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88화
“여보세요?”
한참이나 울린 끝에 남편 임운정이 전화를 받았다. 아침 8시, 막 아침 빵 판매를 시작해서 사람들이 몰릴 시간이라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장은효가 외쳤다.
“여보! 지금 SBC 좀 틀어 봐. 당장!”
“뭐야, 무슨 일인데?”
“보면 알아!”
그녀가 소리쳤다.
“우리 아들이 SBC에 나왔다고!!”
“무슨 소리야? 진혁이가 SBC에 왜 나와?
그녀는 바로 전화를 끊고서 리모컨을 다시 집어 들었다.
“녹화, 녹화를 해야 하는데…….”
◈ ◈ ◈
임운정은 끊어진 전화기를 보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우리 아들놈이 SBC에 왜 나온다는 거야? 강남 베이커리가 TV에 떴나?”
옆에서 분주하게 손님에게 계산을 하고 있던 일봉이 외쳤다.
“사장님, 슈크림 다 팔렸어요. 오후 브레이크 타임에 더 만들어야 돼요.”
“아이쿠, 알았다!”
그는 급하게 A4 용지에 수성 매직으로 체크 표시를 했다. 코팅된 종이는 여기에서 판매하는 빵 목록이 죽 적혀 있었는데, 시간대마다 매진된 빵과 재고가 있는 빵을 체크해서 문밖에 붙여 놓기 위한 용도다. 사람들이 계속 들어와서 사려던 빵이 없는 것을 보고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어, 진희가 만들어주었다.
-뚜르르르르르르.
임운정의 스마트폰이 또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백정흠 사장이었다.
“무슨 일인가, 동생?”
급한 일인가 해서 전화를 받았다. 지금이 제일 바쁜 시간이다. 주방에 들어가서 마저 빵도 구워야 하고, 매진된 개수도 체크해야 하고, 할 일이 많다. 그런데 더 바쁜 의동생이 전화를 해오니 아들에 관련된 일인가 싶어 통화를 하는 것이다.
“형님, 진혁 군이 SBC에 나왔어!!”
“뭐?”
임운정이 반문했다.
“걔가 왜 TV에 나와?”
“소망시청에서 올린 공식 클립이 SNS에 퍼져서, 다 돌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허, 알겠네. 일단 일이 바쁘니 끊지.”
지금 오전에 매진된 만큼 빵을 더 구우려고 하면 최소한 다섯 판은 더 구워야 한다. 마음이 급한 임운정은 전화를 끊고 다시 오븐 트레이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조금 전의 통화는 싹 잊어버렸다.
다음 시간에 나갈 빵들을 준비하던 중인데, 딸그랑 딸그랑 문소리가 들렸다.
“브레이크 타임입니다!”
“여보, 나예요.”
일봉이 문을 열어주었다.
“장 사장님, 어서 오세요.”
도시락 가게에 출근해 아침 업무를 마무리한 장은효가 빵집을 찾아왔다.
“여보, SBC에 우리 아들이 나왔다니까.”
“그러니까 걔가 TV에 왜 나와? 그리고 나는 아침 시간이 제일 바쁘다고. 알면서 왜 그래.”
일봉이 운을 뗐다.
“SNS에 지금 한창 돌고 있는 그 크로마술 말이죠?”
“크로마술? 그게 뭐냐?”
“진혁이 형이 금 씨 할머니하고 감 씨 할아버지 결혼할 때 앞에서 한 퍼포먼스 있잖아요. 은효 사장님은 도시락 가게 지키시느라 못 보셨지만.”
“퍼포먼스? 진혁이가 노래라도 불렀어?”
장은효가 놀라며 물었다.
“아뇨, 아뇨. 그거 말고요. 층층이 쌓인 원뿔형 슈크림 케이크를 크로캉부슈라고 하는데, 그거 위에 캐러멜 시럽을 뿌렸거든요. 근데 그걸 한 번에 뿌려서,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막 그랬어요. 저도 눈앞에서 보면서 신기했는데요, 뭘.”
일봉이 소망시청 트위터에서 올린 공식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 서미란 씬가? 카스텔라 사러 자주 오는 여자분이 올려도 되냐고 진혁이 형한테 물어봤거든요. 형이 허락을 하긴 했어요.”
“허어, 참.”
-띠링, 띠링, 띠링!
-삑, 삑, 삑.
임운정과 장은효는 각자 자신들의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친척과 이웃, 친척들이 문자를 보내왔다.
[ 발신자 : 김만석
메시지 : 니 아들 겸 내 제자 티브이 나왔다. 저거 대체 어떻게 한 거냐?? CG는 아닐 거고. ]
임운정이 헛웃음을 흘렸다.
“CG는 아니지. 내 눈으로 봤으니까.”
[ 발신자 : 황철우
메시지 : TV 봤다. 네 아들 나 줘. 우리 수쉐프 리츠칼턴에 스카웃되어 갔는데, 니 아들이 이리 오면 딱 좋겠다. ]
“이미 강남 가 있다. 너는 늦었어.”
임운정이 메시지에 혼잣말로 대답하는 사이 장은효도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 발신자 : 환희 엄마
메시지 : 보셨죠? 보셨죠? 아침 방송에 나오다니 대단해요!! 진혁 어머님 축하드려요. ]
[ 발신자 : 정미라
메시지 : 이번에 TV 나온 거 너희 동네 맞지? 아들하고 남편이랑 완전히 똑같이 생겼네. TV에도 다 나오고. 그런데 넌 왜 안 나왔어?? ]
[ 발신자 : 장은숙
메시지 : 테레비보ㅓ?다. 진혂이 멋잇네. 잘햇다. ]
핸드폰 사용이 서툰 15살 연상의 언니가 보내온 문자에 은효의 눈이 촉촉해졌다.
“큰언니가 잘했다고 문자 보냈어요.”
“큰언니가 이제 문자도 쓰셔?”
“형부가 보내줬을 수도 있어요.”
뇌종양으로 투병하고 있는 큰언니 장은숙은, 아버지를 일찍 여읜 은효와 세 여동생, 남동생 둘을 혼자 키워낸 여걸이다. 최근에는 사업을 확장한다고 거의 연락하지 못했다.
“진혁이랑 진희 둘 다 데리고 언니 한 번 뵈러 가야겠어요.”
“그래, 그러자.”
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업도 사업인데, 요즘 친척들을 거의 찾아가지를 못했지.”
“도시락 가게도 오픈하고 진혁이도 독립하고 바빠졌으니까요.”
그전에는 바쁘지는 않았으나 친척들을 찾아갈 면목이 없었다. 빵집은 그럭저럭 영업은 하고 있었지만 그저 굶어 죽지 않을 정도였고 자식들도 변변치 않았다. 어찌어찌 대학을 취업한 딸과 달리 아들은 학교에서 낮은 성적만 받아오다가 군대에 갔다.
‘그리고 갔다 와서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서 왔지.’
찾아가면 쌈짓돈을 꺼내서 십만 원이나 이십만 원씩 쥐여주는 큰언니를 찾아가기가 민망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우리 진혁이도 공중파 아침 방송에를 다 나왔는데, 우리가 돼지 한 마리 잡아야죠.”
“아예 장씨 집안 식구들을 다 부르자고.”
진희와 진혁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에도 돼지를 한 마리 잡았다. 삼 남매의 장남인 임운정과 달리 7남매 중 막내딸인 장은효네 식구는 인원수도 많고 먹성도 좋아, 잔치를 할 때에는 먹을 것이 많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요.”
대답하는 장은효의 뺨이 살짝 발갰다.
“그럼 어서 당신도 가서 샌드위치를 만들라고?”
“어머, 안 그래도 가려고 했다고요.”
그녀는 생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앞 가게로 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일봉이 중얼거렸다.
“텔레비전에 나오면 돼지를 잡는군요…….”
“그렇지?”
임운정이 웃었다.
“제가 닭 다리 살 샌드위치 메뉴 통과했을 때 저희 어머니는 닭을 잡아주셨는데. 이 임 씨 집안과의 이 스케일 차이는 과연…….”
일봉이 중얼거렸다. 그가 장은효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방금 고양이가 보인 것 같았는데……? 잘못 봤겠지. 고양이가 여기에 왜 있어?’
◈ ◈ ◈
그날 저녁, 진혁은 어머니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제가 자랑스럽다고요? 네.”
진혁이 통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관문에 붙은 거울에,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이 비춰 보였다. 신발을 벗으며 진혁이 피식 웃었다.
‘상대방에게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단 말이지.’
“아뇨, 제가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요. 시청 직원이 찍어 갔어요. 예, 허락은 했고요.”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들려오는 뿌듯함이 반갑다. 진혁이 기쁘게 대답했다.
“아버지도 좋아하신다고요?”
진혁이 웃었다.
“잘됐네요. 공중파까지 탈 줄은 몰랐어요.”
그는 신발을 장 안에 넣어두고 거실 안으로 들어섰다.
“또 텔레비전 나올 일이 있으면 미리 연락해 달라뇨.”
겉옷을 걸으며 진혁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머니, 이번에 TV 나온 거, 저 어머니께서 얘기해 주셔서 알았어요. 매일같이 일하느라 바쁜데 TV까지 챙겨볼 시간이 없거든요.”
그가 밝게 웃었다.
“일은 할만해요. 좋아요. 어머니는 도시락 가게 일 어떠세요?”
그는 어제 어머니에게 써놓은 편지를 힐끔 보다가 그대로 찢어 버렸다.
“다행이네요. 예, 만일 또 TV 나올 일이 있으면 나가기 전에 어머니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저기 자랑하실 수 있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 진혁은 원룸 창문에서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를 하러 온 것도 아니고, 고작 30초짜리 영상이 뉴스에 잠시 뜬 것뿐이다.
“별것도 아닌데, 많이 좋아하시네.”
하지만 어머니가 즐거워하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TV에까지 나올 줄 알았다면, 홍보 효과를 노렸다면 미리 H&J 베이커리든 아버지의 가게든 플래카드를 걸어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두 노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간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건 준비해두지를 않았다.
TV 출연은 그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범주의 일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꼽아 보았다.
“제빵을 한다거나 다른 가게에서 빵을 만든다거나 행사에 나갈 케이크를 만든다거나. 세계 대회에 나간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이렇게 공중파에 출연하는 건 생각도 안 해 봤지.”
하지만 부모님이 이렇게까지 좋아하신다면 나가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지음(知音)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음식 평론가나 다른 쉐프들 중에, 진혁이 추구하는 맛을 찾는 데 도움을 줄 만한 다른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도 꽤 미각이 예민한 편이지만 그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다음날 일어날 일을 예상하지 못한 채 평온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 ◈ ◈
여의도, SBC 방송국.
“다리가 부러졌다고? 왜?”
디저트 서바이벌 쇼의 총괄 PD인 김산호 PD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드레아노 존부의 디저트 서바이벌 쇼는 본래 그가 몸담고 있던 미국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 부인과 결혼하면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에 머물 일 년간, 한국의 페이스트리 쉐프들과 초청받은 미국의 페이스트리 쉐프들을 출연시켜 시즌 2 한국 편을 촬영하기로 한 것이다. 이미 추천 및 오디션을 통과한 8명의 한국인 출연자가 확정된 지 오래다. 당장 다음 주부터 녹화를 시작할 예정이며 모든 이들의 스케줄을 맞추었다.
그리고 방금 들려온 비보는 한국인 출연자, 페이스트리 쉐프 이민주로부터 들려온 것이다.
“교통사고로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는군요. 회복하는데 6주쯤 걸린답니다.”
막내 박하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산호 PD는 들고 있던 대본으로 책상을 후려갈겼다.
“왜 자기 몸 관리도 못 하고 방송 전에 차에 처박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