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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110화 (110/656)

제 110화

“괜찮다니 다행이군.”

광주 사랑병원의 2년 차 안과 레지던트 박승범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후회하며 목을 매어 자살했다. 죽은 간호사 이수연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 때문에 먼저 간다는 유서도 남겼다. 자살한 곳이 안과 의국이니만큼, 사체는 빨리 발견되었다. 병원 내에서는 이 치정 사건을 덮으려고 쉬쉬하였으나 이미 소문은 퍼질 대로 퍼졌다. 진혁이 하루 전에 확인했을 때는 이미 진희가 있는 병동까지 소문이 와 있었다.

‘원래 복수는 죽은 자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야. 살아남은 자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진혁은 사건을 돌이켜 보았다.

‘유서도 본인이 직접 쓴 것이고, 자해도 자신이 직접 한 거고. CCTV에도 안과 의국에 드나든 것은 본인밖에 없고. 자살에 사용한 노끈도 본인이 직접 산 거고.’

섭혼술의 존재를 모르는 한 아무도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수 없다. 진혁은 편안한 마음으로 기지개를 켰다.

구석에서 짐을 챙기던 안토니오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크게 망신을 당한 진영찬은 이미 돌아간 뒤다. 그는 들고 온 짐을 이것저것 배낭에 넣고서 다시 한숨을 쉬었다.

‘너무 빨리 돌아가게 됐어.’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 남겠지만 그는 이제 돌아가서 귀국해야 한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들더니 절실한 얼굴로 말했다.

“혹시 이 중에 위 절제 환자를 위한 건강한 빵을 개발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어? 제발 말해줘.”

당연히 없겠지만, 혹여나 해서 물어보는 것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쉐프들은 고개를 저었고, 선량한 브라이언이 그 말을 한국어로 통역해 주었다. 다들 멀뚱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진혁이 말을 꺼냈다.

“있긴 한데.”

“뭐?! 정말로? 어떻게?!”

안토니오 칼루치오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처럼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그는 진혁의 앞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서 절실하게 말했다.

“제발 나한테 레시피를 알려줘!”

진혁은 브라이언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 말은 브라이언이 통역하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도움은 별로 안 될 거야.”

“아니야. 알려줘!”

“환자가 인간이 아니었거든.”

“인간이 아니라고……?”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봉칠이라고, 암 때문에 위를 일부 잘라낸 포메라니안이었지.”

그는 이전 동물병원에서 마주쳤던 단골손님, 김도형을 떠올렸다.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라던 그 청년은 나이 든 개 봉칠이를 소중히 여겼다. 개가 위암에 걸렸을 때 천만 원에 달하는 수술비를 내고 수술을 진행할 만큼 귀하게 대했다.

“칼로리양을 늘려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라드와 날달걀을 추가해서 조금씩 자주 먹였어. 돼지고기와 쇠고기, 닭고기와 달걀을 신선한 야채와 섞어서 부드럽게 으깨 구운 스틱. 지금도 계속 만들어 주고 있지. 나름 특별 주문이라고?”

진혁이 천천히 말했다. 처음에는 일회성으로 생일 케이크 주문을 받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곧 봉칠이의 상태를 알게 된 진혁은 특별히 개새끼를 위한 영양식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개에게 빵을 구워줄 건 아니지만, 단골손님을 위한 특별 서비스 정도는 나쁘지 않으리라 여겼다.

“처음에는 위를 절제한 인간 환자를 위한 영양 캔을 참고해볼까 했는데, 엄청나게 맛없는 그걸 먹으면 개가 화가 나서 죽어버릴 것 같더라고. 병원 수의사도 도와줘서, 그 개는 아직까지는 잘 살아있어.”

브라이언이 통역한 말을 들은 안토니오는 멍한 표정으로 두 눈을 깜빡였다.

“개, 개란 말이지…….”

그는 망설이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는 위절제술 환자가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만들려다가 계속 실패만 하고 있었어……. 이번에 여기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쇼에 나왔지. 개를 위한 음식이라니 아주 의외지만 어쩌면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당신이 그 레시피를 알려준다면 꼭, 꼭 은혜를 갚겠어.”

인간을 위한 것도 아니고, 개를 위한 음식 레시피다. 진혁은 그것을 그리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겨우 두 번 본 이 남미의 페이스트리 쉐프에게 그 레시피를 공개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진혁은 상대방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절실하고 절박한 일생일대의 소원이 담겨 있었다.

“왜 필요한데?”

“날 키워주신 대부님께서 위암으로 절제 수술을 하셔서……. 식욕이 없으셔. 아무리 건강에 좋은 빵을 개발해도 맛이 없어서 드시질 못하고 계시지. 링거를 맞고 간신히 생명은 유지하고 있으시지만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니까…….”

위암은 현대인에게 아주 흔한 질병으로, 이미 치료법이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무림에서 이는 반위(反胃)라고 하였는데 널리 알려진 불치병이었다. 음식을 점차 소화하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는 질환으로, 반위를 치료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신의 화타조차 이를 치료하지 못했다. 다만 죽고 나서 가슴을 갈라 보면 위 부분에 거대한 종양이 자라나 있다는 것을 발견해 이를 반위라 부르기 시작했을 뿐이다.

“줄 수는 있지만 조건이 있다.”

“얼마라도 낼게!”

“돈이 아니야.”

진혁은 더 이상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충분히 벌고 있었고, 그에게 필요한 것이 아주 많이 있었다.

“내가 기술을 알려 주니까, 네가 할 줄 아는 제빵, 제과 기술들을 나에게 가르쳐 줘.”

진혁이 씨익 웃었다. 이 안토니오라는 쉐프는 미국의 특급 호텔에서 7년간 일해온 경력이 있다. 그가 알고 있는 지식들은, 주영모가 공개적으로 출간한 백과사전 따위의 책보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거야 사양할 것 없지! 하지만 먼저 대부님에게 드릴 빵을 개발하고 나서 해도 될까?”

“시간은 급하지 않으니까.”

명함을 교환하고 나서, 진혁은 레시피를 적어 주었다. 브라이언이 물었다.

“이 레시피까지 내가 번역해 줘도 괜찮아요? 나까지 레시피를 보게 되는데.”

“상관없어.”

“그럼…… 저도 할 수 있는 한 돕겠습니다.”

브라이언이 진지하게 말했다.

“임진혁 쉐프는 대단히…… 선량하시군요.”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에 진혁이 눈썹을 모았다.

“뭐?”

그가 천천히 대답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뛰어난 실력에 다정한 마음, 박애 정신까지 갖고 계십니다. 천재적인 실력에 마음까지 갖추었으니 이제 그 앞에 있을 사람은 더 없을 거예요.”

“…….”

진혁은 브라이언이 번역해준 레시피를 안토니오에게 던져 주었다.

“여기.”

“알았어, 고맙다고. 멋있는 청년!”

“잘 가라.”

통역이 없어도 이 정도의 뜻은 손짓 발짓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안토니오는 밝아진 표정으로 대기실을 나섰다. 사회자 이희주가 그런 그를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가시기 전에 마지막 인터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군요.”

“의외라고요?”

“아까까지 절망한 표정을 짓고 계시던데 지금은 표정이 밝으십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평생의 친우를 사귀었으니까요. 여기 오기를 정말로 잘했습니다!”

◈          ◈          ◈

광주 사랑병원 앞, 술집에서 진희는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캬! 오늘따라 술맛이 아주 좋네.”

“내가 사람이 죽은 걸 이렇게 기뻐하게 될 줄은 몰랐지 뭐야.”

진희가 닭 다리를 물어뜯으며 말했다.

“그 새끼 양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한 조각은 남아있었나 봐. 유서에 수연이 이름 언급하면서 미안하다고 쓰여 있었다며?”

생맥주를 들이키던 친구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자기 유서에 수연이 이름 적어놓은 것도 난 별로야!”

맥주 거품을 입술에 묻히고 그녀가 열렬하게 말했다.

“유서에 수연이 이름을 적어놓은 건 결국 수연이를 두 번 더럽히는 일이라고. 진짜로 양심이 있으면 수연이가 죽기 전에 사과를 했어야지. 둘 다 죽어버리고 그게 뭐야. 그렇게 미안했으면 살아있을 때 사과했어야지…….”

“너 똑같은 얘기 계속한다. 술 취했어.”

“나 안 취했어. 그~ 소문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정도라고.”

“무슨 소문?”

친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진희의 귓가에 의미심장하게 속삭였다.

“그놈이 죽기 전에 자해를 해서 자기 고환 두 개를 터트렸대.”

진희가 놀라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와, 미친 거 아니야?”

“속죄를 하고 싶었나부지. 딱 진희 네가 말한 대로 됐다니까? 너 시내에 좌판 깔고 아예 이 길로 나가라. 간호사 그만두고 용한 점쟁이로 나가면 되겠어.”

진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야. 그 녀석이 정신 차린 건 다 수연이가 생전에 착했던 덕분이라고. 나랑 아무 상관 없어.”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니야, 그놈 원래 반성할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어. 교수님 따님이랑 결혼 날짜 잡는다고 난리였는데?”

안과 간호사인 친구가 고개를 저었다.

“어디 슈퍼히어로가 있는 게 틀림없어. 그 히어로가 정의의 편에서 사악한 놈을 처단해 준 거라고.”

진희는 가느다랗게 실눈을 뜨고 친구를 쳐다보았다.

“너 술 너무 많이 마셨다. 정신 차려. 세상에 히어로가 어디에 있어?”

[빰~빠라~빠~빠~]

호프집 주인이 TV를 틀었다. 디저트 서바이벌 쇼의 광고가 보였다.

“내 직감은 틀림이 없어.”

이야기하던 친구가 한눈을 팔며 TV를 보았다.

“저, 저기 좀 봐. 저 남자 되게 잘생겼다.”

진희가 눈을 크게 떴다.

“TV에 나온다더니 진짜로 나왔네.”

“웃기는 소리 하지 말구.”

친구가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아는 사람이 저기에 왜 나와?”

진희가 TV 화면에서 맨 오른쪽에 서 있는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 쌍둥이 동생.”

“뭐? 저 사람이 네 동생이라고?!”

친구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가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나 소개팅 좀 시켜 줘.”

“원래 가까운 사이에는 그런 거 하는 거 아니다.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만나려고 해?”

진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 술이나 더 먹자.”

“그래!”

두 사람은 다시 맥주잔을 기울였다.

“너 그러면 사직서는. 어떻게 할 거야?”

“이번에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배울 거야.”

“그 집에서 한다던 사업?”

“응.”

진희가 밝게 웃었다.

“먼저 엄마 가게부터 도와주면서 어떤 일을 할지 생각해보려고. 간호사라고 해서 간호사만 해야 하는 거 아니잖아.”

친구가 말했다.

“부럽다, 얘. 나두 우리 엄마 아빠가 그렇게 사업했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집에 가서 일 돕는 척하면서 팽팽 놀아야지.”

“놀기는 무슨,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나도 일 배워서 독립시켜달라고 하려고 해. 지금 집에 사업이 잘되니까 일도 많고 사람도 필요하고 해서,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고 엄마가 이야기하신단 말이야.”

“부럽다, 부러워!”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가 은근하게 물어왔다.

“야. 그런데 진짜 네 남동생 소개해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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