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11화 (111/656)

제 111화

“지금 서울 올라가서 나하고도 연락이 잘 안 돼. 보기엔 잘생겨 보여도 무뚝뚝하고 주변에 관심이 전혀 없는 놈이야.”

“남자가 무뚝뚝하고 주변에 관심 없으면 됐지. 더 뭘 바라.”

‘너한테도 관심이 없을 것 같으니까 문제지…….’

진희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요즘 몸이 가볍고 덜 피곤해서 좋은데, 희한하게 술이 잘 안 취한단 말이야.”

“건강해졌다구 자랑하니?”

“아니야. 아무리 술을 먹어도 말똥말똥한 느낌이라니까?”

“하하하하하! 강철 간을 가진 여자, 임진희! 마셔라. 더 마셔!”

진희가 키득키득 웃으며 술잔을 받았다.

“알았어. 좋은 날이니까 마신다!”

‘진혁이 저 녀석, 텔레비전에 나온 걸 보니까 궁금하네. 잘 있나?’

◈          ◈          ◈

H&J 베이커리 앤 카페에서는 1화 편이 방영되는 동안 실시간 베이킹 쇼를 열기로 했다. 백정흠의 제안이었다.

“TV에서 만들었던 걸 다시 한 번 만들어도 된다더냐?”

“가능하면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레시피 자체는 내 아이디어니까요.”

“그럼 그걸 가게에서 한번 만들어 보자고.”

‘원래는 가족들과 함께 볼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진희는 사직 전 마지막 근무를 하고, 아버지는 그날 늦게까지 실습수업이 있다고 하셨다. 어머니 역시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을 해야 한다며 아쉬워하셨다.

“진혁이 네가 내려와서 같이 볼 줄 알았는데.”

“그러게요. 이번에 카페에서 베이킹 쇼를 하게 되어 제가 자리를 비울 수가 없네요.”

“베이킹 쇼라니! 엄마도 꼭 보고 싶은데. 가게 끝나고 올라가면 9시는 되는데, 몇 시에 시작해?”

“TV 방영 시간에 맞춰서 해요. 8시요.”

“아이구, 아깝네. 그래도 엄마가 네 외숙모랑 이모들에게 보라고 전화는 다 돌렸어. 친척들이 전부 응원해줄 거야.”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진혁이 빙긋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부모님이 서울까지 올라와 진혁과 함께 보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는다.

‘가족들이 나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 천마강림보로 가서 다 데려오면 되는데…….’

갑작스럽게 베이킹 쇼를 기획하면서 부모님과 진희 역시 일정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TV 쇼 함께 보자고 무공에 대해서 고백하는 것도 우습다. 진혁은 자신의 정체를 지금 밝혀야 할지 아주 잠시 고민했다.

‘언젠가는 이야기해야겠지만 지금 당장일 필요는 없지.’

가족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결과를 알 수 없기에 최대한 미루고 싶다.

“다음 주에도 할 거니까 괜찮으시면 가게를 한 시간 일찍 닫고 오세요.”

어머니가 웃으며 물었다.

“다음 주에도 할 거라는 건, 2차전까지는 무사히 올라갔다는 거네?”

진혁이 웃었다.

“미방영분 쇼 프로그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계약서에 서명했어요. 아시잖아요, 어머니.”

어머니가 다 안다는 듯이 씩 웃었다. 전화기 너머로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다음 주에 엄마가 이모들이랑 같이 올라갈게. 숙모님들도 오랜만에 너 보고 싶다고 하더라.”

“그럼 다음 주 베이킹 쇼에 16석을 예약해둘까요? 이모부와 삼촌들도 오시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까요.”

“고마워. 그럼 그렇게 해 줘. 우리 진혁이가 어른이 다 됐네.”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너도 들었지? 진희 사직서는 완전히 수리됐대. 요즘 그쪽 병원도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 같더라. 일단 한 달 정도 쉬면서 어떤 일을 할지 생각해보라고 했는데, 내 가게에서 일을 돕고 싶다고 하더라.”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린 워터 샌드위치 주문도 많이 늘었죠?”

“그러잖아도 새로 사람을 뽑으려고 하던 차에 잘됐어. 처음에는 월급으로 주고, 좀 하다가 파트너 지분으로 가져가게 하려고 해.”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네요.”

“베이킹 쇼, 그거 엄마도 기대하고 있어. 멋진 모습 보여주렴.”

“그래요.”

전화를 끊은 진혁에게 백진영이 물었다.

“쇼에 초대할 사람들은 어떻게 선정할 거야?”

진혁이 웃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했는데요?”

“선착순?”

“백 사장님. 그럼 우리 사람 더 뽑아요. 지금 아침마다 빵집에 줄 서는 거로도 난리인데요.”

김가영이 끼어들었다. 백진영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한 60명까지는 테이블 끌어당기고 의자 놓고 하면 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전에 결혼식장 연회팀 일을 해보았던 서창덕이 진중하게 말했다.

“테이블 치우고, 의자 맞춰서 천 씌우면 100석까진 나올 공간이에요. 워낙 넓기도 넓어서.”

“그래? 그럼 너무 좁지 않을까?”

“영화관같이 죽 늘어앉는 거죠.”

“그것도 방법은 방법이네.”

김가영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럼요, 이번 주랑 다음 주 베이킹 쇼에는 어떤 재료를 준비하면 돼요? 제가 다 할 수 있어요.”

‘임 쉐프님이 뭘 만들지 너무너무 궁금해!’

진혁이 픽 웃었다.

“알면 재미없지. 재료는 내가 알아서 준비할 테니까 괜찮아.”

“에이! 재료 정도만 알려줘도 좋잖아요!”

“그나저나 이 베이킹 쇼가 10주간 매일 지속됐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서창덕이 말했다.

“우승하라는 얘기군.”

“그렇죠, 우승하면 상금으로 다 같이 단합대회라도 갑시다.”

“우승하면 가지.”

“예이!”

김가영이 신나서 폴짝 뛰었다.

“임 쉐프님이라면 하실 수 있어요.”

그녀가 수북하게 쌓인 매출 전표를 바라보았다.

“대기표도 있고, 카페 안에 있는 구매 후 2시간 제한까지 걸려 있는데 이렇게 사람이 몰린다고요. 임 쉐프님 맛은 진짜예요.”

김가영이 핸드폰을 들어 보여주었다.

“트위터하고 인스타, 페이스북에도 요새 여기 빵이 엄청 많이 올라온다구요. 우리는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이벤트 안 해요?”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던 서창덕이 말했다.

“네가 올린 것도 엄청 많은데?”

“앗!”

그녀가 황급히 손가락으로 터치스크린을 밀어 올려 화면을 바꾸었다.

“내가 올린 거 말고, 다른 사람들도 엄청 올린다니까. 여기 해시태그 봐.”

[H&J 빵스타그램 갓빵 강남역빵집 세젤맛빵 세젤멋임쉐프님 임진혁 얼짱쉐프 진바라기]

“마지막 태그 네 개는 빵에 관련된 게 아니잖아? 진바라기?”

창덕이 킥킥거리며 말했다. 김가영은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원래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남자는 그냥 멋있는 거예요.”

“그래, 그래.”

직원 두 사람이 퇴근하고 돌아간 다음 백진영이 말했다.

“네 말대로 정식 직원으로 승격하면서 인센티브를 따로 줬어. 두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지금 이 상태로 일할 수는 없어. 직원이 최소한 넷은 더 필요해. 교대도 하고 쉬어가면서 일해야 하니까.”

“그거야 그렇지.”

“그리고 페이스트리 쉐프를 아예 보조로 한 명 고용하고, 주 7일 영업을 하면 어때?”

“흠.”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365일 영업을 하는 편이 손님이 많아지긴 하지.”

“그것보다도, 진혁이 너도 쉬는 날이 있어야지.”

백진영이 엄하게 말했다.

“쉬지 않아도 피곤하지는 않긴 한데.”

“……방송에 나가거나 부모님을 뵈러 가거나 하는 일정이 있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가게를 쉬는 수요일에 그렇게 하기로 했지만, 지금 방송 때문에 전혀 못 쉬고 있지? 그리고 다음 학기에는 복학해야 한다고 임운정 아저씨께서 말씀하시던데.”

“아버지가?”

“얼마 안 남았다고 아깝다고 하시더라.”

“그건 내가 직접 아버지하고 의논해 볼 테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삑, 삑, 핸드폰이 울렸다. 진혁이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럼 나는 다음 미팅 때문에 먼저 들어갈게.”

“녹색 농부 조합의 민병철 씨 만나는 약속이었지?”

“응. 그린 워터 샌드위치가 요즘 꽤 잘 돼서 의논할 게 있어서.”

“그래, 잘하고.”

진혁은 가게를 뒤로하고 먼저 돌아섰다. 그린 워터 샌드위치는 현재 전국적으로 팔리고 있으며, H&J 카페 앤 베이커리는 유일한 오프라인 판매점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오프라인 판매점을 늘리자는 이야기인가?’

진혁은 민병철이 어떤 제안을 할지 대강 예상하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3배 이상의 매출. 수요가 늘어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할 지경이다.

‘가게를 늘리거나 공장을 늘리거나. 둘 중 하나를 원하고 있겠지.’

머리가 좋고 냉철한 만큼 사업적인 면에서는 만만치 않은 녀석이다. 진혁은 나름 민병철을 인정하고 있었다.

‘중원이었다면 상단을 맡기고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뒀을 테지만 말이지.’

여기서 그는 최고 권력자로 결정을 내리는 입장이 아니라 민병철과 동등한 입장에서 거래하는 사람이다. 진혁은 그것이 싫지 않았다.

‘평범하게, 평범하게 살자고.’

“임진혁 쉐프님!”

두 사람이 만난 곳은 가게 인근의 조용한 펍이었다. 은은한 조명에 클래식 음악이 흐르며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쳐져 있다.

자리에는 벨이 없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여종업원이 무엇이 부족한지 돌아다니면서 계속해서 손님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직접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가격표는 꽤나 센 편이었다.

“늦게까지 고생 많으십니다.”

“아뇨. 이 시간에 만나러 서울까지 올라오시게 해서 제가 미안하죠.”

예의상 인사말을 하며 진혁은 상대를 살폈다.

‘살이 쪘군.’

큰 키에 비쩍 말라서 멸치처럼 보이던 인상이, 지금은 적당히 살쪄서 배가 튀어나왔다. 팔다리는 배에 비하면 마른 편이지만 배가 볼록 튀어 올랐다. 그래도 이전에 너무 말랐던 터라 보기 흉한 정도는 아니었다.

“요즘 제가 그린 워터 샌드위치로 삼시 세끼를 먹습니다.”

민병철이 자랑스럽게 자기 양팔을 들어 보이며 활기차게 말했다.

“평생 뭘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는데, 덕분에 건강해지고 활력이 생기는 느낌이에요. 하루에 네 시간만 자도 업무를 하는 데 지장이 없다니까요. 집중력도 계속 유지되고.”

진혁이 짧게 감상을 말했다.

“사장이 아니라 광고 모델 같군요.”

“제가 저희 학교 박사과정생들한테 추천했는데, 요즘 정기 배달이 늘었습니다. 집중력이 좋아져서 좋은 논문을 쓰게 된다는 평이에요. 각종 학회에서도 주문이 많이 들어오고요.”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께서 주문량이 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샌드위치는 원래 간식으로 생각하고 개발했는데 요즘 다이어트식으로 열풍이 돌고 있어요. 가수 제니 아시죠?”

“제니요?”

뜬금없이 가수 이야기가 나와서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병철은 핸드폰 안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양손으로 V자를 그리며 소주병을 들고 있는 글래머러스한 20대 초반 여자가 눈에 띄었다.

“이 포스터는 ……저도 몇 번 봤습니다.”

그는 어디서 봤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국민가수 레드햇 제니와 미키를 모르시다니. 제니가 섹시파고 미키가 청순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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