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27화 (127/656)

제 127화

임진혁이 실망스러운 듯 눈썹을 가운데로 모았다.

“유키코 씨는 3라운드에서 저보다 더 좋은 실력을 보여주셨고.”

네 실력이 이것밖에 안 돼? 라는 말투로 들렸다. 유키코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패자부활전에서 아드레아노 존부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이신 임진혁 쉐프님께서 그렇게 얘기하셔도…….”

여자 혼자 몸으로 이국땅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빵을 만든다고 하지만 자존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존심이 있었기에 이제까지 버텨온 것이었다. 빵을 만드는 것은 그녀가 가장 자부심을 갖고 있는 문제였다. 유키코가 인상을 찡그리기 시작하자 백진영이 손뼉을 치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자~그럼 시식회가 있겠습니다!”

오늘 시식을 할 사람들은 백진영과 임진혁, 그리고 김가영과 서창덕. 직원 네 명이었다. 단출한 멤버가 테이블 곁에 나란히 모였다. 제일 먼저 몽블랑 케이크를 맛본 김가영이 웃었다.

“이건 임 쉐프님이 구운 거랑 똑같네요.”

그녀가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레시피만 보고 그대로 재현하실 수 있다니……. 진짜 프로는 다르네요.”

“맛있어요! 저는 이건 맛이 조금 다른 것 같긴 한데…….”

크림슨 트리플 치즈 케이크를 맛보고서 서창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눈에 띄게 미각이 예민한 편이었다. 진혁이 케이크를 맛보고 말했다.

“크림무스를 저으실 때 거품을 너무 많이 냈군요.”

“그렇군요. 다음엔 주의할게요.”

“오페라 바삭바삭한 거, 이건 정말 진혁 쉐프님이 만든 거랑 비슷하네요.”

진혁이 만든 것과 자신이 만든 것, 두 개를 맛본 유키코가 눈썹을 찡그렸다.

“아니에요. 뭔가 좀 다른데요. 제 것이 살짝 눅눅해요.”

‘아.’

강기의 그물로 감싸서 크림과 파이지를 분리시키는 기술은 일반 쉐프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레시피대로만 만들면 눅눅해질 수밖에 없었다. 진혁이 웃었다.

“그래도 잘 만드셨어요. 이 정도까지 재현해낸 사람은 처음 봅니다.”

“아니, 페이스트리 쉐프로서의 경력도 제가 더 많은데…….”

유키코가 웃었다.

“정말로 감탄할 수밖에 없네요. 임 쉐프님은 천재예요. 스킬도 그렇고, 아이디어도 그렇고. 제가 배울 게 많네요.”

“…….”

잠시 주변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유키코가 정식으로 진혁이 자신보다 위에 있음을 인정한 것이었다. 도쿄제과학교를 졸업하고 쌓아온 경력과 풍부한 경험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녀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아니었다.

“유키코 쉐프님이 저보다 경험이 풍부하시고 가르쳐주실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진혁이 짚었다.

“지금 만드실 수 있는 제품들을 보면 생크림과 카스테라 쪽에 대해서는 확실히 저보다 뛰어나신 면이 있습니다.”

“평생 그걸 해왔으니까요……?”

미리 준비해온 요일별 손님에 대한 분석표, 매출 내역을 그래프로 알기 쉽게 정리한 것을 보여주며 진혁이 하나씩 짚어 주었다.

“고객들이 제일 많이 오는 금요일과 주말에는 둘이 함께 근무하고, 나머지 요일을 나누는 식으로 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각자 근무하는 날에는 시그니처 메뉴를 중심으로 가고요.”

“금토일에는 두 사람의 시그니처 메뉴를 먹을 수 있고, 각자 근무하는 날에는 각자 시그니처 메뉴하고 특별 메뉴를 하나씩 더 내놓는 거네요?”

“네. 지금은 시간별로 메뉴가 다른데, 거기에 근무하는 사람별, 요일별로 또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달라지는 거죠.”

“지금도 여러 종류의 빵을 먹으려고 시간마다 찾아오는 손님이 있는데.”

백진영이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런 생각은 어떻게 했어?”

진혁이 웃었다.

“민병철 씨가 도움을 줬어.”

“그린워터 샌드위치 하는 민병철 씨?”

백진영이 눈을 크게 떴다.

“이번에 사업적인 제안을 내가 받아들이면서, 여기 마케팅 관련 자문을 해주기로 했거든.”

“이야…….”

백진영이 입을 벌리고서 감탄하는 동안, 유키코는 케이크를 하나하나 맛보았다. 어느 것 하나도 5성급 페이스트리 키친 수준이 아닌 것이 없었다.

‘크루아상의 파이지는 얇고 바삭바삭하고 몽블랑의 크림은 밤의 맛이 선명하게 살아 있어.’

바닐라 향과 초콜릿 향이 섬세하게 조화를 이룬 오페라와, 얇디얇은 케이크와 크림이 층층이 쌓인 밀푀유 또한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이 수준에 저 가격이면 잘 팔리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예요.”

유키코가 말했다.

“그리고 임진혁 쉐프님 실력이…… 정말.”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빠르고 정확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라운드 1과 2에서 그 점수를 받은 게 당연하네요.”

백진영이 그 이야기를 듣고 손뼉을 한 번 짝! 하고 쳤다.

“역시 제가 생각한 게 맞았습니다.”

“예?”

“저 녀석이 물 아래에서 발 젓는 백조같이 무시무시하게 빠른 속도로 주방에서 빵을 공장처럼 생산해내는데.”

“공장까지는 아니다, 형.”

“원래 빵 만드는 사람은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라고 우기더라고요. 자기는 보통이라고.”

“절~대 일반적인 쉐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이제 유키코 씨가 오셔서 저희도 한시름 덜었죠, 뭐.”

백진영이 따뜻한 시선으로 임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남들한테는 워커홀릭 소리를 듣는데, 진혁이 만큼은 아니에요.”

임진혁은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물었다. 한일자 모양으로 입을 다문 그를 바라보며 백진영이 웃었다.

“너 슬슬 출발해야지. 랑비에 씨 만날 시간 되어가지 않아?”

진혁이 시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키코가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여주며 말했다.

“제가 들를 곳은 여기에요.”

“바로 코앞이네요. 지금 출발하면 여기에 들렀다가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유키코 씨는 차가 있죠? 차로 가면 되겠다.”

백진형이 말을 꺼냈다. 진혁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지하철 타고 가려고 했는데.”

“괜찮으시면 제가 운전할게요.”

◈          ◈          ◈

유키코의 차는 자그맣고 빨간 경차였다.

“차가 좀 작죠?”

그녀는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민망해 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려면 차가 꼭 필요한데, 비싸서…….”

“상관없습니다.”

‘다리를 굽혀야 되는군.’

그런 사소한 일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진혁은 10성의 축골신공(縮骨神功)을 발휘해 다리의 길이를 아주 조금 줄였다. 바지가 살짝 헐렁해지며 바짓단이 남았다.

“네비게이션만 먼저 찍어주시겠어요?”

유키코는 시동을 거느라 정신이 없었다.

“예, 그러죠.”

그녀가 쩔쩔매며 몇 번 재시동을 걸고 나자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고 나서 차가 출발했다. 그녀가 편안하게 운전을 하며 말했다.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는 운전석이 반대쪽에 있어서 헷갈리곤 했어요.”

“지금은 안 그러시죠?”

“한국 온 지가 몇 년인데요. 당연히 안 그러죠.”

붉은색 신호등이 켜졌다. 깔끔하게 정차하고서 유키코가 정면을 바라본 채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특별히 한 것은 없습니다만.”

“나이 많고 경력도 많은 쉐프를 파트너로 들이는 결정, 쉽지 않으셨으리라는 걸 알아요. 알아주신 만큼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할게요.”

‘개나 말처럼 충실하게 일하겠다는 얘기잖아?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라고.’

진혁은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중간에 차가 막히지 않아서 빨리 왔네요.”

명화흥신소.

오래되고 낡아 ‘ㅎ’이 거의 ‘ㅇ’처럼 보였다. 바람이 세게 불면 떨어져나갈 것 같은 간판이 대롱대롱 매달린 3층 건물에는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뭐, 시설비에 돈을 별로 들이지 않는 의사가 명의라는 이야기도 있으니.’

강남에 있는 H & J 카페 앤 베이커리는 존부의 디저트 팩토리에 영감을 받아 작업한 장소였기 때문에 인테리어에 큰 비용을 들여 반짝반짝하게 만들어 놓았다.

‘소망시에 있는 아버지의 가게도 겉모습에 크게 투자를 하지는 않았지만 내실은 나쁘지 않으니까. 여기도 의외로 괜찮은 가게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유키코의 등 뒤를 따라서 계단을 올라가면서 진혁은 그 생각을 정정했다.

‘여긴 틀려먹었어.’

계단 위에는 바퀴벌레가 지나가고, 벽 뒤에는 쥐가 살고 있었다. 그는 현대로 온 이후 이렇게 관리가 안 된 건물을 본 적이 없었다. 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계단을 올랐다. 성인 게임장이 있는 1층에 이발소가 있는 2층, 그리고 3층이 흥신소였다. 유키코가 노크를 하자 바로 문이 열렸다.

“유키코 씨! 어서 오세요.”

흥신소의 소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웃으며 유키코를 반겼다.

“불쾌한 신문기사들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그런 사정이 아니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쩔 수 없죠. 사실은 그걸 보고서라도 민재 씨가 나타나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어요.”

유키코가 쓸쓸하게 웃었다.

“같이 오신 분은……?”

유키코가 소개했다.

“제 직장 동료예요. 근처에 들를 일이 있어서 같이 오셨어요.”

그녀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같이 들어도 괜찮죠?”

“예, 의뢰인님께서 괜찮으시다면야.”

‘이런 곳인가.’

진혁은 막연히 하오문(下汚門) 같은 것을 상상하고 있었다. 하오문은 기녀나 점소이, 거지와 마부, 소매치기와 도둑 등 사회의 하류 계층으로 이루어진 문파로 정보를 주로 다룬다. 정파도 아니고 사파도 아니며, 정보를 모아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종종 일종의 심부름센터 역할을 겸하기도 한다.

‘보통은 하오문 지부인 기루나 객잔에서 점소이에게 특정한 주문을 하면 상급자를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지.’

일반인들이 시키지 않을 주문이면서도 타인이 듣기에 이상하지 않고 하오문의 말단부터 문주까지 모두가 숙지하고 있는 주문.

그것은 두 종류의 술과 여섯 종류의 요리를 어떤 순서로 주문하는 것이다. 진혁은 아직도 사천성 하오문의 특급 고객을 위한 순서를 암기하고 있었다.

‘이과두주(二鍋頭酒)와 백주, 종자(?子)와 회과육(回鍋肉), 어항육사?香肉?)와 궁보계정(宮保鷄丁), 청초육사(靑椒肉絲)와 마랄향과(麻辣香?)’

종자는 대나무 잎이나 갈대 잎에 찹쌀을 넣고 팔소를 넣은 찜으로 단옷날 먹는 특별한 음식이다. 주로 서민들이 먹는 음식이다. 한편 다른 다섯 가지의 음식은 전부 사천성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맵고 짠 음식이다. 두 번 삶은 돼지고기나 생선 요리, 거기에 닭고기 요리, 피망을 곁들인 돼지고기 요리에 맵고 짠 소스를 넣어 두 종류의 고기를 볶은 것. 지나가던 사람이 주문할 리가 없는 음식이다.

잠시 옛 생각을 하던 진혁은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그는 유키코가 이야기하는 상대를 면밀히 관찰했다.

“아직 민재 님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살던 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이사 가신 다음에, 한 달이 되지 않아 다시 이사를 갔거든요. 지금 그 주변의 부동산을 탐문하는 중입니다. 의뢰비를 조금 더 주신다면 더 빨리…….”

‘이것 봐라? 이 녀석들,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하며 미세하게 시선을 피했다. 민재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만 심장 소리가 조금씩 빨라졌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유키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말간 얼굴로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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