서 멍청하게 서 있는 겁니다. 왜 그렇게 가만히 있어? 하고 아내가 물어보니까 당신의 머리카락은 어디에 갔냐고 묻는다는 이야기요.”

“아, 그 얘기 들어본 것 같아.”

주영모가 아는 척을 했다.

“팔아서 당신의 시곗줄을 샀어요, 라고 하니 남편은 자신의 시계를 팔아 당신의 머리에 꽂을 빗을 샀다고 하지요. 아마 맥락상 빗이라기보다 머리카락을 장식하는 핀이 아닐까 싶긴 한데 말입니다. 전부터 아내가 갖고 싶어 하던 비싼 대모갑 빗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마음이 따뜻한 이야기라서 저도 좋아합니다. 제 아내도 그렇고요.”

아드레아노 존부가 웃었다.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부쉬 드 노엘 위에 빗과 시계, 시곗줄을 올리려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그러기에는 다른 몰드나 장식품이 전혀 없습니다만.”

이희주를 바라보며 스텔라 위스커스가 잘라 말했다.

“그리고 O. 헨리의 단편선은 저도 좋아하지만 그건 동화가 아니지 않습니까.”

계속 생각에 잠겨 있던 아드레아노 존부가 말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이라거나.”

“흠…… ‘머리’ 역할이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어떤 동화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번 라운드에서 유키코 김의 점수는 그리 높지 않을지도…….”

주영모의 비관적인 의견에 아드레아노 존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떤 동화인지 저희가 아직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희주가 말했다.

“유키코 쉐프가 직접 자신의 동화를 설명해야 우리가 저것이 어떤 동화인지 알 수 있게 되겠군요.”

◈          ◈          ◈

‘거의 다 됐어.’

유키코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가 지시를 내리는 것을 마친 것은 한참 전의 일이다.

그렇지만 지시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끼익.

커튼 너머에서 오븐 문짝 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막 오븐에서 케이크를 꺼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가지를 만들고 그 위에 진주 구슬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가지를 부쉬 드 노엘 곁에 놓아두면 완성이다.

‘재민씨.’

이 케이크는 그녀가 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어.’

결국 말차 테린은 포기했다. 너무 산만한 구성이 아닌가 싶기도 했고, 지시가 제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거기까지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다. 테린은 포기했으나 옥 가지라는 주제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봉래산에는 옥이 열리는 나무가 자라며, 가지에 맺힌 옥을 먹으면 그 어떤 병이라도 치유된다고 한다.

신선들이 산다는 전설 속 산의 이야기다. 어린아이들이나 믿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 산이 실제로 있다면 유키코는 옥을 따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봉래산이나 신선 따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에 기적은 없다.

‘자기야, 어서 일어나. 일어나서 나랑 선호를 봐 줘.’

그래서 그녀는 직접 옥의 가지를 만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늪보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운명을 가르는 종소리가 울렸다.

-댕! 댕! 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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