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76화
22장
“절을 하시오!”
분홍빛 돼지머리와 떡, 북어포와 조기, 고기 전과 실타래, 북어와 쌀. 고전적인 고사상을 차리고 가족 모두가 절을 하였다.
어제 자로 아버지가 스위트 바게트였던 가게를 정식으로 인수했다. 그곳은 이제 아예 녹색 농부 조합으로 가는, 냉동 샌드위치 전문 가게로 거듭났다. 어머니가 새로 고용한 직원을 데리고 둘이서 샌드위치 작업을 전적으로 맡아서 하기로 한 것이다.
“축하드려요.”
“축하합니다!”
“엄마, 축하해요.”
돈은 진혁이 절반을, 아버지가 절반을 댔다. 부모님은 진혁의 돈을 극구 사양하려고 했지만 진혁이 억지로 쥐여 드렸다. 수익의 절반을 분배받으며 파트너 대우를 받는다면 파트너의 의무도 수행하게 해달라는 말에 부모님이 수긍해서 간신히 돈을 받게 할 수 있었다. 남편과 아들, 그리고 일봉의 도움을 받아 샌드위치 작업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익힌 어머니가 환한 표정으로 웃었다.
“이제 내가 사장님이야?”
“그렇지, 우리 여보가 사장님이지.”
어머니는 꽃이 핀 것처럼 방긋방긋 웃었다. 행복해 보였다.
“아이참, 자기가 가게 두 개 해도 된대도…….”
“당신이 더 잘할 거야.”
두 사람이 사이좋게 속닥이는 사이, 진혁은 자신이 만든 돼지 머리 모양 케이크를 식칼로 절반 갈랐다. 이것은 실제 돼지 머리를 올려놓는 것이 야만스럽다고 생각한 어머니와, 그래도 부정을 타지 않기 위해서는 돼지 머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아버지의 의견사이에서 진혁이 내놓은 타협안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이 결과물에 대단히 만족했다. 실제 돼지와 똑같이 생긴 머리가 반으로 잘리고 안에 있는 바닐라 시트와 버터크림 레이어가 세상에 드러났다.
“우와!”
축하해주러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우찌 이런 일이 있디야! 저것이 께이끼였어?!”
햇살 노인당에서 온 정갑녀 할머니가 놀라워하며 손가락질을 했다. 감 씨 노인과 함께 온 금천복도 신기해하며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었다.
“우떻게 해서 이렇게 진짜같이 만들었디야?”
“허 참, 총각이 복도 많지.”
“내가 60년만 늦게 태어났어두…….”
올해 여든 살인 정갑녀 할머니가 탄식하며 심장 부근을 움켜쥐자 금천복이 파하하하 웃었다.
“이년이 위험한 소릴 하네.”
고사를 마치고 고사 음식을 주변에 나누는데, 돼지머리 케이크에만 유난히 사람이 몰렸다.
“거, 돼지머리 맛 좀 보고 싶수다.”
앞집 편의점 아저씨가 궁금해했다.
“돼지머리 케이크 한 조각 주어 봐라.”
아예 제 것처럼 당당하게 요구하는 금천복도 있었다.
“돼지 머리 한 조각만 먹어봐도 되나요?”
일봉이를 보고 진혁이 피식 웃었다.
“먹어라, 먹어.”
“앗싸! 사장 형 최고!”
어머니가 십 년 넘게 한 파출부 일을 그만두기까지 정말 오랫동안 설득해왔다. 회귀 전의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가게에서 열심히 빵을 만들었으나, 아버지처럼 잘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하다가 허리를 다쳐 몸져누웠다. 어머니는 그때 진혁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제빵 자격증이 있었던 것이 너무 오래전 일인데, 게으르게 파출부 일을 하러 다니지 말고 미리미리 배워서 진혁에게 가르쳐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자기 탓을 하셨다.
아버지가 미끄러져 넘어져 팔을 다친 것도, 그때 진혁이 그 빈자리를 메우지 못했던 것도. 그리고 나중에 진혁이 교통사고에 휘말려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었던 것도, 그 모든 것은 전부 어머니의 탓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자신이 팔자가 사나워서 진혁까지 그 영향을 받는다고 사과를 하였다. 밤늦게 누워있는 진혁의 병실을 찾아, 늦게까지 파출부 일을 하고 와서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진혁의 옆에서 옹송그리고 새우잠을 잤다.
“어머니, 이제 다 잘 될 거예요.”
진혁이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예전보다 이십 년은 젊어 보이는 얼굴로, 생기있게 눈빛을 반짝였다.
“우리 아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로 다 잘 될 것 같네?”
“당연하죠.”
“우리 아들, 이제 서울 가서 일한다고 생각하니까 섭섭해.”
어머니가 양손으로 진혁의 한 손을 감싸 안았다. 어머니의 손은 너무나 작아서 진혁의 손을 다 감싸지 못했다. 하지만 따뜻한 체온은 전해졌다.
“엄마도 가게 때문에 이제 바빠지면 아들 챙기러 서울에 잘 올라가기 어려울 텐데……. 거기서 잘하고. 물론 잘하겠지만…….”
어머니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네가 뭘 해도 엄마는 널 믿는다.”
그 말은 식물인간이던 시절, 병실에 누워있는 진혁의 귀에 엄마가 끊임없이 속삭이던 말과 너무나도 똑같았다.
‘엄마는 네가 일어날 것이라는 걸 믿는다.’
진혁 자신도 자신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지 않았던 수많은 밤들. 그 밤에 어머니가 함께 계셨기에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다.
진혁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고맙긴, 뭘. 내가 고맙지.”
진혁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서 계셨다. 진혁이 만든 케이크를 나누어 먹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던 아버지에게 감 노인이 다가왔다.
“축하한다, 운정이. 네가 내 제자들 중에서는 제일 성공했구만.”
(구)스위트 바게트였던, 지금은 2호점으로 바꿔 단 가게 간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아버지가 감 노인에게 말했다.
“선생님 덕분이지요.”
“선생님은 무슨, 내가 네게 빵 굽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아들 키우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감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란 어떤 것인지 알려주셨잖습니까. 제 주변에는 성인 남자 어른이 없었으니까요.”
“휴우. 니가 알아서 배운 거지.”
감 노인이 한숨을 쉬었다.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 할 것은 못 된다. 아버지가 천천히 말했다.
“원래 그렇게 배우는 거죠.”
“그래.”
“결혼식은 언제 하십니까?”
“다음 달 보름이야. 금 씨가 정화수 한 그릇 떠놓구서 인사나 드리자 하는데, 다들 어찌나 국수를 먹여줘야 한다고 난리를 치는지. 특히 그 홍가 놈이 제정신이 아니었어.”
“예? 홍 씨 어르신이요?”
“자기를 짓밟구 금 씨를 데려가믄서 국수도 안 먹여 주면, 지가 분해서 잠이 안 올 것이라고 어찌나 악을 쓰는지. 그리하여 간단허니 햇살 노인정에서 피로연을 하게 되었네.”
“그렇지 않아도 아들이 물어보더라고요. 이미 생각해놓은 웨딩 케이크 디자인이 있는 모양이던데.”
감 노인이 눈빛이 변해 물었다.
“이번에도 아름다운 천복이를 만든다던가?”
이전에 보았던 은색 정장을 입은 금천복의 설탕 인형 같은 것이 또 등장하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저한테도 안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마 달리는 남자가 모티브인 것 같던데요?”
“엥이, 털 많고 냄새나는 노인네 같은 걸 만들어서 무엇에 쓴다고.”
“금 씨 어르신은 좋아하실 걸요?”
“허어, 참!”
투덜거리면서 고개를 젓는 감 노인의 귀 끝이 홍시처럼 붉었다.
‘가을인데 저쪽만 봄이야.’
저쪽 구석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와 감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진혁이 피식 웃었다.
‘다음 달 보름. 그때까지 웨딩 케이크를 완성해서 드리면 되겠군.’
◈ ◈ ◈
강남역 앞, 새로 오픈한 H&J 카페 앤 베이커리 앤 카페.
가게 안이 투명하게 비쳐보이는 전면 유리창 너머에는 궁전같은 레이스 커튼이 우아하게 드리워졌다. 섬세한 마블링 바닥재 위에 놓인 테이블은 유리와 스틸 소재다. 테이블 위에 놓인 깔끔한 흰색 테이블보는 덩굴처럼 굽어있는 검은 탁자다리를 발목까지 감싸고 있다. 투명한 의자는 덩굴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오래 앉아 있으면 불편한 것으로 일부러 골랐다.
가게는 투명하고 하얗고 넓었다.
“오픈 키친이군요.”
“그렇지, 자네가 요리하는 모습이 전부 보일 거야. 불편하지 않겠는가?”
이미 여러 차례 확인했지만 다시 한 번 물어보는 백정흠 사장의 질문에, 진혁이 피식 웃었다.
“재미있을 겁니다.”
“그래, 그리고 또 자네는 외모가 되니까. 손님들이 아주 좋아할 거야.”
백정흠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진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오랜 세월을 보낸 중원에서 그의 얼굴은 잘생긴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계집애 같다, 여성스럽다고 하는 평을 받았다. 진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마다 미적 기준은 다르니까요.”
‘아무래도 좀 더 남자다운, 근육질 람보 같은 타입을 남자답다고 여기지.’
그래서 현대에서 다들 잘생겼다, 잘생겼다고 하는 것이 어색했다.
“무슨 소리야? 자네보고 못생겼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어.”
“예에, 예에, 알겠습니다.”
묘령의 여인도 아니고 아버지뻘의 남자에게 외모를 칭찬받는 이 상황이 어색하다. 중원이었다면 보통 집안에 대해서 먼저 물어보고, 그다음에는 개인의 무공 수위를 서로 가늠한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외모와 옷차림을 칭찬한 후 각자의 직업과 일 이야기를 한다. 중시하는 가치관 자체가 다르다. 사소한 차이를 곱씹으며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문화 차이라면 문화 차이일 수 있겠군.’
“자, 여기. 주방부터 보자고. 내가 전부 최신형 오븐으로 들여놨어. 어떠냐?”
백정흠이 어린아이에게 새 장난감을 사준 아버지처럼 자랑스럽게 말했다. 주르륵 놓여 있는 데크 오븐과 컨벡션 오븐만이 아니라, 사람 키보다 더 큰 발효기가 2개나 있었다. 숙성고와 냉장고는 모두 번쩍번쩍 빛나는 새것일 뿐만 아니라, 진혁이 써보지도 못한 최신형 모델이었다. 진혁이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건 거의…… 빵 공장을 만들어도 좋을 만큼 대용량인데요?”
“당연하지!”
버티컬 믹서와 슬라이서 등 비교적 소형 주방 가전을 비롯하여, 진혁이 필요 없다고 했던 파이 롤러까지 있었다. 그 기계를 보고 진혁이 짧게 논평했다.
“파이지는 제가 직접 만드는 게 더 맛있을 텐데요.”
“아니, 잠깐. 자네 여태까지 올리는 키친 파이의 파이지를 전부 직접 만들고 있었나?”
진혁의 가게에도 직접 가본 적이 있던 백정흠이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 가게에는 파이지 기계가 없지?”
“그렇습니다. 이번에 가게 확장을 하면서 새로 들여놓을 예정이긴 해요. 아버지가 말씀하셨죠?”
“맞아. 그렇다면 여태까지 그 균일한 파이지를 다 직접 만들어서 납품했단 말인가?”
“예, 그리 많은 양도 아닌데요. 뭘.”
백정흠은 한숨을 푸욱 내쉬며 진혁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같은 사람이군. 그것도 아주 최고급 양파.”
“그거 칭찬입니까?”
“아무렴, 칭찬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