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23화 (123/656)

제 123화

일봉이 끼어들어 말했다.

“작은 사장님이 만든 빵이나 자세하게 올려줬으면 좋겠는데. 레시피는 쇼가 끝나면 따로 모아서 책으로 출간할 거라서 쇼에서는 자세하게 공개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미혼모니 어쩌니 하는 쓸데없는 기사보다, 제빵에 대한 걸 더 자세하게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임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 자. 여보, 일합시다!”

“그래. 점심시간에 보자고.”

맞은편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임운정이 웃었다.

“항상 고마워.”

36장

[디저트 서바이벌 쇼의 여자 쉐프는 미혼모]

연합뉴스 구석에 조그맣게 뜬 기사는 크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유키코에게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출근하자마자 사장실로 불려갔다.

“유키코. 당신은 해고야.”

유키코는 눈을 깜빡였다. 지금 사장이 말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나마무라 베이커리에서 헌신적으로 일해왔다. 일과 시간 외에 시키는 일한 번역도 직접 했으며 제빵과 제과 매뉴얼 역시 한국어로 다시 만들었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승진한 이유는 그녀가 그만큼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프라이드가 있었다.

“입사할 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숨겼잖아.”

사장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게 아이가 있는 것이 맛있는 빵을 개발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죠?”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가졌잖아!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나?”

한세호 사장이 화를 내면서 책상을 내리쳤다.

“자네는 우리 이미지였어. 훌륭하게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잘하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 사람들이 우리 나마무라 베이커리는 미혼모가 다니는 기업이라고 생각할 것 아냐? 윤리적이지 못한 기업이라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듣고 유키코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 여기서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어.’

당장 다음 달 보육원에 낼 돈도 아슬아슬하다. 아이도 유키코도 법적으로는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보육수당이나 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어, 월급이 끊기면 월세와 보육원비를 낼 길이 막막하다. 그녀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하지만 해고만은…….”

“설령 미혼모였다고 해도 혼자 몰래 애를 키우고 있으면 됐을걸. 뭣이 자랑스럽다고 그걸 온 세상에 떠벌려? 자네가 우리 소속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는 마당에!“

그녀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가서 회사 홍보를 하라고 하신 건 사장님…….”

한세호 사장이 말을 끊었다.

“미혼모라는 사실을 숨기고 입사해서 회사에 다녔잖아! 그런 치명적인 흠집이 있는 걸 알았다면 다른 사람을 내보냈겠지.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 줄 알았어?”

그가 불같이 화를 냈다.

“아니면 자네가 임진혁 쉐프같이 뛰어난 실력을 보여줘서 회사의 자랑거리가 되든지. 간신히 밑자락으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그 정도 실력으론 아무것도 안 돼.”

사장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녀가 회사의 자랑거리라면서 칭찬할 때와 다른, 완전히 돌변한 태도였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회사를 나섰다.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          ◈          ◈

H & J 카페 앤 베이커리는 손님이 너무 몰려 있었다. 임진혁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호평을 얻으면서부터다. 결국 직원의 수가 네 명 늘었다. 백진영이 혼자 음료수를 만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서 서빙만 하던 직원 모두 하나씩 하나씩 음료 만드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페이스트리 쉐프는 여전히 한 명이다. 오픈 키친에서 여덟 시간째 화장실도 가지 않고 자리에 앉지도 않고 계속해서 쉼 없이 일하는 임진혁을 바라보며 백진영이 질린 표정을 했다. 영업을 마치고 직원들을 보내고 가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백진영이 조심스레 물었다.

“안 힘들어? 가서 쉬어야지.”

“괜찮아.”

“무슨 안드로이드도 아니고, 그렇게 일만 하다가 쓰러진다. 우리는 교대로 조금씩 쉬면서 일했는데, 진혁이 너는 화장실도 안 가고 계속 일했잖아. 물이라도 좀 마셔.”

진혁이 물을 마시는 동안 백진영이 중얼거렸다.

“쉐프를 한 명 더 구하면 괜찮을 텐데.”

“쓸모 있는 사람이 없었어.”

“네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기는 하더라.”

오늘 면접을 본 한 명도 진혁이 아니라고 해서 탈락했다.

“기본이 안 되어 있으니까 그렇지.”

진혁은 자신의 기준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에 디저트 서바이벌 쇼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출연자들은 다들 진혁의 절반 정도는 일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가를 충분히 지불하고 데려올 마음이 있는데 말이지.”

“우리가 지금 누구를 가르칠 수는 없는 입장이니까. 오픈 키친에서 반죽부터 가르칠 수는 없잖아.”

백진영이 통과시켜 면접을 본 세 명은 전부 진혁의 팬이었다. 그들은 진혁 같은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막상 머랭을 치거나 반죽을 하는 기본적인 것을 시키자 엉망진창으로 실수를 했다.

‘저놈들이 무인이라면 삼류도 못 되는 떨거지들일 거야. 산적을 만나면 놀라서 떨면서 칼을 떨어뜨려서 자기 발등을 찍을 놈들이지.’

엄청난 실력의 쉐프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실력과 성실성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진혁이 원하는 ‘최소한의 실력’은 지나치게 기준이 높았다. 진혁의 입장은 간단했다.

‘빵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서 무공을 섞어서 써가면서 일하는 게, 어설프게 일 못 하는 녀석이 들어오는 것보다 훨씬 낫지.‘

그래서 그는 별 미련이 없었다. 반면 백진영의 입장은 달랐다.

“이 상태로는 너 혼자 계속 일하게 생겼어. 나도 계속 사람을 찾아볼게.”

백진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제빵 경력이 있는 두 사람과 배울 준비가 된 초보자 세 명이 면접을 보도록 진혁에게 소개했다. 하지만 진혁은 셋 다 탈락시켰다. 그가 진혁에게 다시 물었다.

“어떤 사람이면 만족하겠어?”

“일단 나와 같이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 출연할 정도의 실력은 갖추었다면 좋겠지만…….”

“그건 어렵지.”

백진영이 기가 막혀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정도의 쉐프라면 이미 어딘가에서 소속되어 헤드 셰프급 대우를 받고 있거나, 자신만의 베이커리를 경영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진혁의 아래에서 일하고 싶어 할 리도 없다.

“그 정도까지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향상심과 기본 실력?”

진혁이 웃었다.

“아 참, 그리고 내 팬이 아니어야 돼.”

뜻밖의 조건에 백진영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팬인 편이 좋지 않나?”

“이번에 온 세 명 다 나를 졸졸졸 쫓아다니면서 쓸데없이 눈빛을 반짝거리는데. 오히려 일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더라. 쓸데없는 팬심이 아니라 성실함이 필요하다고.”

“흠, 알겠어. 그럼 새로 들어온 이력서도 다 걸러야 되는데.”

“걸러. 좋은 사람이 오겠지.“

백진영이 피식 웃었다.

“너랑 같이 일하니까 별일이 다 있다.”

“별일?”

“장사가 이렇게 잘 되는데 사람 뽑는 것 때문에 고민하다니 별일이지.”

“전에는 어땠는데?”

백진영이 한숨을 쉬었다.

“그때는 장사가 안돼서 고민이었지. 지금 이 정도 고민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일하고 싶은 사람은 많으니까.”

백진영은 정말로 진혁이 원하는 수준의 사람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을 뽑을 수는 없다. 그는 다른 이력서가 들어올 때까지 더 기다려 보자는 데에 동의했다.

“네 몸이 걱정이다. 그때까지 혼자 버틸 수 있을지, 큰일이야.”

“이 정도는 정말로 별거 아니라니까. 이러다가 내가 아니라 형이 먼저 쓰러질 것 같아.”

백진영은 진혁을 훑어보았다. 12시간 동안 주방에서 일을 계속했는데도, 다크 서클이 없다. 피부도 생기있고 자세도 꼿꼿하다. 밝은 표정의 임진혁을 보면서 진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20대 중반이라 그런가. 멀쩡해 보이기는 한다.”

20대 후반인 백진영이 한숨을 쉬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1년만 지나 봐. 나이 먹으면 한 해 한 해가 달라. 네가 젊고 체력이 좋아도 그러다가 훅 가는 수가 있다니까.”

어렸을 때 겪은 사고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살짝 저는 백진영은 오랜 시간 서 있으면 쉽게 피곤해했다. 온종일 일하고 나면 다리를 펴는 데에 통증이 심해진다며 더 절뚝거리는 것이 심해졌다.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진짜로 괜찮아.”

그의 체력은 일반인과는 다른 수준에 있다. 일주일 내내 밤을 새우고 밥을 먹지 않아도 빵 굽는 정도는 멀쩡하게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백진영이 걱정해주자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간질간질하군.’

큰 도시에서 잠시 경험을 쌓기 위해서 아주 잠깐 동안 같이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겪어보니 나쁜 사람은 아니다. 힘들 때는 힘들어하면서도 바쁠 때는 같이 돕는다. 자신이 몸이 아팠던 경험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건강에 민감하다. 진혁이나 다른 직원이 무리해서 건강을 상하지는 않을까 많은 배려를 해 주었다.

“그나저나 진혁이 너 완전히 스타가 다 됐더라. 지나가는 사람이 알아보고 사인해달라고 하지 않아?”

백진영이 웃으며 물었다.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들어가니까 거리에서 사람들 만날 시간이 별로 없지.”

“너한테는 여기 출근하는 거 말고 일상생활이라는 게 없어?”

“음.”

진혁이 입을 다물었다. 눈을 깜빡이고 있는 진혁을 보면서 백진영이 기가 막힌다는 듯 물었다.

“이것저것 경험하려고 서울에 올라온 게 아니었어?”

“주방에서 일도 하고, 텔레비전 쇼 촬영도 하고. 그것만으로도 할 일이 많은데.”

“그거야 그렇지만…… 안 되겠다! 우리 오늘은 끝나고 이 앞에서 한잔하자.”

“술을?”

“당연히 술이지, 그럼. 물이겠어?”

백진영이 결심했다는 듯 말했다.

“시외로 조금 나가야 하긴 하는데, 아주 맛있는 횟집이 있어.”

“이 시간에 시외까지 나간다고? 내일 출근할 때 피곤하지 않겠어?”

“복어 집인데 아주 맛있어. 너도 먹으면 원기 회복이 될 거야.”

‘이 가게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원기 회복이 될 텐데…….’

정 술을 먹고 싶다면 차라리 가게에서 직접 술을 사다가 마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 오행진이 설치된 가게 안에서도 이렇게 피곤해하는 백진영을 보면, 바깥에 나가면 바로 쓰러져서 잠들지도 모른다.

술과 복어를 사주며 기운을 북돋워 주겠다는 계획은 고맙지만 진혁은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사무실 안쪽에 있는 봉투를 가리켰다.

“저건 뭐야?”

“어? 응. 고아원 서류.”

“고아원?”

“응. 영리 보육원이랑 비영리 고아원 같이 하는 곳인데, 원래 우리가 그날그날 팔리고 남은 빵을 주기로 했던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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