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87화 (87/656)

제 087화

“우리는 냉동 샌드위치를 하니까 튀김옷이 바삭바삭한 걸 살리기가 힘들잖아. 왜 치킨까스로 했어?”

“어……? 독특함을 넣으려고 해봤어요.”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 걸 고려해서, 차라리 소스를 추가한 닭 다리 살 스테이크 샌드위치로 하든가.”

“듣고 보니 그렇네요.”

“크루아상도 마찬가지야. 빵집에서 구워내어 냉장 보관했다가 바로 내놓는다면 모를까. 냉동이다, 이거?”

“제일 기본적인 걸 생각을 못 했네요.”

일봉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진혁이 그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에그 햄치즈샌드위치는 기본 중의 기본이지. 마침 지금 메뉴 상에도 없고. 이건 식어도 먹을만하니까 괜찮을 거 같은데? 이걸 만들어서 직접 먹어 보기는 했어?”

“마요네즈하고 달걀 배합을 여러 번 시험해 봤어요.”

“다음에 만들어서 가져와 봐.”

“예!! 젊은 사장 형님!!”

“그 웃긴 호칭 좀 그만하고.”

“그런데, 형님.”

일봉은 호칭을 바꾸어 진지하게 물었다.

“미란 씨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시청 직원이고 안정적이고 예쁘고 형 빵 좋아하고.”

“뭐가 괜찮아?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인데.”

“형 찾으려고 매일 얼굴도장 찍던데……. 형 없으면 실망하더라고요. 그거 관심 있는 거 아닌가?”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난 요즘 일하느라 정신없는데?”

“형 나이면…….”

“나 나이 어리다?”

진혁이 당당하게 말했다.

“네가 더 어리긴 하지만.”

“그래요?”

일봉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하긴 형은 외모도 있고, 이제 강남에서 일하니까 장거리가 되잖아? 그러면 별로일지도 모르겠네요?”

“별로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 여자가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데?”

진혁이 묻자 일봉이 당황해서 대답했다.

“그럼 저렇게 적극적으로 구는데 관심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에요?!”

“가게에 빵 사러 자주 온다고 그게 관심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니냐?”

진혁이 선을 그었다.

“정확히 호감이 있습니다 하고 표현을 해야 알지.”

교주 생활 60여 년. 솔직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혀 오며 몸으로 부딪혀 오는 여자가 없지는 않았다. 그중에 암살자나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이 적지 않게 섞여 있었고 그걸 골라내기 귀찮아 전부 거절했다. 그곳에서 마음 붙일 곳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 제일 큰 이유였다. 그래서 이렇게 어설프게 몇 차례 방문한 것으로 호감을 표현한다고 해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일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작은 사장 형은……, 내가 존경할만한 사람이야.”

“뭐?”

“아니에요.”

“싱겁기는.”

◈          ◈          ◈

H&J 카페 앤 베이커리 앤 카페.

진혁은 여느 때처럼 출근했다. 새벽 5시, 아무도 없는 길가에는 호떡집 아주머니만이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이것저것 쓰레기가 나뒹구는 강남의 길가를 정성 들여 빗질하고 있었는데, 자기 가게 앞만이 아니라 H&J 카페 앤 베이커리 앞까지 전부 쓸고 있었다.

‘매일 아침에 올 때마다 가게 앞이 깨끗했던 데에 이유가 있었군.’

진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양손을 들어 올렸다. 오븐을 예열할 필요도, 돌려서 구울 필요도 없다. 이전에 테스트를 해보니 삼매진화로 구운 빵은 불맛이 입혀져 좋았고 염화기공을 사용해 구운 빵은 그냥 양기를 북돋워 주어서 좋았다.

‘오늘은 삼매진화로.’

오늘 구울 빵을 전부 준비했을 때쯤, 백진영과 김가영이 도착했다.

“임 쉐프님!”

진혁에게 소식을 처음 전한 것은 아르바이트생 서창덕이었다.

“어제 도대체 뭘 하신 거예요?”

“무슨 영상?”

“트윗에서 시작해서 리트윗이 10만을 넘겼어요.”

임진혁만큼이나 키가 큰 서창덕이 스마트폰을 들어 영상을 보여주었다.

“뭐예요?”

“나도, 나도 볼래.”

바닥을 쓸고 있던 김가영과 커피를 막 내린 백진영 모두 궁금해하며 다가왔다. 서창덕이 재생 버튼을 누르자 바로 동영상이 시작되었다. 진혁이 이제 막 쇼를 시작하는 마술사처럼 새하얀 장갑을 양손에 끼었다.

[“그럼 지금부터 캐러멜 시럽을 바르겠습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서 진혁은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문득 아이디어가 하나 생각났다.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을 사용해서 환영마라진을 치면, 현혹하기가 아주 좋겠는데.’

진혁이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이, 다른 이들은 화면에 깊이 몰입했다.

영상 속의 진혁은 검무를 추는 검사처럼 유려하게 움직였다. 한 손은 허공에 들어 올리고 다른 손은 짤주머니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그가 짤주머니를 쥔 손을 떨쳐내듯 움직이자 순식간에 폭죽이 터져 나오듯 시럽이 폭발했다.

“우와아아!”

“뭐예요, 지금?!”

백진영이 탄성을, 김가영이 비명을 질렀다. 백진영이 놀라워하며 말을 더듬었다.

“원래 크로캉부슈라는 것은 카라멜 시럽 한 가닥을 우아하게 짜내는 거 아니야? 지금 저거 잘못 눌러서 짤주머니가 터져버린 거지?!”

줄기줄기 뻗은 수천 줄기의 캐러멜 시럽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거미줄처럼 빛났다.

[“어어어!”]

진혁의 아버지가 놀라서 소리를 냈지만, 수천 가닥의 캐러멜 시럽은 전부 그물처럼 크로캉부슈 기둥을 둘러싸며 안착했다. 레이스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크로캉부슈 옆에서 진혁이 싱긋 웃었다. 그 자신감 있는 미소는, 누가 보아도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의도한 것처럼 보였다. 이미 오면서 동영상을 재생해 본 서창덕이 말했다.

“이러니까 10만 힛이죠. 이러다가 금방 15만 힛, 20만 힛 되겠어요.”

“그래?”

진혁은 별로 감흥이 없었다.

“소망시청에서 공식적으로 쓴다고, 직원 하나가 영상을 찍는다고 해서 허락하긴 했는데. 왜 이게 SNS까지 돌고 있어? 너희들도 그래. 뭘 이 정도를 가지고 그렇게 놀라?”

“아니, 이 정도가 아니고.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실수로 터트렸는데 이렇게 퍼진 거예요?”

김가영이 황당해했다.

“저 이번에 제과 수업에서 생크림 짤주머니 처음 해봤거든요. 짤주머니에서 내가 의도하는 대로 크림이 나오게 하는 것도 너무 어려운데. 이건 도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실수……? 인가? 표정 보면 실수는 아닌데.”

“결혼식에서 퍼포먼스 하려고 일부러 연습을 했나 보군요.”

백진영이 중얼거렸다. 서창덕이 댓글을 보여주었다.

“이거 사람들이 CG 아니냐고 하는데요? 자기가 베이킹 하는데 현실에서 이렇게 할 수가 없다는 사람들이랑, CG는 이렇게 퀄이 나올 수가 없다는 사람들이랑 싸우고 있어요.”

창덕이 자신이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래서 임 쉐프님, 이거 CG예요?”

“아니.”

진혁의 대답은 짧고 간단했다.

“와,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지.”

서창덕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의도하고 한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실수로 저렇게 됐는데 운 좋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 거라고. 이걸 어떻게 조종하냐고 그러거든요.”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방법은 많은데.’

“우연이지, 뭐.”

짤주머니의 적절한 위치에 수없이 작은 구멍을 뚫어서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도록 해도 되고, 강기를 실처럼 가늘게 뽑아서 캐러멜 시럽을 타고서 날아가도록 해도 된다. 이번에 진혁은 그 두 가지 방법을 섞어서 사용했다.

‘강기사(剛氣絲)가 크로캉부슈를 뚫어 버리면 귀찮아지니까.’

“생활의 장인에서 찾아오기 딱 좋은 소재네요.”

김가영이 중얼거렸다. 최근 TV 프로그램에 무지한 진혁이 물었다.

“생활의 장인?”

백진영이 설명해 주었다.

“그 프로그램 있잖아. 자기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놀라운 실력을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촬영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그런 건 안 봐서.”

“게임도 안 하고, 텔레비전도 안 보고. 넌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냐?”

“빵 만드는 재미.”

“하긴.”

백진영, 김가영, 서창덕 셋 모두가 납득하고서 진혁을 응시했다.

“그러니까 그런 실력을 갖게 되는 거군요.”

“짤주머니로 마술을 부릴 수 있는 실력…….”

“저 이거 블로그에 퍼가도 돼요? 우리 카페 쉐프님이라고 자랑해야지.”

“마음대로 해.”

H&J 카페 앤 베이커리의 네 사람 모두, 그 영상이 이후 폭발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25장

아침 8시, 도시락 가게에 출근하기 전 짐을 챙기던 장은효에게 전화가 왔다.

‘이 시간부터 누구야?’

그녀가 전화를 받자,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렸다.

“은효 여사님! 저예요, 환희 엄마.”

윗집에 사는 젊은 엄마다. 마을에서 별다른 직책이 없는 진혁의 어머니와 달리, 그녀는 아파트 부녀회장을 맡는 등 사회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그녀에게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환희가 있다. 장은효의 아들 진혁이 환희의 화상에 대한 트라우마를 고쳐 주면서 두 어머니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렇게 아침부터 전화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응, 무슨 일인데?”

약간 떨떠름한 목소리를 듣고서도 부녀회장은 전화를 바로 끊지 않았다.

“지금, 지금! SBC 좀 바로 틀어 보세요.”

“텔레비? 텔레비는 왜?”

“틀어 보시면 알아요. 빨리, 빨리!”

그리고 부녀회장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나 지금 나가야 되는데…….”

전화기를 바라보며 장은효는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미 발 한 짝은 신발을 신고 있다. 신기만 하면 놀랄 만큼 발이 편해지는 붉은색 양가죽 구두. 아들과 딸이 돈을 모으고 딸이 백화점에 함께 가서 사준 이 구두는 처음에는 신기 불편했다. 하지만 아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하룻밤이 지나자 길이 잘 들어 신기 편해졌다. 쉽게 까지는 재질이라더니, 빗속에 신고 뛰어다녀도 흠집 하나 나지 않고 긁히지 않는 둥 엄청나게 튼튼하기까지 해서 출근할 때 매일 신고 있다.

이 신발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텔레비전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에라, 뭔지만 확인하고 나가지, 뭐.”

텔레비전을 켜놓고, 현관에서 다른 구두 한 짝을 신으려던 장은효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TV에서 들려와 동작을 멈추었다. 그녀는 천천히 허리를 들고 TV 화면을 뚫어지라 응시했다.

[“그럼 지금부터 캐러멜 시럽을 바르겠습니다.”]

들려온 목소리는 그녀의 장남, 임진혁의 것이었다. 장은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곧 화면이 바뀌어 아나운서가 등장했다. 정장을 입은 아나운서 이운서가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소망시에서 신랑 신부의 나이를 합치면 152세가 되는, 작은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소망시청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이 따뜻한 결혼식에서 캐러멜 시럽을 크로캉부슈에 바르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결혼식을 축하해 준…….”]

그녀는 손에서 리모컨을 떨어뜨렸다. 허겁지겁 신발을 벗은 채 텔레비전 앞으로 뛰어들어간 장은효는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 스피드 번호 1번을 누르자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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