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77화 (77/656)

제 077화

고객들이 바라볼 조리대는 스테인리스가 아니라 마블링 대리석으로 뼈대가 만들어져 있다. 그 위에는 반죽에 용이한 목조 조리대를 설치했다. 기둥 역할을 하는 인조 대리석을 손으로 쓸어보며 진혁은 위치를 계산했다.

‘가게 문의 위쪽에서 가게 내부의 화장실, 조리 공간을 전부 포함할 수 있게 오행진을 설치하려면, 좋아. 여기를 키포인트로 잡으면 되겠군.’

카페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손님은 대자연의 기가 풍부한 곳 안으로 들어와 삼림욕을 하는 것처럼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느끼는지는 모르리라. 무더운 여름날 밖에 있던 사람이 에어컨이 가동된 실내로 들어오면 유난히 시원하게 느끼는 것과 같은 원리다. 대자연의 기가 미약한 바깥에서 잠시나마 오행의 기가 북돋아진 곳에 머물면 컨디션이 좋아지고 신진대사가 빨라지며 질병의 회복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수험생은 집중이 잘 되고, 일하는 사람은 일에 집중이 잘 되고.’

진혁은 오행진이 지나치게 기운이 강해지지 않도록 진을 조절할 예정이었다. 기는 엔트로피와도 같아서 한 군데에 고이지 않는다. 인공적으로 한 군데에서 좋은 기운이 쌓여가게 된다면 그만큼 다른 곳에서 빼 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주변 외의 다른 가게들은 전부 알 수 없는 불편함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아주 조금만 편해지도록.’

진혁은 대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괜히 눈에 띄어서 신선들에게 관리받을 필요는 없어.’

소망시의 아버지 가게와 평화 일봉 농장. 그렇게 두 군데까지 소형 진의 설치는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처럼 번화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면 누군가의 눈에 띄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는 신선이든 뭐든, 골치 아픈 윗사람이 생기는 것은 질색이었다.

“다음 주부터 영업이 시작이라니 내가 다 떨리는데. 기분은 어떻나?”

백정흠이 물었다. 그는 본디 임운정의 아들인 임진혁을 아끼고 있었으나, 이전에 공사장에서 진혁이 그를 구출한 이후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주었다. 어떨 때는 아버지보다 더할 정도였다. 생명의 은인에 대한 보답을 확실히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은혜를 모르는 자는 아니야.’

진혁은 백정흠을 보았다.

“나쁘진 않습니다.”

“하하! 나쁘지 않다니. 좋아서 팔짝팔짝 뛰어도 모자랄 텐데. 그래도 이게 더 좋은지도 모르겠군. 괜스레 들떠서 실수를 하는 것보다 자네처럼 침착한 것이 더 좋을 수 있겠어. 내가 진혁 군한테 배워야겠네.”

‘이상한 기분이군. 기분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해.’

진혁은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인 눈으로 살펴보았다. 백정흠에게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것이 불편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제과 제빵용 기계라는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권위를 가진,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해서 성공한 그를 존경하며 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에게 아직 이런 마음이 있다니.’

극마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인간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마선(魔仙)으로 등선하는 길은 불가능하지.’

그는 피식 웃었다. 진혁은 사실 등선을 원치 않았다.

‘지금 여기 이곳에 있는 것으로 충분해.’

그는 잠시 자신을 여기에 묶어두는 끈, 인간관계를 돌아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진희. 오직 피로 이어진 이들만을 신뢰하였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직원 한 명과 점차 가까워졌고, 이제는 백정흠 사장까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일월신교의 교주에게 인간관계란 없었다. 부하 또는 적, 두 부류다. 물론 부하 중에서도 충성스러운 녀석과 웃긴 녀석과 귀여운 녀석이 있고, 적 중에서도 괜찮은 놈과 짜증 나는 놈, 무능력한 놈이 있다.

‘아버지의 의동생.’

아버지의 의동생이라고 해서 진혁 자신이 의삼촌으로 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어떤 사람인지 지켜보았다. 아버지가 이상한 사람에게 사기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점도 크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해가 되지 않을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진혁이 ‘아버지의 의동생’과 가까워질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놈을 죽게 내버려두면 아버지가 슬퍼하시겠구나-하는 정도였을 뿐이다.

‘이렇게까지 잘해주니까 조금 미안할 정도로군.’

그는 현재 객관적으로 자신이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정흠 사장은 계속해서 진혁을 배려하며 다가왔다. 진혁이 거리를 두어도 백 사장이 진혁을 친인처럼 아꼈고 다른 사람들 모두 그 사실을 알았다.

‘연이 생기면 인연이 되고, 인연이 깊어지면 정(情)이 쌓이지.’

민간인은 연약하고 빨리 늙으며 금방 죽어버린다. 그래서 진혁은 되도록이면 깊은 인간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그리고 진희도 언젠가 먼저 가겠지.’

가족들이 겪은 환골탈태는 외부에서 진행한 늦은 벌모세수에 가깝다. 현재의 몸 상태가 건강해지는 정도로, 다른 이들보다는 오래 살겠지만 그게 전부다. 진혁 자신이 겪은 환골탈태와 경우가 다르다. 최소한 백오십은 넘게 살 진혁보다는 다들 먼저 갈 것이다.

‘그건 나중 일이지.’

진혁은 몇십 년 후의 고민은 잠시 밀어두고 현재로 돌아왔다.

“그러게요, 삼촌.”

이전에 무너진 화웅 제과제빵기계공업의 빌딩은 아예 위층까지 전부 폭파하고 처음부터 공사하는 중이다. 회사 사무실은 아예 방배동으로 이사했으나 오늘 백정흠이 잠시 시간을 내어 직접 가게를 보여주러 왔다. 옆에 서 있던 백진영은 새로운 프렌치 프레스 기계를 면밀하게 보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백정흠이 물었다.

“뭐 어떻다고?”

“최고죠, 삼촌.”

“너는 인마, 삼촌 이야기를 듣고는 있는 거냐?”

“듣고 있어요.”

진혁이 끼어들어 삼촌과 조카 사이의 신경전을 끊었다.

“인테리어가 멋집니다.”

“좋지, 아무렴. 내가 얼마나 신경 썼는데.”

“감사합니다.”

“당연히 감사해야지, 하하하하!”

‘그 말이 듣고 싶으셨군.’

진혁이 피식 웃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백정흠 사장은 나름대로 귀엽다. 옛 부하를 떠올리게 하는 귀여움이 있다. 백정흠 사장이 먼저 올라가고 나서 백진영과 임진혁 두 사람만이 남았다.

진혁이 진영에게 물었다.

“저분, 좀 귀엽지 않습니까.”

백진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진혁을 바라보았다.

“뭐라고요??”

“아닙니다.”

진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진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혁 씨 언제나 진지한 얼굴로 말이 별로 없어서 조금 어렵다 싶었는데, 농담을 잘 못 해서 이렇게 말을 조심하는 거였구나.”

백진영이 자연스럽게 말을 놓자 진혁도 반말로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닌데…….”

“이렇게 된 거, 우리 아예 말을 놓자.”

백진영이 빙긋 웃었다.

“어차피 이제 매일 같이 일하게 될 텐데, 그러면 좋잖아?”

진혁이 피식 웃었다. 같이 일하는 것과 존댓말을 쓰는 것은 아무 상관도 없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 백진영이 얼마나 떨고 있는지, 심장이 어찌나 빠르게 뛰는지 너무나 잘 느껴져서 그것이 우스웠다.

“마음대로.”

진혁이 대답하자 백진영이 활짝 웃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백진영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진혁이 맞잡았다. 백진영의 손은 긴장해서 땀으로 젖어 축축했다.

“그래.”

이렇게 조금씩 인연이 늘어간다.

◈          ◈          ◈

1주일 후. 오늘은 임진혁이 이사 오는 날이다.

백진영은 아침 일찍부터 고층 오피스텔 건물 앞에 서서 임 씨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비원이 물었다.

“사장님, 안에서 기다리시지 않고요.”

“빨리 보고 싶어서요. 친구하고 앞집에서 사는 건 처음이거든요.”

‘친구라고 말해도 되겠지.’

처음 빵 맛을 보았을 때부터 친해지고 싶었던 임 쉐프가 드디어 함께 사업을 하기 위해 이사를 온다. 말도 놓기로 했고, 사는 곳도 가깝다. 게임도 함께 하러 갈 수 있고 퇴근하고 술 한잔하기도 좋다. 자연스럽게 인간적으로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능력이 뛰어난데 어리고 묘하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점이 있어서 챙겨주고 싶단 말이지.’

새로 사귄 친구를 생각하는 백진영의 입가에 웃음이 어렸다.

“이제 금방 온다고 했는데.”

낯선 검은 승용차가 점차 가까워졌다. 하지만 백진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차는 비슷한데…… 이삿짐 트럭이 없네.”

그러니 진혁이네 차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 백진영이 망설이는 동안, 그 검은색 승용차가 멈추었다. 그 안에서 임진혁이 내리자 백진영이 반갑게 뛰어갔다.

“잘 찾아왔네!”

의아한 마음에 그가 물었다.

“이삿짐 트럭은? 차 막혀서 뒤에 따로 오는 거야?”

진혁은 승용차 트렁크에서 여행용 대형 캐리어 하나를 꺼냈다.

“짐이 많지 않아서.”

“하다못해 이불하고 베개는 있어야 할 것 아니야?”

백진영이 놀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필요한가?”

“당연히 필요하지!”

그는 자동차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하나 더 꺼냈다.

“어머니가 챙겨주셨을걸.”

사실 진혁은 노숙을 해도 상관없고 추위도 딱히 느끼지 않아, 어머니가 싸주신다는 겨울 이불과 전기장판, 두꺼운 겨울 요를 전부 거절했다.

‘있어도 상관없지만, 어머니가 쓰시는 편이 나으니까.’

군대에서 워낙 춥게 지내서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는 체질이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머니가 믿어 주셔서 다행이었다.

‘아마 본인이 환골탈태 후, 밤에 춥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어서 그러신 것 같지만.’

본래 손발이 쉽게 차가워지던 어머니는 최근 그런 것들이 없어지셨다면서 매우 좋아하셨다. 백진영이 강아지처럼 처진 눈매로 걱정스럽게 물었다.

“처음 독립하는 거라고 했지?”

“응.”

“혼자 살다 보면 필요한 게 얼마나 많은데. 걱정되네…….”

‘똑똑하고 일도 잘하는데 가끔 이렇게 세상 물정 모를 때가 있단 말이지. 역시 내가 잘 챙겨 줘야겠어.’

백진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임진혁은 캐리어 두 개를 끌고 일어섰다.

“아니, 그리고 컴퓨터는 안 가져왔어?”

캐리어 두 개에는 아무리 봐도 컴퓨터나 모니터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 보였다. 기껏해야 옷 조금, 가벼운 요 정도일까? 백진영의 질문에 진혁이 대답했다.

“별로 안 쓰는데.”

“……!!”

백진영이 과장되게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게임은 안 해?”

“안 하는데.”

원시인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로, 백진영이 질문을 바꾸었다.

“학창 시절에도 안 했어?”

“그때는 아마…… 했지?”

진혁은 먼 옛날을 잠시 회상했다. 그때는 얼마 안 되는 군인 월급을 모아서 휴가 나올 때마다 PC방에 처박혀 게임하느라 바빴다. 게임 속의 아이템을 사기 위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던 기억도 있다. 진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백진영은 이제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어쩐지 그 대단한 제빵 실력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아니었어. 게임 하나 못하고 산속에 박혀서 절벽 아래에서 폭포를 맞으며 빵을 만드는 수련을 계속해서 지금 같은 실력을 갖게 된 거지? 더 좋은 빵이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계속해서 다시 만들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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