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15화 (115/656)

제 115화

여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반죽을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히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라는 자막이 떴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데코레이션을 하고 있었다.

진혁은 침착하게 자신이 구워낸 케이크를 분리해서 깔끔하게 조리대 위에 올려놓았다. ‘교과서적인 분리!’ 하는 자막이 그 앞을 스쳐 지나갔다.

“저 여자애는 안 됐다. 우리 진혁이는 저런 실수 안 해서 다행이야.”

큰언니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은효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 애가 하루에 혼자서 굽는 빵이 몇 갠데. 저기서 저렇게 느리게 하는 것보다 진짜 실력은 훨씬 더 좋아.”

셋째 언니 은혜가 빨갛게 칠한 입술을 오물거리며 물었다.

“너 아들 교육을 어떻게 했니? 그 비결 좀 알려줘 봐. 우리 민서도 저렇게 잘 좀 컸으면 좋겠는데. 맨날 뺀질거리면서 놀러 다니려고 한단다.”

“은혜 네가 뺀질거리니까 똑~띠한 민서가 너 따라 하는 거지 뭐야.”

둘째 언니 은영이 킥킥대며 놀리자 은혜가 정색하며 따지고 들었다.

“둘째 언니! 어쩌면 말을 그렇게 할 수가 있어.”

둘째 언니와 셋째 언니는 언제나 티격태격하고, 큰언니는 중간에서 중재한다. 은효가 큰언니를 바라보자 큰언니가 눈썹을 모으며 말했다.

“은영이, 은혜 둘 다 조용해 봐. 진혁이가 지금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안 들리잖아.”

화면 속의 진혁은 완성된 케이크를 자연스러운 얼굴로 내어갔다.

공중에 하늘이 떠 있는 케이크는 예술작품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쟤가 둘째 이모를 닮아서 저렇게 조형을 잘하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난로에 연탄을 제일 잘 넣었던 거 기억나?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한다고 동네에 소문이 파다했잖아.”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둘째 언니 은영이 잘난 척을 했다. 셋째 언니 은혜가 검지손가락을 흔들었다.

“셋째 이모를 닮아서 색감이 좋네. 내가 우리 학부모위원회 환경미화 할 때 제일 색감 좋은 엄마로 뽑혔어.”

큰언니가 양 손바닥을 펼치며 말했다.

“아니지. 큰이모를 닮아서 여유가 있고 긴장을 덜 하잖아. 내가 우리 동네 뒷산에서 쑥을 제일 잘 캔다고.”

“쑥 잘 캐는 거랑 긴장을 덜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큰언니 장은숙이 당당하게 말했다.

“긴장하지 않고 여유 있게 돌아다니니까 쑥을 잘 발견하는 거야. 그러니까 많이, 잘 캐는 거지. 저 여유 있는 모습이 날 꼭 닮았어.”

“언니는, 참!”

“호호호호!”

“하하하하!”

네 자매는 깔깔대며 텔레비전을 시청하였다. 장은효가 중얼거렸다.

“엄마는 여기 있는데 왜 이모들이 자기를 닮았다고 하는 거야?”

◈          ◈          ◈

그때 H&J 카페 앤 베이커리에서는 프로그램 방영과 동시에 베이킹 쇼가 열리고 있었다.

“손님 여러분, 다 같이 박수 부탁드립니다!”

시즌 1 방영 2화의 오프닝 음악이 울리며 사회자 역할을 맡은 백진영이 소리쳤다.

가게 일정 문제로 1화 때는 베이킹 쇼를 할 수 없었다.

대신 2화를 홍보하는 포스터를 김가영이 그려 붙였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5만 원 이상을 구매하면 베이킹 쇼에 참여할 수 있는 티켓을 추첨해서 주었다. 여기에 앉아있는 75명은 그 추첨운이 따른 운 좋은 사람들이다.

그 행운의 손님들을 바라보며 개방형 부엌에 서 있던 진혁이 살짝 웃으며 식칼을 들어 올렸다.

그는 식칼 손잡이를 거꾸로 잡고 마카다미아를 잘게 다지고 있었는데, 하도 곱게 다져서 원래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구울 빵은 마카다미아와 크랜베리를 넣은 촉촉한 초콜릿 브라우니입니다.”

나중에는 티켓에 프리미엄까지 붙었다고 한다.

결국 인원수를 늘리기 위해 오늘은 창고로 테이블을 치웠다. 의자를 빼곡하게 놓아 70여 명이 앉을 수 있었다. H&J 카페 앤 베이커리의 손님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임진혁 쉐프님!”

“멋있어요!”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있었다. 백진영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마치 팬미팅 같군.’

오픈 키친의 진혁이 달걀을 깨뜨리는 동안, 텔레비전 속의 진혁은 자신이 무엇을 만들지 설명하고 있었다.

원래 이 설명은 요리를 전부 한 후 개별 촬영으로 이루어졌으나, 방송상에서 편집해서 앞쪽으로 옮긴 것으로 보였다.

모니터 안에서 자신이 카메라맨에게 어떻게 빵을 만들지 설명하는 모습을 힐긋 바라보며 진혁은 손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텔레비전 안에서 보이는 자신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

‘조금 더 느린 속도로 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화면 속의 진혁은 건조 크랜베리도 마카다미아도 전부 갈아서 반죽 안에 넣었다.

평은 좋았지만 그는 그것이 약간 실패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는 건조 크랜베리는 씹힘맛을 즐길 수 있도록 새끼손톱 크기로 잘랐다.

불필요한 차이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에는 크랜베리를 일부러 반죽에 섞이도록 전부 갈아 넣었으나 오늘은 약간 변형을 주어서 어떤 맛이 나는지 보고 싶었다.

TV 카메라는 곧 진혁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카메라 역시 진혁이 관심 없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이들보다, 그가 빵을 만들면서도 흘깃흘깃 보던 이들을 클로즈업해서 화면에 채웠다.

진혁이 집중하여 자신의 빵을 만드는 동안에 다른 23명의 빵을 전부 살피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솜씨가 좋은 이들은 낭중지추라, 주머니 속의 송곳이 저절로 뛰어나오는 것 같아 눈에 띄었을 뿐이다.

카메라는 사이펀 건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브라이언 신을 오랫동안 촬영하다가, 불필요한 군더더기 없는 손놀림으로 솜씨 있게 반죽을 다루는 루이스 강으로 초점을 옮겼다. 그리고 벌써 진혁이 이름을 까먹은, 시끄러운 남자가 TV에 나왔다.

‘패배자군.’

이미 떨어진 사람들의 빵 만드는 모습 역시 카메라에 담겼다.

그들은 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으며 다른 이들이 돋보이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했다.

‘1화에서 절반이 탈락했지. 2화에서는 2명이 탈락하고.’

처음부터 13명을 선발하고 1명을 탈락시켜도 좋았을 텐데 굳이 24명을 선발해서 절반을 떨어뜨린 이유는 무엇일까?

단 한 번 사용하기 위해 24개의 조리대를 설치하는 건 정말이지 어리석어 보이는 일이었다.

진혁은 쇼 진행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 신경 쓰지 않았지만 저건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손님들이 진혁의 빠른 손놀림에 넋을 잃고 구경하고 있는 사이 그는 세심하게 브라우니를 깎아냈다.

철사 기둥을 세워 식용 종이 호일을 얇게 감고서 노오랑 번개를 입혔다.

가루 내지 않은 크랜베리와 마찬가지로 약간 변덕을 부려, 설탕 장식이 아니라 노오란 모델링 초콜릿을 붙였다.

이번에는 산에 몰아치는 비바람이 아니라 바다에 몰아치는 비바람이다. 초콜릿 브라우니 케이크는 오돌토돌한 모양으로 깎여나가 사막처럼 솟은 파도 모양이 되었다.

파도의 눈부시게 부서지는 포말을 형상화하기 위해 진혁은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가루를 조금 뿌렸다.

‘케이크 톤이 어두우니까, 너무 희면 또 곤란하지.’

설탕도 아니고 슈가 파우더도 아니다. 잘게 부순 화이트 블랙 쿠키 파우더였다. 흔히들 쿠키 앤 크림이라고 하는 가루를 얹자 고운 파도 모양이 되었다.

“우와-!”

숨죽이며 그 모양을 지켜보고 있던 백진영이 감탄사를 올렸다. 진혁이 빵을 만드는 것은 언제 보아도 예술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커다란 대작 케이크를 텔레비전 쇼 진행 상황에 호흡을 맞춰가면서 여유 있게 만드는 것은 새로운 영역이었다.

‘반죽과 장식, 그리고 데코레이션을 올릴 시간까지 정확하게 조절해서 쇼 타이밍에 맞추고 있잖아?’

더욱 놀라운 일은 지금 방영하는 저 디저트 서바이벌 쇼 2화가 최초 방영이라는 점이다. 진혁이 그 전에 이 1화를 봤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텔레비전 속의 루이스 강이 재료를 다듬고 반죽을 오븐에 넣는 타이밍에 맞추어 진혁도 브라우니 반죽을 오븐에 넣었다.

아무리 봐도 TV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구름이 동실동실 떠 있는 하늘빛 하늘 케이크는 정확히 2화가 끝나는 시점에 완성되었다.

50분이라는 시간은 아무리 시간이 덜 걸리는 브라우니 케이크라고 해도, 케이크의 규모와 부피를 고려하면 무시무시하게 빠른 시간이었다. 다 만들어진 케이크를 본 손님들이 박수를 쳤다.

정지숙이 품위 있게 물었다.

“시식도 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지금 나눠드리겠습니다.”

텔레비전 속에 나온 케이크와 지금 눈앞에서 만든 케이크는 박력이 다르다.

중반 이상부터 정지숙은 텔레비전이 아니라 임진혁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하늘’이라는 주제가 나왔을 때 브라우니를 이용해 새까만 케이크를 만든 센스가 놀랍다.

‘다들 여름이나 가을 하늘, 하늘색을 떠올릴 때 새까만 밤하늘을 생각하다니.’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으로 컨셉을 잡았을 때 진혁은 독특함을 골랐다.

정지숙은 아드레아노 존부와 스텔라 위스커스, 주영모의 칭찬을 들었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시식을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점잖지 못하게 입가에 저절로 침이 고였다.

진혁은 케이크를 작게 잘라, 70여 명의 손님들에게 한 조각씩 나누어 주었다. 일부러 화면 속의 케이크보다 2배 정도 더 큰 크기로 만든 보람이 있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줄 수 있었다.

‘빨리 먹어보고 싶다……!“

“엄청나게 촉촉해 보여요.”

손바닥 절반 크기의 브라우니 케이크를 받은 정지숙은 침을 꿀꺽 삼키며 포크를 케이크에 가져갔다.

은빛 포크가 적갈색 브라우니 속을 파고들어 가는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랐다.

‘너무 부드러워.’

파운드 케이크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크림처럼 부드럽다. 혀 위에 올라온 달콤함은 단순히 초콜릿 브라우니만이 아니었다. 잘게 씹히는 크랜베리는 쫄깃해서 한없이 부드러운 브라우니와 아주 잘 어울렸다.

엄마 곁에 있는 여름 아기곰처럼 행복하고 보송보송한 맛이다.

정지숙은 귀하게 자랐지만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나 초콜릿을 마음껏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초콜릿은 크리스마스와 생일 때 받은 프랄린이나 초콜릿 봉봉, 고디바 초콜릿 등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어떤 생일 초콜릿도 지금 이 브라우니 케이크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뇌가 녹아내릴 것 같은 맛이야.’

정지숙은 브라우니를 먹으며 저절로 노곤노곤해져 눈을 감았다.

어린 시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도우미가 크리스마스트리에 녹색과 붉은색 유리 구슬을 달고 나서 그녀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양말 한가득한 프랄린 초콜릿을 입안에 넣으면 안쪽에 있는 우유 초콜릿과 아몬드가 흘러나오며 맛봉오리를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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