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35화 (135/656)

제 135화

“진혁이 형이 그, 임운정 사장님 아드님이시지? 전에 결혼식 뉴스 나왔던.”

“뉴스만 나온 게 아니야. 지금 계속 베이킹 쇼에 나오고 있잖아요. 인터넷에 짤방도 완전 많이 돌아다니는데요.”

“<내 빵이 세계 최고> 그 짤방 말이지?”

“<맛으로 이겼다>도 있어요. 웃겨서 핸드폰에 저장해 놨어요.”

김연수가 핸드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형이 일을 진짜 빨리 해. 지금 내가 네 시간 동안 하는 일을 한 시간이면 다 한다니까. 난 ㅃㆍ른 것도 아니야. 우리가 왜 형 가고 사람을 바로 뽑았는데.”

허민준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하면 그 두 배는 걸리는데.”

“맞아요, 일봉 선배님이 손이 느리신 거면 저희는…… 저희는 그냥…….”

쓰레기라는 단어가 너무 심한 것 같아 다른 대체 단어를 찾던 김연수가 한숨을 쉬었다.

“저는 패스트푸드점이랑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오래 해서 포스기 찍는 건 자신이 있었거든요.”

POS기라는 것은 POS(Point of sales, 판매시점 정보관리)를 담당하는 기기로 보통 매장에서 계산할 때 사용하는 기계를 말한다. 대개 기계들은 조금씩 조금씩 달라도 근본적인 원리는 비슷하다. 하지만 진혁이네 가게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김연수가 사용하던 제일 오래된 포스기보다 더 오래된 기계였다. 이를테면 폴더 폰과 스마트폰의 차이와도 같다.

“좀 오래됐지?”

유일봉이 괜히 머쓱해하며 말했다.

‘큰 사장님이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건 좋지만, 포스기 정도로만 바꿔도 좋을 텐데.’

하지만 오래된 구닥다리 핸드폰을 5년째 아껴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금전출납기가 포스기로 업그레이드될 날은 요원하다.

“네. 금전출납기는 처음 봤어요. 바코드 등록이랑 체크, 계산만 가능하고 재고 관리는 불가능하다니.”

“사실 우리는 재고를 그날 그날 만드니까.”

“빵을 만들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만들다가 오븐에 넣고 나와서 손 씻고 다시 계산도 하고 빵이 나오면 또 포장해야 하고.”

허민준이 거들었다.

“그리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바코드를 그냥 찍으면 되잖아? 하지만 빵에는 바코드가 없다고. 빵 이름을 일일이 외워서 입력해서 찍어야 하니까 처음에 그게 어려웠지.”

“맞아요, 다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빵 포장하다가 손님 오셔서 결제하고 하면 정신이 없다니까. 일봉 선배님이랑 임운정 교수님 손빠른 거 보면 난 언제 저렇게 되나 싶고.

“그러고보니 매니저님, 오늘 임운정 교수님은 안 오시나? 원래 수업하는 날 빼고는 하루종일 가게에 계시잖아. 어머니께서 전해달라고 부탁하신 물건이 있는데.”

허민준의 질문에 일봉이 대답했다.

“임 사장님이랑 장 사장님 전부 다 인터뷰 하러 가셨어. 끝나면 바로 돌아오실걸?”

“인터뷰요?”

“디저트 서바이벌 쇼. 4라운드까지 남은 사람들의 가족을 따로 만나서 인터뷰를 찍을 예정이라고 하더라고. 미리 촬영은 해놓는데 방송은 나중에 한다던가?”

◈          ◈          ◈

“야아옹.”

10킬로그램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고양이가 등을 치켜세우며 꼬리를 허공으로 빳빳이 곧추세웠다. 전신의 모공에서 털을 일으켜 세워 부풀리자 훨씬 더 커 보인다. 황금색 눈동자의 동공은 세로로 가늘게 찢어져 있다. 분홍빛 코 아래의 입술이 벌어지며 작고 날카로운 앞니와 송곳니가 드러났다.

“캬야옹.”

기세만은 호랑이 못지않다. 인간의 무릎 아래에도 닿지 못할 키지만 위압감은 상당하다. 삼각대 위에 무거운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던 촬영 보조 스태프가 고양이에게 카메라를 돌렸다.

“길고양이치고는 깨끗하고 상태가 좋은데.”

“덩치 큰 걸 봐. 이 동네 고양이 보스인가 봐.”

“캬아오오오오오오오오옹!”

안쪽에서 촬영팀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진혁의 모친 장은효가 고양이 우는 소리에 바깥으로 나왔다.

“어머! 진호야!”

조금 전까지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고 있던 고양이는 갑자기 꼬리를 내렸다. 폴짝하고 한 번에 장은효의 어깨 위로 올라앉았다. 그녀의 키가 160cm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점프력이다.

“저희 집 막내예요.”

“고양이가 굉장히…… 잘 뛰네요.”

촬영팀 막내가 중얼거렸다.

“우리 집 고양이는 90cm 높이의 책상이 한계인데.”

김산호 피디가 막내를 노려보았다. 막내는 찔끔해서 입을 다물었다.

“장은효 여사님, 고양이가 말을 잘 듣네요?”

“얘가 똑똑해서, 아침에 출근할 때 따라와서 하루종일 이 근처를 순찰하고 그래요.”

그녀가 머쓱해하면서도 자랑스러워했다. 뒤늦게 따라 나온 임운정이 말했다.

“방금 그 엄청난 소리, 설마 진호가 낸 거야?”

“저희 스태프가 카메라를 이쪽 문을 향해 설치하니까 갑자기 엄청나게 화를 내더라고요.”

“우리 막내 진호! 엄마를 지키려고 했구나.”

장은효가 어깨 위에 앉아있던 고양이에게 뺨을 비볐다. 고양이는 눈을 한 번 깜빡거리더니 나지막하게 울었다.

“야아옹.”

본디 고양이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상황은 마치 고양이가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과 고양이가 나누는 교감을 본 김산호 피디가 눈을 빛냈다.

‘이건 호재다, 호재야.’

“이 가족 인터뷰 말인데요, 고양이도 같이 촬영을 하면 어떨까요?”

“진호도요?”

“예, 가족과 사이가 좋아 보이는군요.”

부부가 얼굴을 마주 보았다.

“엄마! 아빠!”

그때 문이 열리고 진희가 바깥으로 나왔다.

“아, 안녕하세요.”

그녀가 촬영팀을 보자마자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에서 촬영팀을 기다리던 진희가 부모님이 문 바깥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찾으러 나온 것이다.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뭐 하세요?”

“그럼 들어가서 실내에 카메라부터 설치하겠습니다.”

“예!”

부부가 승낙하자 김산호 피디가 지시를 내렸다. 안쪽으로 들어간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설비를 설치하는 동안 김산호 피디가 장은효에게 다시 물었다.

“고양이가 평소에 가게 안에 있는 건 아니라고 하셨죠. 어떻게 훈련하셨습니까?”

“아까 말씀드린 대로예요. 자기가 그냥 가게 안으로는 절대 안 들어와요, 바깥을 돌아다니는데 누구 손님이라도 오려고 하면 귀신같이 가게 앞으로 와요. 이 근처에 있다가 누가 올 것 같으면 뛰어오는 것 같아요.”

장은효가 신이 나서 진호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문 앞에서 망부석처럼 오도카니 서서 지키더니, 며칠 있어 보다가 괜찮겠다 싶었는지 근처를 조금씩 돌아다니더라고요. 지금은 훨씬 멀리 다니는 것 같아요. 희한하게 차도나 인도가 아니라 지붕이나 담 위, 나무 위 같은 높은 곳으로만 다니더라고요. 동네 분들이 처음에 좋아하시기만 한 건 아니었는데, 얘가 동네 쥐와 바퀴벌레를 소탕해서…… 이제는 다들 고양이를 알아봐 주시고 귀여워해 주세요.”

‘너무 위험하잖아!’

스태프 보조 중 고양이를 키우는 유일한 사람인 막내 박하연이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차가 많고 고양이를 기피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시골 동네에서 고양이를 풀어 키운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차에 치일 수도 있는 것은 물론이며 들개에게 물리거나 인간에게 해꼬지를 당하는 일도 없지 않다. 그녀는 저 아주머니에게 집고양이는 실내에서 키우는 것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망설였다.

‘지금 메인 피디님하고 이야기하시는데 내가 끼어들 수는 없긴 한데.’

지나치게 오지랖 넓게 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꼭 말씀드리고 싶다.

“특이하네요. 어떻게 훈련을 하셨습니까?”

장은효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던 김산호 피디가 질문을 하자 장은효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제가 가르쳤다기보다 알아서 깨우쳤어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니까요.”

귀를 상단으로 똑바로 세운 고양이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아듣는 듯이 김산호 피디를 응시했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생각했다.

‘이 고양이…… 똑똑한데? 카메라발을 잘 받을 것 같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 영특한 고양이! 눈치가 빠르고 귀엽기까지 하다. 장은효가 씁쓸하게 말했다.

“비 오는 날, 뼈가 부러진 채 쓰레기통 속에 숨어 있는 걸 제가 주워왔어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는데, 그 작고 연약한 것이 살겠다고 바둥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는 게 너무 안쓰러웠죠. 다행히 원래 죽을 운명은 아니었는지 무럭무럭 커서 지금은 벌써 이렇게 컸답니다.”

새끼고양이가 혼자 돌아다니다가 다리가 부러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상태로 비닐봉지 안에 몸을 집어넣고 스스로 쓰레기통 안에 들어가 있을 수는 없다. 누군가가 고의로 해쳤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화가 나.’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는 것이 비닐봉지에 담겨 바스락거리면서 우는 소리를 냈다.

마침 쓰레기를 버리려던 장은효가 통 안을 살피지 않았으면 그 아래에 깔려서 죽었을 것이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악의를 생각하면 지금도 장은효는 화가 났다. 자신이 통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 쓰레기를 버렸을 때 일어났을 일을 상상하면 소름이 끼쳤다.

덩치 큰 고양이는 장은효의 표정이 달라진 것을 민감하게 느꼈다. 진호가 위로하듯이 장은효의 뺨에 자기 뺨을 비비자, 장은효가 웃었다.

“그래, 그래. 이 녀석아, 엄마는 괜찮아.”

김산호 피디가 물었다.

“혹시, 이 녀석도 같이 촬영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가족같이 가깝게 지내시는 것 같은데…….”

장은효와 임운정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부모님이 무어라 하기 전에 딸이 먼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좋죠! 진호도 좋아할 거예요.”

고양이는 절묘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눈을 깜빡거리며 진희를 바라보는데, 그게 ‘내가 어째서?’라는 표정이어서 지켜보던 스태프 모두 웃어버렸다.

“진짜로 말 알아듣는 거 아니야?”

“우연이겠지, 우연.”

’고양이를 아끼시긴 하는구나.’

자유롭게 외출하게 내버려 둔다는 것을 보고 경악하고 있던 박하연은 조금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가 주머니에서 작은 비닐 파우치를 하나 꺼냈다. 참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긴 파우치는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유명 브랜드의 간식이었다. 고양이 주인에게 간식을 줘도 되는지 허락받고 괜찮으면 고양이에게 주려는 속셈이다.

“이게 슈르라는 건데, 우리 집 돌괭이가 아주 환장하거든요.”

붉은색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박하연이 미소지었다.

“그게 뭔지는 나도 아는데. 그걸 왜 들고 다니냐?”

옆에 있던 박하연의 사수, 임종태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이렇게 멀리 지방 출장 오면 오래 걸리잖아요. 늦게 들어가면 돌괭이가 화내거든요. 잘 때 등을 돌리고 자요. 그런데 늦게 들어갈 때 간식을 주면, 인간이 사냥하느라 늦게 들어온 줄 알고 이해를 해주더라고요.”

“……아주 상전으로 모셔라, 모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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