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109화 (109/656)

제 109화

“음…… 이건.”

“대단히 진한 브라우니군요.”

“브라우니지만 무언가가 섞여 있지.”

하늘 케이크는 진혁이 만든 것과 대단히 유사했다.

하늘색 초콜릿 코팅이 된 안쪽은 적갈색 브라우니 케이크고, 쪽빛 버터크림과 새하얀 버터크림이 서로 섞여 솟구치는 파도가 순간적으로 멈춘 모양을 표현한 바다 케이크는 바닐라 화이트 케이크였다.

흔히 웨딩케이크에서 자주 쓰는 화이트 레이어 케이크와 비슷해 보였다.

바닐라 화이트 케이크를 맛본 안토니오가 양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바닐라 화이트 케이크가 아닌데요.”

“그렇지. 아니야.”

“바닐라 화이트 케이크처럼 생겼는데.”

“그걸 알아내서 최대한 똑같은 맛이 나도록 만드는 게 두 사람의 일이지. 자! 시작해보라고.”

아드레아노가 신나는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맛도 보지만 모양도 보니까, 똑같이 만들자고. 지금부터 3시간. 집중해서 잘 해봐.”

거대한 종이 댕, 댕, 댕, 울렸다.

진혁은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이 허겁지겁 조리대 앞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천안투마공을 사용해 아드레아노 존부의 케이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브라우니에는 라즈베리를 갈아 넣었군. 마카다미아는 없지만, 내가 만든 것과 유사해. 설탕 대신 꿀을 사용해서 맛을 더 깊게 만든 것도 비슷하고.’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방법이 비슷해지는 걸까?

아니면 그냥 우연일까?

‘내가 저자의 케이크를 너무 많이 따라 했나 보군.’

최근에 기본 빵은 주영모의 레시피 백과사전을 이용해 만들어 보았지만, 그전에 만든 빵들은 아드레아노 존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유튜브를 이용해서 아드레아노 존부가 케이크를 만들 때 사용하는 손목의 스냅부터 반죽하는 손 모양을 전부 베꼈을 뿐만 아니라, 아드레아노 존부의 디저트 가게까지 방문해서 그곳에서 맛본 케이크를 모방해서 제작하기도 했다.

유튜브에 있는 수많은 파티쉐들 중에서 진혁은 아드레아노 존부를 제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진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한 무림인이 사문을 숨기고 삼재검법과 같은 일상적인 초식만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초식을 전개하다 보면 절로 출신 문파의 초식과 내공이 드러나는 것과 유사한 이치가 아닌가 싶었다.

‘정식으로 구배지례를 하고 스승으로 모신 것도 아니고, 훔쳐 배웠군.’

어떻게 보면 진혁의 제과와 제빵은 아버지가 기초를 닦아주었으나 응용력과 실제 솜씨는 아드레아노 존부가 길러준 것과 다름이 없다.

진혁은 마저 천안투마공을 사용하여 희디흰 케이크를 살폈다.

‘화이트 레이어 케이크처럼 생긴 건…… 호오. 그걸 넣었군.’

생크림 95%에 5%의 까망베르 치즈가 들어갔다.

치즈가 들어간 양이 너무 적어서 미각이 아주 예민하지 않으면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구경했다.

‘어디, 미각이 어느 정도 되나 볼까.’

유감스럽게도 두 사람의 미각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진영찬은 생크림에 연유를 섞고 있군. 완전히 잘못 짚었어.’

진혁은 한심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면 안토니오는 치즈 쪽으로 다가갔다.

‘프로라고 그렇게 으스대더니, 미각이 돼지보다도 못하군. 저 남미 녀석은 좀 잘하려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를 생크림에 섞기 시작했다. 진혁은 한심한 녀석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바보 같아졌다.

‘이런 쓸데없는 구경을 하고 있을 바에는 내 요리라도 생각하고 있는 게 낫겠다.’

그는 혀를 차고서 자신의 레시피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저 케이크를 만든다면, 나는 치즈를 조금 더 진하게 하는 쪽으로 맛을 개량하겠지.’

이제 진혁의 시그니쳐가 된 트리플 치즈 케이크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진하고 그윽한 치즈의 향을 즐겼다. 그리고 그 향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 또한 좋아했다.

‘진영 형이 내리는 아인슈페너하고도 잘 아울리고.’

빵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빵과 음료와의 조화!

백진영은 그가 진혁을 영입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진혁은 자신이 일터를 찾아냈다고 느꼈다.

그는 이곳에서 고급 디저트의 시장성에 대해서 충분히 익힌 다음, 백진영의 음료 기술까지 배울 것이다.

그는 지금 눈앞에 있는, 아드레아노의 레시피를 충분히 개량할 자신이 있었다.

‘뭐, 여태까지 하고 있었던 일하고 똑같으니까.’

사실 크림슨 트리플 치즈 케이크만 해도 존부의 레시피를 맛보고 재현해 낸 것이다. 진혁은 자신의 재주가 얼마나 수준이 높은지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 이들이 하고 있는 어린애 장난 같은 테스트보다 내가 훨씬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군.’

이곳에 오기 전, 진혁은 자신의 수준에 대해서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일봉이나 아버지, 백정흠은 진혁의 솜씨를 극찬하며 맛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의 요리사적인 능력 때문이 아니라, 무공에서 얻은 뛰어난 초감각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물의 생기를 보고서 어떤 것이 제일 신선한지 알아낼 수 있는 탐지력만 해도 사기 수준이지.’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극도로 뛰어난 육감 중에서도 후각과 미각이 특히 발달했다.

무려 36개의 재료를 넣은 다짐육 만두를 먹고서 어떤 고기를 사용했는지 하나하나 전부 알아낼 수 있을 정도다.

‘경험이 풍부한 페이스트리 쉐프라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가 보군.’

진혁은 자신의 실력과 그들의 위치를 재정립했다.

‘프로페셔널 쉐프라고 해서 전부 실력이 좋은 건 아니군. 나보다 못한 이들도 적지 않아. 특히 저 둘의 미각은 한참이나 떨어져.’

그가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마감 시간이 다 되었고, 두 사람 모두 케이크를 가지고 앞으로 나섰다.

진영찬의 것은 모양이 엉망이었다.

하늘은 구겨진 휴지 같았고 파도는 꿈틀거리는 크라켄처럼 보였다. 심해 괴물의 촉수같이 생긴 케이크를 바라보면서 안토니오가 킥 웃었다.

최소한 안토니오의 것은 조금 어설프긴 했지만 하늘과 바다처럼 보이기는 했다.

진영찬 역시 안토니오의 케이크를 확인하고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장. 그래도 내 것이 맛은 더 좋을 거야.’

아드레아노는 겉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맛에 더 높은 평가를 준다는 점을, 진영찬은 잊지 않고 있었다.

아드레아노가 진영찬의 케이크에 입을 댔다. 그가 얼굴을 찡그렸다.

“이건 내 케이크를 모방한 게 아니야.”

신중한 그 얼굴에 진영찬은 잠시나마 희망을 품었다.

‘진짜랑 똑같은 맛인가?!“

“이건 패러디라고도 할 수가 없어. 완전히 다른 물건입니다. 다음에는 좀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하시지.”

그가 싸늘하게 말하고, 스텔라 위스커스가 덧붙였다.

“제가 평을 굳이 말할 필요도 없군요. 저도 동감합니다. 이것은 아예 다른 맛이고, 재료도 달라요. 생김새도 따라가지 못했고요.”

주영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좋은 결과가 있기를! 그럼 이제 안토니오의 케이크를 심사하겠습니다.”

안토니오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이 패자부활전의 주인공은 두 사람뿐이다.

‘저놈이 떨어지면 내가 올라가는 거야.’

하지만 불행히도 안토니오의 케이크를 맛본 아드레아노가 고개를 저었다.

“치즈라는 점을 맞추었지만, 어떤 치즈인지 그리고 비율이 어떤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안토니오 펠리페 칼루치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주먹에 식은땀이 가득 배었다.

그는 슬럼가에서 태어났다. 길거리에서 총알이 날아다니며 골목에서는 몰래 마약을 파는 동네에서 자랐다.

운 좋게 마음씨 좋은 신부를 만나게 되어 빵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놀라운 솜씨를 발휘한 그는 신부의 추천을 받아 이탈리아의 빵 가게에서 제빵을 익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왔고, 이번 기회를 통해 아드레아노 존부의 회사에 취업할 계획이었다.

‘이번엔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해. 바울 신부님에게 자랑스러운 대자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드실 수 있는 빵을 개발해내야 한단 말이야.’

단 것을 좋아하는 바울 신부는 위암으로 위를 잘라낸 후 소화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안토니오는 탄수화물 금지를 당한 신부에게 자신이 암 환자를 위한 빵을 개발하겠다며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헤드 쉐프라고 해도 호텔에서 건강식을 개발하는 것은 무리였다.

‘아드레아노 존부는 원한다면 우승자를 채용한다고 했어. 존부는 건강빵을 개발하는 데에도 세계 최고니까, 신부님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거야.’

사실 그는 이미 존부가 암 환자나 중증질환자를 위한 빵과 케이크를 개발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단지 상업성이 없어 판매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레시피를 배워서 내가 신부님한테 만들어 드리고 싶어.’

하지만 그가 그 레시피를 배울 수 있는 길은 존부의 회사에 입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문제는 디저트 팩토리가 외부에서 쉐프 채용을 하지 않는다. 아카데미에서 교육해 직접 길러낸 쉐프들만을 채용한다.

그래서 이미 쉐프 경력이 있는 외부인이 직원으로 들어갈 방법은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서 우승하는 방법밖에 없다.

‘엄청나게 빙 돌아가는 방법이지만 이것밖에 없어.’

그는 위 절제 환자가 소화할 수 있는 맛있는 빵을 개발하기 위해 퇴근 후 많은 시제품을 개발해 보았지만 엉망진창으로 실패했다.

디저트 서바이벌 쇼의 시즌 2를 미국이 아니라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촬영한다고 했을 때는 크게 놀랐지만 다행히 후보자로 선발되어 경쟁을 이기고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통과하게 해주세요.’

안토니오는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 아드레아노 존부가 말했다.

“안토니오 칼루치오가 진영찬보다 나은 솜씨를 보였지만.”

검은 곱슬머리를 손가락으로 꼬던 안토니오가 차렷 자세로 몸을 바르게 했다. 그의 눈에 희망이 빛났다.

“맛의 80% 이상을 재현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패자부활전에는 승자가 없습니다.”

그 희망은 그대로 산산이 조각나서 부서졌다. 이희주는 판사의 최종 선고처럼 단호하게 선언했다.

“안토니오 펠리페 칼루치오, 진영찬. 이제까지 수고하셨습니다.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서 두 사람은 생존하지 못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33장

[진혁아엄마가널괜시리구ㅜ찮게햇ㄷㅏ. 요전에내가이야기햇던거슨신경 쓰ㅈㅣ말어. 진히는괜찮댄다1]

“진혁아, 엄마가 너를 괜히 귀찮게 했다. 요전에 내가 이야기했던 것은 신경 쓰지 말아. 진희는 괜찮댄다!…… 인가.”

촬영이 끝난 후, 핸드폰을 확인한 진혁은 오타투성이인 문자를 보고 피식 웃었다. 어머니는 문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문자보다는 전화를 더 익숙하게 사용했다.

하지만 촬영 중에는 핸드폰을 대기실에 두고 가게 되어 있으니까, 부재중 전화를 받지 않자 문자를 남기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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