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81화 (81/656)

제 081화

가게를 연 지 일주일이 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다. 특히 베이컨과 치킨 파이가 한정적으로 나오는 오전 열 시에는 줄이 길게 늘어선다. 저녁 10시에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을 때는 모두 기진맥진해 있었다.

“임 쉐프님은 피곤하지도 않으세요?”

“나도 피곤하지.”

이 정도 일로는 그다지 피곤하지 않지만 진혁은 말을 아꼈다. 백진영은 하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 타임 바리스타를 새로 뽑아야 하나? 이러다가 진짜 내가 제명에 못 죽겠는데. 진혁이 너는 괜찮아?”

“나는 할만해.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거 보니까 좋더라.”

“체력 진짜 좋다.”

“저는 임 쉐프님의 장점은 외모와 실력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체력을 덧붙여야겠어요…….”

걸레로 바닥을 닦으며 김가영이 중얼거렸다. 진혁은 다른 화제를 꺼냈다.

“요즘 양복 입은 아저씨들이 빵을 사러 오는 경우가 많은데.”

진혁이 말했다.

“소망시에 있는 가게는 말이지, 연령층이 다양하기는 한데 그래도 20대에서 30대 여자들이 많이 왔거든? 그런데 강남은 넓어서 그런지, 30대에서 40대 아저씨들이 많이 오네.”

커피를 내리던 백진영이 웃었다.

“저 사람들이 사가서 자기들이 직접 먹는다면 그렇겠지. 심부름 온 사람들이 많을걸?”

“심부름이라.”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군.”

사가서 누가 먹든 간에 빵을 팔아준다면 상관없다. 지루한 표정으로 줄에 늘어서 있던 이들은 가게 안에 들어오면서 깜짝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행진의 공능을 느끼고 상쾌해진 것이리라. 오픈 키친에서 스테인리스 볼에 머랭을 치기 시작한 진혁을 보며 직원 서창덕이 혀를 내둘렀다.

“임 쉐프님 머랭 치는 건 언제 봐도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백조 같지 않아요?”

김가영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백조는 우아한 척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물을 계속 발로 차고 있잖아. 그런데 임 쉐프님은 그냥 우아하다고. 그러니까 백조는 아니지.”

“백조가 여기서 왜 나와?”

백진영이 궁금해했다.

“엄청나게 우아하고 빠르고 자연스러운데…… 저게 원래 저렇게 우아한 게 아니거든요. 제가 치는 거 한 번 보실래요?”

서창덕이 스마트폰에서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이마에 핏줄이 선 창덕이 있는 힘껏 거품기로 스테인리스 볼 안을 휘젓는 모습이 보였다. 그걸 본 백진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뭐야! 엄청난 표정인데?”

“저도 하면 이렇게 된다니까요?”

얼마 전에 학원에서 머랭을 쳐 본 김가영이 거들었다.

“이거 진짜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전부 핸드 믹서든 스탠드 믹서든 기계를 사용하는데, 임 쉐프님은 저걸 꼭 손으로 하잖아요. 미친 것 같아.”

“지금 우리 쉐프가 미쳤다고 하는 거야?”

백진영이 눈을 부라리자 김가영이 두 손을 저어 보였다.

“아니요, 실력이 미친 거 같아요. 오래 일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기도 하고……. 저도 계속 일하다 보면 저렇게 되겠죠?”

“머랭은 기계가 쳐 주니까 저렇게 안 해도 되는데, 그냥 저게 장인의 솜씨구나 싶기도 하고.”

“손님들은 좋아하니까.”

임진혁이 빙긋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머랭 치는 거야 뭐, 힘들지도 않은데. 그냥 하는 거지.”

“그러니까 그게 안 힘든 게 이상한 거라고요…….”

서창덕이 투덜거렸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진혁이 혼잣말을 했다.

“심부름으로 사러 온다라.”

“아직 그 생각 하고 있어?”

“직접 사러 올만큼 맛있지 않다는 거 아닌가, 싶어서.”

진혁이 진지하게 말했다. 백진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사람을 쓸 정도로 부유한 이들은 직접 어딘가에 가지 않아. 음식점이 그들에게 가지.”

그가 조곤조곤 설명했다.

“맛이 없으면 애초에 부탁하지도 않을걸? 그러니까 맛으로는 인정받은 셈이지.”

진혁이 이맛살을 약간 찌푸렸다.

“흐음. 하지만 직접 와서 먹으면 더 맛있을 텐데.”

“그거야 그렇죠.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까.”

“맞아. 가게에서 먹으면 더 맛있더라구요. 우리 가게 페브리즈 특별히 안 쓰잖아요? 그런데 뭔가 삼림욕 하는 것 같달까, 들어오면 기분이 좋고 음식도 맛있고.”

진혁이 말했다.

“그 사람들이 먹으러 올 만큼 맛있는 빵을 만들어야겠는데.”

김가영이 눈을 크게 뜨며 대걸레로 바닥을 닦다가 굳었고, 서창덕이 컵을 닦던 손길을 멈추었다. 서창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보다 더 맛있는 빵을 만든다고요?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지금도 너무 맛있어서 곤란한데요? 저 이제 다른 데 빵은 못 먹는 몸이 되었어요.”

가영이 과장된 몸짓으로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여기서 더 맛있어져 버리면 저는 밥도 아예 못 먹을지도 몰라요.”

백진영이 고개를 저었다.

“빵이 맛있건 맛있지 않건, 그냥 그 사람들이 그런 건데. 이상한 목표를 잡아서 괜히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으음.”

“빵집에 직접 빵을 사러 오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사 온 빵을 먹는다고 하면 뭐 달라져? 손님이 아닌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지.”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스테인리스 볼에 머랭을 믹싱했을 때랑, 유리볼에 머랭을 믹싱했을 때랑 맛.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없더라고.”

“그런 걸 어떻게 구분해요?!”

“임 쉐프님은 구분할 수 있어요?”

“난 당연히 구분하지. 쇠 맛이 조금 남으니까.”

“…….”

“내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는 있는데, 더 맛있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거든. 그런데 더 맛있게 만들어도 사람들이 그 맛을 구분하지 못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는 해.”

“윽.”

“전 패스트푸드에 단련된 입맛이라…….”

“그런 부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좋은 것, 맛있는 것만 먹고 자라서 미각이 더 예민할 거야. 그러니까 그런 사람 중에서 정말 미각이 예민해서, 내가 느껴주었으면 하는 맛을 전부 다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진혁이 빙긋 웃었다.

“부자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거든. 후각과 미각이 예민하고 맛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런 손님이 한 명만 있으면 좋겠어.”

“왜요?”

“그럼 빵 만드는 게 더 즐거울 테니까.”

“지금도 충분히 즐거워 보이시는데…….”

“이게 천재의 세계군요.”

백진영이 웃었다.

“그건 어떤 기분인지 알겠다. 나도 커피 맛을 잘 아는 이승주 선생님이 내 커피가 맛있다고 해줄 때면 더 좋거든.”

“그러니까 더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남아서 연습 좀 한다. 다들 먼저 가고.”

“와, 첫날부터!”

“내일 또 보자고.”

“알겠어. 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말라고.”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보내고 진혁은 가게에 혼자 남았다. 그는 노트에 아이디어를 스케치했다.

“고급스러운 재료를 사용한, 최상의 프리미엄 디저트.”

소망시에서는 써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몇 가지 재료들을 떠올리며 그는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일 재료를 주문하고, 한 번 만들어 봐야지.”

H&J 카페 앤 베이커리의 불은 오늘도 새벽까지 꺼지지 않았다.

◈          ◈          ◈

3일 후, 아침 7시.

에르메스 선글라스를 끼고 샤넬 스카프를 두른 정지숙은 꼼꼼하게 복장을 점검했다. 스카프와 세트로 산 단순한 검은색 샤넬 원피스에 마놀로 블라닉의 수수한 펄블랙 구두까지 갖추어 신고서 거울을 보았다.

‘좋아. 이 정도면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할 거야.’

그녀는 운전기사와 함께 H&J 카페 앤 베이커리로 향했다.

“김 기사님, 여기가 맞아요?”

“여기가…… 맞습니다만.”

“7시에 연다면서요? 그런데 줄이 왜 이렇게…….”

사람들 눈을 피해서 6시 40분까지 왔는데, 가게에서 시작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마치 인기 연예인의 콘서트 줄에 선 것처럼 긴 줄이다. 운전기사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곤란해 했다.

“사모님이 저기서 줄을 서기는 어려우실 것 같은데요? 제가 줄을 서 보죠.”

정지숙은 엄지손가락 손톱을 물고서 갈등했다.

‘그냥 돌아갈까…….’

하지만 며칠 전 먹었던 그 진득하고 부드러우며 폭신하고 짭조름했던 국물! 선명하게 아삭 하고 부서지는 베이컨의 맛이 잊히지 않았다.

‘직접 갓 구운 빵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그 생각에 직접 여기까지 와 보았다. 요즘 다른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말에 솔깃하기도 했다. 오픈 키친에서 직접 빵을 만든다는 쉐프가 어떻게 하는지 직접 관찰할 셈이었다.

“아니에요. 김 기사는 먼저 가요. 나는 여기서 기다렸다가 안에까지 들어가 볼래요.”

“사모님!”

“괜찮아요.”

일부러 스케줄이 여유 있는 날 와서 다행이다. 정지숙은 고집을 부려 기사를 보내려 했다.

“그럼 이거라도 가져가시죠.”

기사가 챙겨준 편한 신발과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줄을 서서 정지숙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거리에 서 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결혼한 이후에는 항상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그것이 품위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업가의 아내가 되면서 점점 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되었다. 혹여 엉뚱한 곳에서 파파라치에게 찍히기라도 할까 봐 점점 더 몸가짐을 조심해야 했다.

스마트폰이 울렸다. 문자를 본 정지숙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발신자: 함혜정

품위 없다더니 직접 왔네?]

정지숙은 스마트폰을 쥐고서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함혜정을 찾을 수 없었다. 두 사람 앞에 서 있던 함혜정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 알아보지 못했다. 함혜정은 야구모자를 눌러 쓰고 야구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너 그렇게 입고 거리에 나다녀도 돼?!”

“……이 줄에서는 네가 훨씬 더 튄다, 얘.”

정지숙은 조심스레 함혜정의 옆에 가서 섰다. 몇 분인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정지숙이 조그맣게 말했다.

“제일 편한 구두를 골라서 신고 나왔는데도 불편해.”

“그러게, 줄이 금방 줄어들지를 않네.”

정지숙도, 함혜정도 어디 가서 기다려 본 적이 없다. 항상 VIP용 통로를 지나서 제일 먼저 도착하곤 했다. 지숙이 속삭였다.

“이런 건 줄 알았으면 그냥 기사님한테 사오라고 부탁할 걸 그랬어.”

“직접 가서 보고 고르는 맛이 또 있잖아. 나도 그래서 오늘 처음 왔는데, 네가 있으니까 든든하고 좋다. 즐겁기도 하고. 이러는 게 진짜 얼마만이냐고.”

“하긴, 그건 그래.”

양손에 빵 봉지를 가득 들고서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완연하다. 키 큰 아르바이트생이 앞에서 번호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45번, 46번! 거기 두 분 일행이신가요?”

“아니에요.”

함혜정이 딱 잘라 대답하고, 아르바이트생은 혜정과 지숙에게 각각 한 장씩의 번호표를 나눠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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