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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72화 (72/656)

제 072화

파이지 위에 반죽을 올리고, 예열된 오븐에서 구워내는 데까지 10분. 일봉이 돌아오기 전에 파이 굽기는 전부 끝났다.

“저 왔어요. 큰 사장님. 작은 사장님!”

“그래, 그래.”

오븐 문을 열자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다디단 향이 훅 풍겨왔다. 일봉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제가 시식을 해드리겠습니다.”

진혁이 일봉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냥 먹고 싶다고 해라.”

“먹고 싶습니다, 형님!”

새로운 빵을 구울 때마다 형에서 형님이 된다. 그 호칭의 변화를 의식한 진혁이 킥킥거리며 오븐에서 타르트를 꺼냈다.

“아버지 먼저.”

“그거야 당연하죠!”

그새 시식용 접시와 포크를 꺼내온 일봉이 조리대 앞에 깔끔하게 냅킨을 펼치고 준비를 마쳤다.

아버지는 손을 물티슈로 씻고서, 미니 타르트를 집어 들었다. 그는 바로 입안에 넣지 않고 홍시 단호박 타르트를 면밀하게 살폈다.

옆에서 일봉이 타르트를 한 손에 들고 아버지 눈치를 보았다.

“사장님, 바로 안 드세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먹어라.”

아버지는 가장자리의 만듦새부터 안쪽에 있는 홍시와 단호박까지 꼼꼼히 살피고 냄새를 들이마셨다.

“역시 좋구나.”

아버지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잘 만들었다. 15분이 아니라 10분 구운 건 일부러 그렇게 한 거냐?”

“예. 애초에 반죽도 얇게 했고, 사이즈도 작고요.”

아버지는 비로소 홍시 단호박 타르트를 입안에 넣었다. 제일 먼저 다가온 맛은 바삭한 달콤함이었다. 설탕을 넣어 반죽한 파이지의 연한 달콤함이 지난 후에는 부드럽고 촉촉하며 다디단 가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홍시의 단맛에 단호박의 섬세한 단맛이 섞여 지나치게 달지 않고 섬세한, 조화로운 단맛을 이루어냈다.

“이 맛이 뭐지?”

파이지 껍질에서 미묘하게 쌉싸름한 맛이 나서, 단맛이 더 강조된다. 아주 연하고 희미한 맛이었다.

“일봉아, 파이지가 무슨 맛인지 알겠니?”

아버지가 물었다. 일봉은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어 어어 아이에요!”

맛있다고 하는 것 같다. 순식간에 세 개나 먹어치운 일봉이 휴지로 입술을 닦으며 물었다.

“예?”

“파이지 맛이…….”

“홍시하고 단호박이 이렇게 절묘하게 어울릴 줄 몰랐어요. 파이지는 잘 모르겠는데, 설탕을 뭔가 특별한 걸 쓰셨나요?”

“감잎을 갈아서 밀가루에 넣었지.”

진혁이 설명했다.

“감잎은 타닌, 비타민 C, 칼슘 등 미네랄이 풍부하고 건강에도 좋아. 차로도 꽤 끓여 먹는다고 하더군.”

“감잎은 처음 들어봐요.”

“단맛을 강조할 만큼만 정확히, 맛을 맞추었구나.”

아버지가 감탄했다.

“새로운 빵을 이렇게 순식간에 만들어 내다니.”

그가 새 빵을 만들려고 하면 보통 최소한 3주는 걸린다. 이것저것 재료의 배합을 테스트하고, 원래 생각했던 맛이 재현될 때까지 재료의 비율을 맞추어 여러 차례 구워 본다. 운 좋으면 3주고, 1년이 걸려서 새 빵을 생각해낼 때도 있다. 하지만 진혁은 마치 베토벤이 피아노곡을 머릿속에서 작곡해내듯 순식간에 새 빵을 만들었다. 부럽기도 하고, 질투심이 느껴지며 동시에 자랑스럽다. 아버지의 말 속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낀 진혁이 말했다.

“아니에요, 두 사람 없을 때 여러 차례 만들어 봤죠.”

진혁이 씩 웃었다. 어젯밤에 한 차례, 단호박과 홍시의 비율을 알기 위해 테스트했던 적이 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그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도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아아.”

타르트를 먹은 후 커피를 한 입 들이킨 일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하고 진짜 잘 어울려요.”

아버지 역시 커피를 한 입 마시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이 두 번째 판을 내밀었다. 노오란 타르트와 연분홍빛 타르트가 올망졸망하게 놓여 있다. 마치 개나리와 진달래꽃밭 같았다.

“이건 또 언제 만들었어요?”

“단호박 타르트, 이쪽은 홍시 타르트.”

“!”

“이건 원래 구우시는 스틱 카스텔라네요.”

“아냐, 원래 스틱 카스텔라는 바닐라고 이건 단호박. 이쪽은 홍시 카스텔라.”

“진짜 언제 구운 거예요?!”

“아까 둘이서 소보루 반죽 준비할 때?”

“우와, 진짜 빨라!”

“한번 먹어보지.”

홍시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입맛을 다셨다.

“카스텔라도 커피하고 잘 어울린다고 해서, 같이 가을 한정으로 준비해 봤습니다. 트리플 치즈 케이크도 무난하긴 한데, 좀 더 단순하게 갈까도 싶어서.”

홍시 카스텔라를 입에 문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커피하고 잘 어울리는구나. 촉촉하고 부드럽고 희미하게 달콤한데, 꼭 커피가 아니라 허브 티 계열의 음료라면 다 괜찮을 것 같다.”

“단호박 카스텔라는 뭔가 나이 든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퍽퍽하거나 그런 질감이 없고,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운 게…… 확실히 홍시보다 덜 달고. 이거 우리 엄마 같은 어른들이 진짜 좋아할 맛이겠는데요? 그런데 강남 한복판이라면서, 거기서 팔만할까요?”

“보통 오시는 손님들 연령대가 어떤데?”

아버지가 물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1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해요.”

“이미 다 알고 있어?”

“백진영이가 그렇게 무능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동안 오는 손님들 연령대, 주로 판매되는 빵의 양, 시간 같은 걸 전부 뽑아서 줘서, 그걸 바탕으로 개발해 본 겁니다.”

“호오.”

“우리도 그런 걸 해보면 좋겠네요.”

일봉이 진지하게 말했다.

“마케팅 전공이라서 그런지 가게 손님들에 대한 데이터를 전부 정리해서 가지고 있더군.”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가게는 사실 그런 걸 누가 보고 일일이 정리하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직원이 많고 인력이 여유 있는 데처럼 하기는 힘들지.”

“여기도 그렇긴 한데…….”

일봉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희 부모님은 사실 거의 녹색 농부 조합 통해서 파는 것밖에 없거든요. 식당은 거의 안 되고, 지금 여기서 닭과 달걀을 꾸준히 사주고 계셔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긴 하는데, 지금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세요.”

“무슨 고민을?”

아버지가 물었다.

“닭의 가격이 너무 비싸고, 달걀의 양도 적고. 당장은 닭보다는 달걀을 좀 더 많이 팔고 싶으신 것 같더라고요.”

일봉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요즘 닭들이 산란율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서,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럼 아주 곤란하겠네.”

아버지가 말했다.

“어느 정도로 떨어졌는데?”

“90%에서 80%로 떨어졌어요. 여기 납품할 양은 되는데, 계속 줄어들까 봐 걱정이 된다고 부모님이 엄청 염려하세요. 도대체 문제가 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큰 사장님은 이런 걸 진짜 잘 아시네요? 보통 잘 모르던데요.”

“난 젊었을 때 이것저것 다 해봤거든. 양계장에서도 일을 해 봤어.”

“아버지가 양계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요.”

진혁이 신기해했다. 일봉이 박수를 쳤다.

“역시 경험이 풍부하십니다.”

“놀리는 거냐?”

“그건 아니고요.”

일봉이 무어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진혁이 일봉의 어깨를 툭 쳤다.

“뭔데, 말해봐.”

“아니에요, 두 분 다 바쁘신데.”

“뭐길래 그러냐?”

아버지도 재촉하자 일봉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실은 능력 있는 수의사 선생님이 와서 보고 가셨는데도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산란장 온도도 바꿔 보고. 대청소도 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그 정도냐?”

별일 아닌 것처럼 말을 꺼냈지만 사실은 큰 고민거리였던 모양이다. 일봉이 힘들게 입을 뗐다.

“혹시 주변에 동물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이나, 그런 분이 있으세요?”

“정식 수의사는 아니지만 한 분이 계시는데……. 아마 너도 아는 분일 거다.”

“제가 아는 사람요?”

“예전에 훈장을 했던 감 씨 선생님이라고, 날 가르친 분이 계셔.”

아버지가 말했다.

-딸그랑, 딸그랑.

그리고 긴 그림자가 가게 안에 드리워졌다. 금천복과 헤어지고 다시 돌아왔는지 감 씨 어르신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더니.’

“아니, 선생님. 어쩐 일이십니까?”

아버지가 일어나며 반겼다. 감 노인이 심각하게 말했다.

“자네, 나와 이야기 좀 하지.”

“예?”

20장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걸었다. 가게에서 멀어지면서 감 노인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자네도 이제 아내와 아이들이 있으니 내가 터놓고 말하지.”

“편하게 이야기하십시오.”

임운정이 웃었다.

“제가 선생님께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지 얘기해 주십시오.”

“혹시 청소부라도 필요 없나?”

감 노인이 심각하게 말했다.

“예?”

혹여 건강에 큰 문제라도 있나 걱정하고 있던 임운정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금 씨는 돈이 많아. 결혼식이고, 뭐고 전부 자신이 책임지고 할 테니까 돈 한 푼 내라 하지 않는다네.”

임운정이 침묵했다. 감 노인이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는 사실은, 매일 입고 다니는 허름한 단벌옷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옷 한 벌 정도는 사줄 수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나도 남자라고.”

감 노인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 나이에 할 일이라고는 고물이나 폐지를 줍는 일밖에 없더구먼. 하지만,”

“이 동네 고물과 종이는 전부 금 사모님께서 관리하시죠.”

“허! 사모님이라니!”

타박하는 것 같지만 입가에 웃음이 절로 번진다. 감 노인이 웃음을 흘리다가 다시 양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래서 가게를 청소하고 닦는 잡일꾼이라도 좋으니 고용해줄 수 없는지 물어보고 싶네.”

임운정이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닭을 기가 막히게 잘 아셨죠?”

“그게 무어 쓸모 있나.”

노인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은 다아 기계식으로 하는디, 나는 기계는 하나두 몰러. 그냥 풀어 키우는 닭만 알지. 그러니 어디 가서 쓸데가 있겠나.”

“저와 함께 가보시면 좋을 곳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의 지식을 꼭 필요로 하는 곳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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